136화
나는 사무실 입구 문 앞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대리님. 엄청 놀라셨나 보네요?”
자리에 앉은 채 나를 향해 웃으며 묻는 그녀.
바로 박수진 주임이었다.
그녀가 대체 여기에 왜…….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 회사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벙찐 표정으로 그녀에게 재차 되물었다.
“오늘부터 여기로. 그러니까 우리 회사로 출근을 하시기로 하셨다고요?”
내 질문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네!”
나는 장홍석 사장, 또는 손지혁 차장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탕비실 쪽에서 나오는 그들.
장 사장은 손에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 왔어?”
“네, 안녕하십니까.”
나는 장 사장과 손 차장을 향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장 사장은 고갯짓으로 박 주임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수진 주임 오늘부터 우리 광주 메디컬에서 같이 일하기로 했어. 뭐 다들 아는 사이이니까 인사는 안 해도 되는 거지?”
“아……. 그럼요.”
“그래. 우리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으니, 잘해 보자고.”
“예.”
나는 모두가 듣게 대답을 한 뒤, 내 책상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장 사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민 대리!”
서둘러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턱으로는 문밖을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뜻이었다.
나는 가방을 책상 위로 밀어둔 채 그를 따라 함께 밖으로 향했다.
“놀랐지?”
장 사장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나에게 물었다.
박 주임의 등장에 대해 묻는 모양.
나 역시 그를 따라 담배를 꺼내며 답했다.
“예, 조금 놀라기는 했습니다. 왜 갑자기…….”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우리 일은 점점 커지는데, 사무실에 사무 업무를 볼 직원이 없었잖아.”
광주 메디컬을 차린 지 벌써 어느덧 몇 주가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 장 사장과 손 차장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누구보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기존의 거래처 관리, 새로운 거래처 영업 등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사무실이 아닌 병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사무실의 업무는 쌓여만 가고 있었다.
병원에 거래 명세서를 발행하는 일, 물건을 발주하는 일, 계산서를 발행하는 일 등.
사무실에서 해야 할 기본 업무들은 넘쳐 났고, 각자 일평생을 외근 업무만 하던 우리는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사무실의 일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인터넷과 본사 직원들의 도움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꾸려보던 업무들은 실수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지.
한두 번, 하루 이틀은 넘어갈 수 있었지만, 계속 쌓여만 가는 사무 업무에 장 사장이 결단을 내린 모양.
나와 손 차장 역시 사무실의 직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박수진 주임이 WG 메디컬에 재직 중이었기에 그녀가 온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죠. 사무 업무를 볼 직원이 필요한 건 맞으니까요. 그런데 박 주임은 WG 메디컬을 언제 그만두고 온 겁니까?”
그는 내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박 주임이 어느 날 연락이 왔더라고.”
장 사장은 뽀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무실 직원 구하지 않으시냐고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박 주임이 먼저요?”
내 질문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근데 마침 나도 직원을 한 명 고용해야겠다고 느끼던 참이었으니까. 이게 웬 횡재냐 싶었지. 신입 직원을 구한다면 의료 계통은 업무를 알려줄 수 있지만, 사무 업무는 내가 알려줄 수가 없잖아.”
“예, 그렇죠.”
“근데 메디컬 계의 경력자가. 게다가 WG 메디컬에서 능력까지 봐온 직원이었으니까 나야 땡큐였지. 거부할 이유가 있겠냐.”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장 사장이어도 박 주임의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터.
아니, 오히려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 주임만 괜찮다면, 언제든 쌍수 들고 환영이라고 했지.”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점 하나.
그녀가 먼저 연락한 이유였다.
WG 메디컬이 망한 것도, 그리고 그녀가 잘렸을 리는 더더욱 아닐 터.
나는 장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 주임은 왜 우리 회사로 오려고 했을까요? WG 메디컬에 잘 다니고 있던 거 아니에요?”
그러자 장 사장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겠어.”
“예?”
이유를 내게서 찾는 듯한 그의 표정.
나는 미간에 힘을 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장 사장은 내 물음에 입꼬리를 조금 더 올리며 말했다.
“물불 안 가리고 회사 옮길 때지, 청춘이잖아. 암, 그럼. 하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한 손으로는 내 팔뚝을 툭 치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같은 식구 됐으니까 둘만 잘 지내지 말고, 다 같이 잘… 지내보자고. 나 먼저 들어간다.”
마지막 말을 내뱉고 그는 담배를 바닥에 꺼트리며 내게 뒷모습을 보였다.
물불 안 가리고 회사를 옮길 때라…….
WG 메디컬에 다니던 시절.
박 주임이 나에게 고백을 할 때, 장 사장이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장 사장은 박 주임이 그 이유 때문에 우리 회사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생각에 잠기던 그때.
“대리님!”
사무실을 빠져나와 나에게 다가오는 박 주임.
나는 그녀를 보고 황급히 담배를 밟아 꺼트렸다.
“네, 주임님.”
“장 이사님, 아니 장 사장님! 장 사장님이 사무실 들어오시길래 나왔어요.”
그녀는 장 사장이 들어가는 것을 본 뒤,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급하게 나온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담배를 피웠던 손을 탈탈 털어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저…….”
당차게 다가온 그녀는 금세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요.”
나를 빤히 바라보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놀란 토끼 눈으로 박 주임을 바라보았다.
“…네?”
그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직구를 던지는 그녀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이제 같은 회사 소속이 된 그녀였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게, 그러나 거절의 의사는 표시할 방법.
하지만 그녀는 내가 고민을 끝내기도 전,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활짝 웃는 얼굴과 함께.
“보고 싶었다구요, 대리님도. 차장님이랑 사장님도요.”
“아…….”
그녀의 해맑은 표정과 말투.
나를 퍽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 * *
“안녕하십니까.”
모던 정형외과 박승호 원장의 진료실.
그에게서 온 연락 한 통에 나는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유는 바로 ‘자가혈 주사’.
기구를 일주일 체험해 보고 난 후 구매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던 박승호 원장.
하지만 그는 3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으로 와 달라는 연락.
호출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한 채로 병원에 달려왔지만, 이유는 자가혈 주사 단 하나뿐이었다.
일주일을 채우지 않고 연락이 왔기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왔다.
기간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은 기구에 대해 호의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기구에 대한 불만이나 피드백을 남기거나, 혹은 기구를 빼달라고 하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며 박 원장과 마주했다.
“민 대리, 바로 왔네?”
표정이 어두울 거라 예상했던 박 원장.
하지만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밝아 보였다.
“예. 원장님이 찾으시니, 바로 달려와야죠. 하하.”
그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급하게 찾으셨습니까?”
“자가혈 주사 기구 말이야.”
역시, 기구에 대한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다음 멘트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물었다.
“기구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박 원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웃음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구 이제 빼도 돼.”
기구를 빼도 된다는 말을 굳이 웃으면서 하는 이유가 뭐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피드백을 달라 요청했는데, 바로 기구를 빼 달라니…….
“예? 어떤 이유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질문에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그가 내 앞으로 밀어내는 서류.
그 서류는 다름 아닌 결재판이었다.
결재판을 열자 그 안에는 서류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자가혈 주사 기구 구입에 대한 품의서.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서류를 살펴보았다.
그 서류에는 자가혈 주사에 대해 구매를 해야 하는 이유와 금액이 모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에 있는 서명란.
서명란에 있는 ‘병원장’ 칸에 빨간 도장이 진하게 찍혀 있었다.
즉, 모던 정형외과의 병원장이 이 품의서에 승인을 했다는 뜻.
나는 서명란의 도장을 보자마자 고개를 바로 들고 박 원장을 바라보았다.
“원장님! 승인된 거 맞는 거죠?”
“하하. 그래. 우리 넣어줬던 기구 빼고, 이제 새 기구로 넣어줘.”
나는 그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접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밥이나 한 끼 사.”
“그럼요. 저야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십니까?”
박 원장은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넵. 맛있는 소고깃집으로 예약해 두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에이. 요즘 원장님들이랑 하도 소고기 먹었더니 물려. 우리 병원 앞에 장엇집 생겼던데, 거기 어때?”
“어우. 좋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고.”
이 비싼 기구 한 대를 팔았는데, 장어가 대수겠는가.
단순히 물건 하나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총판을 따낼 수 있는 계단에 한 걸음 올랐다는 사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광주 권역외상센터.
그곳까지 계약을 따내야 총판을 가져올 수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 기구를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옮겼다.
* * *
“맞아요. 효과가 확실하긴 하더라고요.”
모던 정형외과의 김사랑 원장이 박승호 원장을 향해 이야기했다.
자가혈 주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불판 위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장어.
그리고 테이블 위에 줄지어 있는 술병.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박 원장과 이야기했던 저녁 술자리.
이곳에는 박 원장과 김 원장이 함께 왔다.
나는 박 원장에게 술을 따르며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다른 원장님들한테도 말씀드렸는데, 오늘 시간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
“다음에 또 날 잡아야겠네요.”
술잔을 모두 채운 뒤 팔을 뻗어 그들의 잔과 부딪쳤다.
장엇집에 들어온 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식당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와, 이제 막 생긴 식당이라 그런지 손님이 어마어마한데요?”
나는 식당 앞에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게. 너무 시끄럽다.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맛있어서 저는 괜찮던데요?”
김사랑 원장은 식당이 마음에 드는 눈치.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얼른 2차로 가실까요?”
내 질문에 박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실까요?”
나는 박 원장과 김 원장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녀는 손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우리 저기 가요!”
박 원장과 나의 시선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