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35화 (135/339)

135화

나는 박승호 원장의 서두에 미간에 힘을 준 채로 침을 한번 꿀꺽 삼켜냈다. 그리고 그의 입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민 대리 다녀가고 나서 어제 회의 때 자가혈 주사 이야기했었어.”

“예? 원장님께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민 대리한테 받은 PPT로 해서 다른 원장님들께 다 보여 드렸어.”

나는 한층 더 긴장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원장님께서 소개하셨다는 거죠?”

“응. 민 대리가 나한테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더라고. 게다가 내가 민 대리한테서 물건 구매하고 나서 실패한 적도 한 번도 없었잖아.”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그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미 다른 원장님들한테 동의도 몇 받았거든.”

“와, 정말이십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김사랑 원장도 민 대리 추천이라면 무조건 콜이라고 하더라. 하하.”

“말씀만 들어도 다른 원장님들께도 감사하네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근데 아까 하려던 말이 뭐야?”

박 원장이 내 말을 자르는 바람에 하지 못했던 말.

“아……. 자가혈 주사 기구 있지 않습니까. 그거 제가 체험해 보실 수 있게 기구를 일주일 정도 넣어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자신감에 넘치는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 역시 내 말에 놀란 눈으로 입을 벌리며 말했다.

“정말?”

“예. 금액이 커서 부담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가 기구 금액은 따로 할인을 해드릴 수가 없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주사 가격은 저희가 대량 재고 매입으로 해서 단가를 최대한 낮춰서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펜대를 굴리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야 좋지. 기구는 투자지만, 주사는 앞으로 사용하게 되면 몇백 개, 몇천 개씩 발주해서 사용하니까. 마진율도 마찬가지고.”

“맞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드렸었던 단가와 환자 청구 금액으로 계산해서 마진율 정리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는 내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음……. 마진율도 괜찮네. 어제 회의 때 기구 금액 이야기했더니, 다들 부담되는 금액이라고는 하더라고.”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어깨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구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토론했어.”

“그러면 이번에 기구 한번 사용해 보시고, 결정해 주십시오.”

나는 가방 속에서 하나의 파일을 꺼내 그의 앞에 펼쳐놓았다.

“이건 뭐야?”

그는 파일에 눈길을 흘리며 물었다.

“이 기구를 구비하시게 됐을 때, 예상 매출을 뽑아 봤습니다. 실제로 타 병원에서 기구로 인해 매출이 상승한 금액을 반영했습니다.”

그는 내 말에 관심을 가지며 서류에 집중했다.

“자가혈 주사는 한 환자에게 일주일에서 이 주일에 한 번씩은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최소 7번은 맞아야 하죠. 그렇게 됐을 때, 모던 정형외과의 인대, 뼈, 힘줄 주사를 요하는 환자의 명수가 이 정도 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내 말에 옆에 숫자를 써가며 경청했다.

“3개월의 매출은 이 정도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제가 잡은 예상 환자 수보다는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하기에 기구에 투자하셔도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공감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민 대리가 잡아 온 예상 환자 수보다 우리 병원에 이 주사 처방해도 되는 환자가 훨씬 많을 거야.”

“맞습니다. 모던 정형외과가 광주에서 관절 최고의 병원 아닙니까.”

“하하. 그건 부정할 수가 없네.”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민 대리.”

“예, 원장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네? 어떤…….”

나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구를 샘플로 넣어준다는 생각 말이야. 이런 기구는 원래 사용을 못 해보고 사는 게 맞는 거였잖아.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그는 내가 기구를 체험해 보게 해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신 감탄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구가 너무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최선은 기구를 보여드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러게. 정말 좋은 생각이다.”

“아유, 감사합니다.”

“진짜야. 민 대리는 영업에 아주 최적화된 사람인 것 같아. 대단해.”

“하하. 자꾸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는 내 너스레에 미소를 지었다.

“원장님. 기구는 그럼 내일 제가 연락드리고 본사 직원과 함께 정리해 드리러 오겠습니다. 사용해 보시고, 결정 부탁드립니다.”

“그래.”

박승호 원장의 표정과 말투는 긍정적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모던 정형외과에서 나오자마자 서둘러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향했다.

* * *

“…해서 기구를 샘플로 일주일 체험해 보시게 넣어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유재필 교수는 내 설명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지난주에 민 대리 왔을 때, 내가 지인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었잖아.”

유재필 교수의 지인이 서울에서 자가혈 주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다음에 체험을 해보러 가야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예, 기억납니다.”

“그래서 민 대리 다녀간 후로 그 교수랑 이야기했었거든. 그리고 곧장 서울 다녀왔었어.”

“아, 정말요?”

유재필 교수의 엄청난 추진력.

그는 자가혈 주사를 체험해 봐야 구매할 수 있을 거라더니, 그날 바로 지인의 병원에 다녀온 모양.

환자만을 생각하는 유 교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응. 환자들 반응도 좋고, 치유도 몇 배는 빠르다고 하더라고.”

“네, 맞습니다. 자신의 피를 그대로 주입하는 것이다 보니, 알러지 반응도 없잖습니까. 더군다나 환자들에게 이 주사의 거부감도 현저히 낮은 편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다들 자기 피 뽑아서 재투입한다고 하면 오히려 신기하고, 치료되는지 흥미를 느끼더라고.”

“단점이 처음 들이는 기구 금액. 단 하나뿐이죠.”

“금액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주사를 처방하면서 수입이 생기면 금방 메울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는 서울에 가서 기구를 본 후에 구매를 하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모양.

“게다가 환자한테 뛰어나게 좋다고 하는데, 기구를 안 들일 이유도 없고 말이야.”

“우선 병원에서 교수님께서 직접 사용해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민 대리 믿고 사용해 보고 결정할게.”

“옙. 감사합니다.”

광주 권역외상센터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받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두 군데에서 기구 계약을 하는 것이 머지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더군다나 계약하기만 하면 자가혈 주사의 총판은 대전과 우리 광주 메디컬, 전국에 단 두 군데뿐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겨우 눌러 내고 생각에 잠겼다.

하라 정형외과만큼 큰 척추 전문 병원은 또 없는데…….

하라 정형외과의 병원장 아버지를 내가 도운 적이 있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이라 내 도움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병원장은 온 제품을 우리 회사로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게 한 달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금액이 큰 기구를 영업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병원에 영업하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스스로 계획을 세웠다.

모던 정형외과, 광주 권역외상센터. 그다음은 하라 정형외과에서 꼭 계약을 받아내야겠다고.

나는 상상을 하며 그 자리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내 귀는 그곳에 집중한 채, 몸은 옷방으로 들어가 옷을 골라 갈아입고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벨트를 채우던 그때, 들리는 TV 소리.

- 광주의 무릎 관절 전문 병원이…….

“어? 광주?”

나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육성으로 소리를 내며 하던 일을 멈췄다. 그리고 채우고 있던 벨트를 부여잡고 서둘러 거실로 달려갔다.

지역 뉴스가 아닌 전국 방송에 나오는 뉴스였기에, ‘광주’라는 단어에, 그리고 ‘관절 전문 병원’이라는 단어에 내 몸은 홀린 듯이 TV 앞으로 다가갔다.

- 간호사의 제보로 세상에 밝혀지게 된 대리 수술은…….

나는 방송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뉴스에서는 수술실에서 찍힌 대리 수술 장면이 일부 모자이크 처리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영상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언제 수술을 한 것인가 보기 위해 나는 TV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영상에 기록된 날짜는 어제오늘의 기록이 아닌 무려 반년 지난 영상과 작년의 영상이었다.

날짜순으로 대여섯 개의 영상이 모두 흘러나왔다.

얼마 전 방영된 ‘이것이 알고 싶다’, 그리고 그 이후로 각종 언론에서 대리 수술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었다.

이렇게 언론에 노출되고,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자 간호사가 예전부터 찍어두었던 영상을 이제야 제보한 것 같았다.

영상 속에서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장면이었지만, 그 영상 속에 담긴 수술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투는 전혀 의사로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간호사와 친분이 전혀 없어 보이는 듯한 대화.

심지어 바로 옆에 서 있는 수간호사로 추정되는 인물의 이름조차 모르는 듯했다.

제보를 한 간호사의 동영상 각도를 보면 수술 침대 바로 옆에서 찍은 것이 아닌, 멀리서 찍은 모습이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간호사는 스크럽 간호사였다.

스크럽 간호사는 소독 간호사로도 불린다. 수술실에 멸균 후 들어가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수술하는 의사에게 필요한 기구를 전달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의사가 요청하는 기구를 바로바로 건네주는 간호사이지.

뒤이어 나오는 영상의 내용은 그 간호사와의 통화 내용이었다.

그녀는 무분별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리 수술이었기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벌어지는 광경에 그 당시에도 이상함을 느껴 몰래 촬영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것도 극히 일부입니다.’라는 말을 붙였다.

그녀는 이번 대리 수술 사망 사건이 이슈가 되자 더 이상 묵인을 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이제야 양심 고백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 뉴스를 보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일반인은 충격에 빠졌을 거라 생각했다.

병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광주 지역에서 무릎 관절 전문 병원은 몇 안 되기 때문에 바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미 수술을 받은 환자, 수술 예정인 환자들의 반발이 눈앞에 그려졌다.

나 역시 이 뉴스로 충격에 빠졌다.

이 병원은 내가 몇 번 영업을 따내기 위해 공을 들이던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던 병원이었지.

메디컬과 무슨 끈끈한 관계인가보다 싶었던 곳인데, 대리 수술로 엮인 사이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 검찰 조사 결과. 의료기기 메디컬 회사 대표의 대리 수술 인정으로 인해…….

바로 어제 영상이 제보되고, 곧바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조사를 받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메디컬 회사 대표의 대리 수술이 밝혀졌고, 그대로 그는 검찰 조사를 하게 되며 회사의 문은 그대로 굳게 닫혔다고 한다.

세상에 악한 뿌리가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뻗어 나가 있었다.

지금은 한두 개지만, 머지않아 이 모든 악한 뿌리가 뽑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며칠 전에 만났던 한태준과 백태석이 떠오르는 지금.

회사를 잘못 만나, 상사를 잘못 만나 자신들의 영업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직종을 구한다고 하던 그들이 못내 신경이 쓰였다.

내가 꼭 이 바닥에서 메디컬계를 깨끗하고 청렴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부터 피어났다.

어른들 말씀 중에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라, 라는 말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가지고도 장난을 하면 안 된다는데,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일하는 곳인 병원.

이 업계에서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라면 더욱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이 업계에 썩은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나가기를 바라며 TV 전원을 껐다.

* * *

뉴스를 보다가 평소 나오는 시간보다 몇 분 늦게 집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달려갔다.

문 앞에 서서 손목시계로 간신히 세이프한 출근 시간을 확인하고 숨을 몰아 내쉬었다.

주차장에는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기에, 나는 문을 열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나를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한 사람.

“민 대리님! 안녕하세요.”

나는 그 사람의 인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물었다.

“어? 왜 여기에…….”

“저 오늘부터 여기로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