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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34화 (134/339)

134화

회사 앞, 주꾸미 삼겹살 가게.

네모난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큰 동그란 불판.

불판에는 양념 된 주꾸미가 가득 올라가 있었고, 그 주변을 삼겹살이 감싸고 있다.

탁.

“맛있게 드세요.”

바빠서 지쳤는지 종업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소주와 맥주를 올려놓으며 형식적인 인사를 내뱉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소주의 뚜껑을 열었다.

사회의 눈치를 배운 한태준은 내가 소주를 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맥주잔 3개를 세팅했다.

역시 눈치 빠른 한태준이다, 라는 생각을 하던 그때. 백태석은 내가 딴 소주병을 받기 위해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대리님. 제가 말겠습니다.”

“오, 태석이.”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소주병을 건넸다.

백태석.

그는 첫 사회생활이 WG 메디컬이었다.

그 덕에 열정은 많았지만, 센스와 눈치가 조금 부족한 직원이었지.

예전 회식 자리에서 백태석에게 소맥을 따라보라는 WG 메디컬 김 대표의 말에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사회의 쓰디쓴 물을 마신 것인지 변해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 있다는 말이다.

열정과 더불어 이제 센스와 눈치까지 겸비하게 된 것이지.

“그래. 태석이가 타주는 소맥 한번 먹어보자.”

그가 만든 소맥이 내 앞에 올려졌다.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이때 비싼 걸 먹어야지.”

나는 앞에 앉은 한태준과 백태석에게 말했다.

그러자 백태석이 입을 열었다.

“이것도 충분히 비싸고 맛있는걸요. 뭐든 대리님이랑 같이 먹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나는 소맥이 따라져 있는 맥주잔을 들었다.

“그래. 근데 진짜 오랜만에 같이 술 마시네.”

그들은 내 잔에 다가와 술잔을 부딪쳤다.

입 안 가득히 채워지는 차디찬 알코올.

빈속에 마셔서 그런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알코올이 그대로 느껴졌다.

크으.

그들이 술잔을 내려놓고 안주를 한 입 먹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다들 잘 지냈어?”

“네, 저희야 뭐 항상 똑같죠. 대리님은 많이 바쁘셨죠?”

“그렇지. 일이 바쁘다기보다 정신이 없었지.”

한태준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 주꾸미를 뒤적이며 물었다.

“대리님, 정신없으시다면서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더 잘생겨지신 것 같기도 하고…….”

한태준의 능글맞은 저 표정은 여전했다.

나는 그의 말에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너는… 그 멘트가 그대로 다. 여전해.”

“하하, 그럼요. 사람이 변하면 못 쓰지 않습니까.”

그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눈앞에는 주꾸미 삼겹살 대신, 볶음밥이 볶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빈 맥주병과 소주병이 나란히 줄을 짓고 있었다.

“너네 회사 생활은 좀 어때? WG 메디컬은 잘 굴러가고 있어?”

내가 묻는 말에 백태석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옆에 앉은 한태준은 한숨을 참아 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대리님.”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주말에 방송 보셨습니까?”

방송을 보았냐고 묻는 한태준.

나는 그가 무슨 방송을 말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알고 싶다?”

“예.”

“그럼 당연히 봤지. 회사… 괜찮고?”

‘이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리베이트와 대리 수술 이야기.

바로 WG 메디컬의 이야기였기에,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꺼낸 이야기에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희 옷 좀 보세요.”

메디컬 회사에서는 하는 일이 병원을 찾아가 영업하는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는 뜻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옷은 늘 깔끔하고 단정해야 한다.

무조건 정장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가 입는 옷 중 정장만큼 단정한 옷도 없기에, 모두 정장을 입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된 셈.

나 역시 지금 입고 있는 옷 또한 어두운 차콜색의 정장 바지, 그리고 하얀 셔츠를 입고 있다.

그러나 내 앞에 앉은 한태준과 백태석.

그들의 옷은 그렇지 않았다.

한태준은 청바지에 맨투맨. 그리고 옆에 앉은 백태석은 슬랙스에 면티.

그들이 이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메디컬 영업사원이 입고 다니는 옷은 아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들이 오늘 회사에 가지 않은 것도 아닐 터.

즉, WG 메디컬에서는 방송이 나간 후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복장을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오늘 병원 안 갔구나.”

“예. 저희 병원 영업 못 간지 좀 됐습니다.”

“저번부터 방송국에서도 오고, 기자들도 찾아오고 사무실 분위기 말도 아니었습니다. 저희 병원 못 가는 건 당연했고요.”

그들은 풀이 한껏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생하고 있겠네, 거기.”

내가 이들에게 내뱉을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었다. 그저 그들의 말을 듣고, 위로의 대답을 건넬 뿐.

이미 최준성 과장의 대리 수술로 인해 이 사달이 난 후, WG 메디컬에 남아 있는 직원들이 수습을 하며 떨어지는 매출을 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어깨가 한없이 처진 한태준과 백태석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대리님.”

한태준은 내가 들고 있던 술병을 받아들고 내 앞에 놓인 잔에 소주를 부으며 말했다.

“저희 이제 그만하려고요.”

나는 그의 말에 들고 있던 소주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뭘 그만해?”

“메디컬이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거야?”

내 물음에 백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태준이 입을 열었다.

“예. 장 이사님이랑 손 차장님, 그리고 대리님이 나가신 이후로 회사는 진짜 말도 아니었어요.”

그는 앞에 놓인 소주를 입에 털어 마시고는 말을 이어 갔다.

“회사에서 큰 직책의 세 분이 나가셨는데, 충원 인원은 구해 주지도 않았고요. 거래처는 광주 메디컬에 빼앗기면 안 된다, 오히려 세 분이 협의해서 가지고 나간 거래처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그의 말에 옆에 앉은 백태석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맞아요. 기존 거래처 관리도 벅찬데, 신규 거래처 목표 개수를 정해 두고 달성해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말이 되는 겁니까?”

한태준과 백태석은 메디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개월 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WG 메디컬에서 관리하는 병원의 수는 벅찰 만큼 많았을 것이다. 우리 광주 메디컬 사람들이 나온 후 충원이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은 직원들에게 목표 개수를 정해 두고 신규 거래처를 뚫어오라니.

신규 거래처를 뚫는다는 것은 당연히 영업 직원이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병원이 처음 개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의사가 새로 차리는 경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즉, 이미 기존에 거래를 하고 있는 메디컬 회사가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 신규 거래처를 뚫는다는 건, 다른 메디컬 회사와 거래를 하고 있는 병원을 자신의 영업 실력으로 우리 회사와 거래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품을 영업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품을 우리 회사 물품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1년 동안 신규 거래처를 가져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신입 1년 동안은 선임을 따라다니며 영업 스킬을 배우고, 직접 부딪치며 실패를 배우고 성장하는 단계.

내 앞에 앉은 한태준과 백태석의 표정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고되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힘들어서 WG 메디컬 그만두려고?”

그들은 내 말에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백태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태석이는 메디컬 업계에 이제 얼마나 됐지?”

그는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려 날짜를 빠르게 계산했다.

“저 벌써 수습 기간 끝나 갑니다.”

“벌써? 시간 진짜 빠르다.”

한태준 역시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 백태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그러네. 내가 거의 반년 정도 됐을 때 태석이가 입사했었으니까.”

“맞습니다. 제가 회사 들어왔을 때, 선배님이 병원 혼자 병원에 물품 넣으러 가신다고 했었으니까요.”

나는 시선을 돌려 한태준에게 물었다.

“태준이는?”

“저는 곧 1년 되어 가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제 둘 다 적응도 했고, 메디컬 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도 마쳤겠네.”

한태준은 두 손으로 내가 주는 잔을 받으며 답했다.

“예. 이제 가닥이 잡히기는 했습니다.”

“그럼 WG 메디컬을 퇴사하면 둘이 같이 다른 메디컬로 옮기려고 하는 거야?”

이번에는 백태석이 내게 소주를 받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희 이제 메디컬 회사에 입사 안 하려고요.”

나는 소주잔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말에 놀라 시선을 올려 백태석을 바라보았다.

“왜?”

“저희가 아직 병원에는 많이 가지 못해서, 저희가 WG 메디컬이라는 건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메디컬로 입사할 때, 이미 제가 WG 메디컬에 다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백태석의 말에 한태준이 보태듯이 말을 이어 갔다.

“맞습니다. 지금 광주 메디컬 회사 중에서 WG 메디컬 곱게 보는 시선 하나 없지 않습니까. 지금 다 리베이트, 대리 수술 걸리게 된 장본인이 WG 메디컬이니까요. 저희가 이력서를 낸다고 한들, 아무도 뽑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태준과 백태석. 이 두 명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WG 메디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와 다른 메디컬 회사에 이력서를 넣게 되면 고운 시선으로 채용을 할 회사는 적을 것이다.

왜냐, 이 직원들이 아니어도 입사 지원하는 사람은 많을 테니까.

굳이 구설에 올랐던 회사의 직원들을 뽑고 싶은 회사는 없을 테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들었다. 그러고는 소주가 넘실거리도록 잔을 부딪쳤다.

“그렇지만 너희가 경력도 그렇고, 이쪽 업계에 적응도 됐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한번 도전은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회사에 대리 수술은 이제 없어도, 리베이트도 있고 그런 어둡고 더러운 면을 보고 나니까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고요. 아예 다른 직종을 찾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나는 앞에 앉은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너네는 어느 직종을 가든 충분히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한태준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래도 민 대리님 덕분에 WG 메디컬에서 일하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하하.”

“행복하기는. 하하. 너네는 나이도 어려서 금방금방 배우고, 이제 사회생활들도 어느 정도 배웠으니 금방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응원할게. 힘든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 테니까.”

그들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둘이 퇴사 결심하고 나서 대리님께는 얼굴 뵙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

“맞아요. 대리님께 배운 게 많아서 꼭 퇴사 전에 뵙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고맙네. 퇴사한다고 해도 앞으로 얼굴도 자주 보고 안부 연락도 하고 지내자.”

“예.”

“감사합니다.”

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에 걸어가는 길.

터벅터벅 걷는 한 걸음마다 한숨이 삐져나왔다.

후임으로 있던 그들이 WG 메디컬에서 퇴사를 한다는 것이.

더 잘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힘에 부쳐 나간다는 것이.

내가 선배였지만, 지금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씁쓸함이 차오르는 많은 생각이 드는 밤. 나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캔을 집었다.

* * *

아침 일찍 모던 정형외과로 출근을 했다.

자가혈 주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박승호 원장 진료실 앞으로 향했다.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민 대리, 엄청 일찍 왔네?”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그에게 서둘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예. 원장님, 어제 말씀드렸던 자가혈 주사 때문에 급히 왔습니다. 제가 그거…….”

박 원장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답했다.

“민 대리.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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