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깜짝이야!”
내가 내리친 테이블 소리에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은 놀란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사과하자마자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주일간 체험기. 왜 안 돼?’
나는 참신한 생각이 들었고, 상상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장 사장은 그런 나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민 대리.”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그의 부름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네, 사장님.”
“민 대리도 그럴 때일수록 조금 더 전략적으로 다가가 봐. 기구에 대한 설명을 했으면, 다음번에 갈 때는 기구의 장점을 부각하는 자료를 준비해.”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장 사장은 침을 한 번 삼켜내고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그 기구를 설치함으로 인해서 병원의 매출이 오른 사례들을 준비해서 가고. 이런 식으로 갈 때마다 같은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주제로 어필을 해봐.”
나는 장 사장을 바라보며 내가 떠오른 생각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장님.”
“응?”
“혹시 WG 메디컬에서 본사에 반품하려는 그 기구. 그걸 저희가 매입하면 안 됩니까?”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걸 왜?”
“병원에서 원장님들을 만나본 결과, 대부분은 기구를 직접 사용해 보고 괜찮다 싶으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기구는 직접 사용해 볼 수가 없으니, 저희가 그 기구를 저렴하게 가지고 오는 건 어떨까 해서요.”
장 사장과 손 차장은 내 말에 동시에 자신들의 턱을 어루만졌다.
손 차장은 턱에서 손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민 대리가 일주일 체험이네, 그런 이야기한 거구나?”
“네, 맞습니다. 병원에 기구만 일주일 정도 넣어두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권역외상센터와 모던 정형외과에 영업 중이지만, 기구가 있다면 여러 병원에 시도도 해볼 수 있고요.”
장 사장은 내 말에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아무리 중고여도 금액이 있는 기구다 보니, 사장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울 터.
“민 대리.”
“네, 사장님.”
“…자신 있어?”
그는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답했다.
“네!”
내 당찬 한마디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본사에 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진행해.”
“감사합니다.”
당연히 돈을 주면 기구를 중고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 제품도 병원에 들어갈 때는 기구 등록, 설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그런데 중고로 제품을 판매한다는 건 그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군다나 본사마다 지침이 다르기에, 중고로 메디컬에서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병원에 판매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조차 모두 지침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본사에 가능 여부부터 확인해야 했다.
나는 곧장 자리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바로 본사 직원인 김만호 과장에게.
- 네, 김만호 과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광주 메디컬 민지훈입니다.”
- 네, 대리님. 안 그래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습니다.
“네? 무슨 일로…….”
-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광주 권역외상센터와 모던 정형외과 두 군데 있지 않습니까?
“예, 두 곳 맞습니다.”
- 저희 회사에서 그 두 병원의 매출과 환자 파악을 이제 마쳤거든요.
“네, 말씀하십시오.”
- 그래서 두 군데만 기구 계약해 주셔도 충분히 총판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말요?”
- 네. 두 곳이 광주에서 워낙 크고 유명하고, 매출이 짱짱한 병원이다 보니까요. 그 두 곳만 계약해 주셔도 우선 총판 드리는 건 승인이 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 바로 여수에 한 병원 계약도 해주셨고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두 곳.
그 두 곳을 성공하기만 한다면 총판을 달라고 외쳤던 나였다.
본사 윗선에서 허가가 떨어지기만 기다렸던 나지만, 막상 승인되고 난 지금, 아직 거래를 성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계약에 성공하고 싶어졌다.
간절하게…….
“우선 구두상으로도 승인이 났다니,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게다가 총판까지 하시게 된다면 더 열심히 영업해 주실 거 아닙니까. 하하.
“그렇죠. 과장님, 그런데요.”
- 네, 대리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듣기로는 이번에 WG 메디컬에서 기구 한 대를 반품하려고 한다는데, 맞습니까?”
- 아… 벌써 그게 소문이 거기까지 났습니까?
“그럼요. 광주가 워낙 좁지 않습니까. 하하.”
- 예. 안 그래도 그거 기구 들어오는 것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애물단지가 되어 버려서…….
그의 한숨 섞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해 낸 해결 방안을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그는 내가 천천히 내뱉는 말에 침을 크게 삼켜내는 듯했다.
“저희가 그 기구를 구매할 수 있을까요?”
- 예? 저희 반품받는 기구를요?
“네, 맞습니다.”
진지한 내 대답에 그는 오히려 당황하는 말투로 재차 되물었다.
- 이 기구를 가져가시면 판매할 수 있는 곳이 없을 텐데요? 저희 기구가 중고로는 병원에 판매가 들어가는 게 금지되어 있어요.
“그럼 저희가 구매하는 건 가능한 건가요?”
- 구매해도 병원에 납품을 못하시는데…….
“병원에 샘플로 일주일 정도씩 사용을 해보게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이것 또한 가능한지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
“어차피 기구 받으시면 무용지물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구가 좋다는 건 제가 너무나도 많이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다들 경험해 보지 못한 채로, 이론상으로만 기구를 받기에는 워낙 금액이 크니까요.”
몇 초간의 정적 끝에 그는 입을 열었다.
- 대리님. 우선 이런 제안은 처음이기도 하고, 저도 뭐 회사에서 마음대로 말씀드리지 못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예. 그렇죠. 보고 한번 올려봐 주십시오.”
- 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눈 깜빡할 사이 순식간에 삭제되어 버린 주말.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월요일 아침.
지난주 본사 직원과 통화를 한 뒤 곧바로 주말이 찾아왔기에 답변을 아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본사의 대답을 들을 수 있기에.
그리고 월요일을 기다린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전날인 어제, TV 방송 ‘이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이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는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정형외과 메디컬의 리베이트와 대리 수술 편이 방송되었다.
제약 쪽에서는 리베이트가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정형외과 쪽도 그 뒤를 이어 가고 있다는 말들이 방송의 주를 이뤘다.
전국에 있는 의료 기기 메디컬 직원들의 리베이트 고발, 병원 관계자들의 리베이트 고발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리고 방송의 가장 큰 핵심이었던 ‘대리 수술’.
방송의 절반 이상이 대리 수술 관련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리 수술로 취재를 한 배경은 광주와 여수.
WG 메디컬과 여수의 정형외과였다.
모두 모자이크가 되어 나왔지만, WG 메디컬에서 근무를 했던 나는 한눈에 보아도 회사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월요일을 기다렸던 이유는 이 방송으로 인해 WG 메디컬이 망해 가느냐, 그것을 보기 위함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몸을 담았던 회사였기에 그곳이 한순간에 망해 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저 WG 메디컬의 김 대표가 더 이상의 나쁜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
내가 한때는 믿고 따르던 상사였기에 그가 좋은 일만을 하며 우리 회사와 선의의 경쟁을 하기를 바랄 뿐, 그뿐이다.
방송으로 인해 주변의 메디컬 회사들이, 그리고 병원이 얼마나 달라질지를 보기 위해 월요일을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나야 단 한 번의 리베이트도, 그리고 대리 수술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와 같은 상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퍽 많아 보였다.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떨치는 것.
방송으로 인해 얼마나 고쳐질 수 있을 것인가,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환자의 목숨을 가지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환자의 소중한 돈을 가지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말이다.
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 *
광주 쪽 병원에 눈도장도 찍을 겸, 동태도 살필 겸 사무실이 아닌 병원으로 핸들을 틀었다.
오전 내 병원 몇 군데를 돌았지만,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매주 월요일이면 병원에는 메디컬 영업사원들이 많이 보인다.
주말 이틀 동안을 쉬었기 때문에 월요일 오전부터 병원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그런데 오늘은 병원을 도는 내내 타 메디컬 영업사원을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 말은 즉, 방송의 여파가 크다는 뜻.
방송에서 나온 ‘리베이트’, ‘대리 수술’로 찔리는 메디컬 회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이 업계의 심각성을 느끼며 사무실로 복귀하는 도중 휴대전화의 진동이 세차게 울렸다.
지이잉.
02로 시작된 서울에서 걸려온 낯선 번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전화번호에 02만 떠도 일말의 의심도 없이 거절을 누르는 편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그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부분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기에 02가 뜨는 서울 전화번호는 이제 친숙하기까지 했다.
“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광주 메디컬의 민지훈 대리님 전화 맞을까요?
나를 상세히 아는 듯한 말에 나는 어느 회사인지는 몰라도 메디컬 쪽 본사 직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맞습니다만,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 저는 자가혈 주사 제품 본사에 임종주 이사라고 합니다.
나는 본사의 이사에게서 온 연락에 놀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보통 본사에서 물건을 받을 때는 영업부의 대리, 과장 정도의 직책에서 연락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 광주 메디컬처럼 작은 회사라면 인원도 적고, 직책도 본사만큼 체계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메디컬 물품의 본사 같은 경우는 부서도 크게 나뉘어 있고, 회사의 인원은 내가 다 알지 못할 만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사라는 직책의 사람과 통화를 할 리가 없었다.
그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인데, 회사의 대표 바로 밑의 직원인 이사와 연락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
“아, 안녕하십니까.”
- 네. 김만호 과장에게 민 대리님 이야기에 대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 보고를 올렸는데 이제야 연락을 하네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만호 과장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제가 민 대리님의 제안을 듣고 직접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내 제안을 듣고 이사가 직접 연락을 하는 이유.
터무니없는 제안이었을까?
내 제안을 거절하려고 이렇게 이사라는 직책의 사람이 직접 전화까지 한 것일까?
나는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구를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설득을 해야 하나 생각하던 그때.
임 이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참신한 제안이더군요.
“예?”
나는 뜻밖의 대답에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 우리 기구를 병원에 샘플로 돌리시려고 중고 구입을 요청했다고 하던데, 듣고 괜찮은 의견이라 생각했어요, 민 대리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기구가 데모용이 없다 보니, 이론과 자료로 영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지 않습니까.
“저는 자가혈 주사가 굉장히 메리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영업을 갔을 때, 기구 금액에 대한 부담감만 떨칠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 음. 그렇죠.
“그런데 기구 금액을 낮춰서 들어갈 수는 없는 거고, 기구에 대해 사용을 하고 접해 본다면 그 가격 부담을 이기고 구입할 거라고 확신했었거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구가 필요했습니다.”
임 이사는 내 말에 공감하는 듯 웃어 보였다.
- 저희도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인 영업사원이시라면, 우리가 이번에는 그동안의 틀을 깨고, 기구를 드려도 되겠다고요.
“감사합니다.”
- 저희가 감사하죠. 기구 본사 직원 통해서 가지고 내려가서 설치하는 방법과 사용법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저희 직원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 믿고 기구 내려주시는 만큼 영업 성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총판 요청하셨던데, 꼭 두 군데 병원 계약 따내셔서 민 대리님 회사에 총판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민 대리님.
“예, 이사님.”
- 민 대리님은 영업에 굉장히 소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만 메디컬 업계에 계신 건가요?
“맞습니다.”
- 흠. 나중에 좋은 기회가 온다면 대리님은 더 큰물에서도 충분히 헤엄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럼 다음에 좋은 소식으로 연락 주세요.
“예.”
본사의 임종주 이사가 내 의견을 수용하여 기구를 내려주기로 했다.
이제는 온전히 내 힘으로 이 기구를 영업해야 한다.
기구만 있다면 영업에 성공할 자신이 있던 나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 * *
고요한 사무실.
밀린 사무 업무를 보다 보니, 내 귓가에 들리는 건 똑딱똑딱 흐르는 시계 초침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가 선명해져 올 때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니, 시계의 짧은 바늘은 6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퇴근 시간이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펴내며 몸을 늘리고 있던 그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휴대전화의 알림음.
WG 메디컬 한태준에게서 온 톡이었다.
[민 대리님. 오늘 저녁에 바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