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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32화 (132/339)

132화

박승호 원장은 턱을 치켜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예?”

“이거 기구 못 쓰겠다고 나는.”

그의 단호한 표정.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지, 견적 금액이 비싸다는 것인지, PPT에 대한 피드백 하나 없이 기구를 못 쓰겠다는 말에 나는 벙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알아야 했기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이유로 그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박 원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고, 그는 내 표정을 보고 숨을 길게 내쉬며 답했다.

“기구가 너무 비싸네.”

역시.

주사와 기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는 할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구 금액에 대해서는 나 또한 비싸다는 감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나 그가 기구를 거절하는 이유도 금액 때문이었다.

기구가 억 단위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금액을 떠나 장점이 많은 의료기기라고 생각했기에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게 처음에 드는, 투자하실 비용이 큰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기계는 한 번 놓으시면 수리할 일도 거의 없을뿐더러, 수리 역시 본사에서 책임지고 무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대답했다.

“응. 수리도 해주는 거 알겠고, 투자하면 좋은 것도 알지. 근데 갑자기 병원에 이렇게 큰 금액을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래.”

나는 코끝을 찡긋거리며 그에게 답했다.

“아무래도 조금 그러시겠죠? 저도 이게 장점이 굉장히 많은 기구라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단점은 처음 투자 비용이 세다는 딱 한 가지가 있지만요.”

그는 내 말에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개인 병원이 아니잖아. 병원 내 다른 원장님들 설득을 해야 해. 그 이후에 병원장님에게도 올라가서 승인이 나와야 하는 사안이고.”

모던 정형외과 내 의사는 박승호 원장뿐이 아니다.

광주에서 내로라하는 큰 병원이기에 원장님 수 역시 엄청나다.

이런 기구 하나를 들인다는 것은 박 원장 혼자 마음에 든다고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

병원마다 제도는 다르지만, 이곳은 다른 원장들에게 절반 이상은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 후에는 기구를 들이는 것이 아닌, 병원장에게 보고가 올라가고 승인이 떨어져야 예산이 내려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

원장마다 작은 물건을 발주하고 사용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문제이다.

억이 넘는 기구를 구매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이렇게 나오는 박 원장의 반응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기구에 대해 너무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거절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못 했을 뿐.

“주사 금액은 괜찮으시죠?”

“응. 주사 금액은 이 가격이면 충분하지.”

“주사는 이제 앞으로 계속 발주하시는 품목이니까, 이 정도 마진율에 예상 사용량 생각하시면 금방 기구 금액 본전은 찾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그에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이게 내 병원이었으면 당장 투자했을 것 같긴 하다. 딱딱 남는 돈이 보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다른 원장님들 모두 설득하려면 이런 이론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이 기구가 참 좋은데 사용을 해보실 수가 없어서 말과 자료로만 설명해 드리기가 힘드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이런 기구는 데모도 없잖아.”

“네, 맞습니다. 전부 판매용으로만 나오다 보니까, 이용을 해보실 수가 없어서요.”

그는 내 노트북에 켜져 있는 PPT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이 자료는 나한테 넘겨주고 가. 다른 원장님들이랑 이야기 좀 더 해볼게. 우리 형도 극찬하기도 하고, 나도 좀 써보고 싶은데 고민 좀 해봐야겠네.”

“당연히 드리고 가야죠. 감사합니다. 천천히 살펴보시고 연락주십시오.”

“그래.”

병원에서 나오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모던 정형외과에서 한 번에 판매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긍정적이지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총판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큰 병원 2곳에 물건 계약을 해야 하는데…….

처음 온 가장 믿을 만한 병원에서의 거절이라니.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다는 건 성공할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단호하게 잘라 안 쓰겠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애써 둘러대는 표현 같은 것이기에 절반 이상의 퍼센트로 거절의 의미를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다음 병원으로 영업을 하러 떠나야 한다.

* * *

“미안하네, 민 대리. 생각보다 금액이 세네. 민 대리 말대로 좋은 건 알겠는데. 글쎄, 아직 주변에서도 접해 본 적이 많이 없으니 고민이네. 자가혈 주사가 확실히 좋을 것 같은데.”

광주 권역외상센터의 유재필 교수 역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유 교수의 거절은 모던 정형외과 박승호 원장의 거절보다 조금 더 세게 다가왔다.

유 원장은 얼마 전부터 나에게 먼저 자가혈 주사에 대해 궁금증을 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자가혈 주사 본사에 자신 있게 떵떵거리면서 계약을 따내 오겠다고 한 건 권역외상센터 유 교수가 계약을 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음 달쯤에 학회가 있어서 서울 올라가거든. 그때 서울에 있는 지인 병원에서 기구 봐보고 올게. 한 번이라도 실제로 사용을 좀 해봐야겠어.”

“예. 보시고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설명은 잘 들었고, 기구는 확실히 좋은 것 같긴 하네. 내가 체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다음에 연락 줄게.”

“네, 교수님.”

믿었던 두 병원의 연속된 거절.

영업이 생각대로만 풀릴 일이 있겠냐만, 본사에 질러뒀던 이야기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총판을 받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힘이 빠져 갔다.

민지훈 사전에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들을 설득시켜 영업에 성공할 방법을.

자가혈 주사가 정말 좋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 설득해야 하지?

경쟁력도 확실히 있고, 환자에게 좋은데 이론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구를 직접 사용해보게 하는 것인데, 그건 불가능했다.

억 단위의 기구를 어느 회사에서 쉽게 데모용으로 내어주겠는가.

나는 여러 가지의 경우를 짜내며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오자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은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빈 테이블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는 그들.

나는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고 종이컵에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피를 양손에 하나씩 쥐어 들고 그들에게 향했다.

“사장님, 차장님. 이거 드시면서 회의하십시오.”

“역시 민 대리 센스하고는. 하하.”

“민 대리, 고마워. 마침 목말랐는데, 잘 마실게.”

그들은 내가 내민 커피를 받아들고 곧장 입에 가져다 댔다.

나는 그 둘의 이야기 주제를 몰랐기에 커피를 건넨 후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껴도 되는 내용인지, 안 되는 내용인지를 몰랐기 때문.

장 사장은 커피를 한 모금 하고 잔을 내려놓으며, 의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서서 뭐 해. 앉아.”

“넵.”

나는 장 사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의 테이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이제 WG 메디컬은 어떻게 되는 거래요?”

내가 다가오면서 끊어졌던 대화를 이어 붙이는 손 차장.

그는 장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다. 병원에서 반품하려고 난리라고는 하는데.”

“네? 그게 반품이 가능해요?”

“가능하겠냐. 기구인데? 막무가내로 해달라고 난리 치는 거지. 애도 아니고 그렇게 떼를 쓴다 써.”

무슨 내용의 이야기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으로만 들어도 병원에서 WG 메디컬에 물건을 반품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장 사장과 손 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물건인데 반품이 안 되는 겁니까?”

웬만한 물건은 메디컬 회사에게 반품이 가능하다. 되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효 기간이 지나버린 물건, 상품을 뜯어버린 물건 등 재판매를 할 수 없는 상품성이 떨어진 물건들.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기구이다.

기구 중 반품을 받아 메디컬에서 재사용을 하거나 재판매가 가능할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술 기구는 병원에서 물건을 사 간 이후에 반품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아니, 병원에서 반품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병원 폐업이라는 것은 작은 동네 가게가 폐업하듯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닐뿐더러, 기구는 특히나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구매하는 것이기에 반품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

내 질문에 손 차장은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 자가혈 주사 기구.”

자가혈 주사 기구라면, 지금 내가 열심히 영업하고 있는 그 기구.

WG 메디컬에서 광주에 단 네 군데의 병원에만 영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그중 한 곳의 병원이 반품을 하려는 모양.

나는 기구를 반품한다는 말에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왜요?”

손 차장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답했다.

“왜긴. 병원이 망했지, 뭐.”

“아…….”

반품을 하는 이유가 기구의 하자나 의사의 변심이 아닌 폐업이었던 것.

“그럼 WG 메디컬에서는 그 기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장 사장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후 입을 열었다.

“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안 받게 되면요?”

“거기 병원이 폐업한다고 의사가 의사 자격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냐. 그 의사가 이제 다른 병원 또 차리면 거기에 영업해야 하잖아. 반품 안 받겠다는 건 앞으로 거래도 같이 안 하겠다는 뜻이 되는 거지.”

“하…….”

나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의 갑질.

자신들이 기구를 사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사용하던 기구를 반품한다니.

하지만 그 기구의 반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니.

“그걸 받는 게 문제인 이유가 그 기구를 쓸 곳이 없다는 거지. 봐봐. 어느 병원에서 그 기구를 받겠어. 중고인데.”

그 기구를 재판매 못 하는 이유.

바로 기구가 중고 제품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의료 기기에서 중고 기구를 판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 차장은 장 사장을 보며 물었다.

“그럼 그 기구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본사에 아쉬운 소리 하면서 보내는 수밖에 없겠죠?”

그의 질문에 장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본사에서 아마 일부 금액을 제하고 받아주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본사도 WG 메디컬에 물건은 계속 팔아야 하니까. 서로 밑지는 장사인 거지. 어차피 본사도 그 기구를 쓸 곳도 없을 테고.”

“가만히 있던 본사만 돈 뜯기겠네요.”

장 사장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외쳤다.

“아휴. 우리 회사 일도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 같이 모인 김에 우리 회사 이야기나 하자. 손 차장은 저번에 말한 병원 영업 어떻게 돼가?”

“아, 넵.”

회의 테이블 주변 공기의 흐름이 그의 한마디에 바뀌었다.

그리고 손 차장은 그에게 주간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해서 밀어붙여 볼 계획입니다.”

“그래. 시간을 두고 보는 것도 좋지만, 그럴 때는 밀어붙이는 게 더 잘 먹힐 수도 있어.”

“예. 해보고 다음 주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손 차장의 대답을 끝으로 그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쏟아졌다.

장 사장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 대리는 어제 말했던 자가혈 주사 어때, 승산이 있을 것 같아?”

내 눈을 바라보고 묻는 장 사장.

그의 눈빛은 기대에 한껏 차 있는 듯했다.

총판이 전국에 하나뿐이었기에, 장 사장 역시 두 번째 총판이 우리 회사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의 기대감에 찬 얼굴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아니요.”

그의 올라가 있던 광대는 서서히 내려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기구 금액 때문에 다들 부담스러우신 것 같더라고요.”

내 대답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병원에서 기계의 금액 때문에 섣불리 오케이 사인을 하기가 힘들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렇지. 투자라고 하기에는 큰 비용이긴 하지.”

손 차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천 정형외과가 참 대단하네요.”

“맞아요. 여천 정형외과는 제가 견적서를 보내자마자 알았다고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병원들도 뭔가 기구를 체험해 보면 넘어올 것 같기도 한데 말이에요. 워낙 좋은 건 알고 있다는 반응이거든요.”

“근데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장 사장에게 나는 넌지시 혼잣말을 하듯 내뱉었다.

“기구 일주일만 체험해 보세요. 정말 좋아요! …라고 하면 좋을 텐데…….”

내가 작게 말한 이야기에 손 차장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에이, 그 비싼 기구를 무슨 홈쇼핑으로 일주일간 체험해 보고 반품하세요도 아니고 뭐야. 하하.”

“어? 잠깐만요……!”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테이블을 탁하고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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