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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31화 (131/339)

131화

[견적서 ― 광주 메디컬]

견적서 파일을 클릭하자마자 보이는 숫자들.

몇 시간 전 다녀갔던 직원이 알려준 견적 금액과는 한눈에 보아도 확연히 다른 금액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금액의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이 제품을 사용하려면 필요한 것은 기구 단 한 대. 그리고 주사가 필요하다.

주사는 기구와는 달리 한 번 사용할 때마다 한 개를 쓰고 버리기 때문에 발주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번 기구를 사고 나면 주사를 사용하는 만큼 발주하는 것이기에 단가가 천 원 정도만 차이가 난다고 해도 엄청난 것이다.

당연히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그 차이는 더욱 큰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주사의 단가 차이가 중요했는데, 본사 직원 두 명의 차액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였다.

단순히 몇천 원의 차이가 아닌, 몇만 원의 차이.

이 금액이라면 한 달 병원 사용량에 따라 적게는 몇백만 원, 크게는 몇천만 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견적서에 있는 나머지 하나의 품목, 기구.

장비의 금액은 주사처럼 작은 단위의 단가가 아니다. 억 단위를 넘어가는 단가이기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숫자를 확인했다.

역시 기구 또한 방문했던 담당 직원이 말한 금액과는 상이했다.

기구는 무려 몇백만 원의 차이가 있었고, 그걸 본 나는 더 이상 두를 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견적서에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지금 나에게 견적 파일을 보내준 본사 직원은 자신들의 직원이 우리 회사에 와서 견적을 내준 걸 모른다는 것.

만약 알았더라면 나에게 이렇게 상이한 금액의 견적서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본사 내규에서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자신들의 탓인 셈이다.

지금 받은 견적 금액이라면 물건을 받는 데에는 충분했다.

나는 금액 계산을 머릿속에서 마친 후, 장 사장에게 차액에 대해 보고했다. 그리고 서둘러 메일을 보낸 본사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발신 버튼을 눌렀다.

- 네. 김만호 과장입니다.

“과장님. 저 광주 메디컬 민지훈입니다.”

- 아, 예. 견적서는 확인해 보셨을까요?

“네. 보내주신 견적서는 잘 봤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기구는 하나는 매입하려는 게 확정인데요.”

- 네.

“주사는 일정 개수 이상 구매하면 단가 조정은 안 해주시나요?”

- 500개 이상부터는 100개 단위로 끊어서 에누리해 드릴게요.

“그리고 아까 유선상으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여수에 있는 병원 외에 광주에 있는 병원도 영업 예정인 곳들이 있거든요.”

- 그러세요? 저희야 정말 감사하죠.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요. 저희가 앞으로 기구 발주, 주사 발주가 계속 있을 텐데. 본사에 다이렉트로 받으면 되는 건가요?”

- 아니요. 대전에 총판으로 저희가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단가는 제가 드렸던 견적 금액 그대로요.

“그럼 저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총판은 왜 대전에 한 군데만 지정해 두시는 겁니까? 보통 총판이 전국에 여러 군데 놔두지 않습니까.”

대전에 있는 자가혈 주사 총판의 사장이 WG 메디컬의 김 대표 지인이기에 받기가 꺼려졌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일 터.

이미 우리 광주 메디컬에게 물건을 주지 않으려고 했기에, 나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다른 방법으로 내가 생각해 낸 건 바로 호남권 총판을 광주 메디컬에 지정받는 것이다.

- 아……. 그건 기구와 거래처 관리도 관리이지만, 워낙 기구의 단가가 세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판을 여러 지역에 둬도 판매량이 적어서…….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대전 총판에서 저희에게 판매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본사에서 책임지고 관리를…….

나는 김만호 과장의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호남권 총판, 저희에게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 예?

그는 내 말에 적잖이 당황하는 듯했다.

“총판 말입니다.”

- 총판을 드리려면 어느 정도의 개수는 판매가 되어야 보고라도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호남권 총판을 드리려면 최소한 그 지역의 내로라하는 병원들에는 사용을 하고 계셔야 할 텐데요.

“네. 제가 파일 보내드렸던 병원 목록 있지 않습니까. 그 병원들에 영업 계획이 있습니다.”

그는 내 당찬 말에 쓰읍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 죄송하지만, 그게 계획 중이시다 보니……. 저희가 그 예상만을 믿고 총판을 드릴 수는 없어서요. 광주에 대표 병원 몇 군데에는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광주 권역외상센터, 모던 정형외과에 자가혈 주사 기구 계약을 받아오면 총판 주시죠.”

- …가능하시겠습니까?

김 과장은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확신에 찬 말투로 두 병원명을 대자, 꽤 놀라는 듯했다.

광주를 대표하는 병원 중 워낙 크고 유명한 병원이었기에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 저도 상부에 보고는 해야 하지만, 그 정도 병원에 납품 계약만 하신다면 충분히 총판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에 지금 기구 들어가 있는 병원이 4곳인가요?”

- 예, 맞습니다. 그런데 4곳 중 큰 병원이 없어서, 주사 판매량이 생각보다 적더라고요.

4곳의 병원은 모두 WG 메디컬의 김 대표가 담당하고 있는 병원이다. 그리고 그 4곳의 병원 역시 김 대표의 입김이 들어가 구매를 한 곳이지.

김 대표는 광주에 자신의 거래처에만 자가혈 주사를 독점으로 넣으면서 환자를 쓸어모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병원의 규모가 작다 보니 기구는 들어갔지만, 주사의 발주량이 현저히 적은 모양.

“제가 목록 보내드린 대로 기구와 주사 발주량 맞춰 보겠습니다.”

- 네. 저도 그 수량이 됐을 때, 호남권 총판 드릴 수 있는지 상부에 보고 올리고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가혈 주사의 총판을 받아오기 위해서는 최소 광주 권역외상센터, 모던 정형외과 정도는 계약을 따내야 했다.

내가 총판을 받기 위해 애쓰는 이유.

WG 메디컬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

대전의 총판 메디컬에게 거절당한 것이 화가 나서?

물론 이와 같은 이유들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전국에 하나뿐이었던 총판 회사를 두 개로 만드는 것.

그리고 아랫지방에 없던 총판 회사를 가져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광주 메디컬은 큰 성장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디에 가든 우리 회사를 몰라주는 곳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제 막 생겨난 신생 회사이니까.

하지만 어느 물품이든 총판을 가져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부여된다.

한 지역의 총판 회사를 받았다는 건 그만큼 타 메디컬보다 매출량이 뛰어나고, 미래가 짱짱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뜻.

기구, 소모품의 총판을 받으면 근처 지역의 메디컬 회사들은 모두 우리 회사로 발주를 하게 된다.

그건 지역 메디컬 업계에서도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자가혈 주사의 총판을 꼭 따내고 싶었다.

광주 메디컬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 * *

전날 야근을 하며 오랜만에 PPT 작업을 했다.

자가혈 주사에 대한 자료를 병원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자가혈 주사의 기구는 금액이 상당하기에 단순히 저를 믿고 써주십시오, 라는 말로 영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영업의 기본은 내가 팔고자 하는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

나는 물건을 팔고자 하고, 그 사람은 그 물건을 필요로 한다.

이런 아다리가 딱 맞아떨어질 때 영업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쉽다면 누구나 영업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이치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구매자에게 내가 팔 물건을 필요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

쉽게 말해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구매자가 사고 싶게끔 설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자가혈 주사 기구를 누구나 사고 싶게 만들기 위해 지난밤 자료를 충분히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위풍당당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 * *

나를 가장 믿어주는 병원.

나 민지훈을 믿고 따라와 주는 원장.

모던 정형외과의 박승호 원장 진료실 앞에 섰다.

오늘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왔기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 앞에서 목을 풀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여수 여천 정형외과의 박승철 원장.

내가 지금 서 있는 박승호 원장의 친형인 박승철 원장에게도 이 기구를 판매했기에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의 친형도 이 기구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내가 충분히 설득을 하고 물건을 영업하면 구매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그는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민 대리. 어서 와.”

“잘 지내셨습니까?”

그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 있는 의자를 손으로 꺼내며 말을 했다.

“그럼. 나야 뭐 똑같지. 환자 보고 집 가서는 애 보고 그렇지.”

“아휴. 바쁘게 살고 계시는걸요. 하하.”

나는 자리에 앉아 박 원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어. 이번에 무슨 좋은 기구 하나 있다며?”

박 원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되묻자, 그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형. 이번에 기구 하나 받는다고 어찌나 자랑하던지.”

여수 여천 정형외과의 박승철 원장이 이미 자가혈 주사에 대해 자랑을 한 모양.

“자랑할 만하시죠. 기구가 워낙 고가다 보니까, 큰 투자하신 거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답했다.

“그러게. 아직 기구 설치도 안 했는데 벌써 자랑을 하더라니까.”

그의 형인 박승철 원장이 자랑을 했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자가혈 주사에 대해 궁금했는지 내가 들고 온 서류 가방을 눈짓으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뭔데? 자료 좀 봐보자. 설명 좀 해줘.”

“예.”

그의 말에 나는 당차게 대답하고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준비한 자료.

그에 비례하는 훌륭한 기구.

환자에게 사용했을 때, 다른 어떤 주사보다 안전하고 효과가 좋다는 것.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기구와 주사였기에 나는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이 기구를 잘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품고 PPT 파일을 더블클릭해 열었다.

열 페이지가 넘는 PPT 자료를 2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설명했다.

“자가혈 주사는 인대, 힘줄, 뼈, 연골의 손상에 대한 주사 치료 시술로…….”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박승호 원장 역시 한 번의 흔들림 없이 내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일반적인 치료 방법보다 재생, 치유 속도가 2배 이상은 빠르며, 시술 후 별도의 입원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나는 그의 태도에 힘입어 말을 이어 갔다.

“…자신의 혈액을 사용하여 치료하기 때문에 다른 주사에 비해 부작용과 감염, 알러지 반응이 거의 없는 안전한 치료이기에 충분히 메리트 있는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

내 설명이 끝났고,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단가에 대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중인 건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 중인 건가?

몇십여 초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박 원장.

박 원장 진료실에 가득 차 있는 싸한 공기.

나는 그 침묵 속에서 PPT 파일의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긴 정적을 깨고 박 원장이 입을 열었다.

“아까 견적 부분 좀 다시 보여줄래?”

“아… 네.”

나는 재빨리 꺼진 파일을 켜 화면을 열었다.

금액을 뚫어지라 보던 박 원장이 재차 입을 열었고, 그 대답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갔다.

“나, 이거 못 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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