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안 되면 되게 하라 】
장홍석 사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 회사 사장이 김 대표 친구야.”
“예? WG 메디컬의 김 대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총판이 악질이야. 본사에서 물건 팔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작은 거래처 만나서 하나하나 팔기 힘드니까, 총판을 준 건데.”
“그렇죠. 그래서 총판을 두는 거니까요.”
“근데 워낙 찾는 메디컬 회사들이 많으니까 골라서 파는 거야.”
나는 미간에 힘을 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자신들에게 남는 것인데 회사를 골라서 판다니…….
“그걸 왜 가려가면서 파는 거죠?”
“기계가 워낙 비싸잖냐. 그래서 하나만 팔아도 돈이 많이 남아. 게다가 그 기계에는 자신들 주사밖에 호환이 안 돼. 그러니까 평생 자기한테서 사야 하거든?”
“예. 그럼 더더욱 많이 팔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거래처를 보면서 가려 받아. 특히 광주 쪽은 WG 메디컬에 김 대표 쪽에 몰빵해 주려고 더더욱 안 줘. 다른 병원에도 들어가면 김 대표 담당 병원에 덜 팔릴 테니까.”
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자기는 어디에 파나 주사가 나가야 하니까, 이왕이면 김 대표한테만 파는 거지.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하는 가 봐. 광주에 딱 세 군데 병원인가만 있잖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세 군데가 다 김 대표 담당 병원이죠?”
“어. 광주에도 그 기계 쓰는 병원 많지 않지. 처음 투자하는 금액이 워낙 크니까. 우리도 그 기계 한 대 팔고, 앞으로 주사 팔면 크게 남을 거야.”
“근데 구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락이라도 우선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니. 뻔해. 우리 담당 병원마저 빼앗아 가려는 김 대표가 이미 대전 총판 사장한테 말 안 해뒀을 리가 없거든. 하물며 기계를 산다고 쳐. 이후에 막아버리면 주사를 받을 수가 없어.”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총판 사장. 그리고 이런 식으로 우리를 막는 WG 메디컬의 김 대표.
그렇다고 여천 정형외과에 기계를 구하지 못한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하기는 싫었다.
내 담당 병원이었으니까.
나를 믿고 맡겨 주는 병원에 원하는 물건 하나 넣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싫었다.
내 암담한 표정에 장 사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진 듯했다.
“민 대리. 잠깐만.”
“네.”
그는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뱉는 한마디.
“하. 안 된다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대전 총판 말씀이십니까?”
“어. 갖갖은 핑계를 대면서 안 된다고 하는데, 뻔하지. 김 대표 짓이야.”
나 역시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장 사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제가 본사와 통화해 보겠습니다.”
“본사?”
“예.”
그는 손가락을 들어 세차게 가로저었다.
“안 될 거야. 총판이 있는데, 본사에서 줄 리가 없지.”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내 단호한 말에 장 사장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기계 금액이고요. 주사는 개당 이 금액에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내 앞에 앉아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
바로 본사 직원이다. 본사의 광주 담당자는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아닌 호남권에 납품되어 있는 병원에 기계를 점검하는 직원.
내가 본사에 연락했을 때, 마침 광주에 직원이 가 있다며 그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기며 곧장 사무실로 찾아 왔다.
총판에서 물건을 받지 못한다는 우리의 말에 그는 자신이 흔쾌히 기계와 주사를 납품해 주겠다고 했고, 한참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견적 금액을 제시했다.
“네? 근데 금액이 좀…….”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나와 장 사장.
그가 제시한 금액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 사장과 나는 이 기구와 주사를 판매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WG 메디컬에 있을 당시, 매입 금액을 한번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취급하는 품목이 한두 개가 아닌, 몇백 개가 넘기에 단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장 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 제가 기억하기로는 금액이 이것보다 훨씬 저렴했던 거로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금액이…….”
내 말에 그 역시 공감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이 금액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의 이야기에 앞에 앉은 직원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이번에 저희가 단가가 대폭 인상이 됐어요. 재료 하나가 해외 본사에서 금액이 너무 올라서요.”
“아, 그래요?”
장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예. 원래는 총판에서 받으셔야 하는 건데, 못 받으신다고 해서 왔잖습니까. 그래도 총판이랑은 금액을 동일하게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제시한 금액입니다.”
그의 말에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병원에는 통상적으로 이 금액으로 나가거든요. 저희가 드리는 금액에서 병원 납품가 빼면 이 정도가 남겠네요.”
그는 앞에 놓인 종이에 친절하게 납품가, 병원 매출액, 차액을 적어가며 우리에게 설명했다.
“생각보다는 남는 게 적긴 하네요.”
장 사장이 금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물건을 파는 것이기에, 우리도 병원에 물건을 넣는 금액을 제하면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본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금액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 기계가 다른 주사와는 호환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장기적으로 보신다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한번 병원에 납품해 보십시오.”
그는 기계의 장점과 금액을 한참이고 여러 번 설명했다.
본사에서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닌, 통상적으로는 총판을 통해 물건을 받지만, 마치 원래 본사에서 물건을 팔았던 것처럼 친절한 본사 직원.
그의 태도에 장 사장은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과하게 친절한 그의 태도에 나는 어딘가 모르게 그 직원에게서 싸한 느낌이 감돌았다.
장 사장은 그에게 자료와 견적서를 받아 들고 그에게 말했다.
“우선 금액이 생각보다 세서, 저희도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함을 두 장 꺼내어 나와 장 사장에게 건넸다.
“예. 제가 기계 확인차 거의 외부에 있다 보니까, 사무실 말고 꼭 핸드폰으로 연락 주세요. 바로 연결될 겁니다.”
“그럴게요.”
“이야기는 여기 대리님과 하면 될까요, 사장님?”
그는 장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그래요. 제가 민 대리한테 전달해서 연락하라고 할게요. 민 대리 거로 명함 드려.”
“네.”
나는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그와 눈을 맞췄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는 그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이 금액에 주면, 이번에도 제법 쏠쏠하게 돈 챙길 수 있겠다. 어차피 나 아니면 받을 수 있는 경로도 없으니까, 백 퍼센트지 뭐. 하하.]
선한 미소를 지으며 내 명함을 받는 그.
정반대의 시커먼 속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 직원에게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더니.
하지만 내가 알아버린 진실은 그의 속마음을 들은 것. 이것을 내가 입 밖으로 낸다고 한들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직원이 떠나고 사무실에 남은 나와 장 사장.
나는 장 사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 기계도 기계지만, 주사는 앞으로 몇백 개, 몇천 개씩을 발주해야 하는데 금액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총판 금액이나, WG 메디컬에서 얼마에 받는지만 알아도 큰소리를 칠 텐데. 금액을 알 수가 없으니 원.”
“예전에 저도 봤던 금액은 이것보다 훨씬 저렴했던 거 같은데요.”
“어, 내 기억도. 근데 단가가 올랐다니까. 어쨌든 남기는 하는데, 생각보다 마진율이 적네.”
“제가 본사에 한 번만 더 확인 좀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확인해 볼 수 있으면, 해보고 말해 줘.”
“예.”
방금 돌아간 본사 대리 직책의 직원.
그 직원의 속마음을 듣고 나는 곧장 본사 사무실로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견적가. 이 금액으로 자신이 돈을 챙긴다는 것은 당연히 단가를 부풀려 뒷돈을 홀로 챙긴다는 말이니.
과하게 친절하다고 싶은 그의 말투와 행동은 모두 이유가 있던 것이었으니까.
나는 자리로 돌아와 본사 사무실로 전화를 연결했다.
- 네. 김만호 과장입니다.
이전에 전화했을 때와는 다른 인물.
처음 본사에 전화했을 때에는 사무 여직원이 받았었다. 그래서 그 여직원은 곧장 호남권 기계 담당자를 연결해줬었고, 사무실에 왔던 직원이 바로 그 대리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이곳에 왔던 대리보다 높은 직책의 직원.
나는 그에게 다시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광주에 있는 광주 메디컬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 아, 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을까요?
“저희 자가혈 주사와 기계 견적 문의 좀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사무실에 왔던 대리 이야기를 하지 않고 새로 견적을 묻기 시작했다.
이유는 그가 주었던 터무니없는 견적과 비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지역이 광주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 죄송한데, 저희가 본사에서 직접 판매를 하는 게 아니라 총판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요. 총판 번호 불러드릴게요, 메모 가능하실까요?
나는 총판 번호를 준다는 그의 말에 서둘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요. 대전 총판에는 미리 연락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물건을 주지 않는다고 하시기에 제가 본사로 연락드린 겁니다.”
- 본사에서 물건을 드리지 않았다는 건, 물량이 적거나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내뱉었다.
“아니요. 대전 총판에서 저희에게 납품하지 않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요.”
- 혹시 죄송하지만, 담당하고 있으신 병원 몇 군데만 알 수 있을까요? 처음 들어보는 회사인 것 같아서요.
그가 나에게 담당 병원을 물어보는 이유.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병원을 알게 되면 매출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본사 직원들도 지역마다 큰 병원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신생 회사인 우리 광주 메디컬에 대해서 알아내려면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담당 병원명인 것.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담당 병원 중 큰 곳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에 자가혈 주사를 납품하려고 하는 곳은 여수에 있는 여천 정형외과입니다.”
내가 내뱉은 여천 정형외과.
여수에서 유명하긴 한 병원이지만 그가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아……. 거기 규모는 큰 편인가요?
역시나 시큰둥한 그의 반응.
나는 이어 큰 병원, 그리고 내가 이 기구를 영업할 병원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수에서 꽤 날리는 병원입니다. 그리고 모던 정형외과도 있고, 하라 정형외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탄성을 자아냈다.
- 모던 정형외과도 담당하십니까? 하라 정형외과는 그 척추로 유명한 그 병원이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광주 권역외상센터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말에 퍽이나 놀란 듯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 아……. 죄송하지만, 회사명이 광주 메디컬이라고 하셨죠?
“예.”
- 신생 회사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광주에서 내로라하는 병원들을 담당하고 계시는지…….
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하는 것이, 꽤 당황한 듯 보였다.
신생 회사에, 처음 듣는 회사명이었을 텐데, 내가 내뱉는 병원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이 있는 신생 회사거든요. 그럼 제가 저희 담당 병원 목록과 사용 예정 수량을 좀 보내드리고 싶은데, 메일 주소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그는 내 당찬 이야기에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 예?
“회사 사용 예정분과 영업 병원 목록 확인해 보시고, 저희가 매입이 가능한지. 그리고 견적서도 좀 받아보고 싶어서요. 메일 주소 좀 부탁드립니다.”
그는 내 말에 홀린 듯이 메일 주소를 읊기 시작했다.
- 메일 보내주시면 확인하고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그에게서 한 통의 답변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의 첨부되어 있는 하나의 파일.
나는 그 파일을 열고 바로 눈살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