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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29화 (129/339)

129화

손지혁 차장은 내 옆에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얼른 열어봐. 뭐가 그렇게 왔어?”

“아, 네.”

나는 그의 말에 휴대전화를 열었다.

문자부터 톡까지 쉴새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같은 사람이 보내는 것이 아닌, 전부 다른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부터 사회 친구, 심지어 한태준, 백태석에게까지 온 연락.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와, 지훈아. 영상 봤어. 대단하더라.]

[지훈아, 잘 지내지? 예전 모습 그대로네.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

[민 대리님. 역시 제 롤모델이십니다. 영상보고 감동받았어요.]

[오빠. 오랜만에 이런 일로 연락하게 되네. 정말 대단하다.]

문자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내 문자를 곁눈질로 살펴보던 손 차장이 입을 열었다.

“뭐지? 아까 기사에 민 대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 않았어?”

“그러게요. 저도 기자에게 제 이야기는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거든요.”

그와 나는 서둘러 손 차장 자리에 열려 있는 기사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맞네. 여기에 민 대리 이야기는 없는데.”

나는 그의 말에 다시 내 휴대전화 문자와 톡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보낸 문자 내용에는 하나같이 ‘영상’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영상.”

내 혼잣말에 손 차장이 물었다.

“응? 영상?”

“예. 다들 영상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지이잉.

[발신인 :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

나는 김사랑 원장에게 오는 전화임을 확인하고 손 차장에게 눈짓을 보낸 뒤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민 대리님.

“네, 원장님.”

- 이야, 진짜 멋있던데? 다시 봤어.

“어떤……. 아, 선생님들한테 들으셨어요?”

내가 환자를 안아 주었던 그곳이 바로 모던 정형외과였기에, 그녀가 간호사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김 원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 응? 무슨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주신 거 아니에요?”

- 아닌데?

“어? 그럼 어떻게 아신 거…….”

- 뭐야. 민 대리님, 몰라?

“어떤…….”

- 민 대리님 SNS 안 하는구나.

“SNS요?”

- 응. 지금 민 대리님 우리 병원 옥상 정원에서 있었던 일, 동영상 돌아다니고 난리야. 몰랐던 거야?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 어. 지금 광주 포옹남이네, 진정한 이 시대의 따뜻한 사람이네, 하면서 난리인데. 몰랐다니. 하핫, 내가 영상 주소 보내볼까?

“예. 감사해요.”

- 아무튼, 민 대리님 정말 멋있더라……. 링크는 바로 보내줄게.

전화를 끊은 뒤 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손 차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왜, 뭐래?”

“제 동영상이 SNS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네요?”

“동영상?”

지이잉.

그때 도착한 문자 하나.

김사랑 원장이 보낸 동영상 링크였다.

나는 서둘러 그 링크를 클릭했다.

SNS로 연결된 링크에는 동영상이 바로 재생되었다.

내가 모던 정형외과의 옥상 정원에 올라가기도 전부터 영상은 촬영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환자가 간호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몸부림을 칠 때, 내가 나타나 그를 안아 진정시키는 것까지.

영상은 환자가 병원 남자 간호사들에게 이송되며 종료되었다.

“우와. 민 대리, 영상으로 보니까 진짜 대단한데?”

“아닙니다. 저는 그저 환자분 진정시켜드린 것밖에 없는데요.”

손 차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에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 댓글들은 모두 읽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려 있었다.

[이게 환자에게 진정한 위로지.]

[올해 봤던 포옹 중에 가장 따뜻한 포옹이야.]

[저 사람은 병원 관계자인 건가?]

[나 병원 근무하는 1인인데, 옷 보니까 딱 봐도 메디컬 직원이네.]

[여기 광주 모던 정형외과라던데.]

[‘광주 포옹남’]

[뭐야. 얼굴까지 훈내나잖아. 반칙 아님?]

나는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기자가 찍어 퍼트렸을까 확인을 하려고 했지만, 그 영상 속에는 아까 보았던 박진행 기자 역시 함께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일반인이 그 상황을 담아 SNS에 모자이크도 없이 올린 모양.

“이야, 우리 민 대리 이제 광주의 유명 인사 아니야? 하하.”

“아이, 아닙니다. 유명 인사는요.”

“나도 그거 주소 좀 줘봐. 우리 사장님도 보여드려야겠네. 광주 포옹남 민 대리님.”

그는 내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장님. 놀리지 마세요. 하핫.”

이 일로 인해 지인들과 기자들에게 한동안 수많은 연락을 받아야 했다.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각박한 세상 속에 작은 따뜻함 하나를 내가 주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 *

오늘은 병원으로 직출을 하기 위해 곧장 차에 올라탔다.

여수 여천 정형외과로 가는 길.

여천 정형외과는 내가 WG 메디컬에 있을 때, 영업을 했던 병원이다.

이 병원 역시 WG 메디컬의 김 대표가 내가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했던 병원.

그리고 현재 모던 정형외과의 박승호 원장의 친형인 박승철 원장이 있는 곳.

WG 메디컬에서 나와 담당 병원을 하나씩 둘러볼 때, 몇몇 담당 병원들은 나를 외면했었다. 그로 인해 여수 여천 정형외과 또한 가보지 못했었다.

다른 병원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던 정형외과의 박승호 원장이 다시 나에게 물건을 받기 시작했고, 그 뒤 여천 정형외과의 박승철 원장 또한 나에게 연락이 왔다.

감사한 마음을 가득 품고 나는 여천 정형외과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찾은 여천 정형외과.

나는 공급실과 수술실 간호사들의 간식을 잔뜩 사 들고 병원 문을 열었다.

그녀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곧장 박승철 원장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원장님.”

“이게 누구야. 민 대리 왔어?”

“잘 지내셨습니까. 몇 주 못 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내 말에 박승철 원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살이 좀 빠졌지?”

“아니, 그만 빼셔야겠어요. 더 잘생겨지셨습니다. 하하.”

“민 대리도 참. 하핫. 얼른 앉아.”

“예.”

나는 그의 앞에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잘 지냈어?”

“예. 열심히 지내고 있습니다, 원장님!”

“응.”

“먼저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당연히 민 대리랑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WG 메디컬에서 연락 왔을 때 단번에 잘랐거든.”

그에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WG 메디컬에서 나온 후 연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여천 정형외과에서는 WG 메디컬과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가 저번에 물건을 많이 쌓아 뒀었잖아. 그래서 발주할 때가 늦게 온 거지. 물건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해서 이제야 민 대리한테 연락했어.”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그를 향해 허리를 접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감사는 무슨. 당연히 민 대리 따라가야지. 승호도 민 대리한테 물건 받고 있다며?”

“예. 감사하게도 저와 함께해 준다고 하셔서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시답잖은 근황 이야기를 한참이고 나눈 후.

박 원장이 내게 카탈로그 하나를 내밀었다.

“민 대리. 이거 물건 알아?”

그가 나에게 내민 카탈로그.

나는 그 파일을 펼쳐 샅샅이 살펴보았다.

“이거 자가혈 주사 아닙니까?”

“어. 역시 민 대리가 알 줄 알았어.”

자가혈 주사.

일명 피 주사라고도 불리는 주사 종류이다.

자가혈, 말 그대로 자신의 피를 빼내어 본인의 혈액 세포를 이용해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

“이거 나 서울에 아는 병원에서 쓴다고 하는데, 환자들 치유가 즉각적이기도 하고 좋다고 하더라고.”

“네. 환자 혈액에 혈소판을 농축, 분리해서 통증 부위에 다시 주입하는 건데요. 이게 자신의 피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까, 환자분들이 이 주사에 인식이 좋은 편이더라고요.”

그는 앞에 놓인 빈 종이에 내 이야기를 끄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약물 주입이나, 다른 사람의 혈액보다는 자신의 혈액을 자신에게 다시 주입한다는 것 자체가 깔끔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네, 맞습니다. 근데 이게 제가 알기로는 광주, 전남 지역 쪽에 많이 사용은 안 하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래? 왜 많이 사용 안 하는 거지? 반응도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얼굴을 찡긋거리며 작게 이야기했다.

“이게 주사가 금액이 괜찮긴 하거든요. 근데…….”

박 원장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그럼 너무 좋지!”

“그런데 이게 주사 금액이 아니라, 그 큰 기계 한 대 놓으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요.”

“그건 한 번 사두면 영구적으로 쓰는 기계 아니야?”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서 병원에 투자를 하시는 병원도 있긴 한데요. 처음에 설치하시는 비용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까, 설치를 고민하시다가 보류하시는 곳이 더 많았거든요.”

자가혈 주사, 일명 피 주사는 설치를 하면 찾아오는 환자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워낙 인터넷이 잘 발달 돼 있어서 환자들이 직접 이 시술을 하는 병원을 찾아내 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렇게 환자들이 찾아서 오기까지 하는데도 병원에 설치를 많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금액.

기계 한 대를 설치해야 하는 이 주사는 처음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설치 후 영구적이기 때문에 주사를 투여하면서 버는 돈으로 충당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처음에 드는 돈이 너무나 큰 편이기에 병원에서는 섣불리 새로운 시도, 새로운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

“그래도 잘 되는 거니까, 투자를 해야지.”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셔서 처음에 큰돈 들이시면 확실히 환자는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기계랑 주사 금액 좀 알아볼 수 있을까?”

“네. 견적은 제가 사무실 가서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우리 병원이 그래도 여수에서 제일 잘나가는 병원이 되려면, 이번 기회에 새로운 기계 투자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기계도 그 서울에 있는 지인 병원에서 대충 들었는데, 그 정도는 해보려고.”

“그러시면 좋죠. 확실히 이 기계가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보니, 경쟁력 면에서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답했다.

“응. 나는 무조건 쓸 생각이니까, 주사 금액이랑 견적 좀 받아 줘. 빠른 시일 내에 넣게.”

“예,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 * *

“다녀왔습니다.”

“어. 민 대리 왔어?”

사무실에는 장홍석 사장만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네. 사장님, 저 자가혈 주사 때문에 여쭤볼 게 있는데요.”

“자가혈 주사?”

“네. 그거 저희 매입할 수 있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왜? 어느 병원에서 쓰는데?”

“여천 정형외과에 다녀오는 길인데, 박 원장님께서 기계 구입을 원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번에 광주 권역외상센터에 유재필 교수님도 한번 이야기하셨던 기구거든요. 된다면 그쪽도 영업 나가보려고요.”

물건 매입을 하는 것.

당연히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물건을 구매를 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제조사가 아닌 판매처이기에 제조 회사인 본사에 물건을 매입하는 것이지.

하지만 일반 회사와 조금 다르게 메디컬 쪽은 물건을 원한다고 모두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큰 제조사일수록 더더욱.

이유는 큰 본사에서는 작은 메디컬 회사에 판매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형마트에 나가기에도 충분한데, 구멍가게에 직접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광주 메디컬은 더군다나 신생 회사이기에 매입처를 가져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본사에서 직접 판매를 하지 않고 지역별로 총판을 두기도 한다.

그럼 총판에서 금액을 더 얹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구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가혈 주사, 거기 총판이 대전에 한 군데뿐이야.”

“그럼 대전 총판으로 연락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총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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