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27화 (127/339)

127화

장홍석 사장의 시선을 따라간 곳.

TV에선 시사 프로그램의 예고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 ‘이것이 알고 싶다.’

‘이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의 화제, 사건, 이슈들을 취재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유명한 시사 방송이다.

이 방송이 나오고 나면, 바로 다음 날부터 길거리는 그 주제로 떠들썩하다.

다들 방송을 보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현재 TV 화면에 크게 떠 있는 이번 주 방송 주제.

「검은돈과 검은 그림자」

‘의료 기기 영업사원과 병원 수술실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거래’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대체 수술실의 어디까지가 출입 금지인지, 대체 수술실의 누구까지가 출입 금지인가.

이번 주 밤 9시 방송 예정.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 그리고 나는 멍하니 그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전환되고, 금세 다른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우리 셋은 다시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야? 벌써 방송에 나온다고?”

손지혁 차장은 정적을 깨고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리베이트 막 터져서 시끄러울 때, 이것이 알고 싶다에서 제보 받고 있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대리 수술 건까지 묶어서 방송하나 보네요.”

나는 손 차장의 말에 동조하며 답했다. 그러자 장 사장은 소주를 입에 털어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준성이 놈 이야기로 세상에 떠들썩해지겠네.”

WG 메디컬의 최준성 과장.

그는 여수에 있는 병원에서 대리 수술을 강행했고, 그 환자의 수술이 잘못되어 환자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됐었다.

그로 인해 세상에 ‘대리 수술’이라는 것이 퍼지게 되었고, 그는 현재 수감 중이다.

그 이후 취재가 시작됐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빨리 방송에 나오게 된 것.

손 차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소주를 쭉 삼켜냈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하. 최 과장 조사 끝나고 나서 이제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사람들의 입에 정형외과 이야기가 오르내리겠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 사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언제고 터질 일이었지. 당장 방송에 나오고 이슈가 되면 정형외과 쪽에 영업 가는 것도 힘들 거고, 병원 쪽에서도 우리가 오는 걸 꺼리기 시작할 거야.”

그는 나와 손 차장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말을 이어 갔다.

“리베이트 받은 병원이 한두 군데가 아닐 테니까. 그저 메디컬 직원이 오는 것만으로도 뭐 하나 책잡힐까 봐 반기지 않을 거고, 그럼 영업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겠지.”

나는 양손으로 받치고 있던 소주잔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그에게 물었다.

“사장님. 근데 리베이트는 그렇다고 쳐도 대리 수술을 하는 병원은 없지 않나요?”

대리 수술을 하는 병원들이 예전에는 많았다고 한다.

고작 일이 년 전이 아닌, 십 년도 넘는 예전. 하지만 요즘은 그런 병원도 없으니 대리 수술 사건 가지고 병원이 벌벌 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장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에 장 사장은 입술을 씰룩이며 답했다.

“글쎄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음지의 많은 병원들이 아직도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의 말에 덧붙여 손 차장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는 우리 같은 좋은 상사들을 뒀으니 그런 어둠의 이야기들을 알 리가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님? 하하.”

“하하, 그러게. 세상에 상식 밖의 사람들이 정말 많아. 그런 건 뿌리부터 뽑히는 게 맞지. 이번 방송 나가고 한동안 정형외과 메디컬 시장이 주춤한다고 해도 이 기회에 대리 수술부터 리베이트 모조리 단절되어야 해.”

장 사장은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술잔을 들어 올렸다.

술잔이 부딪치고 나는 서둘러 입에 소주를 부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쓰디쓴 알코올.

그 느낌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리베이트가 많은 세상이었다면, 이번 일로 단절이 된다면! 저희는 그 위기를 기회로 쓸어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장 사장과 손 차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의지에 타오르는 표정으로.

손 차장은 그런 나를 보며 눈썹을 들썩였고, 장 사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신생 회사인 우리 광주 메디컬은 정직함과 믿음으로 승부 보는 거지.”

손 차장의 말에 장 사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업계에 큰 파도가 몰아치면 더러운 것들은 쓸려 내려가겠지만, 우리는 그 파도를 타고 더 멀리 나아가보자고. 충분히 승산 있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그들.

그들이 내 회사 선임이라는 것이 든든했다.

그래서 더더욱 의지가 불타올랐다.

남들의 위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기회로 낚아채는 것.

그것을 우리 광주 메디컬이 해내는 것.

자신 있었다.

“예.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나는 양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리고 소주병을 들고 그들의 잔에 가득 채웠다.

“그래. 우리 에이스 민 대리가 한마디 해봐.”

장 사장은 소주를 받은 뒤, 나를 바라보며 잔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나는 목을 가다듬은 뒤 소주잔을 들고 외쳤다.

“광주 메디컬이 광주에서 제일가는 메디컬이 되도록 영업하겠습니다. 광주 메디컬을 위하여!”

“위하여!”

* * *

출근을 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자료만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곧 정형외과 메디컬 업계에 폭풍이 몰아칠 테고, 나는 서둘러야 했다. 새로운 거래처 뚫기가 아닌, 기존 거래처 관리를 말이다.

아직 새로운 거래처를 물색하기에는 이른 시점.

어느 병원이 리베이트를 받고 있는지, 대리 수술을 저지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가고 난 뒤, 메디컬과 정형외과 사이가 흔들릴 그 틈. 그 틈을 이용해 기회를 엿봐야 한다.

메디컬에서 병원에 뒷돈을 건네주다가 방송이 나가고 나면 한동안 리베이트를 쉬쉬하며 잠잠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병원에서는 더 이상 그 메디컬과 일할 명분이 없어진다.

나는 그럼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깨트릴 것이다.

이건 전혀 비겁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이 기회를 잡아내 내 병원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영업 직원의 능력인 셈.

지금은 그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 * *

담당 병원의 관리는 필수이기에 나는 모던 정형외과에 도착했다.

여러 명의 담당 원장 중, 이동석 원장을 만나러 오는 길.

똑똑.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동석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환한 미소로 반겼다.

“어. 민 대리 왔어?”

“예. 모닝커피 사서 왔습니다. 하하.”

“역시 민 대리야. 얼른 앉아.”

나는 그에게 커피를 건넨 뒤, 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아침 일찍부터 왔네?”

“네. 원장님 모닝커피 드셔버리실까 봐 일찍 왔습니다. 하핫.”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짓으로 내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이 빵빵한 걸 보니까, 새 제품 나왔나 보네?”

그의 말이 맞았다.

내 서류 가방은 지퍼가 겨우 잠길 정도로 카탈로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병원 한 곳에 갈 때마다 사무실에 들러 자료를 챙길 수 없기에 항상 가방에는 제품의 카탈로그를 꽉 채워서 다니는 편이다.

특히나 이렇게 신제품이 나왔을 때는 더더욱이지.

영업하러 가는 병원, 우연히 마주치는 원장들에게 모두 소개를 해야 했으니.

“역시 우리 이 원장님 눈치가 장난이 아니시라니까요?”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어디 보자. 또 무슨 좋은 제품이 나왔나.”

지익.

나는 겨우 잠겨 있던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카탈로그 한 부를 꺼내 책상 위로 펼쳐 놓았다.

평소 새로운 제품에 관심이 많은 이 원장.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커피를 옆으로 치워 책상을 비우고 카탈로그에 집중했다.

“이번에 나온 제품인데, 이건 밸크로가 기존 제품과는 다르게…….”

그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제품에 대한 설명, 피드백을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눈 뒤, 그제야 이 원장은 옆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제품 괜찮네. 나 다음에 샘플 좀 가져다줘 봐.”

“역시 원장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기존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라 너무 괜찮더라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한번 써봐야겠네.”

“그러실 줄 알고, 차에 챙겨 왔습니다. 하하. 이따가 챙겨서 공급실에 맡겨두겠습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답했다.

“민 대리 준비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핫.”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런데 원장님.”

“응?”

“혹시 이번 주에 방송하는 이것이 알고 싶다 예고 보셨습니까?”

어제 술집에서 보았던 방송에 대한 이야기.

메디컬 직원인 우리 사이에서도 난리였으니, 의사들의 반응을 알기 위해 나는 이 원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어. 봤지. 나는 지은 죄도 없는데, 벌써 사람들이 정형외과를 불신할 거라는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

“그러게요. 걱정입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열어 톡 대화창들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이거 봐. 어제 방송 나온 뒤부터 주변에 의사들 톡방에 난리가 났어.”

그가 보여준 휴대전화 화면에는 대리 수술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리베이트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그만큼 걱정하고 있는 병원이 정말 많은 모양.

“뒷돈이라는 말이 왜 있겠어. 뒷돈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거잖아. 내가 의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런 건 진짜 있어서는 안 되는 거야.”

“맞습니다. 이번 일로 리베이트도, 대리 수술 같은 불법적인 일도 근절되어야 할 텐데요.”

이 원장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WG 메디컬의 최 부장 말이야.”

“예. 최권호 부장 말씀하시는 거죠?”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야. 그냥 아직 잘 다니고 있나 해서.”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이는 듯한 이 원장.

현재 모던 정형외과에 WG 메디컬과 거래하고 있는 몇몇 원장이 있다.

그들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WG 메디컬의 최권호 부장. 그렇기에 이 원장의 최 부장 언급이 조금 신경 쓰였다.

“아무튼 리베이트,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민 대리도 앞으로 오래 이 업계에 일하면서 애초에 그런 불법적인 일에는 휩쓸리지 말도록 해. 그게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 * *

“아!!”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남성.

그 주위로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간호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부분은 환자들과 사복을 입고 있는 보호자들. 그리고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 간호사 단 두 명.

그리고 그 무리에서 한 남성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 나 지금 모던 정형외과. 난동 피우는 환자 있다고 해서 지금 여기 병원 정원 테라스 올라와 있어. 어. 취재하고 금방 넘어갈게. 끊어봐, 영상 담아야 하니까. 응, 끊어.”

기자로 보이는 남성은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전화로 카메라를 열어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기, 환자분.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간호사 한 명은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며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또 다른 간호사 한 명은 손을 덜덜 떨며 상의의 작은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를 황급히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기 옥상 정원인데,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환자분이…….”

“악!!”

환자로 보이는 남성은 몸부림을 치며 자신을 잡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때, 정원 테라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누군가.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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