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형… 형아. 형아. 나 아파…….”
“네? 지금 저한테 형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놀라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형아. 나 너무 아파. 집에 가자, 여기 싫어.”
8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그에게서 듣는 이상한 이야기에 나는 몸을 뒤로 황급히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내 손목을 꽉 잡은 채 칭얼대기 시작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이야기를 했다.
“환자분이 치매이신 것 같은데, 아까 가족분들 연락처는 모른다고 하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아까 들어보니까…….”
할아버지는 지금 치매기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가 듣는 곳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기에 나는 의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역시 내 표현을 눈치챘는지 몸을 반대로 돌려 옆 침대 쪽으로 이동했다.
“아까 할아버지 누워 계시던 길거리에서 주변 분들이 알려주시더라고요. 가족분들한테 버림받았다고요.”
“아…….”
의사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또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기는 한데, 치매라고 하니까 혹시 가족들한테 버림을 받은 게 아니라 가족들이 또 애타게 찾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TV나 인터넷에서 접해 본 치매.
부모가 치매를 앓고 있어 부모를 버렸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자신의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일부러 두고 왔다는 슬프고도 화가 나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기사보다는 치매인 부모가 집을 나서게 되어 길을 잃었다는 뉴스를 더 많이 접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부모를 찾기에 여념이 없지만, 기억을 온전히 잃은 치매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아사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 옷 끝자락을 붙잡았던 할아버지 역시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닌,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의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우선 제가 경찰서에 연락해서 가족들 찾아보도록 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들어가 보셔도 될 것 같네요.”
나는 옆 침대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의사에게 대답했다.
“네. 경찰에 확인하시고, 저한테도 연락 좀 주세요. 여기 명함입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들고 명함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 메디컬 회사 직원분이시네요?”
“아… 네, 맞습니다.”
“저희 병원 담당도 아니신데, 여기로 오셨네요.”
할아버지의 증세가 정형외과 쪽이었기에, 내 담당 병원으로 가도 됐었지만 바로 근처에 담당 병원이 없었기에 갈 수가 없었다.
그쪽까지 가기에는 할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간에 병원이 열려 있는 곳은 응급실뿐.
응급실에는 낮에 진료를 보는 의사가 아닌, 모든 과목의 진찰 진료를 할 수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사가 있다.
내가 평소에 영업하는 의사는 정형외과 담당 과목의 의사이기에 응급의학과 전문의사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 담당 병원으로 간다고 한들 아는 의사는 어차피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을 따져서 가기보다는 당장 환자의 상태가 급해 가까운 병원으로 온 것이지.
“선생님! 응급 환자 들어왔습니다. 이쪽으로 좀…….”
내가 대답을 하기 전 간호사가 달려와 의사에게 소리쳤다.
“가요!”
그리고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저 가볼게요. 내일 경찰 쪽에 가족분들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응급실 진료 금액을 정산하기 위해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에 앉은 선생님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호자분, 아까 이야기하시는 거 들었어요. 우선 지금 금액은 진찰이랑 진통제, 응급 처치만 했으니까 금액이 크지 않거든요?”
“아… 네.”
응급실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진료를 해주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오전에 재진찰을 받게 된다.
그 후에 수술을 진행하든지,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조치를 취하는 곳. 응급의학과 의사는 모든 과목을 진찰할 수 있지만, 그만큼 한 분야에 깊이 있게 수술과 치료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진찰하시고, 수술하시게 되면 보호자가 오셔서 수술 동의서 서명해 주셔야 하는데, 가족분들 먼저 급하게 찾아볼게요.”
“예. 내일 가족분들 찾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혹시나 못 찾으시면 제가 올게요.”
내 앞에 앉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만약에 가족분들을 찾지 못하면…….”
“그럼 제가 와야죠. 그리고 노인 보호 시설에라도……. 밖에서 돌아다니시다가 잘못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경찰에 확인해 보시고 연락주세요, 선생님.”
“네.”
* * *
아침 일찍부터 온 연락.
광주 권역외상센터의 유재필 교수였다.
완도 정형외과에 자신이 알려주는 기구 데모와 소모품을 넣어달라는 문자였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물건을 빠짐없이 챙겨 완도 정형외과로 향했다.
유재필 교수를 빼닮았다는 의사.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하는 생각으로 기대를 하며 차에 올라탔다.
처음 유재필 교수를 보았을 때 들었던 가장 먼저 떠 올랐던 생각.
바로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였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든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사였고, 병원에서의 태도,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의사라는 인물에 부합한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유재필 교수 후임인 의사 역시 그런 인물일까, 어떤 면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완도 정형외과에는 환자가 가득했다.
유 교수가 완도를 떠났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완도 정형외과를 찾고 있었다.
완도 정형외과는 작은 동네 병원이다 보니 진료실이 하나뿐이었다.
유재필 교수가 진료를 보던 그 진료실.
나는 진료실 앞에서 새로 내려온 의사를 만나기 위해 진료실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완도 정형외과의 주 환자층은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그렇기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아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는 항상 데시벨이 높았다. 그래서 진료실 안의 소리는 늘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지금 역시 안에서 진료 보고 있는 소리가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까지 들리고 있었다.
“어무니. 밭일 좀 그만 나가시라니까. 저번에 내가 열심히 치료해 줬는데, 더 안 좋아지셨잖아. 이제 좀 놀아, 우리 어무니.”
그의 친절한 목소리.
완도에 아시는 분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남에게 살가움을 표하는 목소리와 말투가 아닌, 지인을 대하는 말투였기에.
평균적으로 걸리는 진료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 한참의 대화와 진료를 끝내고 환자, 할머님이 진료실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유유히 들어갔다.
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역시나 조금 전 환자를 볼 때와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부지, 오셨어요? 어제 맞았던 주사는 좀 어떠셔. 밤에 안 아프셨고요? 에이. 그럼 언제라도 연락하시라니까. 그럼 오늘도 다시 한번 봐볼게요.”
그의 살가운 목소리.
3년의 메디컬 생활 중 처음 겪는 의사 스타일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시골의 친절하고 상냥한 의사.
유재필 원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
똑똑.
“안녕하십니까, 광주 메디…….”
“안녕하세요,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을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환자인 줄 알았던 모양.
선민철 원장.
나이는 30대 중반이 겨우 넘는 듯 보였다.
키는 180은 족히 넘어 보였고, 운동을 하는지 어깨도 넓고 덩치도 꽤 큰 편.
밖에서 듣던 목소리 그대로 얼굴 역시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저는 광주 메디컬에서 온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그는 내 인사에 놀라 한걸음에 나에게 다가왔다.
“아, 유 교수님이 보내신 분이시구나. 저는 환자분이신 줄 알고, 죄송해요.”
“아닙니다. 여기 명함입니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선민철이라고 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는 내게 의자를 내밀며 말하고, 명함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민 대리님을 드디어 뵙네요. 말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요? 하핫. 저도 원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 유 교수님을 대체 어떤 분이 설득해서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복귀시켜주셨나 했거든요.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 말을 이어 갔다.
“감사해요, 유 교수님 복귀시켜주셔서요.”
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저야말로 원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아끼시는 후배분이라고 하셔서요.”
그는 내 말에 선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환자분에게 워낙 상냥하셔서 성함에 ‘선’이 선할 선 씨를 쓰시는 줄 알았어요.”
그는 내 너스레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요? 하하. 기분 좋은 이야기네요.”
선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이야기를 했다.
“대리님, 잠시만요.”
그러더니 그는 뒤를 돌아 뒤쪽에 있는 작은 정수기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내게 종이컵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커피에요. 한 잔 드세요.”
나는 그가 건네주는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아들며 말했다.
“아! 제가 커피 사 오려고 했었는데, 진료가 언제 끝나실지 몰라서 못 사 왔는데, 죄송해요.”
그는 내 말에 양손을 뻗어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한테 오신 손님인데, 그리고 시골은 이 커피믹스가 제일이죠. 제가 유일하게 손님들 오시면 드릴 수 있는 건데요. 하핫.”
“잘 마시겠습니다, 원장님.”
나는 그가 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오늘 유 교수님께서 소모품 넣고, 기구 데모 요청하셨는데, 들으셨을까요? 그리고 인사도 언제 드리러 와야 하나 하고 있었거든요.”
“네, 저도 교수님께 어제저녁에 연락받았어요. 커피 천천히 드시고, 자리 옮겨서 해주세요.”
그와 두 시간이 넘도록 기구 데모와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와. 역시 유 교수님께 듣던 대로 실력 좋으신데요, 대리님?”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이렇게 환자분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치료부터 회복까지 온전히 홀로 하는 병원은 처음이라서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나는 그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답했다.
“이미 충분하신 것 같으신데요?”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답했다.
“정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네. 병원의 많은 원장님들을 뵀었는데, 원장님처럼 이렇게 환자분들 한분 한분 정성스럽게 진료해 주시는 분들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원장님은 이미 충분히 훌륭하세요.”
그는 내 대답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원장님께 잘 부탁드려야죠,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에게 이야기했다.
선민철 원장.
지금까지 봐 왔던 써전들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많은 원장이다.
유재필 교수와 비슷하면서 다른 면이 상당했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 * *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울리는 휴대전화.
전날 응급실에서 할아버지를 담당했던 병원의 전화였다.
나는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급히 내려놓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네, 여기 병원 응급실이에요.
“예! 할아버지는 괜찮으신가요?”
- 안 그래도 할아버지 때문에 전화 드렸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 혹시 지금 병원으로 좀 오실 수 있으실까요?
“지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