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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21화 (121/339)

121화

광주 권역외상센터.

복도를 타고 들어오니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명패.

[유재필 진료실]

나는 지체할 틈 없이 바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원장님!”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유재필 원장을 보며 외쳤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왔어? 엄청나게 빨리 왔네.”

유 원장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썹을 들썩이며 나에게 말했다.

“원장님, 아니. 이제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연락이 안 된 며칠 사이 완도 정형외과를 정리하고 결국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온 모양.

“우선 앉지.”

나는 그가 눈으로 가리키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에게 물었다.

“교수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민 대리가 여기에 내려 준 그 날. 수술 끝나고 나서 자네가 조언해 준 이야기를 곱씹어 봤었거든.”

내가 며칠 전, 유 교수를 완도에서부터 광주까지 함께 차로 이동을 하며 했던 이야기.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설득을 했던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예.”

“자네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사가 사람 치료하는 거, 사람 살리는 것 말고 중요한 게 뭐가 있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자네 조언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격이었지. 그 덕에 크게 일렁였으니까.”

그가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복귀를 해야 한다는 마음과 과거에 아내를 잃어 복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여 오래 고민을 했던 것을 알기에.

내 조언 한마디가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행입니다. 제가 교수님의 결정에 조그마한 조약돌이라도 됐다는 사실이요.”

그는 내 말에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권역외상센터에 오게 만든 가장 큰 설득자가 바로 민 대리야. 자네 덕일세.”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는 내 인사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런데 교수님.”

“응?”

“완도 정형외과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완도 정형외과.

유 교수가 광주로 복귀를 하는 데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완도에 환자는 많지만, 의료진이 부족했고 또 유 교수가 없다면 수술할 의사가 없는 것을 그도 알았기에 고민을 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유 교수가 완도에서 떠나게 된다면 환자들은 완도가 아닌, 도시로 옮겨져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의료진이 와야 했고, 하지만 시골인 완도에는 쉽게 의사가 구해지지 않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내 걱정스러운 눈빛에 괜찮다는 듯 턱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완도에 새로운 써전 하나 갔을 거야.”

“네? 벌써요?”

나는 그의 말에 놀란 토끼 눈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보통 병원에서 의사가 그만두게 되면 다음 의사를 구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광주 시내에 있는 병원, 혹은 유명한 병원은 퇴사율이 낮을 뿐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데도 며칠이 걸리지 않는 편. 왜냐하면 누구나 가고 싶은 병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도 정형외과처럼 시골에 있고, 병원이 많지 않은 지역일 경우에는 그와 상반된다.

완도까지 출퇴근, 혹은 이사까지 가게 될 수도 있고, 주변 병원이 없다 보니 환자들이 그 병원에만 몰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 교수가 완도 정형외과에서 나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지금, 벌써 다른 써전이 출근을 했다는 말에 나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응. 열정 넘치는 놈 하나 있어.”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과 말투로 웃으며 답했다.

더욱 궁금해지는 완도 정형외과로 출근한 써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선별해 주는 기구랑 소모품으로 완도 정형외과에 좀 납품해 줄 수 있지?”

“네, 그럼요!”

“그래. 내가 완도 정형외과를 완전히 놓은 건 아니라, 틈나는 대로 가서 보려고 해. 그러니까 수술 기구도 실수 없이 넣어주고.”

“걱정 마십시오, 교수님.”

완도 정형외과에 새로 온 열정 넘치는 유 교수의 후임이라…….

병원에 들어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환자에 대한 열정이라면 뒤지지 않는 유 교수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근데 교수님. 광주 권역외상센터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완도로, 시골로 가게 된 후임분은 괜찮으신 겁니까?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서요.”

그는 내 질문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이 기회에 환자를 가까이서 진찰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하더라. 하하.”

“교수님을 따르던 써전분이라 그러신지, 환자분을 생각하는 마음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유 교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권역외상센터는 항상 긴급한 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상태가 심해지고, 그리고 치료 후 호전되는 과정까지 살펴보는 일반 병원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미 긴급한 수술을 받기 위해 오는 환자들이 대다수이기에, 환자와 진찰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유 교수의 후배라는 그 써전은 완도 정형외과에서 환자들을 차분히 살펴보고, 환자와 소통을 할 수 있어 좋아하는 모양.

그는 아직 일반 병원에서 근무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가? 하하. 완도 정형외과는 내가 있을 때와 다를 것 없이 흘러갔으면 해.”

“예. 저도 완도 정형외과에 좋은 물건 넣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교수님!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리던 미국 제조사 수술 기구 데모해 드렸던 거 있지 않습니까. 그 기구에 사이즈가 추가된 것이 있어서 카탈로그 들고 왔습니다.”

나는 가방 속에 챙겨온 카탈로그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가 건넨 자료를 받은 후, 펼쳐보지 않고 옆으로 밀어내고는 내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나는 그의 진중한 말투에 침을 한 번 꿀꺽 삼켜내고 답했다.

“예, 교수님.”

“광주 권역외상센터는 앞으로 환자만을 위한, 환자만을 생각하는 진찰과 진료, 수술을 할 생각이야.”

그의 당찬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의사가 수술하기 쉬운, 간단한 기구가 아닌, 환자에게 딱 맞는 기구들로만 수술하고 싶네. 그게 어렵고 복잡한 수술 기구라도 말일세.”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반갑게 들려왔다.

나는 유 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광주 메디컬에게, 민 대리에게 우리 권역외상센터에 들어오는 기구를 좀 받고 싶어. 가능하겠나?”

“예?”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듣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놀란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왜, 안 될 것 같아?”

그는 되묻는 내게 반문을 던졌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그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가능합니다!”

내가 그의 말에 놀란 이유.

바로 이곳이 권역외상센터였기 때문이다.

유재필 교수가 완도 정형외과에서부터 나에게 수술 기구를 받고 있었기에, 권역외상센터 역시 나에게 발주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일반 병원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었기에, 일반 작은 메디컬 회사에서는 납품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 병원은 진료 시간이 정해져 있는 반면, 권역외상센터는 진료, 수술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언제 어떤 수술을 하는 스케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메디컬 회사가 그것을 맞추기가 다소 힘든 면이 있다.

물론 작은 메디컬 회사라고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큰 회사일수록 대기업을 찾는 것처럼, 이런 큰 병원 역시 큰 메디컬 회사를 찾는 것이지.

그런데 유 교수는 나 하나만을 믿고, 이 큰 병원의 발주를 작은 회사인 우리 광주 메디컬에게 한다라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나를 권역외상센터로 호출했을 때, 그가 이곳으로 복귀를 했을 거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발주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안부 인사차, 혹은 완도 정형외과의 일로 호출을 했을 거라 예상했기에 나는 뜻밖의 영업에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먼저였다.

“제가 환자의 상태에 맞춘, 그리고 회복에 초점을 맞춰 수술 기구를 선별하여 추천하고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유 교수는 내 확신에 찬 대답에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WG 메디컬에서 퇴사 후 여러 병원에서 퇴짜를 맞던 게 바로 얼마 전. 머지않아 완도 정형외과 영업 성공 후, 모던 정형외과의 영업을 되찾았다.

그런데 광주에서 자타공인 가장 바쁜 병원인 권역외상센터. 이곳에 물품을 납품하게 되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고 뿌듯했다.

앞으로 모든 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 * *

광주 메디컬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 장홍석 사장, 손지혁 차장과 매일 같이 회의를 하던 게 익숙했던 곳.

하지만 이제는 세 명이 함께 사무실에 있던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나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무실에 나와 밀린 서류 업무 정리를 하고 있던 그때,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지이잉.

[발신인 :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

“여보세요?”

- 민 대리님! 내일 뭐 해?

“내일이요?”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탁상 달력으로 내일 요일을 재빨리 확인했다.

내일은 주말인 토요일.

“내일 토요일이라 회사 쉬기는 하는데. 내일 수술 스케줄 잡히셨습니까? 시간이랑 기구 알려주시면 챙겨서 넣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서둘러 대답을 했다.

주말에도 수술이 잡히는 병원이 간혹 있기에 나는 그녀에게 약속이 없음을 표출했다.

다급한 내 목소리에 김 원장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 하핫. 누가 메디컬 직원 아니랄까 봐. 시간 되냐고만 물어보면 이렇게 수술 이야기를 한다니까?

“아니에요? 하하. 저는 당연히 수술인 줄 알고. 그럼 무슨 일 있으세요?”

- 저번에 나한테 술 사기로 한 거 잊었어?

며칠 전, 모던 정형외과에 갔을 때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사기로 했던 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모양이다.

“아니요, 제가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내일 뵐까요?”

- 응. 내일 4시에 시간 괜찮아?

“4시에 되죠. 근데 그렇게 일찍부터 드시게요?”

- 그럼.

“대단하신데요? 하하. 제가 원장님 집 근처로 가겠습니다.”

- 그럼 나야 좋지. 민 대리, 우리 집 앞에 있는 영화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 거기서 4시까지 보자.

“예. 내일 시간 맞춰서 가겠습니다.”

- 응. 내일 봐.

* * *

3시 50분.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과의 약속 시간에 맞춰 영화관 앞으로 도착했다.

나는 영화관을 등지고 입구에 서서 술집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영화관 앞에 펼쳐진 술집거리.

이 많은 술집들 중, 어느 집으로 가야 할까 생각하며 그녀를 기다리던 그때.

그녀는 내 앞이 아닌 뒤,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나오며 내 등을 두드렸다.

“민 대리님!”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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