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유재필 원장은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통화 내용에 집중했다.
그의 귀 옆에 붙여 둔 휴대전화. 그 사이로 통화 내용이 새어 나오고 있어 나 역시 그 통화 소리에 집중했다.
- 교수님. 정말 급합니다. 더 이상 환자들 이송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 교수님. 이 환자 저번에 교수님이 몇 시간 걸려서 수술했던 응급 환자와 증상이 동일합니다. femur 쪽이……. 이 환자 지금 이송 보내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교수님.
“환자 지금 상태는…….”
흘러나오는 통화 내용으로 보아, 환자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해결 못 하고 있는 수술은 유 원장이 가게 되면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유 원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잠긴 것은 얼굴. 그러다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기에 대고 읊조렸다.
“구급차 지금 지원해서 간다고 해도 외상센터 들어가려면 2시간 훨씬 넘을 거야. 완도에서 갑자기 구해서 가기 어려워.”
-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응급조치하고 있겠습니다.
“하. 다시 전화할게.”
-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병원 수화기를 들었다.
“박 간호사. 지금 구급차 부르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봐.”
조금 전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는 광주 권역외상센터고, 그는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 한치도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원장님.”
“어, 민 대리. 미안해. 지금 내가 급해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아니요. 그거 말고, 지금 광주 권역외상센터 가셔야 하는 겁니까?”
그때 울리는 책상 위의 전화.
그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어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 박 간호사. 뭐? 20분? 하. 그럼 빨리 택시라도…….”
구급차가 완도 정형외과까지 오는데, 20분이 걸린다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통화를 하고 있는 유 원장에게 외쳤다.
“원장님, 가시죠. 지체할 시간 없지 않습니까. 밖에 나가서 시동 걸어두겠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든 채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간호사, 놔둬. 그리고 나 지금 나가니까 정리 좀 부탁해.”
나는 서둘러 병원에서 나가 차를 끌고 병원 정문으로 옮겼다.
유 원장은 이미 정문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곧바로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액셀을 밟았다.
그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권역외상센터의 다른 교수와 통화를 하며 상황을 전해 들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한참을 달린 후, 차 안은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고맙네, 민 대리. 내가 면허가 없어서, 참 이럴 때 복병이 될 줄은 몰랐네.”
“아닙니다. 환자 살리는 게 먼저죠. 그런데 원장님은 면허 왜 안 따신 겁니까?”
인생을 살면서 면허가 없는 중년의 남자는 드문 편이기에 나는 그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물었다.
“의사 생활 초에 교통사고 환자들을 많이 봤거든. 별의별 교통사고로 들어오는 환자들 보면서, 나는 절대 운전 못 하겠더라고.”
나는 그의 면허 없는 이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시 센터에 가서 수술을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하듯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전화가 오는 겁니까?”
“아니, 처음이야. 요즘 복귀하라고 어찌나 난리인지, 그래서인지 도와달라고 오늘 연락이 온 것 같네.”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탓에 정면을 바라보며 그에게 대답했다.
“위급한 환자인 것 같은데, 원장님이 못 가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환자… 이송… 보내는 거지. 큰 병원으로.”
그는 ‘환자 이송’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크게 떨려왔다.
그의 아내가 타 병원으로 이송되었던 것 때문인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왜 이송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에.
“그런데 원장님은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복귀는 안 하시는 겁니까?”
그는 내 질문에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괜한 질문을 했나 싶을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민 대리는 내가 광주 권역외상센터에 있던 거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나는 그의 질문에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광주에 메디컬 업계가 워낙 좁지 않습니까. 원장님께서 외상센터에 계실 때 실력이 워낙 뛰어나셔서 유명했다고 전해 듣게 됐습니다.”
그 역시 자신이 실력으로 유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원장님.”
“어?”
그는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원장님은 실력이 워낙 출중하신데, 이런 분이 완도에 계시기만 하기에는 아쉬우시지 않습니까?”
“아쉬울 것까지 있나.”
나는 핸들을 꺾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요. 인재는 더 높은 곳, 더 넓은 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요.”
유 원장은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했는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완도에서 광주까지는 중간에 휴게소를 거치지 않고 달려도 2시간이 꼬박 걸리는 거리.
2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 그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기구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온전히 유 원장과 나. 단둘이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었다.
출발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서서히 나에게 경계를 푸는 듯했다.
“원장님은 지금처럼 권역외상센터에 수술 지원 가시게 되면, 머지않아 복귀하시게 되는 건가요?”
권역외상센터에 복귀 이야기.
1시간 전, 그에게 질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복귀라……. 내가 다시 권역외상센터로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찾게 된다면 갈 수도 있겠지.”
그는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했지만, 표정과 말투는 그렇지 못했다.
영혼이 없는 듯한 목소리.
“이유는 당연히 원장님의 실력이시죠.”
“흠. 완도에 환자들도 눈에 밟히고 말이야.”
나는 그가 확신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트라우마도 남아 있고, 완도의 환자들이 걸리는 모양.
그도 그럴 것이 완도에는 유 원장이 오기 전까지 환자들을 수술해 줄 의사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는 지방의 의료계의 손길이 부족한 환자들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나는 유 원장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반드시 권역외상센터로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완도의 환자들 보다 광주의 환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의 환자가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환자를 제일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유 원장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한 뒤에 입을 열었다.
“원장님.”
“응?”
“제가 드리는 말씀이 주제넘는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원장님께서는 광주 권역외상센터에 꼭 필요하신 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표정 상태 그대로 내게 물었다.
“왜?”
“원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광주, 전남, 전북 호남권 통틀어 원장님 실력이 가장 뛰어나시다는 걸요.”
그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는 아시다시피 매일 같이 운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통사고라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직업입니다.”
마침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고, 나는 정차 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제게 큰 교통사고가 나게 됐을 때, 원장님 같은 실력 좋으신 분이 외상센터에 안 계신다면, 치료를 못 받아 다른 병원으로 이송이 된다면,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 채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원장님같이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 꼭 이런 위급한 환자들이 가는 권역외상센터에 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 고개를 정면으로 다시 돌렸다.
“하…….”
그는 내 말에 생각이 많아졌는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완도에 계시는 환자분들도 당연히 중요하죠. 같은 환자니까요. 지방에 계시는 환자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위급한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 호남권 통틀어 외상센터이지 않습니까.”
“민 대리 말이 맞아.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고.”
“원장님 실력이 워낙 뛰어나시니까, 원장님 같은 분들이 후배도 양성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내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께서는 위급 환자들 치료하시고, 후배 양성도 하신 뒤에 지방으로 내려오셔도 충분하지 않으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 양성… 좋지.”
그 대화를 끝으로 유 원장의 입에서는 더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권역외상센터에 거의 다 도착을 해가고 있었지만, 좁은 차 안에서 느껴지는 침묵 탓에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한 건가?
어떻게 영업한 완도 정형외과의 유재필 원장인데, 내가 주제넘게 이야기를 꺼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에게 내뱉은 내 말에 후회는 없었다.
광주 권역외상센터에는 그의 실력이 필요했기에,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그가 절실히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호남권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가 오는 병원에서, 지금만 보아도 유재필 원장을 찾고 있지 않은가.
단지 내 조언으로 인해 그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됐을 뿐.
고요한 적막이 감싸는 차 안.
나와 유 원장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도로 위를 달렸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광주 권역외상센터.
입구에 차를 대고, 잠겨있던 차 문을 여는 버튼을 꾹 눌렀다.
“민 대리. 태워다줘서 고맙네.”
유 원장은 끝내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네. 수술 힘내십시오.”
“그래. 다음에 연락할게. 또 보세.”
“예.”
인사를 끝으로 그는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단숨에 내렸다.
들어가는 그를 보기 위해 창문으로 그를 보고 있는 그때.
똑똑.
바로 뒤를 돌아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는 유 원장.
지이잉.
나는 그의 창문 노크에 재빨리 창문을 내렸다.
“네? 원장님 뭐 두고 내리셨습니까?”
그는 상체를 낮춰 조수석에 열린 창문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 대리. 조언 주제넘지 않았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였다.
그 대답을 끝으로 그는 병원 쪽으로 뒤를 돌아 들어갔다.
나는 점점 멀어지는 유 원장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내 귓가에는 그의 마지막 멘트가 반복 재생이 되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표출할 수 없을 만큼의 희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가 들어간 권역외상센터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 * *
며칠이 지나도 유재필 원장에게서는 전화나 문자 한 통 없었다.
완도 정형외과에서 발주가 없어 그러는 것인지, 수술 케이스가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더불어 그날 외상센터에 급하게 갔던 환자의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회복은 잘되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연락을 먼저 해볼 수는 없었다. 혹여나 환자가 잘못되었다면, 그날의 이야기에 대해 꺼내는 것이 불편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휴대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책상에 손가락을 올리고 툭툭 치고 있던 그때, 거짓말처럼 휴대전화의 화면이 밝혀졌다.
밝혀짐과 동시에 울리는 벨 소리.
지이잉.
[발신인 : 완도 정형외과 유재필 원장]
유재필 원장의 전화였다.
나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재빨리 전화를 들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원장님!”
- 어. 민 대리. 내 전화 기다리고 있었나?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받네. 하하.
“네. 그날 병원에 가신 뒤에 못 봬서 원장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핫.”
- 그날은 민 대리 덕분에 수술도 잘 끝났어. 환자도 회복해서 중환자실에서 일반 입원실로 옮겼고.
“하.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를 들은 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그런데 민 대리, 지금 바쁜가?
“아닙니다. 지금 사무실입니다.”
- 지금 좀 올 수 있을까?
“그럼요. 저번에 미국 제조사 아민 제품에 추가된 기구가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했었거든요.”
- 그럼 지금 좀 봤으면 하는데.
“넵.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그래.
“지금 바로 출발하면 2시간이면 갈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원장님.”
- 아니. 거기 말고.
“네?”
-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오게.
그의 한마디에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은 마음에 유 원장에게 재차 물었다.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권역외상센터 진료실로 와.
“왜… 지금 거기에 계시는 겁니까? 오늘 완도 휴진 일 아니지 않습니까?”
- 와서 이야기하지.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