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의사 가운을 입은 그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손바닥에 올려둔 명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우리 회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며 그에게 설명했다.
“네. 이번에 새로…….”
“아!”
그는 내 말을 자르고 무언가 떠오른 듯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박승호 원장님이랑 일하시는 분 맞죠?”
그는 담배를 밟아 꺼트리며 내게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던 정형외과에 박승호 원장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혹시나 모를 동명이인일까 싶어 그에게 되물었다.
“맞아요!”
그가 박승호 원장을 어떻게 알지?
물론 의대가 몇 없기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과목의 의사들은 절반 이상이 아는 사이라지만, 그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 저를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요?”
“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했다.
“박승호 원장님이 며칠 전에 전화가 왔었거든요. 유재필 교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냐면서요.”
생각났다.
박승호 원장이 지난번, 나에게 유재필 원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이 광주 권역외상센터에 아는 지인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유재필 원장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지인을 통해 확인하겠다고 했던 지인이 내 앞에 서 있는 교수였던 것.
세상이 정말 좁다는 걸 한 번 더 느끼며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맞아요. 박 원장님께서 아시는 지인이 권역외상센터에 계신다더니,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하.”
“그러게요. 박승호 원장님이 거래처인 광주 메디컬의 대리님이 유재필 교수님과 일하고 있다고 해서 저도 궁금했었거든요. 신기하네요.”
그와 나는 초면이었지만, 의외의 인연으로 금세 벽을 하나 허물게 된 느낌이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밖에 있는 벤치로 발길을 옮겼다.
빈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하나씩 입에 물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
“교수님은 광주 권역외상센터에 오래 근무하셨습니까?”
“네. 저도 꽤 됐죠. 근데 우리 유재필 교수님은 잘 계십니까?”
나에게 유 원장의 안부를 묻는 것을 보니, 연락을 자주 하고 지내지는 않는 모양.
“예, 잘 계시죠. 어제도 뵙고 왔습니다.”
“저희 교수님이랑은 사이가 꽤 가까우신가 봐요.”
사이가 가깝다라…….
어떠한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으신가 보네. 유 교수님이랑 친분 생기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고민하는 찰나에 미소를 짓는 나를 보고 나와 유 원장의 관계가 가깝다고 생각한 모양.
나는 아니라는 변명을 하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근데 교수님, 이제 사모님 일은 다 털어 내셨으려나.”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유재필 원장의 사모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담배 한 모금을 쭈욱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아내와 이혼을 하신 건가?
설마 사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유 원장의 사적인 일이었기에 그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교수는 내가 이미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내가 묻지도 않았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진짜……. 하. 안타까워요.”
무언가 유 원장과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좋은 일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때 수술만 받으셨어도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나는 육성으로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켜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설마 했는데, 사별이라니.
나는 그에게 대답을 해야 했기에, 애써 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너무 안타까워요.”
그러자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사모님 수술 못 받으신 뒤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어떤…….”
“유 교수님 사모님처럼 VIP한테 밀려서 수술 못 받았던 환자들이요. 처음에는 충격이었는데, 이쪽 세계에 오래 있다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요.”
그와 짧은 시간 동안 몇 마디밖에 나눠보지 못했지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 원장과 사모, 그리고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
유 원장의 사모는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급히 왔지만, VIP에게 밀려 수술을 받지 못해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
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유 원장의 이야기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근데 아시잖아요. 뭐 어쩔 수 있나요. 모든 병원이 마찬가지잖아요. 일반 환자보다는 VIP, 돈 많은 사람이 우선이 되니 말이에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뭐 위에서는 그 생각해 주겠어요? 돈이 먼저인 사람들인데.”
대체 어떤 VIP였기에 광주에서 이렇게 큰 권역외상센터에 의사 아내를 밀어내고 수술을 한 것일까?
나는 그에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때 그 VIP 환자가 누구였었죠?”
“그……. 그때 그 동네에 정치하던 사람 아내였었는데. 그 정치인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정치인…….
정치인에게 밀려 유 원장의 아내가 수술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 다른 의사에게, 혹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의문점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근데 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안 받으신 거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돌아가신 거 말고 앞에 이야기는 모르시는 거예요?”
나는 뜨끔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그때 사모님이 교통사고 나자마자 근처 병원으로 갔는데, 수술실 침대까지 갔다가 정치인 아내가 급하게 수술한다고, 사모님은 다른 병원으로 바로 이송했어요.”
“근데 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위급상황에 이송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잖아요. 골든 타임을 놓친 거죠.”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유 원장이 왜 그렇게 고위 관직, VIP들에게 환멸을 느껴 지방으로 내려왔는지.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치인 아내 말이에요. 위급하긴 했지만, 유 교수님 사모님을 밀어내고 수술할 만큼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안타까웠죠. 유 교수님이 그때 병원에서 수술 중만 아니셨어도, 그런 일은 말릴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가슴 저 밑에서부터 숨을 끌어모아 크게 내쉬었다.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화가 나네요.”
나는 탄식을 겨우 참아내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그때 수술 끝나고 나오셔서 소식 전해 들은 유 교수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그 수술 때 교수님과 같이 수술방 들어갔었거든요.”
유 원장이 그 시간에 병원 수술을 하러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의문도 잠시, 세상에 이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취약 계층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오랜만에 이야기 꺼내도 착잡하네요. 아! 근데 교수님이요.”
“네?”
“여기로 복귀는 언제 하신대요?”
“광주 권역외상센터로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얼마 전에 다른 교수님께서 유 교수님 만나서 복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고 했거든요. 언제 오시는지 알고 계시는 거 없으세요?”
“글쎄요.”
내가 유재필 원장의 복귀 소식을 알고 있을 리가.
“유 교수님만큼 실력을 갖추신 분이 없어요. 저희도 여기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기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더 큰 병원으로 이송 보내기도 하거든요.”
“위급한 상황에 이송 보내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근데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최대한 중간 조치까지 취하고, 급하게 올려보내는 거죠. 유 교수님이 계셨으면 그런 일이 적었을 텐데…….”
유 원장의 수술 실력은 이 업계에서 탑으로 유명하다.
광주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될 당시, 엄청난 금액으로 스카우트가 되었다, 몇 날 며칠을 설득했다, 유재필 원장이 환자를 살리고 싶어 직접 들어 왔다는 둥 업계에서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대리님이 교수님이랑 친하시다면서요. 설득 좀 해주세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답했다.
“제가 설득한다고 오실 교수님이신가요.”
“하긴. 교수님이 워낙 자기 의견이 뚜렷하신 분이라 먹히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그래도 지금 광주 권역외상센터에는 유 교수님이 꼭 필요한데 걱정이네요.”
“다른 교수님들은요?”
“요즘 남아 계시던 실력 좋으신 교수님 한 분도 서울로 올라가셔서, 정말 유 교수님의 도움이 절실해요. 환자 한 분 한 분의 생명처럼요.”
그의 표정과 말투는 꽤 절실해 보였다.
그간 많은 환자의 수술과 이송이 많았던 모양.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유 원장을 복귀시킬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환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서 유 원장이 꼭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환자에 대한 남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기에, 당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복귀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슬픔. 그 이유가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다른 환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유 원장이어도 확실하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저도 꼭 유 교수님이 복귀하셨으면 좋겠네요. 더 많은 생명을 위해서요. 잘은 모르지만, 교수님의 사모님도 그걸 더 바라실 것 같아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지이잉.
사무실에 들어온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 : 완도 정형외과 유재필 원장]
“네, 원장님.”
- 민 대리. 이번에 미국 제조사 신제품 나왔다고 하는데, 알고 있나?
“예. 아민 제조사에서 나온 숄더 인공 관절 치환술 기구 말씀하시는 걸까요?”
- 어, 맞아. 역시 민 대리는 알고 있었네. 그 기구 좀 봐보고 싶은데.
“그럼요. 기구 새로 나와서 요청해서 사무실에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 응. 바로 오면 가능할 것 같아.
“예. 지금 일정 없어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유 원장의 밝은 목소리.
항상 내가 먼저 기구를 들고 가 선보였었는데, 유 원장에게 먼저 기구를 보자고 연락이 오다니.
그가 드디어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연 것 같았다.
* * *
서둘러 도착한 완도 정형외과.
2시간을 달려왔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유 원장에게 기구를 30분이 넘게 설명하고, 진료실에 앉아 사담을 나누고 있던 그때.
유 원장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만. 나 전화 좀.”
“네!”
그는 나에게 이야기를 한 뒤 곧바로 전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뭐? 지금 당장?”
굳어 가는 그의 표정.
휴대전화의 소리가 큰 덕에 통화 내용이 내 귀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