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골든타임 】
유재필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벗어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의 큰 목소리에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유재필 원장에게 꽂혔다.
그리고 유 원장 역시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교수님. 앉아서 이야기 조금만 들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의 간절한 표정과 말투에 유 원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마주 보고 있는 유 원장과 가운을 입은 의사.
유 원장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
“교수님. 지금 권역외상센터 윗 라인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게 뭐.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는 단호한 유 원장의 말투에 입을 벌린 채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유 원장은 그를 향해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는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이제 돌아오세요, 교수님.”
“아니. 내가 그 윗 라인 때문에 나온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게 아니라, 과거의 일은……. 무엇보다 실력이 출중한 의사 선생님이, 그러니까 유 교수님이 필요합니다. 절실히요.”
그의 심각한 표정.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유재필 원장도 알아차린 것 같은 표정.
굳게 입을 닫은 유 원장에게 그는 이어 이야기를 했다.
“최근 들어 병원 근방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환자들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손이 부족해서 나한테까지 연락한 거냐? 다른 데서 알아봐.”
유 원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부족합니다. 일손이 아니라, 실력이요.”
그의 말에 유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뭐?”
“지금 의료진 실력이 부족해요. 현재 병원에 있는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손에…….”
그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어갔다.
“생명을 살리기에 역부족했던 환자도 있었습니다.”
“환자가 잘못된 게 너희 부족한 실력 탓이면, 노력할 생각을 해야지. 나한테 올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는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난다.”
유 원장은 일어나려는 듯 손을 의자에 지탱했다.
“환자의 상태가 위급했지만, 어쩔 수 없이 위쪽으로 이송한 환자가 많았습니다.”
땅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고개를 들고 유 원장에게 외쳤다.
그의 말은 의자에서 살짝 몸을 떼 냈던 유 원장을 다시 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어 말을 내뱉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위급 상황에 환자를 이송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유 원장은 그의 말에 한숨을 연달아 내쉬었다.
“저희. 아니, 권역외상센터에 교수님이. 교수님의 실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환자들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휴대전화가 세차게 울렸다.
지이잉.
의사 가운을 입은 그의 전화.
“여보세요. 아, 네. 지금 바로 들어가요. 네, 수술실 준비해 주세요.”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짧은 통화를 마친 후, 그는 유 원장에게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콜이 들어와서 급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얼른 들어가 봐.”
그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유 원장의 앞에 섰다. 그리고 허리를 접을 수 있는 한 접고 유 원장에게 말하는 그.
“한 번만 도와주세요, 교수님.”
유 원장은 그런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정면에 뒀을 뿐.
“꼭 생각해 보시고, 연락… 아니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먼저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그가 떠난 후 카페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있는 유 원장.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유 원장은 커피잔을 들어 길게 한 모금을 마셨다.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내쉬는 긴 한숨.
한숨 끝에 그는 나지막하게 말을 읊조렸다.
“구급차 이송……. 하. 악몽이 떠오른다.”
* * *
똑똑.
“안녕…하세요.”
“아니, 이게 누구야. 말도 없이 회사 옮겨버린 민지훈 대리님 아니세요?”
모던 정형외과에 왔을 당시, 김사랑 원장을 만나고 가지 못해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나에게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원장님. 잘 지내셨죠?”
나는 그녀에게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럼 잘 지냈지. 민 대리가 나한테 이야기 안 하고 간 것만 빼면!”
“에이, 원장님. 죄송해요. 원래 주인공이 마지막에 나오는 거잖아요. 피날레를 장식하려고 왔죠. 하하.”
나는 그녀에게 너스레를 떨며 사과했다.
“됐어, 얼른 앉아.”
그녀는 내 능글맞은 말투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된다고? 나 진짜 서운했어, 민 대리님.”
그녀는 양팔로 팔짱을 끼고 내게 말했다.
“저도 모던 정형외과에 제일 먼저 오고 싶었죠. 근데 WG 메디컬에서 모던 정형외과를 들고 가지 못하게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내 말에 팔짱을 스르륵 풀어내며 대답했다.
“웃긴다. 민 대리님이 직접 나를 영업한 건데도 두고 와야 하는 거야?”
“그럼요. WG 메디컬에서 근무할 때 영업했던 병원이니까. 제 담당이 아닌, WG 메디컬이 담당인 거죠.”
그녀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치사하다.”
“제가 WG 메디컬 소속이었으니까 당연한 거죠, 뭐.”
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한숨을 삼켜냈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WG 메디컬이 아니었어도, 민 대리님한테 영업 당했을 거야.”
“네?”
재차 묻는 내 말에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WG 메디컬의 민 대리님이 아니라, 그냥 민지훈이라는 사람한테 영업 당한 거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병원 자주 와.”
나를 생각해 주는 그녀의 말에 그녀를 따라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원장님.”
나는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대답했고,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거기 옮긴 회사는 어때. 괜찮아?”
“네. 다 좋은 분들과 함께 나온 거라 잘 다니고 있어요. 원장님도 이제 광주 생활에 완전히 정착하신 것 같은데요?”
“아니야. 아직도 병원, 집, 병원 집만 하고 있어. 아! 나도 명함 줘야지.”
그녀는 손뼉을 부딪치며 내게 말했다.
“맞다. 명함을 아직 안 드렸네요.”
나는 명함을 달라는 그녀의 말에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너스레를 떨며 그녀에게 명함을 양손으로 건넸다.
“광주 메디컬의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그녀는 내 농담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민지훈 대리님. 하핫.”
그녀는 내 명함을 이리저리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민 대리님 명함 첫 번째로 받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녀는 명함을 바라보고 코끝을 찡긋거렸다.
사적으로도 친분이 생긴 김 원장이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연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WG 메디컬 때문에 모던 정형외과에 영업을 하러 오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녀에게 이직을 준비하며 언급을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원장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영업을 떠나, 친구를 하자며 친해져 놓고는 영업 성공 후 연락 두절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
그녀가 서운해할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기에, 못내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먼저 친구 하자고 해줬었는데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요, 원장님.”
풀이 죽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사과하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미안하지?”
해맑은 표정으로 묻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럼요. 죄송하죠.”
“그럼… 다음에 술 사.”
의외에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는 나를 보며 그녀는 미간에 힘을 준 채 말했다.
“왜 웃어. 술 사야지, 미안하면!”
나는 웃음을 끊어내고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히 사야죠. 돈 들고 가겠습니다. 먹을 거 생각해 오세요. 하하.”
김 원장은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내 담당 병원 여덟 군데 중 유일하게 나를 믿고 따라와 준 병원. 바로 모던 정형외과였다.
WG 메디컬, 광주 메디컬과 같은 어디 소속의 누구가 아닌, 그저 나 ‘민지훈’만을 믿고 따라온 병원이었기에, 감사함을 표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 그들에게 크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모던 정형외과 원장님들께 죄송하기도 해서 식사 대접하려고 했었는데, 그럼 다들 언제 시간 괜찮으신지 여쭤봐야겠네요.”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지고 말았다. 눈썹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
“아니. 민 대리랑 나랑 둘만.”
“네?”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고, 그녀는 다시 한번 나에게 대답했다.
“우리 둘만 따로 먹자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말하는 김 원장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네, 좋아요.”
내 대답에 그녀는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 * *
카탈로그와 그 외 자료들을 잔뜩 챙겨 완도 정형외과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유재필 원장이 나와 가치관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업해 돈을 벌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이 많이 남는 것. 그리고 수술할 때 환자에게 좋은 것보다 의사가 수술하기 편한 것을 메디컬 회사에서는 추천하고 판매한다.
부조리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이다. 영업이라는 것은 구매자에게도 좋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판매자에게 남는 것이 있어야 하니까. 게다가 구매자가 선호하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영업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른 메디컬 회사, 직원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사가 수술하기 편한 수술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수술 방법이 조금 힘들더라도 환자에게 꼭 맞는 수술 기구를 선택하는 것.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물건 금액과 수술 기구는 온전히 환자를 위해 초이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유재필 원장은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살가운 면보다 냉철하고 단호한 면이 더 많은 그였지만, 더욱 관심이 갔다.
그동안 다른 병원들에 선보이지 못했던 제품, 그리고 의사들에게 더러 추천했지만 거절당했던 기구들을 모조리 챙겨 완도 정형외과로 향했다.
유 원장이라면 이 기구들을 반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 트렁크에 가득 실린 기구를 빼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병원에 들어가 유 원장을 만날 수 있는지 확인 후, 차에 돌아오기 위해 빈손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정문으로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
완도 정형외과는 항상 환자가 가득했기에 시끌벅적했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시끌벅적한 느낌이 감돌았다.
나는 서둘러 입구 유리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장난해? 병원 문 닫고 싶어?”
로비 끝쪽에 위치한 기다란 원무과 테이블.
소란스러운 광경은 그 원무과 테이블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