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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13화 (113/339)

113화

나는 따지 않은 캔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황급히 전화를 들었다.

밤늦은 시간.

예전 거래처인 모던 정형외과에서 오는 전화라…….

보통 담당 병원일 때는 이 시간에 걸려오는 병원 원장의 전화는 늘 한결같았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술 약속이지.

하지만 지금은 담당 병원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먹자고 할 리는 만무했다.

나는 미간에 힘을 준 채 조심스럽게 전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민 대리, 지금 바쁜가?

다급한 박승호 원장의 목소리.

역시나 술자리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주변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병원에 남아 있는 듯했다.

“아닙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늦었는데 미안. 내가 급해서.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 혹시 지금 distal radius 기구 좀 받을 수 있나?

“네?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 어. 지금.

“수술은 언제신데요?”

- 기구 준비되는 대로 바로. 중요한 환자라서. 가능한지만 빨리 이야기 좀 해줘.

“가능합니다. 지금 회사 가서 챙겨서 바로 병원 들어가겠습니다.”

- 얼마나 걸려?

“1시간 안 걸릴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 어. 고마워.

왜 WG 메디컬이 아닌 나에게 기구를 요청하는지.

왜 이 시간에 수술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도, 묻지도 못했다.

그만큼 다급해 보였다.

이유를 막론하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서둘러 겉옷만 챙겨 집을 나섰다.

* * *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모던 정형외과의 간호사들이었다.

“어머. 민 대리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우선 여기 기구 가져왔습니다. 급하시다던데, 이것부터 얼른 소독 돌리셔야…….”

기구가 들어간다고 해서 바로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몸에 넣어야 하는 기구이기에 소독은 필수.

그 소독 시간만 해도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렇기에 나는 서둘러 기구를 넘긴 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간호사는 내가 건넨 기구를 받아 소독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이 시간에 수술 안 하시지 않아요? 응급실만 돌아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는 내게 귓속말을 하는 듯이 다가오며 말했다.

“박 원장님 어머니시래요. 갑자기 다치셔서 손목이 부러지셔서 급하게 나오셨어요.”

“정말요? 어쩐지 급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제야 이해되는 그의 목소리.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는 진료 시간이 끝난 이후에는 응급실만이 열려있다.

그 응급실에는 수술을 할 환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응급 환자들만이 일반 병원 응급실로 오게 된다.

간단하게 링거를 맞거나, 주사를 맞으면서 경과를 지켜봐도 될 정도의 응급 환자들. 그리고 상태에 따라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거나, 밤새 경과를 지켜본 후 오전에 진료 시간이 되면 의사에게 재진찰을 받게 되는 것.

하지만 박 원장의 어머니가 다치셨기에, 그가 병원으로 복귀해 긴급 수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WG 메디컬이 아닌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간호사들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박 원장이 직접 전화를 한 것이기에, 그녀들도 알고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

보통 손목 수술 같은 경우에는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기에, 나는 병원에서 박 원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담당 병원인 8개의 병원 중 시간상 오지 못한 병원 중 하나가 모던 정형외과였기 때문에, 그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했었다.

시간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모던 정형외과가 매출이 큰 병원이기에 WG 메디컬에서 제일 먼저 손을 썼을 거라 생각해 배제했던 병원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인사도 할 겸, 물을 것도 많았기에,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수술실 앞에 앉아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수술은 이상 없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예상 시간을 벗어나지 않고 수술실 빨간 불이 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박승호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장님!”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나는 반가움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갔다.

“민 대리.”

“어머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들었어?”

“네. 어머님께서 다치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밤늦게는 잘 안 보여서 위험하니까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나오셨다가 넘어지셨나 봐. 그래도 크게 다치신 건 아니어서, 수술해서 금방 회복하실 거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원장님이 수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시니까요.”

그는 내 팔을 툭 두드리며 말했다.

“소주나 한잔하러 가자.”

“어머님은요?”

“아버지 오셔서 같이 입원실에 계셔. 가자, 술이나 마시러.”

“넵.”

박 원장과 도착한 술집.

모던 정형외과 앞에 있는 작은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의 연락을 받고 급히 나온 터라 내 복장은 트레이닝 바지에 흰 티셔츠를 후줄근하게 입고 있었다.

그 역시 집에서 쉬다가 급하게 나온 건지, 옷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원장님도 퇴근해서 쉬다가 나오셨나 보네요.”

“하하. 옷이 그렇지? 민 대리도 집에서 잘 쉬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

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야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그는 소주를 내게 부으며 말했다.

“민 대리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나는 그에게 소주병을 건네받아 그에게 따랐다.

그리고 그와 잔을 세게 부딪쳤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디찬 알코올.

크으.

그는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나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한 뒤 잔을 채웠다.

“근데 원장님.”

“어.”

“지금 WG 메디컬이랑 그대로 일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맞지. 근데 왜 민 대리한테 연락했냐, 그거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급해서 기구 찾았더니, 내일 아침에 넣어준다는 거야.”

“네? 내일 아침이요?”

“어. 우리 엄마 수술인데 말이야. 민 대리도 안 된다고 했으면 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었어.”

그는 소주를 입에 털어 마시고 말을 이어 갔다.

“기구가 다 나가 있다고, 넣어줄 수 있는 게 없다더라고. 진짜인지, 자기들이 퇴근해서 그러는 건지.”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기구가 나가 있었다면, 본사에 요청하거나 다른 회사에서 구했으면 됐을 텐데.”

“내 말이. 근데 안 된다고 잘라버리더라고. 물론 내가 퇴근 이후에 한 건 잘못됐지만 말이야.”

“에이. 매번 그러시는 것도 아니고, 처음으로 이런 부탁하시는 건데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무튼, 그때 민 대리가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내가 기존에 쓰던 제조사 거로 민 대리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그러게요. WG 메디컬에서 쓰던 제조사 그대로 저희가 가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술병이 늘어가고, 안주가 하나 더 채워질 때쯤.

박 원장이 나에게 물었다.

“퇴사했다며. 마지막 인사도 안 하러 오고.”

그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퇴사가 갑자기 이렇게 될 줄 몰랐었거든요.”

“그래? 우리도 갑자기 WG 메디컬에서 다른 직원이 와서 민 대리가 퇴사해서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나는 입을 다물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왜 퇴사를 했는지는 말 안 해주길래. 당연히 민 대리가 한번 오겠지, 생각했어.”

그는 내게 소주를 따라 부어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다른 회사로 옮긴 거야?”

“네. WG 메디컬에서 같이 있던 분들이 회사를 차려서, 함께 나오게 됐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손뼉을 한 번 치며 답했다.

“잘됐네. 성공했네, 성공했어.”

“하하.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서 거래처도 새로 찾기 시작해야 하고, 정신없습니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왜 우리 병원은 안 왔어.”

“네?”

“영업하러 말이야. 광주에서 우리 병원 나름 크다?”

“에이. 나름이 아니라 광주에서 엄청나게 큰 병원이죠.”

그는 내게 소주잔을 들어 부딪치며 말했다.

“그럼 모던에 영업을 와야지.”

“WG 메디컬에서 담당한다고 했는데, 제가 와도…….”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우리는 민 대리랑 일한 거지. WG 메디컬이랑 일했던 게 아니야.”

“…….”

나는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WG 메디컬에서 퇴사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저 말을 뱉어줄 병원이, 원장님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그 말을 직접 듣게 되니 가슴 속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김사랑 원장도 그렇고, 안국환 원장님도 이야기하셨어. 그런데 우리가 먼저 민 대리에게 연락해서 물건 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안 그래?”

“…그럼요.”

“우리 모두들 민 대리랑 오래 일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같은 단가, 같은 제조사 물건이면 이왕이면 민 대리한테서 받고 싶어.”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WG 메디컬의 민지훈이 아니라, 민 대리였었기에 일했던 거야.”

빈속에 들이부은 알코올 때문인지.

며칠 새 짧은 마음고생 때문인지.

혹은 내가 원하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그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민지훈, 그동안 영업 잘하고 돌아다녔었네!

나는 스스로에게 위안과 칭찬을 해주었다.

“제가 내일 출근하는 대로 병원 들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감사는 무슨. 단 한 번도 민 대리랑 일하면서 수술 기구가 잘못 들어온다거나, 늦었던 적도 없었잖아.”

“당연히 그래야죠.”

“민 대리는 실수라는 게 없었어. 그게 생각보다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도 이쪽 바닥에 오래 일했지만, 메디컬 회사랑 일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야.”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대답 대신 소주잔을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 병원 다니고 있어?”

그와 한참을 대화하며 주제가 전환되었다.

“저 오늘은 완도에 다녀왔었습니다.”

“헉. 완도까지 갔어? 거기에도 수술하는 병원이 있고?”

그는 눈을 크게 뜨고는 내게 되물었다.

“네. 있더라고요. 원장님, 혹시 유재필 원장님이라고 아십니까?”

그는 내 질문에 눈동자를 허공으로 굴리며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 유…재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왜, 누군데?”

“거기 완도 정형외과에 계시던 분인데, 쓰시는 수술 기구나 소모품 보면 경력도 오래되신 것 같고, 실력이 엄청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 근데 왜 완도에 계실까?”

“그래서 궁금해서요.”

“물어보지 그랬어.”

“안 그래도 여쭤봤는데, 자꾸 대답을 회피하시기에 인터넷에 찾아봤는데도 병원 약력이 안 뜨더라고요.”

“유재필이라…….”

그는 턱을 어루만지며 유재필 원장이 누구인지 생각에 잠겼다.

유재필 원장, 대체 뭐 하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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