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10화 (110/339)

110화

“네? 이게 무슨 서류입니까?”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한 뒤 시선을 소파 테이블로 내렸다. 그리고 서류 맨 위에 적혀 있는 글자.

[근로계약서]

퇴사를 하겠노라 말을 하러 온 내게 내미는 서류가 근로계약서라…….

나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 대표에게 물었다.

“근로계약서는 왜…….”

그러자 김 대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민 대리, 급여 부족해서 나가는 거지?”

황당한 그의 물음.

무슨 힘든 일이 있었는지, 급여가 부족했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닌, 지레짐작으로 나의 퇴사 이유를 확신해 묻는 김 대표.

나는 그런 그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장 이사고 손 차장이고 나간다는 거? 인정해. 민 대리는 대체 왜 나가겠다는 거야?”

퇴사 이유를 드디어 묻는 김 대표.

나는 그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가 입사하고 손 차장에게 일을 배우기도 했고…….”

하지만 그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라버렸다.

“급여가 문제라면 내가 섭섭하지 않게 올려줄게. 인센티브도 마찬가지고.”

그는 다시 한번 앞에 놓인 근로계약서를 내 쪽으로 밀어 보였다.

“내가 민 대리 담당 거래처 들고 나간다기에 하나도 못 들고 나가게 했어. 왜냐, 민 대리는 여기에 남을 거거든.”

“네?”

김 대표는 내가 급여를 올려준다고 하면 회사에 남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아니 듣지도 않은 채 그는 돈 때문일 거라고 확신을 한 것 같았다.

유일하게 내 거래처만 하나도 주지 않았던 이유. 그 이유가 바로 나를 남겨 놓기 위해서였다니.

이해할 수 없었던 김 대표의 생각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는 재차 묻는 내 말에 대답하지도 않고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인주를 꺼냈다.

“여기 근로계약서에 섭섭하지 않을 만큼 급여 인상해 뒀어. 읽어 보고 지장 찍으면 돼.”

그는 인주 뚜껑을 열어 내게 내밀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너무 당연하게 인주를 들고 와 지장을 찍기만 하면 된다는 그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김 대표라는 사람의 이면적인 인간성 때문이었다.

항상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그.

예전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생각했었던 시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기에 기부를 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돈으로써 돕는 면을 몇 차례 봐왔었기에.

그러나 그가 돈이라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악용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순간, 오랜 기간 그를 동경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었다.

사건 사고를 덮기 위해, 오로지 돈으로만 승부를 보는, 특히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돈으로 남을 매수하는 모습. 그것이 결정타였던 것 같다.

장 이사와 손 차장을 따라나서는 것은 단순히 그 이유 하나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김 대표의 태도가 그들을 따라나서기에 큰 작용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까지 인간적인 질문은 모두 빼놓은 채 그저 돈으로만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마음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러내고 무표정한 상태로 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나는 앞에 놓인 인주와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김 대표 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직장인이 급여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그래.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답해도 돼.”

끝까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김 대표.

회사를 다니는 데 급여만큼 중요한 게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행복을 위해,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데 돈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나 회사에 다닐 때 돈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사람 관계, 직장 상사.

그들과는 일주일 7일 중 무려 5일을 붙어 있고, 24시간 중 무려 9시간을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오래 보는 사람들이 바로 회사 사람들인 셈. 그렇기에 돈만큼 중요한, 어쩌면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회사 사람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김 대표 밑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고, 퇴사를 결심했기에 김 대표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를 향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사회에 발을 딛으며 처음으로 다녔던 회사가 여기 WG 메디컬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일을 배울 수 있어서, 대표님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가게 된 것은 죄송하지만, 앞으로 이 WG 메디컬에서 다녔던 3년은 값진 경험으로 남아 제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지만, 손으로는 근로계약서를 쥐고 있었다. 언제든 내게 다시 내밀 것처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가게 된 후에도 대표님과 그리고 WG 메디컬 식구들과도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붙잡아 주셨는데, 못난 저를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완고한 내 뜻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거절에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다.”

“대표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 소주나 한잔하자. 앞으로도 연락하고 지내고, 언제든 마음 바뀌면 WG 메디컬로 넘어와.”

“예. 감사합니다.”

“그래, 민 대리. 아니, 지훈아.”

그는 팔을 뻗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받치고 허리를 숙여 손을 잡았다.

대표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온 나는 상자 하나를 꺼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3년을 쉬지 않고 일했지만, 퇴사할 때 나오는 짐은 달랑 상자 하나였다.

짐을 모두 싼 후에는 사무실의 모든 이들에게 한 명씩 인사 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나쁜 감정으로 회사를 나온 것은 아니었기에 홀가분한 마음은 단 1퍼센트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기에, 다시 WG 메디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앞을 향해 전진할 뿐.

성공을 위한 한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이잉.

차에 올라타자 울리는 휴대전화.

박 주임에게서 온 문자였다.

[이제 우리 같은 회사 아닌 거 맞죠? 사내 커플 될 일은 없는 거죠? 이제 막 새로운 시작해 바쁠 테니까, 바쁜 거 조금 정리되면 나 꼭 한번 생각해 봐요.]

박 주임의 당돌한 문자.

텍스트로 쓰여 있었지만, 음성 지원이 되는 느낌이었다.

주말에 나와 등산 갔을 때, 박 주임은 멋대로 내가 자신의 고백을 받지 않는 이유를 추측했다.

바로 사내 커플이 될까 걱정돼서 자신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오늘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않았던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웃음이 피식하고 터져 나왔다.

* * *

평소보다 일찍 맞춘 알람에 헐레벌떡 일어났다.

항상 보는 장 이사와 손 차장이었지만,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일찍 나서기 위함이었다.

차에 올라타 습관처럼 WG 메디컬로 향하려던 내 핸들을 꺾어 광주 메디컬로 향했다.

낯선 환경, 낯선 분위기.

하지만 낯설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평소에 9시에 출근을 했었지만, 오늘은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사무실에 도착을 했다.

첫날이기에 계획을 세울 것도 많았고, 정리할 것들도 넘쳤기 때문이다.

책상에 짐 정리를 하고 있던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차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손 차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8시가 겨우 넘은 지금 사무실에 들어왔다.

“민 대리는 대체 몇 시에 온 거야?”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하하. 기분이 엄청 새롭네요, 차장님을 여기서 뵈니까요.”

“그러게. 우리 셋만 쓸 사무실이라 규모는 작지만, 셋이 쓰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사무실이네. 오히려 썰렁하다.”

나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그에게 대답했다.

“얼른 영업 많이 해서 소모품이랑 기구 재고로 꽉 채워야겠네요.”

그때 또다시 열리는 사무실 문.

“다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장 이사였다.

하나같이 8시 20분이 되기도 전에 출근을 완료했다.

“이사님 오셨습… 아니지. 장 사장님 오셨습니까!”

손 차장은 장홍석 사장을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 역시 그를 따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장 사장님. 출근하셨습니까.”

그는 우리의 활기 넘치는 인사에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사장이라고 하니까, 너무 어색하다.”

“에이. 그래도 이제 회사 사장님이신데, 어떻게 이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장님? 하하.”

화기애애한 첫날 회사 분위기.

장 사장은 한쪽에 놓인 긴 회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씩들 하면서 회의하자고. 나 커피 좀 사러 다녀올게.”

나는 그의 말에 재빨리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니야. 여기 본인 짐들 정리하고 있어. 나는 정리를 다 해둬서. 내가 앞에 금방 다녀올게.”

“넵.”

그가 사무실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책상을 정리하며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의지를 다졌다.

“자, 앉아서 회의하자.”

장 사장의 말에 우리는 회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디어 첫 출근에 첫 회의네?”

그의 말에 나와 손 차장은 미소로 답했다.

“우선 우리가 가지고 온 병원은 총 일곱 군데야.”

장 사장의 말에 손 차장이 물었다.

“그럼 이제 거래처를 어떻게 나누면 될까요?”

“이미 담당을 하던 거래처라, 내가 내 거래처 4개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고, 손 차장도 3개는 관리할 수 있지?”

손 차장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요. 충분히 가능하죠. 신규도 아니고 기존 거래처라 관리만 하면 되니까요. 이제 다른 병원 영업도 얼른 따와야겠습니다.”

그의 열정 넘치는 이야기에 장 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니. 우선 병원 3개만 관리해 봐. 지금 그걸로도 매출은 충분해. 그 거래처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매입 거래처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절대 불편 사항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

“그렇겠네요.”

“매입처 본사들은 내가 예전부터 연락해서 거래처 뚫어뒀으니까, 물건 발주하고 받는 건 문제 없을 거야.”

“인공 관절 매입처도 다 그대로 가지고 오신 겁니까?”

장 사장은 손 차장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큰 매입처는 오히려 회사의 안정적인 매출을 몇 개월 보고 난 후에야 거래처 등록이 가능하다네. 그런 매입처는 대체 품목으로 다른 회사에서 받아야 하니까, 병원 가서 잘 말씀드리고.”

“알겠습니다.”

장 사장과 손 차장은 가지고 나온 병원을 그대로 관리를 하면 됐지만, 나에게는 가지고 나온 병원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에,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저는 새 거래처 영업을 나가면 될까요?”

“민 대리가 담당하던 병원이 몇 군데지?”

“저 여덟 군데였습니다.”

“많이도 했었네.”

손 차장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네. 근데 매출이 큰 곳은 몇 개 없었습니다.”

“8개 중에 병원 한 개라도 옮겨 온다면 성공적이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다녀와 봐. 기존 거래처를 따오는 게 그래도 제일 가능성 있을 거야.”

“예.”

“자, 그럼 이번 주는 다들 거래처 한번 잘 잡아보자고!”

그때 우렁차게 울리는 휴대전화.

지이잉.

손 차장의 휴대전화였다.

“잠시만요. 저 병원 전화 좀 받겠습니다.”

장 사장은 그에게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지혁입니다. 예, 원장님. 네? WG 메디컬에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바로 병원 가겠습니다, 네. 30분 안으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은 손 차장의 얼굴은 목부터 붉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주먹을 쥔 손으로 책상을 쿵 하고 내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