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장홍석 이사에게 다가가 있던 손지혁 차장과 나.
그의 말에 놀라 우리는 몸을 소파 쪽으로 다시 당겨 앉았다.
“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다고요?”
“저희 그럼 오늘 퇴사인 건가요?”
나와 손 차장은 장 이사에게 되물었다.
“어. 더 이상 출근해서 뭐 하겠냐고 하더라. 오늘 짐 싸서 나가도 좋다고.”
“결국 그렇게 된 겁니까?”
“응. 우리야 충원 인원이 구할 때까지, 그리고 그 사람들 인수인계 언제 다 해주고 가나, 걱정했는데 그럴 일 없어서 오히려 좋은 거지 뭐.”
장 이사는 아랫입술 깨물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 WG 메디컬에 영업 직원은 진짜 몇 안 남은 거 아닙니까?”
나는 장 이사를 향해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디서 누구를 갑자기 구해 와서 하려고 하는지. 내가 다 걱정이네.”
WG 메디컬의 영업 직원 중, 이상일 차장의 퇴사로 시작해 홍찬성 대리의 퇴사,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대리 수술로 인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된 최준성 과장까지. 무려 근 몇 달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들로 직원들이 우후죽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세 명까지 나가게 된다면 WG 메디컬에 남는 영업 직원들이라고는 최권호 부장과 한태준, 그리고 신입 사원인 백태석.
꼴랑 이 세 명밖에 남지 않는다.
이 적은 인원으로 큰 회사를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이 됐다.
물론 나에게는 이제 지나간 회사, 즉 남의 회사가 되는 거겠지만 그간 다녔던 회사의 정이 있기에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장 이사와 손 차장 역시 그것을 걱정해 충원 인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있으려고 했던 것이지만.
김 대표의 결단을 듣고는 그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때 손 차장이 입을 열었다.
“근데 김 대표님 아들 말입니다. 이번에 군대 전역했다고 하던데, 아들 데리고 오려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장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절대 자기 아들은 메디컬 업계에 안 들인다고 하던데, 글쎄다. 또 모르지.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맞네요. 자기 아들은 이쪽 업계로 안 부른다고 했었죠. 근데 또 발등에 불 떨어지면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나는 장 이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사님.”
“응?”
“그럼 저희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 이사는 마시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이제 갈 사무실은 틈틈이 내가 가서 세팅 다 해뒀어.”
“저희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손 차장은 장 이사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아니야. 내가 계획을 미리 세워놨던 거라, 천천히 시간 될 때마다 한 거야. 내일부터 거기로 출근들 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장 이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을 이어갔다.
“오래 일하던 회사 퇴사해서 조금 쉬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우리 가지고 나온 거래처들부터 관리하고 매입처 본사들에서 물건 받는 것 계약하고 하면 정신이 없어서. 바로 출근하는 거 이해 좀 해줘.”
나는 WG 메디컬에 3년을 다녔지만, 손 차장과 장 이사는 굉장히 오랜 기간을 쉬지 않고 달렸었다.
그랬기에 쉬지 못하고 바로 출근을 시키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
손 차장은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 나이에 퇴사했다고 집에 있으면 애들 엄마한테 잔소리만 들을걸요? 하하. 민 대리도 괜찮지?”
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답했다.
“그럼요. 어차피 WG 메디컬에 남아 있었으면 내일도 출근했을 텐데요. 저도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마음 편합니다. 하핫.”
“그래. 다들 이해해 줘서 고마워. 바쁘다, 바빠. 이제 할 일이 태산이다.”
“이사님. 저희 회사 이름은 그때 고민하시더니, 정하셨습니까?”
손 차장의 말에 장 이사는 손뼉을 세게 치며 답했다.
“맞다! 제일 급한 걸 잊었네.”
“네? 아직도 결정 못 하신 겁니까?”
“어. HS 메디컬이랑 하얀 메디컬. 또 뭐더라? 그때 내가 세 가지 중에 고민했었는데.”
그의 말에 손 차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나시는 게 그거 두 개면 그 두 개가 마음에 남으셨었나 보네요. 그중에서 결정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다들 어떻게 생각해? 다른 이름도 괜찮고.”
장 이사는 나와 손 차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회사 이름이라…….
이렇게 초창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함께 고민한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려 메디컬 이름을 생각했다.
그때 손 차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사님. HS 메디컬은… 홍…석 메디컬인 거죠?”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장 이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장 이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지. 생각나는 게 없어서. 다들 이름 따서 하길래 하나 넣어봤어. 하하.”
그때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혼잣말을 하듯 읊조렸다.
“광주 메디컬!”
작게 속삭인 탓에 옆에 앉은 손 차장만 들은 듯했다.
“뭐라고? 광주?”
“아! 네. 광주 메디컬은 어떻습니까?”
내 말에 손 차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광주 메디컬? 좀 촌스럽지 않냐?”
나는 그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런가요? 하핫.”
그러자 앞에 앉은 장 이사는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왜?”
“네?”
“왜 광주 메디컬이냐고.”
“광주 메디컬이 어떻게 보면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광주에서 대표하는. 아니, 제일 상징적인 이름을 넣자면 ‘광주’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내 말에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경청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광주 메디컬이라고 하면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메디컬 회사 같지 않습니까? 제가 예전부터 왜 광주에는 광주 메디컬이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찾아봤었는데 없더라고요.”
웃고 있었던 손 차장은 어느새 웃음기를 뺀 얼굴로 내 말을 듣더니, 인터넷에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네. 정말 없네? 광주 메디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동네 이름을 넣은 메디컬 회사는 많은데 광주 메디컬은 없습니다. 원래 촌스러운 것, 그리고 그대로를 살린 게 가장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 이사는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음……. 민 대리 말이 일리가 있네. 광주에서 광주 메디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곳도 없고 말이야. 나는 괜찮은데, 손 차장 생각은 어때?”
그의 질문에 손 차장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저도 동의합니다. 가시죠. 광주 메디컬로.”
“그래. 회사의 에이스인 민 대리가 이름을 지어줬으니 앞으로 우리 회사 승승장구하겠는데?”
장 이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좋아. 당장 사업자 등록부터 하고, 서류 준비할 게 많겠어.”
“그런데 저희 사무 업무 볼 직원은 없어도 되는 겁니까?”
“우선 당장은 그냥 해보자고. 내가 WG 메디컬 초창기 멤버였거든. 그때는 그냥 대표님이랑 나랑 명세서도 발행하고, 발주도 하고 했었는데. 지금 여직원을 새로 뽑으면 가르치기에 시간도 없을 것 같고 말이야.”
“그렇겠네요.”
장 이사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이제 손 차장과 민 대리가 우리 광주 메디컬의 초창기 멤버들이니까. 다들 열심히 한번 해보자. 더 커져서 직원이 늘어간다고 해도 초창기 멤버들은 또 다른 거니까.”
“네. 초창기 멤버라니 뭔가 설레는 말이네요.”
나는 웃으며 장 이사에게 대답했다.
“하하. 그래? 다들 열심히 해줘. 나도 우리 식구들이 된 지혁이, 지훈이 안 굶기게 열심히 한번 해볼게.”
“예. 열심히 영업하고 일하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돈 벌어오겠습니다!”
“그래. 급여는 우선 WG 메디컬에서 받던 그대로 쳐줄게. 2개월 동안은 그대로 해보고 그다음 달 매출이 자리 잡고 나면 인상해 줄 테니까. 그 부분은 너무 걱정들 말고.”
장 이사는 확신에 찬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우리 셋뿐이니까 회사에서 남는 게 많을 거야. 최대한 같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좋겠어. 돈적인 부분에서는 내가 서운하지 않게 해줄게.”
“감사합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회사 키워보자.”
장 이사는 앞에 놓인 커피가 들은 컵을 허공에 들며 말했다.
“지금 술은 없지만, 커피로라도 한번 건배할까? 하하.”
“네. 파이팅입니다!”
“광주 메디컬을 위하여!”
그렇게 우리 셋은 들고 있는 커피잔을 들고 서로의 잔에 부딪쳤다.
처음 WG 메디컬에 입사를 할 때처럼 속에서 열정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주먹을 꽉 쥔 채 의지를 불태웠다.
“그럼 이제 사무실 들어가서 마지막 인사들하고 나오자고. 아마 대표님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야.”
“예. 가시죠.”
그리고 장 이사는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나 이야기 좋게 마무리했거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야. 내가 우리 셋의 이야기 끝내두기는 했지만. 다들 들어가서 최대한 좋게 마무리하고 나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정말 사람 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퇴사하는 그 순간, 회사 사람들과 평생을 안 볼 거라 생각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불평불만을 모조리 털어버리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 일하며 지냈던 사람이 내뱉는 불평불만은 오히려 뒤집어 놓고 본다면 회사에서도 좋은 채찍이다.
직접 겪은 단점을 고스란히 이야기해 주는 것이니, 고칠 부분을 정확히 알고 고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서로의 감정은 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후 회사 사람들은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관계로 만날지도 모른다.
그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지.
꼭 퇴사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다. 그렇기에 굳이 헤어짐을, 그리고 마지막을 나쁘게 장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 대표와 좋게 마무리를 해야겠다 다짐을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여니, 온 직원들이 우리 셋을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온 동안 이미 직원들 사이에는 우리의 퇴사 이야기가 퍼졌고, 그들은 우리를 배신자 혹은 앞으로의 경쟁자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이제 이별을 한다는 생각에 다들 아쉬운 눈빛을 보낼 뿐.
그들의 시선을 겨우 회피하고 자리로 돌아가 착석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내 인생의 첫 회사이자 첫 퇴사였기에.
게다가 예상치도 못하게 다가온 이른 날짜에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갑작스럽게 당겨진 일정에 직원들과의 마지막 송별회를 누릴 만큼의 시간도 없었다.
영업 직원들과는 앞으로도 병원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내가 퇴사를 한다는 것을 제일 아쉬워할 것 같은 사람. 내 예상에는 바로 박 주임이었다.
계속 봐온 정이 있어서 그런지, 최근에 함께 등산을 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앞으로 보지 못하게 될 그녀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직원들을 쓰윽 훑어보면서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모니터에만 집중한 채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뭐지, 주말에 퇴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나한테 서운한 건가?
이제 내가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민 대리!”
나를 부르는 손 차장.
“네.”
그는 대표실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 나에게 바통을 터치했다.
똑똑.
“대표님.”
“어. 민 대리. 앉게.”
퇴사 이야기를 하러 들어 온 것이기에 민망하고 어색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렇게 퇴사 말씀을 드리러 오게 돼서 먼저 죄송합니다.”
그는 내 사과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서류 하나를 들고 내 앞의 소파로 걸어왔다.
“민 대리.”
“네, 대표님.”
그는 책상에서 들고 온 서류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읽어 보고 지장 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