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우연찮게 】
“홍 대리가 제보했대.”
아무도 듣는 이는 없었지만, 손지혁 차장은 내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에게서 머리를 떼어내며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홍 대리요?”
그러자 그는 몸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체 최 과장이 대리 수술을 했다는 걸 홍 대리가 어떻게 알았던 거죠?”
홍찬성 대리는 얼마 전 간납 업체 커미션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를 한 직원이다.
그의 퇴사 시기는 최 과장이 대리 수술을 하기 이전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 사건을 알 리가 없었고, 그런 그가 최 과장을 제보했다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손 차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홍 대리가 회사에 다닐 때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가봤었잖아.”
“그렇죠. 회사 직원들은 그래도 한 번씩은 다 가봤을 테니까요.”
손 차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랬대.”
손 차장의 알 수 없는 대답.
“네? 그게 무슨…….”
“여수 새루 정형외과의 납품하는 메디컬 업체는 우리 WG 메디컬밖에 없고, 그리고 대리 수술 사건이 터졌으니 당연히 우리 회사라고 생각했겠지.”
맞는 말이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는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납품하고 있었기에, 대리 수술 사건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우리 회사 직원일터.
하지만 의료 사고라고 보도되어 있는데, 뜬금없이 병원의 CCTV를 제보했다라…….
“그런데 대리 수술이라고 보도가 되기 전이었지 않습니까?”
“어. 근데 그전부터 새루 정형외과 원장이 횡설수설했잖아.”
“네, 그랬었죠.”
“홍 대리는 여수 새루 정형외과 수술실 앞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알았을 테고, 그냥 밑져야 본전으로 제보한 거더라고.”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회사에 앙심을 품은 거지. 자기 자른 회사니까, 엿 돼 봐라 심보였겠지.”
손 차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하필 딱 최 과장이 거기 CCTV에 수술복을 입고 있는 게 찍힌 거고요?”
“어. 최준성 그놈이 생각 없이 그 앞을 지나간 거지.”
홍 대리는 자신을 내친 회사에 앙심을 품고, 자신의 추측으로만 제보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죄가 있었던 최 과장이 딱 걸린 것이지.
“그런데 차장님은 이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홍 대리랑 연락하고 지내시는 거예요?”
“아니. 홍 대리랑 연락한다고 해도 걔가 이 얘기를 나한테 했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하긴 그러네요. 그럼 어떻게…….”
“홍 대리 그놈은 뭐가 자랑스럽다고, 주변에 지가 신고한 일을 영웅담처럼 뿌려대고 다녔나 봐. 광주 바닥이 좀 좁냐. 돌고 돌다가 나도 어디서 주워들었어.”
손 차장이 알게 된 루트가 돌고 돌아온 소문이었다니. 새삼 광주가 아니, 세상이 좁다고 느껴졌다.
홍 대리는 WG 메디컬이 망하길 바라며 제보를 했을 텐데, 그 제보가 돌고 돌아 WG 메디컬 직원에게까지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뱉은 한 마디가 어디서 어떻게 돌고 돌지, 그리고 그 말의 뼈에 얼마나 많은 살이 붙고 붙어서 돌아다닐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
심지어 내가 뱉은 말 하나가 언젠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에게 꽂힐지도 모른다.
말이라는 것은 주워담을 수 없기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진짜 말이 무섭네요.”
“그럼. 항상 말조심하고 살아야 해.”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최 과장은 어쨌든 죄를 저질렀고, 벌을 받아야 마땅했으니 안타깝거나 짠한 마음은 없는 거 같아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리고 어차피 간호사들도 그날 경찰서에 제보했다고 하더라고.”
“정말요?”
“어. 간호사들도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다가 돌아가시는 거 보고 나니까 묵인하기에는 죄책감이 들었나 보더라고. 한 명도 아니고 다중으로 신고가 접수됐다더라.”
손 차장은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애초에 죄짓고 살지 말아야죠. 특히 사람 목숨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죠.”
나 역시 최 과장이 저질렀던 대리 수술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래. 그 환자 생각하면…….”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저어댔다.
그때 울리는 손 차장의 휴대전화.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의 약속 상대에게서 전화가 온 모양.
그는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마시고 내게 말했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 나 늦어서 먼저 가 볼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 *
유독 길었던 금요일.
샤워하며 하루 있었던 고된 일을 함께 떠내려 보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잠이 들기 전 자리 잡은 습관.
다음날 계획을 세우는 것.
사적인 계획도 포함된 것이지만 대부분 계획은 회사, 병원과 관련된 일이다.
다음 날 어떤 병원에 가서 어느 원장을 만나 제품 소개를 할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는 한다.
이렇게 회사를 3년이 넘게 다니다 보니 계획이 생활화가 되었다.
그리고 당장 내일.
주말인 내일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연고가 없는 광주에서의 주말 계획은 뻔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집에서 뒹굴뒹굴하거나, 본가인 여수에 가는 것.
주변에 불러서 놀 친구도 광주에는 없었다. 근교에 있는 친구들을 불러야 했는데, 특히나 주말 낮에 남자들끼리 만난다면 할 일이 술 말고 더 있으랴.
항상 운전하고 다니고,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이제 내 나이도 32살.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됐다는 뜻이다.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시느니, 등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운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띠리리.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알람이 울려댔다.
계획을 세우고 잠이 들었지만, 막상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드는 생각들.
내가 꼭 등산을 하러 가야 하는 것인가, 오후에 다른 운동을 할까, 라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가던 중, 겨우 눈을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3년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여전히 아침에 깨어나는 것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등산은 일찍이 가야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기에,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서랍 깊숙이에 자리 잡은 등산복 한 벌.
몇 년 전에도 결심했던 등산이기에 등산복 한 벌 정도는 구매를 해뒀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차에 올라타 무등산으로 향했다.
* * *
8시.
일찍이 출발했지만 다들 비슷한 시간대에 등산을 시작하려고 했기에 주차장의 차들은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빈자리를 겨우 찾아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등산로 입구로 걸어갔다.
몸을 가볍게 풀어내고 앞에 있는 바위 위에 발을 올려 신발 끈을 한 번 더 꽉 조여 묶었다.
그리고 팔을 돌려 어깨를 풀며 올라가려는 그때.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을 묶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몸을 뒤로 조금만 젖혀도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
질끈 묶은 똥머리에 검정 레깅스. 그리고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스포츠 브랜드의 하얀 양말.
등산을 한두 번 와본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스타일.
그런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그녀.
모르는 사람이니 그만 신경 쓰고 등산을 시작하려고 시선을 그녀에게서 등산로로 돌렸다.
그리고 발을 떼려는 그때.
“어?”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결국 그 가방 무게를 못 이기고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뒤를 손으로 받쳤다.
힘이 꽉 들어가는 두 팔.
나는 뒤로 넘어지는 그녀를 잡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내 힘에 중심을 잡은 그녀는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네! 감사합니… 어? 대리님?”
손을 털고 있던 나는 그녀의 부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그녀는 다름 아닌 박수진 주임.
“대리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그녀는 나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주임님이 여기에 무슨 일이세요?”
나 역시 박 주임의 등장에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긴요. 산 타러 왔죠. 하핫. 그러는 대리님은 여기에 등산하러 오신 거에요?”
“그럼요. 저도 등산하러…….”
“혼자요?”
그녀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을 살펴보며 내게 물었다.
내가 일행이 있는지 둘러보는 모양.
“네, 혼자 왔어요.”
“정말요? 잘됐다. 저도 혼자 왔는데, 같이 올라가요!”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환하게 웃으며 내 팔을 끌어당겼다.
“아……. 네, 그래요.”
어차피 혼자 온 등산. 아는 사람과 함께 올라간다면 외롭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진짜 신기하다. 그렇죠, 대리님?”
그녀는 내 한 걸음 앞에서 걸어가다 뒤를 돌아 내게 물었다.
“그러게요. 등산하다가도 아니고, 입구에서 딱 만났네요. 주임님은 혼자 자주 오세요?”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 앞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네. 저는 등산 좋아해서 자주 와요.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왔었는데, 제가 시간 될 때마다 오니까 점점 같이 안 오더라고요.”
“하하. 정말 자주 오셨나 보네요.”
“산에 오면 조용하고 속도 뻥 뚫리는 것 같고, 기분까지 맑아지는 느낌? 특히 하산해서 먹는 파전은… 크으. 하핫.”
그녀는 파전을 먹는 상상을 하는지 코끝을 찡긋거리며 웃고는 내게 물었다.
“대리님은 자주 오세요?”
“저는 자주 오는 편은 아닌데, 앞으로 자주 다니려고요. 운동 좀 하려고요.”
그렇게 말없이 산을 오르기 30여 분이 흘렀다.
평소 등산을 좋아한다는 박 주임.
그녀는 단 한 번의 힘든 기색 없이 그 이후로도 쭉쭉 지치지 않고 산을 올랐다.
나는 오랜만에 오르는 산에,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심심하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숨이 차오를 때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조금 쉬었다가 갈까요?”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리를 잡자마자 커다란 가방 안에서 오이와 초코바를 꺼내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녀는 그 뒤로도 물, 커피,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까지 끊임없이 물건을 쏟아냈다.
“크기만 큰 줄 알았더니 없는 게 없네요.”
“하핫. 자주 오다 보니까 필요한 게 없으면 불편하더라고요.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그녀와 짧은 휴식을 맛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님, 이제 올라갈까요?”
“네. 가방… 들어드릴게요.”
나는 손을 뻗으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뜨며 내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거 무거워서…….”
“그러니까요. 무거우니까 들어드릴게요.”
“제가 매번 등산을 다녀서 등에 뭐가 없으면 오히려 허전해서요.”
나는 내가 메고 있는 가방을 그녀에게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에 몇 개라도 옮겨 넣어요.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그래요. 저는 가방에 물밖에 안 들어 있어서요. 하하.”
그러자 그녀는 땅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게 몇 가지의 짐을 옮겨 담은 후에야 우리는 다시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올라가 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녀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산 아래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대리님! 산 내려가면 오늘 뭐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