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그릇의 차이 】
“이번 일 때문에 회사 나가시는 겁니까?”
나는 장홍석 이사와 손지혁 차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장 이사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예전부터 준비 중이었지. 하지만 이번 일이 시기를 당기는데 한몫 한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봐야지.”
손 차장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나도 이사님이랑 같은 배를 타기로 했어.”
장 이사는 내게 소주를 따라주며 이야기했다.
“내가 손 차장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한 명 더 도와줬으면 좋겠더라고. 손 차장이 가장 믿음직한 직원이 민 대리라고 하더라.”
나는 그가 따라주는 소주를 받은 뒤, 술병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술병을 잡고 장 이사와 손 차장에게 술잔을 채웠다.
“손 차장 말대로 나도 민 대리라면 믿고 갈 수 있겠더라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생 회사겠지만, 그래도 담당 병원 몇 개 들고 나가면 민 대리 급여 섭섭지 않게 챙겨줄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장 이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을 했다. 옆에 있는 손 차장 역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조하는 말투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작은 회사겠지만, 우리 셋의 담당 병원 몇 개만 있어도 처음 시작하는 회사치고는 충분할 거야. 어때, 민 대리?”
“우선 제안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사님, 차장님.”
바로 대답을 할 수 없는 이유.
장 이사, 손 차장이 싫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WG 메디컬의 김 대표가 무조건적으로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받은 이직이라는 제안, 그리고 지금 온몸에 퍼져 있는 알코올로 인해 쉽게 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손 차장은 내가 입사 때부터, 그러니까 메디컬 업계에 발을 처음 들였을 때부터 믿고 따르던 상사, 그 이상이다.
그의 말과 판단은 늘 옳았고 오랜 시간 메디컬에서 일하며 짬도 한참인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항상 그에 안주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인물들이 꽤 많았기에 그런 점이 퍽 멋있었고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업계에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임이다.
그런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나에게 실이 될 것이라면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도 무작정 장 이사를 따라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겠지.
“민 대리가 WG 메디컬을 다니면서 원하는 대로 영업 능력을 펼쳤었는지, 그러지 못했었는지는 내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함께 간다면 모든 걸 지원할 생각이야.”
장 이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하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의 제안에 정중히 시간을 요청했다.
“그래. 충분히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 대신 우리가 나갈 때 함께 나가야 거래처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거야.”
장 이사와 손 차장이 퇴사할 때 그들과 함께 나가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들이 먼저 나간 후, 내가 따로 퇴사하겠다는 말을 한다면 김 대표는 퇴사를 하는 나에게 거래처를 들려서 내보낼 리는 없으니까.
보통 메디컬 회사에서 단순 퇴사가 아닌, 회사를 차리겠다고 나갈 때 대표와 합의 후에 거래처를 들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아무것도 못 들고 나가게 하는 일도 있기는 하다. 그 직원이 이 회사에 다니면서 영업을 했기에, 그 영업에 성공한 병원 역시 개인의 소유가 아닌 회사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래처를 들고 퇴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회사 대표의 재량인 셈.
“예. 생각해 보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뜻밖의 제안. 어느 쪽을 선택해야 나에게 도움이 될지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지.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 *
다음 날 오후.
최준성 과장에 대한 소식을 직접 전해 듣기도 전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기사로 그의 근황을 접해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좀 보세요!”
사무실에는 한태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무슨 일이야?”
“최 과장님 기사 났어요.”
최 과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말에 온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태준에게 다가갔다.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재빨리 인터넷에 기사를 검색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 대리 수술시킨 의사 구속. 영업사원은?]
의료기기 메디컬 영업사원에게 대리 수술을 시켜 환자를 뇌사 상태에 빠뜨린 전남 S 병원의 원장이 결국 구속됐다. 대리 수술로 인해 환자는 뇌사 상태에 빠진 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
…
회사와 관련 없이 독단적으로 수술했다는 영업사원의 말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
…
대리 수술을 한 영업사원은 그간 총 몇 차례의 대리 수술을 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어제 술을 마시며 했던 장 이사의 말 그대로 최 과장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했다고, 최 과장이 홀로 안고 갔을 거라는 말 역시 맞았다.
“최 과장님이 혼자 한 일이라는 말 맞죠?”
한태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게 진짜일까? 왜 혼자 독단적으로 대리 수술을 한 거지?”
“대표님은 정말 모르셨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분위기의 사무실이 한층 더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최 과장과 친했든 친하지 않았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직장 동료였기에, 삽시간에 사무실은 초상집 분위기로 변해 갔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 대표.
모여 있던 직원들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다들 여기 모여서 뭐 해?”
김 대표는 한태준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직원들을 향해 물었다.
“…여기, 최 과장님 기사가 났어요.”
김 대표는 한태준의 말에 몸을 모니터 쪽으로 기울여 기사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어. 들었어, 소식.”
이미 알고 있었다는 김 대표. 그것을 떠나 자신의 회사 직원이 구속 위기에 처했다는 것치고는 너무 무뚝뚝한 얼굴과 말투였다. 그리고 곧바로 한태준에게서 멀어져 대표실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모두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돌려 기사를 보았고, 나는 내 자리에서 모니터가 아닌 김 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김 대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는 그.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걸까?
최 과장에게 돈을 쥐여 주며 홀로 책임지라고 했다는 장 이사의 말.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00퍼센트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몇 년을 봐온, 그리고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붙어 있었던 김 대표이기에 그렇게까지 하며 직원을 버렸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옅은 웃음을 보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신뢰와 존경심 그리고 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30여 분이 지나고 영업 직원들은 전부 회의실로 모이라는 대표의 말이 떨어졌다.
병원에 가는 발길이 뜸해졌기에 영업 직원들은 전부 사무실에 있었고 한 명도 빠짐없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회의하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회의실 문을 닫고 들어오며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착석하자 회의는 시작됐다.
“오늘 회의하는 건, 지금 담당 없이 떠 있는 병원들 때문이야.”
홍 대리의 퇴사. 그리고 곧이어 최 과장의 부재로 인해 지금 담당자가 없는 병원의 개수가 늘어났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담당 병원들.
지금은 임시로 직원들이 돌아가며 딜리버리만을 했지만, 앞으로는 병원 원장도 만나야 했기에 담당자를 정해야 했다.
김 대표는 홍 대리와 최 과장의 담당 병원 리스트를 출력한 종이를 들고 왔고, 그는 자신의 생각한 대로 담당자를 결정해 왔다.
말이 회의였지, 그의 결정을 통보하기 위했던 것.
회사에서 그래도 나름 높은 직책의 2명이 빠졌는데, 아직 충원할 생각은 없는 모양.
직책이 높은 선임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병원의 규모가 컸기에 단 한 군데씩만 분배를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떨어진 4개의 병원.
지금 업무도 벅찬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만이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징징댈 수는 없는 노릇.
한태준과 백태석에게도 담당 병원이 추가됐다. 그리고 김 대표는 우리를 보며 이야기했다.
“자, 이제 기자들도 점점 잠잠해질 거야.”
실제로 그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병원에는 기자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인터넷에 올라오던 글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심지어 우리 회사의 일이기에 어떻게 되어 가는지 매일 살피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이 일이 관심 밖이었다.
처음 대리 수술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할 때 인터넷과 기사들은 쉴 틈이 없었다.
온통 환자의 상태, 병원 이름, 메디컬 회사의 이름 등을 알아내기 위해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니 사람들의 관심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 병원이 어떻게 됐는지, 의사는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메디컬 직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옷도 다시 정장 입고 출근해.”
“네.”
“사람들 관심은 금방 타올랐다가 식어버려. 사람들 관심 밖이 된 일이면, 기자들도 굳이 취재할 필요가 없어지지.”
김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 빠진 만큼 다들 더 열심히 일해 줘. 당장은 힘들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다 같이 으쌰으쌰해서 일해야 하지 않겠어?”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직원들은 하나둘 대답했고, 김 대표는 마무리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혹시 할 말 있는 사람 있나? 없으면 마무리하지.”
그때, 백태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래. 뭔데?”
“그럼 이제 최 과장님은 감옥 가시는 거예요?”
회의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최 과장을 언급하지 않았던 김 대표.
백태석의 말에 김 대표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졌다.
평소 눈치가 조금 부족했던 백태석은 굳이 여기 이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도 백태석과 마찬가지로 최 과장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김 대표는 꾹 다문 채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다. 검찰 조사받은 후에 결정될 일이지. 다들 영업 실적에 눈멀어서 최 과장처럼 범법 행위 저지르지 마.”
그의 화난 듯한 말투에 직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몇 년을 열심히 키워놨더니,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면 대표인 나만 손해잖아. 안 그래? 병원 하나 매출도 잃고, 우리 메디컬 이미지 실축은 또 어쩌고. 하.”
김 대표는 최 과장을 나무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들 딴생각 말고 열심히 일해.”
“예.”
“그래. 그럼 오늘 남은 하루도 고생들하고, 나가서 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마무리하는 김 대표.
[최준성한테 떠넘기려고 준 돈 생각하면 매출 얼른 올려서 메워야 하는데. 내 피 같은 돈…….]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에게서 들리는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두 얼굴의 김 대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