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최준성 과장은 김 대표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여 돈 봉투를 바라볼 뿐.
“최준성. 네가 여수 새루 정형외과 사건 혼자 안고 다녀와.”
김 대표의 뻔뻔하고 단호한 말투에 최 과장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
김 대표는 운전석에서 조수석 쪽을 바라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준성아, 잘 생각해. 너랑 나랑 같이 감방에 들어갔다가 나오잖아? 그 뒤에는 어떻게 될 것 같냐?”
“…….”
“나는 이미 광주에서 메디컬로 자리를 잡았어. 10년이 훨씬 넘었다고. 내가 이 바닥에서 기반을 더 다지고 있을 테니까 너는 자수하고, 빨리 다녀와.”
“그렇지만……”
“내가 변호사도 붙여주고, 다 해줄게. 너 감방 갔다가 나오면 무슨 일 할 건데. 지금까지 네가 한 일이라고는 메디컬 업계 일밖에 더 있냐?”
김 대표의 말에 최 과장은 아무런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대로 갔다가 나오면 광주 바닥에 이미 소문 다 나서 어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냐? 우리 현실적으로 잘 생각하자.”
“대표님, 그래도 저 혼자 안고 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최 과장의 말을 무시한 채 김 대표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너 나올 때쯤이면 병원에 의사들도 많이 바뀌고, 새로운 병원들 얼마든지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메디컬 직원들한테 대리 수술 맡기는 병원 몇이나 될 것 같아?”
“글쎄요.”
“상상 이상이야. 그 병원 지들 걸릴 때까지, 아니 걸려도 영업 정지 풀리면 또 그 짓거리 할 의사들이야. 근데 너는? 대리 수술한 거 때문에 다른 메디컬 회사 못 들어가.”
최 과장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준성이 너 하나는 평생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말고 총대 한 번만 메자.”
“하…….”
“너 벌써 이 바닥 일한 지 오래됐잖아. 다른 직종 새로 들어가기에 늦은 나이라고. 나랑 오래가자, 준성아.”
“…모르겠습니다.”
최 과장은 계속해서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도 생각해야지. 우리 둘 다 들어가면, 네 어머니는 어떻게 할 건데? 내가 큰 병원으로 옮겨 드려서 수술도 잘 마치시게 하고 있을게.”
그는 김 대표의 말에 수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쉴새 없이 몰아붙이는 김 대표.
“어? 이러다가는 앞으로 일 나도 장담 못 해.”
최 과장은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래. 근데 그 생각하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없어, 지금.”
“예.”
“의사가 시켰다. 거래 끊는다고 영업 압박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 모두 금방 지나갈 거야.”
최 과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하고 연락 줘. 어머니 병원은 내가 예약해 둘 테니까.”
* * *
여수 새루 정형외과 대리 수술에 관한 기사들이 터진 후, 며칠 동안이나 최준성 과장은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기사와 TV 뉴스에서는 의료기기 메디컬 회사의 실태에 대해 매일 떠들어 댔다.
그리고 지난번 한창 떠들썩했던 메디컬, 정형외과의 리베이트까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시동을 걸기 시작한 듯했다.
영업하기 위해 매일 같이 가던 병원들은 가지 못하게 된 지 꽤 됐고, 그저 발주가 들어온 물건들을 딜리버리하기 위해서만 출근을 했다.
그렇게 우리 WG 메디컬 직원들뿐 아니라 광주, 그리고 전 지역 메디컬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리 수술을 한 직원은 따로 있는데, 왜 모두가 이렇게 조심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점을 가지기도 잠시.
그만큼 이 의료기기 메디컬 바닥에 대리 수술이라는 더러운 뿌리가 많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 터지기 시작한 것은 여수 새루 정형외과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양심 제보 또는 간호사들의 몇몇 제보들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우리 회사.
WG 메디컬의 최준성 과장 단 한 명이었다.
그야말로 정형외과 의료기기 메디컬은 침체기에 빠지고 말았다.
직원들의 사기, 의욕이 모두 바닥난 지금, 나 역시 병원에 찾아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오늘도 딜리버리를 마친 후 퇴근을 준비했다.
집에 도착해 가는 차 안.
조용하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신인 : 손지혁 차장]
“네. 차장님.”
- 어, 민 대리. 어디야?
“저 집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아니요. 곧장 집 들어갑니다.”
- 그럼 지금 술 한잔 가능해?
“예. 어디로 가면 될까요?”
- 30분 안으로 민 대리 집 쪽으로 갈게.
“아닙니다. 제가 차장님 근처로 가겠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 아니야. 나 지금 이사님이랑 같이 있거든? 우리가 민 대리 집 쪽으로 갈게. 거기서 보자.
“아……. 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래.
상사가 나와 술을 마시기 위해 내 근처로 온 다라…….
심지어 장홍석 이사까지 우리 집 근처로 온다는 말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나는 집에 올라가지 않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그대로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차장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들어온 술집.
집 근처에서 가장 인적이 드물고, 룸이 있는 술집으로 들어 왔다.
“제가 이사님과 차장님 계신 곳으로 가도 되는데, 멀리까지 오시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을 맞이하자마자 이야기를 했다.
“아니야. 어차피 우리가 민 대리 집 근처에 와서 마시려고 했었어.”
손 차장은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저녁을 먹지 않고 들어온 술집이기에 배를 채울 만한 든든한 안주들을 가득 시켰다. 물론 소주와 함께.
나는 그들 앞에 비어 있는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무슨 일로 온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자리를 시작하자마자 용건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회사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님.”
“어, 민 대리.”
“최 과장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며칠 내내 나오지 않는 최준성 과장에 대해 물었다.
최 과장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장 이사는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는 대답 전 소주잔을 들어 보였다.
나와 손 차장은 장 이사가 들고 있는 소주잔 앞으로 잔을 가져가 부딪쳤다. 그리고 모두 입에 소주를 털어 마셨다.
차가운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크으으.
안주를 먹을 틈도 없이 장 이사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일 최 과장 혼자 조사받으러 갈 거야.”
“네? 혼자요?”
나는 예상외의 근황에 놀라 장 이사에게 재차 물었다. 손 차장은 이미 최 과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어. 최준성 혼자.”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물론 대리 수술을 들어간 것은 최준성 과장이 맞지만, 애초에 회사의 대표가 있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 이사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대표님은요?”
“준성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결론이 날 거야.”
나는 육성으로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병원의 대리 수술이 독단적으로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했을 리가 없기에.
“진짜로 최 과장이 독단적으로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미간에 온 힘을 준 채 물었고, 내 질문에 장 이사가 아닌 손 차장이 대신 대답을 했다.
“아니지. 미쳤다고 최준성이 혼자 병원 가서 대리 수술했겠어?”
“그러니까요.”
“그저 매달 월급 받는 직장인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혼자 하겠어?”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손 차장.
“그럼 대체 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내 표정을 보며 장 이사는 나와 손 차장에게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도 알잖아. 대표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사람인 거.”
“아…….”
나는 탄식을 터트렸다.
이 일마저도 돈으로 최 과장을 매수했구나. 그리고 대체 얼마를 주었길래 최 과장이 이 모든 일을 떠안고 혼자 가겠다고 한 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준성이만 빨간 줄 생기게 된 거지.”
손 차장은 안주를 집어 먹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대표. 무서운 사람이야. 물려버린 꼬리를 단숨에 잘라버리는 것도 쉽게 못 할 짓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도 최 과장 혼자 감방 가면 그 누구 하나 최 과장 혼자 한 거였구나, 라고 생각하겠어? 혼자 떠안게 됐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겠네요. 저부터도 최 과장이 독단적으로 했다고 생각 안 했으니까요.”
손 차장은 내 말이 끝나자 치가 떨린다는 듯이 몸을 떨며 이야기를 했다.
“사업하려면 정에 연연하지 말고, 냉철해야 한다더니 점점 대표님의 수위가 세지네요.”
“그렇지. 나도 보면서 점점 과해진다 싶어. 아무리 그래도 이번 일마저 꼬리를 잘라버릴 줄 몰랐지.”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김 대표는 전에도 냉철하게 직원들을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직원들은 무서워서 김 대표를 뭘 믿고 회사를 다니겠어?”
손 차장의 말에 나와 장 이사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정말 몰랐지. 이렇게 혼자 빠져나가 버릴 줄이야…….”
장 이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소주를 혼자 한잔 마셔댔다.
그를 따라 나 역시 앞에 놓인 술을 입에 부었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 왔고,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지.
손 차장과는 평소에도 나와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많았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믿고 따르는 인물이기에.
하지만 장 이사와는 마셨던 적이 회식 말고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셋의 조합은 입사 이후 처음.
최 과장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할 말이 있어 온 것 같은데…….
내가 혼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 이사가 먼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이렇게 셋이 먹는 건 아마 처음인가?”
내가 생각하던 것을 그가 먼저 묻기에 나는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입니다.”
“그러네요. 저는 지훈이랑 자주 술 마셨었고, 제가 이사님이랑도 따로 만난 적은 많은데, 셋은 어쩌다 보니 이제 처음으로 자리를 만들었네요. 하하.”
손 차장의 말에 장 이사가 함께 미소를 지은 후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김 대표. 그리고 WG 메디컬에 대해서 말이야.”
갑자기 회사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장 이사.
어떤 의도로 묻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김 대표가 무서운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 뒤에 묻는 내 생각이라…….
나는 허공을 바라보고 생각을 한 뒤 장 이사에게 대답했다.
“저는 방금 알게 된 이야기라,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김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적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섣불리 판단해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에둘러 대답했다.
장 이사와 손 차장이 나에게 거짓을 말했을 리는 없지만, 김 대표에 대한 이 이야기들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도 조금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김 대표와도 해왔던 시절이 있었기에.
장 이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민 대리.”
“네, 이사님.”
“민 대리는 다른 회사로 이직 생각해 본 적 있나?”
나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재차 당황했다.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 손 차장이 입을 열었다.
“민 대리는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 이직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왜?”
내 대답에 장 이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미 제가 맡은 담당 병원들도 점차 생기고 있고, 아직 커가고 있는 단계라 생각해서…….”
장 이사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자르고 이야기했다.
“나랑 손 차장이 회사를 차릴 거야. 같이 해볼 생각 있어?”
“예?”
오늘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 그들.
“우리도 지금 민 대리한테 스카우트 제의하는 거야.”
장 이사와 손 차장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