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신호음이 계속 울리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백승원.
그의 연락으로 튼 뉴스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 환자의 죽음이 의료 사고가 아닌, ‘무면허 수술 의혹’이라는 뉴스.
이게 어떻게 뉴스에 나올 수 있지?
분명 어제 대표가 병원 원장과 합의가 된 거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 순간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잠기운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지이잉.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백승원이었다.
“여보세요.”
- 어. 지훈아 나 전화 못 받았다. 뉴스 봤어?
“응. 이게 뭐야? 어떻게…….”
- 저거 벌써 기자들 사이에는 너희 회사인 거 암묵적으로 밝혀졌어.
백승원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한지 매우 시끄러웠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들리는 그의 목소리.
- 너는 관련 없는 거 맞아? 지훈아. 맞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천천히 설명 좀 해봐.”
- 내가 어제 너한테 연락한 뒤에 병원에 기자들 우르르 가서 취재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고. 의사는 계속 횡설수설하지, 회피하기 바쁘지. CCTV는 줄 의무가 없다고 하지.
“그런데?”
- 근데 누가 경찰에 제보했나 봐. 의료기기 메디컬 직원이 대리 수술했다고.
“누가?”
- 나야 모르지. 그래서 경찰에서 병원 조사 들어가고 CCTV 확보했는데, 거기에 떡하니 정장 입은 메디컬 직원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 들어가는 게 찍힌 거야.
“아…….”
- 그래서 의사가 부인하다가 CCTV에 떡하니 나오니까, 당황했겠지. 부인은 하고 있는데, 증거가 너무 정확히 있으니까 곧 시인할 것 같아.
그날 최준성 과장이 나와 마주쳤을 때는 수술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때는 수술이 끝난 후, 그가 수술복을 벗고 나왔던 모양.
- 너희 회사 괜찮아?
“나 지금 일어난 거라. 너는 지금 어디야.”
- 나는 새벽부터 여수 와 있지. 곧 메디컬 회사 밝혀서 경찰 조사 나갈 거고, 기사도 나기 시작할 거야. 어? 의사 왔다! 지훈아 내가 이따가…….
뚝.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원장이 나타났는지, 그의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TV 속 뉴스에서는 병원의 환자가 무면허 수술로 인한 환자의 죽음에 대해 나오고 있었고, 자세한 것은 조사 중이라는 것.
거기까지였다.
아직 어느 메디컬 회사인지, 그로 인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양치와 얼굴을 대충 씻어내고 서둘러 회사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회사 앞 주차장.
차에서 시동을 끈 채, 나는 차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 현 상황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창을 켜자 와르르 뜨는 뉴스.
[여수 S 정형외과 환자의 죽음. 의사가 아닌 의료기기 직원이 직접 수술?]
[의료기기 업체 직원에게 수술 맡긴 S 정형외과 의사……]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대리 수술… 환자 뇌사 → 하루 만에 사망까지]
[대리 수술 맡긴 의사. 끝내 실토……]
[무면허 메디컬 직원 수술 CCTV 확보]
새로 고침을 하면 할수록 끝도 없이 올라오는 새로운 기사들.
부인을 하던 새루 정형외과의 원장이 CCTV로 인해 증거가 완벽하게 나오자 결국 시인을 한 모양이다.
기사는 삽시간에 인터넷을 장악했고, 지역 일보를 넘어 전국적으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올라갔다.
“안녕하십…….”
사무실은 내 인사를 받을 틈도, 그리고 내가 사무실에 들어온 것을 보는 직원도 없었다.
사무실은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
기사에는 어느 메디컬 회사인지, 어느 지역의 메디컬 회사인지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WG 메디컬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 있는 모양.
쉴새 없이 울리는 사무실의 책상 위의 전화기들, 그리고 분주한 직원들.
“저희는 모릅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자리에 안 계세요. 끊겠습니다.”
직원들에게 묻지 않아도 발신인의 직업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자들이라는 것.
최준성 과장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인지 자리에 없었고 대표실의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김 대표는 출근한 것 같았다.
그때 대표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문으로 김 대표는 혼자 걸어 나왔고,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나 나갔다 올 테니까, 나를 찾는다거나 여수 새루 정형외과 관련해서 연락 오는 거는 다 모르쇠로 일관해. 무슨 일 터지면 장 이사한테 말해서 나한테 따로 연락 주라고 말하고.”
“네.”
김 대표는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잠잠해지지 않는 전화기.
몇몇 직원들은 전화선까지 뽑았고, 한쪽으로 삼삼오오 모여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모여 있는 직원들은 영업 직원뿐 아니라, 회계부, 재고부 등 온 부서의 직원들이 있었다.
“CCTV 보니까 최 과장님이던데, 그럼 이제 최 과장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감방 가는 거지.”
“근데 대표님이 시켜서 했을 거 아니야. 대표님도 같이 감방 가는 거겠지?”
“그렇…겠죠? 그럼 우리 회사는 없어지는 건가요? 하, 직장도 잃게 생겼네.”
“홍 대리 퇴사한 지 며칠 됐다고 이런 큰일이 또 터지냐. 회사가 삼재인 건가.”
“이렇게 회사 없어지면 저희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는 거죠?”
“회사 없어지면 안 되지. 지금 대표님이 해결하러 나가셨으니까, 다들 침착하게 기다려 봅시다.”
모여 있는 직원들은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말대로 김 대표가 조사 후 감옥에라도 가게 된다면 회사는 없어질 테니까.
“자, 다 자리에 앉아 봐.”
장홍석 이사가 이사실 문을 열고 나와 소란스러운 사무실 앞에서 외쳤다.
직원들은 그의 말에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서 일이 터졌어. 이미 기자들한테 전화 오고 있는 거 알아. 아직 아무것도 회사에서 입장 낸 거 없으니까, 혼자 독단적으로 생각해서 대답하지 마.”
“네.”
“그리고 영업 직원들은 물건 딜리버리 급한 거 아니면 최대한 병원 들어가지 말고. 지금 어디 병원이든 들어가면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거야. 대리 수술에 대해서 취재하느라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건은 계속 들어가야 하긴 하잖아요.”
한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 이사에게 물었다.
“다들 내일부터는 사복 입고 출근해. 물건은 들어가야 하니까 병원은 가야 하잖아. 근데 정장 입고 병원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나는 메디컬 직원입니다.’ 라는 거 표출하는 거잖아.”
다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딜리버리 급한 거 없으면, 영업 직원들은 전부 들어가. 다른 병원들에서도 지금 의료기기 회사 직원들 오는 거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사복으로 입고 오고. 그렇다고 막 출근하라는 거 아니야. 깔끔하게 입고 와.”
장 이사는 자신의 말이 끝나자 다시 이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메디컬 업계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지시가 내려온 조기 퇴근.
한 번 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 * *
김 대표는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타 급히 어디론가 출발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내려와. 집 앞이야.”
몇 분 뒤.
김 대표의 차 조수석 문이 열렸고 들어오는 누군가.
바로 최준성 과장이었다.
최 과장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잠을 한숨도 못 잔 얼굴과 밤새 술을 마시고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
“대표님. 오셨습니까.”
“어. 기자들이나 경찰 쪽에서 연락 온 거 있어?”
조수석에 타자마자 최 과장에게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김 대표.
“모르는 번호들로 연락이 몇 개 왔는데, 안 받았습니다.”
“그래?”
그는 김 대표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대표님. 분명 어제는 원장님이랑 처리 끝났다고 하셨잖아요. 합의 보셨다고.”
“그랬지. 근데 CCTV가 공개될 줄은 누가 알았겠냐. 그러니까 너는 왜 거기를 수술복을 입고 당당하게 들어가!”
최 과장의 이야기에 김 대표는 화를 내며 그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하.”
“조심성도 없이 왜 그렇게 들어가냐고. 그리고 간호사들 입단속 하나도 못 시켜서 이 난리가 일어나게 만들어. 너 수술실 들어간 거, CCTV에 찍혔다는 거 간호사들 말고 누가 알 거야.”
김 대표의 말에 최 과장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네 뒷수습해 줘야 하는 거냐.”
“…저는 대표님이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뒷수습도 해주셔야죠.”
최 과장은 김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런 그의 말에 김 대표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탄식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내가 네 꼬리가 길어서 밟히라고까지 하디? 그리고 누가 사람 죽게 수술하라고도 시켰냐?”
김 대표의 뻔뻔한 태도에 최 과장은 조수석에 앉아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쥐어뜯었다.
그리고 차 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적막으로 가득 찼다.
둘은 각자 창문을 바라보며 아무 대화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한숨뿐.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김 대표는 입을 열었다.
“곧 경찰에서 조사 시작할 거야. 지금 새루 정형외과 원장 조사 중인데, 지금 회사에는 기자들 전화 오고 있고, 곧 찾아오기도 시작하겠지.”
김 대표의 말에 최 과장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대표님,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김 대표 역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최 과장에게 옮겼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최 과장에게 물었다.
“…우리?”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최 과장의 눈동자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네. 대표님이 지시하신 일이잖아요. 저희 둘 다 이러다 감옥 가는 거 아닙니까?”
김 대표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고, 턱으로 조수석 앞의 글로브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최 과장. 앞에 글로브 박스 좀 열어봐.”
수전증마냥 떨리는 최 과장의 손.
그는 김 대표의 말 대로 글로브 박스를 조심스레 열었다.
넓은 글로브 박스 안에는 흰색 봉투가 덩그러니 하나 들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꺼내서 봐 봐.”
최 과장은 그 봉투를 꺼냈고, 생각보다 두툼한 봉투에 그는 미간에 힘을 준 채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기 시작했다.
그 봉투 속에는 몇 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수표가 가득했고, 최 과장은 그것을 보자마자 놀란 토끼 눈으로 김 대표를 바라보았다.
“이걸 왜…….”
김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최 과장. 어머니 편찮으셔서 얼마 전에 입원하셨다고 했지?”
“네.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김 대표는 최 과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병원비 때문에 고생한다는 거 들었어. 적금도 다 깨고, 빚도 내야 할 판이라며.”
“…….”
“이거로 앞으로 병원비는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병원도 내가 일인실 알아봐 뒀으니까, 거기로 옮기고.”
“그걸 왜…….”
봉투를 바라보고 있던 최 과장은 고개를 들어 김 대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최 과장.”
“예.”
“준성아. 네가 총대 한번 메자.”
김 대표의 말에 최 과장은 수표가 가득 들어 있는 봉투를 찢어질 듯이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