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01화 (101/339)

101화

최준성 과장은 내가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는 줄도 모른 채 통화를 이어갔다.

“원장님,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저 지금 병원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왜 자꾸 회피하시는 겁니까.”

나는 최 과장의 통화 내용을 자세히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고, 차 뒤에 바짝 붙었다.

그는 상황이 답답한지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바닥에 밟아 꺼트리고, 말을 하며 뒤를 돌았다.

“네?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수술한… 어? 뭐야.”

최 과장은 고개를 돌리다가 차 유리창에 비치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한 발짝 뒷걸음을 쳤다.

“원장님. 제가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최 과장은 곧바로 여수 새루 정형외과 원장과의 전화를 황급히 종료했다.

“왜 민 대리가 여기… 언제부터 있었어.”

그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

그는 재빨리 눈동자를 돌려 내 뒤에 누가 더 있는지 살펴보았다.

“과장님.”

그는 내 부름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과장님. 지난주에 제가 새루 정형외과 왔을 때, 수술실에서 마주친 날. 그날 맞죠?”

거래명세서를 누락해 내가 그 대신에 가져다주었던 날, 수술실에서 마스크를 끼고 나오는 그와 마주쳤었다.

그리고 지금 잘못된 환자 역시 그날 수술을 했던 환자이기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개소리하는 거야.”

흔들리는 동공과 그렇지 못한 단호한 대답.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겠지.

내가 최 과장에게 물었을 때, 그가 곧바로 인정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환자의 수술은 잘못됐고 심지어 환자가 저세상으로 떠나게 되었다.

최준성 과장이 사람이라면, 이렇게 당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의 당찬 대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

그의 태도에 나는 기가 찼고, 최 과장은 얼굴을 붉히며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대리 수술했다고 그래. 증거 있어?”

“증거요? 증거가 나와야 인정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는 내 질문에 눈을 피하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생사람 잡지 마.”

“아까 저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물으셨죠? 저 과장님 통화 내용 다 들었습니다. 대리 수술 들어갔다는 내용도요. 인정하시죠.”

“너 선임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는 나를 뚫어질 듯이 쏘아 보았다.

“과장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과장님이 했던 대리 수술 때문에, 멀쩡하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요!”

그의 뻔뻔한 태도에 나는 감정이 격해졌고, 그에게 큰소리를 냈다.

내 말이 끝나자 그는 목소리를 한껏 줄인 채 대답했다.

“…꺼져. 더 험한 말 나오기 전에.”

그리고 그는 바로 자신의 차로 향하기 위해 뒤를 돌았다.

나는 최 과장의 뒤통수를 보며 외쳤다.

“그럼 제가 아는 대로 기자들한테 제보해도 됩니까?”

지금 여수 새루 정형외과 앞에는 이미 수많은 기자들이 깔려 있었고, 나는 고개로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말에 최 과장은 황급히 다시 뒤를 돌아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미쳤어?”

“아니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내 얼굴에 최 과장은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자들한테 이야기하면 곤란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걸. 너도 곤란해질 텐데.”

나는 그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제가 왜 곤란해요? 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대표님이 시킨 일이니까.”

그는 내 말을 자르며 급히 이야기했다.

“민지훈 네가 다니는 회사. 이 회사의 앞날이 달린 문제라고. 네가 그렇게 입방정 떨일 아니야.”

예상을 못 했던 것은 아니다. 최 과장이 무엇을 위해서 독단적으로 이런 끔찍한 대리 수술을 했겠는가.

당연히 회사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을 테고, 그 맨 위에는 김 대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얼마 전, 나는 장홍석 이사에게 대리 수술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대리 수술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었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대리 수술은 최 과장과 김 대표만이 엮인 일일까?

대체 왜.

하필 새루 정형외과에서 대리 수술을 한 거지?

나의 궁금증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최 과장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지금 대표님 만나러 광주 올라갈 거니까, 너도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광주로 올라와. 지금 떠벌린다고 해서 네 말 믿어줄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는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내뱉고 곧장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최 과장이 지금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을.

싫든 좋든 그를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봐왔기에, 그의 경직된 몸과 치켜 올라간 어깨만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차에 올라탄 최 과장을 본 후, 곧바로 고개를 돌려 병원 앞 기자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차에서는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 과장은 차 시동을 걸었지만, 출발하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기자들에게 가지 않고, 광주로 올라가려는 것은 결코 이 일을 묵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최 과장이 대리 수술을 저지른 것은 비도덕적임을 넘어 불법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내가 그의 속마음을 읽었던 것, 그날 수술실에서 마주쳤던 것 그리고 오늘 통화 내용을 엿들은 것. 이것이 전부였기에.

내가 이대로 기자들에게 털어놓는다고 한들, 그저 자극적인 추측 기사들만이 난무할 것이다.

나에게도 대책이 있어야 한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백미러로 최 과장의 차 역시 출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 *

사무실 문을 열자 뒤따라 들어오는 최준성 과장.

그는 나를 지나쳐 곧바로 대표실로 쿵쿵 걸어갔다.

여수에서 광주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해서 왔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어디에 증거로 제출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최 과장이 스스로 생각해도 환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 충분히 신경 쓰일 테지.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최 과장이 대표실로 들어간 지 1시간이 훌쩍 넘었고, 그는 여전히 대표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대표실. 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오가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인터넷 창을 열어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관한 기사가 새로 올라온 것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여전히 기사는 병원 원장의 의료 사고 의혹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최 과장이 대표실에 들어간 지 2시간이 되어갈 때쯤.

드디어 대표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과는 사뭇 다른 표정의 최 과장.

그에게 이야기를 걸어볼 새도 없이 최 과장은 뛰어가다시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 부장.”

대표실 문이 닫히기 전, 김 대표가 나와 최권호 부장을 불렀다.

“네, 대표님.”

최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장 이사 불러서 내 방으로 좀 들어와.”

“네.”

김 대표는 그대로 다시 대표실로 들어가며 문을 세게 쾅 닫았고, 그 심각한 분위기에 최 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이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장 이사와 함께 그들은 대표실로 들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밑에 직원들은 얼음장 같은 사무실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 *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올라온 옥상.

생각에 잠긴 채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한 모금을 깊게 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생각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

끼이익.

그때, 옥상 문이 열렸다.

기름칠을 해달라고 하듯 울리는 철문 소리.

그 소리를 덮을 정도의 큰 한숨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차장님!”

근심이 가득 담긴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손지혁 차장. 그 한숨은 무엇 때문에 나오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 대리 여기 있었네.”

“네. 답답해서 올라오셨습니까?”

“어.”

“차장님. 여수 새루 정형외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표님이랑 최 과장님은요?”

내가 대리 수술을 알고 있다는 것에 손 차장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연속으로 내쉴 뿐.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내게 장홍석 이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님한테 들었는데, 대리 수술했다는 게 언론에는 밝혀지지 않을 거야.”

“네? 그럼 병원 원장님이 의료 사고라고 덮어쓰시는 건가요?”

“대표님이 병원 원장님이랑 합의를 봤다더라고. 병원 입장에서도 의료기기 메디컬 직원이 들어와서 무면허 수술했다는 게 까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는 이런 현실에 답답할 뿐이었다.

손 차장은 담배를 한 모금 마시고, 연기를 내뿜은 뒤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대표님, 돈으로 해결 보시는 분인 거 민 대리도 알잖냐.”

김 대표는 항상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좋은 면으로 보자면 우리에게도 늘 돈으로 보상을 해주는 타입이었다.

실적을 따내고, 성과를 내면 회사에서 직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맞지만 나쁜 면으로 보면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스타일.

그마저도 경제적인 능력이라면 능력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김 대표이다.

병원 원장에게 당신도 불리하다, 라는 말과 함께 돈을 건넨 모양.

“차장님, 그런데요. 저희도 이걸 묵인해야 하나요?”

손 차장은 본질적인 내 질문을 듣고,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어 밟아 꺼트렸다.

“수술이 잘 됐든, 잘 못 됐든 이렇게 넘어가는 건 아니지 않아요? 하물며 사람이 죽었잖습니까. 그것도 수술 전에 멀쩡하던 사람이 의사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해주는 수술을 받고.”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대리 수술에 대한 걸 처음 봤어. 나 역시도 민 대리처럼 충격적이야. 내 생각도 민 대리랑 같고.”

“그럼 이제 어떻게…….”

“기다려봐. 나도 이사님이랑 따로 이야기 중인 게 있으니.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모르니까, 어수선해지지 않게 입 열지 말고.”

“…네.”

“그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내려가서 퇴근하자.”

“예, 차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난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쉽게 잠에 청하지 못했다.

결국, 알람이 울리기 불과 몇 시간 전에야 겨우 잠이 들게 되었다.

그렇게 지쳐 곯아떨어진 듯이 잠이 들었다가 깬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휴대전화부터 열었다.

무슨 일인지 쌓여있는 부재중 전화와 톡들.

회사에 여러 개의 단톡들 중, 신입들부터 대리까지 포함된 단톡방의 톡이었다.

몇백 개의 톡을 뒤로하고 부재중 전화를 클릭했다.

부재중 전화는 기자 친구인 백승원.

무슨 일이지?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백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훈아! 왜 이제 연락해.

“이제 일어났어. 왜 무슨 일 있어?”

- 아… 빨리 뉴스 틀어봐.

“어. 보고 연락할게.”

다급한 백승원의 목소리.

나는 급히 리모컨을 집어 들고 뉴스를 틀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재빨리 휴대전화를 들어 백승원에게 재차 전화를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