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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00화 (100/339)

100화

나는 김 대표 앞에서 받은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손에 봉투를 쥔 채로 그의 말에 우선 경청했다.

“선아 정형외과 말이야.”

“네.”

“그 총무과장한테 법적 조치를 한다고 했더니, 그거 막는 조건으로 기존에 떼어갔던 돈에 돈을 더 얹어서 병원에 내놨다더라고.”

“정말요? 다행이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게. 그래서 우리 간납 업체로 나갔던 12퍼센트 금액도 고스란히 다 받았지.”

그동안 나갔던 12퍼센트.

무려 거의 4천만 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내 돈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밝힌 사실 덕에 그 돈을 찾아왔다는 것. 그 사실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손뼉을 부딪치며 김 대표에게 이야기했다.

“와, 진짜 잘됐네요.”

내가 웃고 있는 것을 본 김 대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민 대리 일처럼 기뻐해 주니까, 내가 다 기분이 좋네. 하하.”

“그럼요. 회사에 좋은 일이 있으면 저한테도 좋은 거죠. 하핫.”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들고 있는 봉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봉투. 보너스라고 생각해 줘.”

“네? 보너스요?”

“어. 마음 같아서는 몇천만 원, 아니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생각하면 몇억까지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민 대리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이제 비수기에 접어 들잖냐.”

병원과 일하는 메디컬 회사에 비수기가 어디 있겠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성수기와 비수기가 정해져 있는 편이다.

정형외과 계열의 성수기는 겨울.

겨울에는 날씨가 춥고, 빙판길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길을 다니다 보면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젊은 사람들은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이미 뼈가 약해져 있는 상태이기에 넘어지는 순간 바로 뼈가 부러지는 골절이 일어나게 된다. 그럼 바로 정형외과에서 뼈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이지.

여름에도 넘어져서 뼈가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추운 겨울에는 몸이 얼어붙어 있다가 큰 자극을 받게 되면, 보다 더 쉽게 뼈의 골절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계절과 상관없이 운동하다가, 혹은 사고 등으로도 다치기도 하지만 확실히 여름과 겨울의 환자 수의 차이는 극명한 편.

처음 메디컬 업계에 들어왔을 때 한 상사가 했던 이야기 중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그날은 광주, 전라도 지역에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일주일 내내 눈과 한파 소식이 떨어졌던 때, 모두들 이런 날씨에 영업하기 위해 병원에 운전하고 어떻게 가야 하나, 별일은 없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상사 한 명이 다가와 다소 기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와. 이번 주에 사람들 뼈 많이 부러지겠다. 이번 주 회사 대목이겠는데?’라는 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그 상사의 말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인상을 쓰는 직원들도 있었다.

사람이 다쳐서 병원에 온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일이라는 말인가.

그 정도로 정형외과 계열은 겨울이 성수기, 여름이 비수기가 된다.

우리 회사와 같이 대표가 상주하는 회사는 이런 비수기가 다가오면 직원들도 함께 불편해진다.

스케줄 칠판 앞에서 병원들의 스케줄이 확 빠져 있는 것을 보며, 괜히 직원들에게 눈치를 주거나 특히 월급날이 되면 앓는 소리를 시작하고는 한다.

나에게 지금 봉투를 쥐여준 대표.

기분 좋게 봉투를 주다가 비수기 이야기를 하며 급격히 표정이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보너스라고 주는 봉투였지만, 애초에 회사 돈이었을뿐더러 김 대표의 ‘비수기’라는 말에 선뜻 웃으며 받기가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죠. 비수기…….”

“그럼 이제 다들 으쌰으쌰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해. 수술 케이스도 많이 빠질 테고, 매출도 확 줄어드는 시기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튼, 이거는 별개야. 받아 둬.”

나는 그의 말에 봉투를 내밀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원래 회사 돈이었는데, 제가 어떻게…….”

“민 대리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당연히 민 대리도 받을 자격 충분히 있지. 내가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까, 가져가.”

그는 내가 내밀고 있는 봉투를 빼앗아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 이번 주도 열심히 해주고, 민 대리 덕에 회사 잘되고 있는 것 같아서 항상 뿌듯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토닥였다. 격려와 감사가 공존하는 듯한 손짓과 표정이었다.

“그래. 이제 가서 일 봐.”

“넵.”

나는 대표실에서 나오기 전,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봉투가 옷 밖으로 삐져나온 것을 손으로 꾹 눌러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직원들이 대표실에서 나오는 나를 볼 테고, 그때 봉투가 걸리기라도 하면 온 직원들이 우르르 몰릴 테니 말이다.

대표실에서 나와 나는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봉투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더 컸다.

옥상에 올라와 아무도 없는지 주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봉투를 바지에서 꺼내 열었다.

안에는 노란색 오만 원권의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대표가 비수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운운하기도 했고, 보너스라는 말에 사실 백만 원 정도가 들어 있지 않을까, 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언뜻 보아도 백만 원은 훌쩍 넘어 보이는 지폐의 수.

나는 한 손으로 봉투를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봉투 속에서 지폐를 빠르게 세어보기 시작했다.

…구십사, 구십오.

남은 개수가 몇 장 남지 않아, 100장이라는 것을 육안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큰 액수에 입꼬리를 올리며 끝까지 숫자를 세어보고 있었다.

그때 재킷 안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지이잉.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봉투를 확인하고 있던 터라, 나는 진동 소리에 놀라 황급히 봉투 속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대로 봉투를 주머니에 욱여넣은 후, 전화기를 꺼냈다.

[발신인 : 백승원]

백승원,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현재 광주에서 병원 관련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

“여보세요?”

- 야. 지훈아!

다급한 목소리의 백승원.

이름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왜. 무슨 일이야?”

- 여수 새루 정형외과. 너네 회사 담당 병원 맞지?

“어, 맞지. 왜?”

- 거기 지금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 병원에 환자가 수술하고 나서 지금 의식 불명에 빠졌대.

“뭐? 무슨 수술한 건데?”

한 병원에 들어가는 메디컬 회사가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우선 우리 회사가 관련된 것인지 먼저 확인을 해야 했다.

- 어깨 인공 관절 수술이라던데?

그의 말에 나는 육성으로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우리 회사가 납품하고 있는 것이 어깨 인공 관절 수술 재료였기 때문.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뱉은 후 차분한 목소리로 백승원에게 재차 물었다.

“확실해? 어깨 수술을 했는데 어떻게 의식 불명이야. 수술을 처음 하는 병원도 아니고, 동네에서 오래된 병원인데. 환자한테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래?”

- 어. 나이도 그렇게 많은 환자도 아니고, 몸도 어깨만 안 좋은 환자였다고 하더라고.

“하. 어떻게 하냐. 너무 안타깝네. 빨리 회복이 돼야 될 텐데…….”

-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훈아.

“응? 그럼.”

- 의료 사고라서 너네 거래처 끊길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연락 주려고 했었던 건데. 단순 의료 사고가 아닌 것 같아.

“그럼? 그거 말고 다른 게 뭐가 있어?”

- 의사가 자꾸 회피하고 이상한 말을 얼버무리더라고.

“이상한 말?”

- 어. 아, 나 지금 부장님 연락 온다. 다시 연락 줄게.

“승원아! 그 환자 수술 날짜 좀 문자로 찍어줄래?”

- 그럴게. 이따 연락하자.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환자가 의식 불명에 빠졌는데, 의사가 의료 사고인 것을 회피한다?

당연히 의사는 처음에 의료 사고임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잘못임을 100퍼센트 시인하는 것이기에.

의료 사고라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나 정형외과에서는 더더욱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어떤 수술이건 간에 생명에 지장이 없는 수술은 없다고 하지만, 정형외과의 뼈 수술 같은 경우는 그 확률이 적은 편이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수술이 대부분이라는 뜻이지.

그렇기에 이와 같이 수술 후 의식 불명에 빠지게 되면, 제일 먼저 의심하는 것이 ‘의료 사고’다.

회피를 떠나 의사가 자꾸 이상한 말을 얼버무린다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이잉.

다시 한번 울리는 휴대전화.

전화가 아닌 백승원의 문자였다.

그는 나에게 의식 불명에 빠진 환자가 수술을 했던 날을 찍어 나에게 보냈고, 나는 곧바로 휴대전화의 달력을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어? 이날은?”

나는 혼자 있음에도 달력을 보는 순간, 소리를 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날짜는 내가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갔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날, 여수 새루 정형외과의 수술실에서 나오는 최준성 과장을 마주쳤던 날이기도 하다.

나는 불길한 마음이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들기 시작했다.

그가 수술실에서 나오는 것을 본 후, 그가 혹여나 대리 수술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심증일 뿐. 어쨌든 우리 회사 직원인 최 과장, 그리고 회사와 관련된 일이기에 나는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재빨리 최준성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이 통화 중이어서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재차 걸었지만, 그는 누구와 이렇게 통화를 하는지 몇 분 내내 통화 중이었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와 직원들에게 최 과장의 위치를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여수로 바로 직출을 했다고 했고, 나 역시 급히 여수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환자가 의식 불명에 빠지게 된 것은 어찌 됐든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지만 우리 회사가, 그리고 최준성 과장이 그 일에 엮여 있는지의 여부가 지금으로써는 중요했다.

나는 서둘러 여수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고, 액셀을 발로 세게 밟았다.

가는 도중 다시 한번 백승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나는 신호에 걸리자마자 그에게서 온 문자를 클릭했다.

[지훈아. 환자분 돌아가셨다. 나 지금 여수 새루 정형외과 가고 있는데, 가서 알아보고 연락 줄게.]

나는 문자를 모두 읽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 의료 사고 같은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가 굉장히 중요하다.

의식 불명에 빠진 환자는 생명이 있는 상태이지만, 지금과 같이 환자가 죽게 된다면 그 심각성은 몇 배에 달하게 된다.

물론 수술이라는 것이 위험성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가 서명을 하게 된다.

수술의 부작용, 그리고 수술 도중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동의.

하지만 의료 사고라 생각하고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터이기에 그 환자의 죽음은 더 이슈가 될 것이다.

차의 시동을 끄고 내리려는 그때.

이미 병원 앞에는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었다. 지은 죄는 없지만, 괜히 조심스러운 마음에 차에서 조용히 내리는 그때, 옆에는 이미 최준성 과장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내 담당 병원이 아니었기에 최 과장을 먼저 만나야 했다.

차 뒤쪽에서 들려 오는 최 과장의 목소리. 분명 그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차 뒤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통화를 하고 있는 듯했고,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 저는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수술한 거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의 통화 내용에 놀라 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진짜 최 과장이 대리 수술을 들어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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