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네? 갑자기 왜 그러시는…….”
홍 대리는 김 대표에게 걸어가다 말고 무슨 영문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모든 직원은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홍 대리. 아니, 홍찬성 너 대체 뭐야!”
홍 대리는 김 대표 앞까지 다가가 이야기를 했다.
“대표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설명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무슨 죽을죄라도 지었습니까?”
그의 뻔뻔한 표정.
그는 회사에 잘못이라고는 하나도 지은 적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선아 정형외과. 이래도 발뺌할래?”
대표의 한마디에 홍 대리는 멈칫했다.
“뒤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네가 감히…….”
홍 대리는 당황한 얼굴을 금방 누그러트린 후,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표님도 참. 오해하셨나 보네요. 선아 정형외과에 간납 업체가 들어가면서 저희 매출이 확 줄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번에 단가를 올리자고 한 건데.”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대표에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병원 가서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 단가 올리는 것도 한 방에 오케이 받아 오고, 회사 매출을 위해서 일했는데. 뭔가 단단히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
김 대표는 홍 대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변명 끝났니?”
“네?”
홍 대리의 표정과는 상반되는 얼굴의 김 대표.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간납 업체에서 형제들끼리 버는 돈은 쏠쏠하디? 12퍼센트? 하. 진짜 네가 내 뒤통수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제가 언제…….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표님.”
김 대표는 사과는커녕 발뺌을 빼는 홍 대리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아 정형외과의 총무과장 홍찬기. 간납 업체 대표 홍찬민. 홍 대리 네 형이랑 동생이잖아. 회사에서 영영 모를 줄 알았어?”
그제야 홍 대리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랑 내가 지내 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리는 건 아니지. 월급에, 간납 업체로 빼돌린 돈에, 그렇게 이중으로 돈 가져가니까 다리 쭉 뻗고 살 만하디?”
홍 대리는 김 대표의 말에 두들겨 맞은 듯 목부터 귀까지 온 피부가 새빨개졌다.
“진짜 내가 이쪽 업계 생활하면서 너 같은 새끼는 처음 본다.”
“죄송…합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땅을 바라보며 조용히 외쳤다.
“됐어. 당장 짐 싸서 나가.”
“정말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는 김 대표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리를 120도 가까이 숙였다.
“죄송할 짓을 왜 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회사에서 나가!”
사무실이 울릴 정도로 호통을 치는 김 대표.
그의 목소리에 홍 대리는 곧장 무릎을 꿇었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무릎을 꿇은 홍 대리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온 직원들이 보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기에.
당장 나가라는 말, 퇴사라는 이야기를 철회해 달라거나 자신의 잘못을 용서를 구할 줄 알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대표님.”
그의 행동에 김 대표도 발걸음을 주춤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선아 정형외과 병원장님께 말씀드리실 겁니까? 제발 병원에는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 형 총무과장까지 어렵게 올라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의 예상외의 부탁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 역시 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한숨을 내 쉰 뒤, 대표실 쪽으로 뒤를 돌았다.
“저희 집이 가세가 기울어서 오랫동안 대표님과의 연을 생각 못 하고 비도덕적인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바닥까지 숙이며 외쳤다. 몇몇 직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워했고, 또 다른 직원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의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온 집에 빨간 딱지가 붙고, 당장 저희 가족 집 밖으로 나앉게 생겼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때, 김 대표가 홍 대리 쪽으로 다시 뒤를 돌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 새끼가 끝까지 거짓말이네?”
그의 말에 홍 대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너 요즘 사치 부리고 다니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시계에 옷에 명품으로 도배를 하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에는 너 외제 차도 보러 갔더라? 가세가 기울기는.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얼마 전, 홍 대리가 스포츠카 매장에 갔던 것을 본 날.
같은 날 대표도 다른 장소에서 그를 본 모양이다.
“아, 그건…….”
그는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입을 열었고, 김 대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민 대리!”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김 대표.
나는 그의 부름에 놀라 대답했다.
“네, 대표님.”
“선아 정형외과 간납 업체 들어온 뒤부터, 병원 매출 납품가랑 간납 업체 납품가. 비교 정리해서 대표실로 바로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쾅!
나와 대화가 끝나자마자 김 대표는 뒤를 돌아 대표실로 들어가 문을 세게 닫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자리에 앉아 김 대표가 지시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대리직 밑의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거나,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며 홍 대리에게 눈을 흘기며 떠들었고, 상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홍 대리에게 다가갔다.
“와. 홍 대리가 그럴 줄은 몰랐네.”
“인간탈 쓰고 그러는 거 아니지. 어디 해먹을 게 없어서, 회사 돈을 그런 식으로 써?”
“그러게. 나도 이쪽 바닥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짓 하는 거 처음 본다, 처음 봐.”
“이게 말 그대로 횡령이라는 거죠? 살다 살다 이런 일도 직접 봐보고, 회사 생활 오래 하니까 별걸 다 겪어보네요.”
“찬성아. 그렇게 조용히 회사 다니더니, 이렇게 통수도 치는구나. 너도 참 대단하다.”
홍 대리를 둘러싼 직원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간납 업체라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 전혀 아니다. 실제로 메디컬과 병원 사이에 존재하는 엄연한 회사다.
하지만 홍 대리가 이렇게까지 욕을 먹는 것은 자신이 간납 업체를 차려 회사 돈을 뒤로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홍 대리가 했든, 홍 대리의 형제가 간납 업체를 차렸든 상관은 없는 일이다. 병원에서도 간납 업체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할 정도로 큰 퍼센트를 떼어가고, 메디컬의 특성을 이용해 돈을 이중으로 벌었기에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다.
“뭐 해. 다들 자리로 돌아가.”
그때,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로 다가오는 장홍석 이사.
그의 한마디에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리로 돌아갔다.
“홍 대리, 일어나.”
장 이사의 말에 홍 대리는 한참 꿇고 있던 무릎을 겨우 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님…….”
“그동안 고생했고, 퇴사 처리는 회사에서 하고 연락해 줄 테니까 정리하고 들어가.”
“이사님. 정말 그런 게 아니라요.”
장 이사는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나한테까지 험한 말 듣고 싶지 않으면 이쯤 이야기할 때, 들어가 봐. 그동안 홍 대리와의 정이 있어서 겨우 참고 있는 중이니까.”
그는 홍 대리에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이사실이 아닌, 대표실로 들어갔다.
홍 대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자신의 자리로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참 뒤, 그는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가 떠난 사무실. 직원들은 아직도 홍 대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자료를 챙겨 곧장 대표실로 들어갔다.
“대표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 대표는 누군가와 열변을 토하며 통화 중이었다.
그는 통화 도중 대표실에 들어온 나를 바라보며 턱으로 자신 쪽으로 오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가 앉아 있는 책상 옆으로 다가가 서 있었다.
대표의 이야기,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려 오는 목소리와 내용.
선아 정형외과의 병원장과 통화 중인 것 같았다. 통화 소리가 꽤 커서 김 대표의 귀뿐만 아니라, 내 귀에까지 그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 뭐라고요? 간납 업체에서 받는 돈이 12퍼센트가 확실한 겁니까?
“네. 병원장님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
- 하. 우리가 WG 메디컬이랑 세월도 있고 해서 간납 업체를 안 끼려다가, 3퍼센트 정도는 WG에서 이해해 주겠다 싶어서 간납 업체를 받았던 겁니다.
“예? 3퍼센트요?”
- 대표님. 우선 저도 지금 병원 들어가고 있습니다. 총무과 가서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가 간납 업체에 떼이는 돈 12퍼센트.
그리고 병원에서 알고 있는 간납 업체에서 떼는 돈은 단, 3퍼센트.
무려 9퍼센트의 차이가 있었다.
선아 정형외과에 매출이 평균적으로 한 달에 1억 전후이니까.
거기서 12퍼센트면 1,200만 원.
무려 1,200만 원을 한 달에 간납 업체에서 떼어 갔었는데, 병원장이 알고 있는 3퍼센트의 비율이라면 3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병원장과 WG 메디컬 모르게 홍 대리가 먹는 돈이 한 달에 무려 ‘900만 원’인 셈.
나는 엄청난 금액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간납 업체가 들어와 있었으니, 그들이 빼돌린 돈이 대략 ‘3,000만 원’인 것이다.
이런 엄청난 금액에 홍 대리가 그동안 떵떵거리며 사치를 부렸구나 싶은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민 대리. 자료 다 정리한 거야?”
“네. 여기 있습니다.”
“하… 홍 대리 이 새끼가 병원에는 간납 업체로 3퍼센트 떼간다고 했나 봐.”
“무려 9퍼센트를 떼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쉰 후, 내가 정리한 파일을 열었다.
“많이도 해 먹었네.”
그는 내가 정리한 매출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김 대표에게 홍 대리에 대해 물었다.
“어쩌긴. 홍찬성은 당연히 퇴사에, 이제 앞으로 메디컬 바닥에 발 못 붙인다고 봐야지.”
그렇다. 메디컬 업계가 좁디좁고, 소문이 워낙 빠른 곳이다 보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퍼지게 된다면, 앞으로는 어떠한 메디컬 회사에도 입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동안 빼돌렸던 돈은요?”
“그건 간납 업체에서 있었던 일이라, 우리 손을 떠난 거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병원장은 지금 병원 들어가서 확인한다고 하더라고.”
“아… 그럼 저희는 3개월간 홍 대리가 빼간 돈 회수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내가 모르고 빼앗겼던 돈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이제라도 더 손실이 없다는 거로 위안 삼는 수밖에. 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진짜.”
나는 그런 김 대표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나저나 민 대리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네? 홍 대리 말씀이십니까?”
“어. 선아 정형외과 담당도 아니고, 자주 갈 일도 없었을 텐데.”
선아 정형외과는 김 대표의 담당 병원이었기에, 그는 나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가 아직 간납 업체는 많이 못 겪어보긴 하지만, 12퍼센트나 떼어 간다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렇지. 그런데 12퍼센트를 떼어가는 곳이 간혹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으니까.”
“예. 그래서 간납 업체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대표자 성이 홍씨더라고요. 싸한 느낌에 알아보고, 총무과장 이름도 홍씨인 게 의심스러워서…….”
김 대표는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는 진짜 지훈이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아닙니다.”
“민 대리 아니었으면, 매달 꼬박 천만 원이라는 돈 애먼 놈한테 빼앗길 뻔했다.”
지이잉.
책상 위 유리 때문에 크게 울려 퍼지는 김 대표의 휴대전화.
선아 정형외과 병원장의 문자였다.
“민 대리, 잠깐만.”
그는 나에게 말을 한 뒤, 문자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