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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95화 (95/339)

95화

홍 대리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최권호 부장은 미간에 힘을 준 채 그를 불렀다.

“찬성아.”

“네, 부장님.”

최 부장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납득이 가게 설명해 봐.”

홍 대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선아 정형외과는 대표님과 오랜 신뢰를 이어 온 병원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유지해 온 병원이고, 단가를 단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 계속해.”

“더군다나 몇 달 전에 선아 정형외과에 간납 업체가 끼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받는 매출은 실상 떨어진 격이죠.”

최 부장은 그의 이야기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이며 경청했다.

“병원 총무과에 아는 분이 있어 여쭤보니, 병원장님은 바지 병원장으로 유명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맞아. 거기 병원장이 근무하는 의사는 아닌 거로 알고 있어.”

“네, 맞습니다. 그래서 단가 관련해서는 총무과에 일임하신 것 같더라고요. 단가를 조금만 올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 부장은 그의 말에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을 하는 듯했다.

“총무과장님 만나서 슬쩍 떠보니, 단가를 올려도 괜찮을 듯싶고요. 단가를 아주 살짝만 상향시켜도, 저희 매출은 많이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품목이나 납품 수량이 어마어마하니까 총 매출은 확 오를 거야.”

최 부장이 자신의 뜻을 알아차렸다는 생각에 홍 대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제가 단가를 아주 조금씩만 손봐서 견적서를 뽑아온 겁니다. 대표님도 선아 정형외과에 금액적인 부분은 크게 터치를 안 하시는 것 같아서요.”

“음……. 홍 대리 말이 일리가 없지는 않아. 이번에 간납 업체 들어온 곳, 커미션 퍼센트가 굉장히 크긴 하더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고생했어. 우선 나도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줄게.”

“넵.”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난 후, 내 생각은 홍 대리와 조금 달랐다.

물론 홍 대리의 말이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것은 맞다.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설명해 보자면, 당연히 메디컬에서 병원으로 물건을 팔고, 병원에서는 메디컬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납 업체’라는 곳이 불쑥 끼어들게 된다.

간납 업체.

간접적으로 납품을 하는 업체를 줄여, 간납 업체라고 한다.

간납 업체는 의료기기 메디컬 쪽에서 많이 있는 회사이다.

메디컬에서 병원으로 물건을 파는데, 그 사이에 간납 업체가 들어오게 되면 방식은 복잡해진다.

물건 주문을 병원에서 메디컬로 하게 되고, 메디컬에서는 물건을 병원으로 납품한다. 그런데 돈은 간납 업체에서 받게 된다.

메디컬에서 그 물건에 대한 거래 명세서를 병원이 아닌, 간납 업체로 요청하는 것이지.

쉽게 설명하자면 메디컬에서 간납 업체로, 그리고 간납 업체에서 병원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다.

이렇게 중간에 간납 업체가 굳이 복잡하게 끼는 이유.

병원에서는 우리 회사와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메디컬 업체를 통해 물건을 받게 된다. 그러면 병원 측에서는 품목이 한두 품목이 아니다 보니, 관리하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간납 업체를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은 결론적으로 간납 업체만을 통해 돈거래를 하게 되니, 병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간편해지는 것이지.

하지만 메디컬 업체에서는 간납 업체를 달가워하지는 못한다. 이유는 간납 업체에서도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메디컬에서 기존에 병원에 넣는 단가보다 싸게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10,000원에 넣던 품목을 간납 업체가 끼게 되면, 간납 업체에는 같은 품목을 9,000원으로 낮춰서 넣어야 한다.

그럼 간납 업체는 그대로 10,000원에 병원에 넣게 되고, 간납 업체에서는 1,000원의 이윤을 보는 것.

즉 메디컬 회사는 그저 1,000원을 덜 받고 물건을 팔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간납 업체가 들어오면 메디컬 회사의 직원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물건 발주, 납품은 그대로 메디컬 업체가 하게 되고, 단지 명세서의 금액만 적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납 업체는 사무실에서 명세서만 왔다 갔다 하며 돈을 버는 셈이다. 그러니 메디컬 입장에서는 간납 업체가 사이에 들어오게 되면 무조건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간납 업체를 메디컬에서 받아야 하는 이유는 거절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간납 업체를 넣는 것이기에, 메디컬에서 거절을 한다는 것은 병원과 거래를 끊겠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더라도 간납 업체를 통하게 되는 것.

홍 대리의 말 대로 간납 업체가 들어와 매출이 적어졌으니, 단가를 올리자는 이야기.

단순하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대표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병원인 선아 정형외과다.

그 오래된 시간만큼 보답하기 위해 단가를 하향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상향 조정이라…….

회사의 매출적인 측면으로 보면 올리는 게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미심쩍었다.

게다가 자신의 담당 병원도 아닌 대표의 담당 병원에 단가를 올린다?

그것은 홍 대리에게 이득이 가지도, 실적으로 쌓이지도 않기 때문.

월급을 받으며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굳이 실적도 쌓이지 않는 건에 이렇게 공을 들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점심시간에 봤던 홍 대리의 모습에서부터 그의 달라진 태도에 나는 그를 눈여겨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 *

출근 후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회사 컴퓨터에는 공유 폴더라는 것이 존재한다.

회사에 모든 컴퓨터에서 열리는 폴더. 그 안에는 회사의 보안 유지 파일을 제외하고, 영업 직원들이 볼 수 있는 파일이 들어 있다.

병원별 견적서, 거래 내역서 등 병원에 관련된 내용의 서류들이 가득하다.

나는 바로 공유 폴더를 열어 ‘선아 정형외과’ 폴더를 클릭했다.

선아 정형외과의 사업자 등록증, 거래 원장, 내역서 등 파일이 여러 개 있었고, 그중 새로 추가된 간납 업체 상위 폴더가 있었다.

간납 업체에서는 커미션으로 몇 퍼센트를 정해 기존 병원 단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들어가는데 보통 간납 업체에서는 그 퍼센트가 적게는 3%, 많게는 7%까지 다양하게 있다.

그건 메디컬 회사와 간납 업체 사이에서 합의 후 결정하는 것이 아닌 병원과 간납 업체에서 합의 후, 메디컬 회사로 통보를 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니 그 퍼센트를 우리가 조율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선아 정형외과의 간납 업체의 퍼센트 비율은 말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12%’

기존 업체들에 비해 굉장히 높은 퍼센트였고, 나는 그 숫자를 보자마자 순간 싸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상당히 높은 비율에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회사에서는 불가피하게 12%의 손해를 보면서 납품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간납 업체에 비해 왜 이렇게 높은지.

“민 대리. 뭐 보고 있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질 기세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며 묻는 사람.

손지혁 차장이었다.

나는 그 순간 손 차장이 온 것이 반가워졌다.

“자료들 좀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 뭔데 그렇게 심각해.”

그리고 나는 짧은 설명 후 그에게 조심스레 궁금증을 물었다.

“선아 정형외과 말입니다. 저희와 거래를 한 지가 벌써 6년이 넘었던데, 3개월 전부터 갑자기 간납 업체가 들어왔더라고요.”

그는 내 말에 눈동자를 굴리며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맞아. 그랬어. 벌써 그게 3개월 됐구나.”

“네. 저도 담당 병원이 아니라서 몰랐는데, 방금 보니까 3개월 됐더라고요.”

“근데 그게 왜? 대표님 담당 병원이잖아.”

나는 그에게 모니터에 띄워진 간납 업체 서류 파일을 보여주며 물었다.

“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이거 서류? 왜.”

“보통 간납 업체에서 떼어가는 게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12퍼센트는 과한 거 아닌가 해서요.”

그는 내 말에 아랫입술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도 12퍼센트는 처음 봤어. 근데 알잖아. 병원에서 간납 업체랑 결정한 거라 우리가 어쩔 수 없지. 다른 병원 같으면 이야기해 봤을 텐데, 거기는 병원장님도 병원에 안 계시고.”

“그러네요. 거기 병원장님이 이름만 올려두신 분이죠?”

“어. 그래서 대표님이랑 거래하는 써전은 단가 관련해서 관여를 안 하시고. 거기 총무과장님이 있거든?”

“총무과에 대빵이시죠, 그분이?”

“하하. 대빵. 그렇지.”

그는 내 단어 선택에 웃음을 터트렸다.

“총무과장님이 간납 업체 선택하고, 퍼센트 결정한 거라 우리가 권한이 없었지. 대표님도 오래 거래한 병원이라, 어쩔 수가 없으셨고.”

“아…….”

어쩔 수가 없다는 말에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이 들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남은 궁금증 하나.

그 질문을 손 차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요, 차장님. 여기 보시면 간납 업체 주소지가 병원 주소랑 동일하더라고요.”

“그러네?”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건가요?”

간납 업체는 말 그대로 회사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간납 업체를 선정해 관리하게 되는 것인데 주소지가 병원과 똑같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가끔 있는 일이긴 해.”

손 차장은 나에게 대답을 하며 내 귀 쪽으로 다가와 데시벨을 낮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자금 융통을 하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문 채 경청했다.

“그 12퍼센트 금액을 자기들이 남겨 먹는 거지.”

“그럼 병원에서 12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싸게 받겠다는 뜻이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근데 우리가 그걸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워낙 매출이 큰 병원이고, 오래된 병원이다 보니까 우리가 어쩔 수가 없게 되는 거야.”

“손 차장!”

그때 뒤에서 손 차장을 큰소리로 찾는 장 이사.

“네, 이사님.”

손 차장은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 장 이사에게 대답했다.

“아무튼, 그냥 눈뜨고 12퍼센트를 떼먹힌 거지.”

그리고 나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장 이사에게로 걸어갔다.

손 차장이 떠난 후, 나는 간납 업체 사업자 등록증을 보며 생각 정리를 시작했다.

병원 내에서 자금을 만들기 위해 한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제야 간납 업체를 만들었지?

그리고 홍 대리는 또 왜 갑자기 단가를 올리자고 한 것일까?

그런데 병원에서 관리하는 간납 업체라면, 우리 회사에서 단가를 올린다고 하면 받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다이렉트로 받는 단가나, 간납 업체에서 받는 단가나 자신들의 매출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해결되는 부분이 없어 궁금증만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 최권호 부장의 통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걸 받아준대?”

나는 그에게 집중하지 않아도, 그의 큰 목소리에 통화 내용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선아 정형외과에서도 오케이 했고? 전 품목 단가를 올렸는데, 역시 총무과장님 파워가 세긴 한가 보네. 그래. 고생했어, 홍 대리. 사무실 오면 정리해서 보고해 줘.”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홍 대리가 어제 이야기했던 단가 상향 조정이 성공한 모양. 그렇게 된다면 내가 예상한 결과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병원 내부에서 만든 간납 업체가 단가 상향 조정을 한 번에 받아줬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 손으로 턱을 감싸 쥐고 생각에 잠겼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던 그때.

사업자 등록증의 대표자 이름에 내 시선이 꽂혔다.

‘홍찬민.’

홍찬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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