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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94화 (94/339)

94화

“죄송합니다. 어떤 거 말씀하시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장홍석 이사는 곤란한 듯한 내 표정을 보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팔을 툭 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내 연애 말이야.”

“네?”

나는 뒷걸음을 쳐 그에게서 떨어지며 큰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 회사에서 비밀연애하는 거 복사기 빼고 다 안다고 하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만 모르는 비밀 연애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잘못 웃었다간 상사에게 비웃음을 짓는 모양이 될까 겨우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삼켜냈다.

“이사님. 저도 연애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단정을 짓는 내 말과 표정에 장 이사가 오히려 놀라며 내게 물었다.

“뭐야. 진짜 아니야?”

“대체 제가 누구랑 사내 연애를 한다고 소문이 난 겁니까. 하하.”

“박 주임이랑 만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예? 박수진 주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연속으로 끄덕였다.

그녀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대체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박 주임이 나에게 고백을 한 것은 맞지만 그 이후의 진전은 없었기에.

게다가 박 주임이 나에게 고백을 하는 날, 나는 거절을 했었고 그 장면을 장 이사가 목격했던 적이 있다.

“뭐야. 진짜 아닌가 보네.”

“그럼요. 제가 왜 이사님께 거짓말하겠습니까.”

“사무실에서 민 대리가 뭐 할 때마다 박 주임이 엄청 티 나게 쳐다보고, 탕비실도 따라 들어갔다가 안절부절못하길래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지.”

나도 모르는 사이 박 주임은 나를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요? 근데 저희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대에 부응을 못 해서 죄송합니다. 하핫.”

장 이사는 직원들의 연애 이야기가 오갈 때, 일할 때와는 다른 흥미로운 표정이 나타난다. 그래서 더욱 내 연애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내 여자 친구는 박 주임, 바로 사내 커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아니라고 대답을 하는 날 보며, 그는 너무 티가 나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난 또 우리 회사 사내 커플이 드디어 탄생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었는데.”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민 대리, 일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이제 연애 사업도 좀 열심히 해보라고. 딱 좋을 나이잖아.”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넵. 이사님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고, 그는 나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박 주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출근 후 사무실에서 오전 내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광주 담당 병원들과 전남 지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밀렸던 사무 업무를 몇 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 처리했다.

정신없이 문서 작성을 하다 보니 시곗바늘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직원들은 하나둘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민 대리님 식사 안 하세요? 저희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재고부 직원들이 우르르 사무실로 나와 홀로 앉아 있는 나에게 물었다.

“저는 하던 일이 있어서요. 조금 이따가 먹겠습니다. 식사 맛있게들 하고 오세요.”

“네, 고생하세요.”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빈 사무실.

오후에 돌아야 할 병원이 많았기에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회사 앞 2층짜리 패스트푸드점.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회사들이 즐비한 이 상권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는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통유리로 된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혼밥을 한다고 해서 굳이 구석에 앉지 않고, 오히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먹는 것이 좋았다.

늘 정신없고 바쁜 현대 사회 속에 이렇게 짧은 시간이라도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느긋하게 앉아서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들고 반대 손으로는 프렌치프라이를 케첩에 찍었다. 그리고 시선은 앞에 놓인 음식이 아닌 바로 밑에 있는 횡단보도에 꽂혀 있었다.

대여섯 명이 무리로 지나가는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 그 뒤로는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휴대폰을 하며 걸어가는 사람.

사람 구경을 넋 놓고 하고 있던 그때, 도로에 자동차 경적이 울려 퍼졌다.

도심 한복판에서 뭐가 그리 바쁜지 자동차 경적을 몇 번이고 누르는 차.

그렇게 급하면 어제 출발하시지…….

그 차를 바라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콜라를 한 모금 하던 그 순간, 내 시야에 훅 들어오는 사람.

2층에 앉아 있었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까지는 아니어도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어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홍 대리였다.

홍 대리는 점심시간에 어디를 이렇게 급히 걸어갈까, 라는 생각에 내 눈동자는 그와 함께 걸어갔다.

점심시간이 곧 끝나가는데 지금에야 밥을 먹으러 가는 건가? 하지만 내 시선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아, 의외의 장소에서 멈췄다.

자동차 매장.

아니,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홍 대리는 그 자동차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자동차 매장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썹을 들썩였다. 이유는 그곳이 외제 차 매장이었기 때문이다.

홍 대리가 갑자기 외제 차 매장에는 무슨 일로…….

점심시간인 지금, 근무시간에 그곳에 갔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바로 그가 들어간 외제 차 매장이 독일 3사의 외제 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비싸디비싼 스포츠카 매장.

회사 내에서 아무리 서로의 연봉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내가 홍 대리를 과대평가하여 그의 연봉을 최대로 높게 예상한다고 한들 그에게 스포츠카는 무리였다.

무시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평소 소비 패턴과 그리고 오래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그의 집안 경제력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꽤 과한 자동차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동차를 구매하러 간 것인지, 아니면 혹시 지인이 있는 곳이라 간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홍 대리가 들어간 매장은 4층까지 있는 통유리로 된 곳이라 그의 움직임이 잘 보였다.

내 예상을 벗어나, 그는 지인이 아닌 정말 차를 보러 온 것이 맞았다.

입구로 들어가자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딜러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 홍 대리.

나는 저 고급 스포츠카 매장에 가본 적은 없으나, 육안으로만 대충 보아도 층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비싸져 보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홍 대리는 3층에 있는 차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언뜻 보아도 족히 2억 가까이 되는 차량 같았다.

대체 홍 대리가 무슨 돈으로 저 차를 보고 있는 거지? 어느 순간 내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를 내려둔 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뇌리를 스치는 기억.

얼마 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홍 대리는 백태석과 한태준 앞에서 손목시계를 샀다는 것을 자랑하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지나가며 우연히 듣게 됐고, 큰돈을 들여 명품 시계를 샀다고 했었다.

‘뭐지, 홍 대리 로또라도 당첨된 건가?’

나는 차를 보고 있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 대리는 평소 마이웨이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말수도 적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는 스타일.

병원 영업과 매출 성과에 큰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상사들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더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와 같은 대리 직책을 달고 있다.

대리 연봉이야, 경력이 더 오래됐어도 뻔할 노릇인데.

얼마 전부터 이렇게 급격히 변한 홍 대리가 수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급변한 그를 이해할 방법은 ‘로또 당첨’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뭐 로또라도 당첨된 것이 맞는다면 조용히 축하할 일이지만 말이다.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 보니, 시간은 벌써 1시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테이블을 정리 후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스케줄 칠판 옆, 직원 동선 칠판으로 향했다.

직원 동선 칠판은 각자 어디로 영업을 하러 가는지, 혹은 어디로 딜리버리를 가지는 말 그대로 동선을 적는 칠판이다. 회사에서 영업 직원들이 어디를 다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그 칠판에 오늘 들어갈 병원을 차례로 기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들어갈 병원은 내 담당 병원은 아니다. 바로 김 대표와 장홍석 이사, 그리고 최권호 부장의 담당 병원들이다.

그 병원을 내가 굳이 가는 이유는 그들은 병원에 들어가 사소한 업무를 보지 않기 때문.

이미 높은 급에 있는 상사들이기에 병원에 물건을 납품하러 가거나 간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짬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의 담당 병원의 영업은 그저 의사들을 따로 만나 영업을 하는 것이지, 그 후의 케어는 아래 직원들의 몫인 셈.

칠판에 기재한 뒤,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회사 톡방에 내 행선지를 올렸다.

‘금일 동선입니다. 광주의 황만 정형외과, 선아 정형외과…….’

병원명을 쭉 기재해 톡을 올리자마자 울리는 전화기.

지이잉.

[발신인 : WG 메디컬 홍 대리]

“여보세요?”

- 어. 민 대리.

“네, 대리님.”

- 좀 전에 톡 올린 것 중에 선아 정형외과는 내가 갈 테니까, 거기는 빼도 돼.

“선아 정형외과에 무슨 일 있는 겁니까?”

- 아니. 거기는 내가 지나가는 일이 있어서 그래. 알겠지?

“아… 근데 저도 황만 정형외과랑 나머지 병원들이 다 근처라서 제가 가도 괜찮은데요.”

- 아니야. 거기만 내가 가려고 하니까, 나머지는 민 대리가 좀 돌아줘.

“네, 알겠습니다.”

- 그래. 고생해, 이따 보자.

“넵.”

그와 전화를 끊은 뒤, 칠판에 적은 선아 정형외과를 지워냈다. 그리고 나는 끊은 전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선아 정형외과를 가겠다는 홍 대리. 선아 정형외과는 내 담당 병원도, 홍 대리의 담당 병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담당 병원이 아니고, 선임들의 담당 병원은 가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없다.

단지 물건 딜리버리를 가거나 혹은 간호사들을 만나 특이 사항이 있는지 체크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병원을 홍 대리가 꼭 가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궁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칠판에 홍 대리 동선에 선아 정형외과를 쓴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다녀왔습니다.”

온종일 광주에 이곳저곳 병원을 돌고 사무실로 복귀를 했다.

하루 내 바삐 움직인 탓에 곧장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시계는 벌써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대부분 업무 정리를 시작했고, 사무실을 늘 가득 메우던 타닥타닥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도 잠잠해져 갈 때쯤, 최권호 부장에게 슬며시 다가가는 홍 대리가 보였다.

그의 손에는 결재판이 들려 있었고, 어떤 사항인지는 모르겠으나 보고를 하러 가는 모양.

대부분 퇴근을 위해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에 집중할 때, 나는 홍 대리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홍 대리는 최 부장의 앞에 섰다.

“부장님. 저 선아 정형외과 건 보고 드릴 게 있어서요.”

선아 정형외과.

오후에 내가 가겠다는 것을 굳이 만류하고 간 이유. 아마 그 이유에 대해 보고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더욱 그에게 집중해 귀를 쫑긋 세웠다.

“선아? 거기 대표님 담당 병원이잖아.”

“네. 그래서 부장님께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여기…….”

그는 들고 온 결재판을 열어 최 부장에게 건넸다.

대표 담당 병원을 최 부장에게 보고하는 이유.

그 이유가 대체 뭐지?

나는 미간에 힘을 주고 온 신경을 그곳에 두었다.

최 부장은 홍 대리가 건넨 결재판을 한참이고 말없이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홍 대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야, 이게? 단가를 올리자고?”

그러자 홍 대리는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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