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 수술실 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서둘러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그.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스쳐 지나가 버린 그는 찰나의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친 게 다였기에 얼굴을 다 본 건 아니었다.
내 예상으로 그는 최준성 과장일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고, 다시 수술실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려봤지만 한동안 그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저곳에서 나온 사람이 내 생각처럼 최 과장이 맞는다면, 그는 왜 여기서 나온 거지? 게다가 마스크까지 끼고?
조금 전 광주에서 한태준, 백태석과 나누었던 ‘대리 수술’이라는 말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인물이 최 과장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수술복을 입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
하지만 수술복은 수술실 내에서 탈의하고 나올 수도 있기에 나는 여러 가지 추측을 스스로 던지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여천 정형외과로 출발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중, 저 멀리에 주차되어 있는 익숙한 차종이 보였다.
나는 그 차로 다가가 제일 먼저 번호판을 확인했다. 최 과장의 차량 번호를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회사를 오가며 보기 때문에 번호를 외워 내뱉을 수는 없어도 번호를 보면 생각이 날 수 있을 정도.
번호가 어림짐작으로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운전석 앞 유리에 붙어 있는 휴대폰 번호로 재차 확인을 했다.
역시, 최준성 과장의 차가 맞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최 과장이 수술실에서 나왔다고 판단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최 과장이 아직 이 병원 주차장에 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기는 했다.
분명 내가 광주에서 출발도 하기 한참 전. 그러니까 한태준, 백태석과 카페에 들리기도 전에 통화를 했었고, 그때 최 과장은 이미 여수 새루 정형외과였기 때문이다.
최소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아직도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있었다는 말인데…….
병원 써전과 물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혹은 써전과 커피라도 한잔했다고 해도 과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대체 최 과장은 무슨 일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있는 거지?’
나의 의문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길어져 갔다.
* * *
“다녀왔습…….”
여수에서 볼 일을 다 본 뒤, 사무실로 복귀하는 문 앞. 문이 열리며 복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내 팔을 낚아채는 최준성 과장.
그는 언제 광주로 돌아온 건지 이미 사무실 안에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나를 반겼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 문을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
“민 대리. 나 담배 피우러 가려고 했는데 잘됐다. 같이 좀 올라가자.”
“저 짐 좀 내려놓고 오겠습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서류 가방과 샘플 상자. 최 과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내 손에 들린 짐을 받아 들며 말했다.
“여기 내려놓고 가면 되지. 자, 됐지?”
그는 그 짐을 문 옆에 내려놓으며 눈짓으로 옥상을 가리켰다.
“아… 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나에게 조급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누구와도 만나기 전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
그를 따라 옥상에 올라오자 난간 끝쪽에서 홀로 사색을 즐기고 있는 사람.
백태석이었다.
그는 활짝 열리는 문소리에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셨습니까.”
“어. 태석 씨 담배 피워?”
“네. 방금 다 피웠습니다.”
담배를 다 피웠다는 백태석의 말에 최 과장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혹시 뭐 하고 있던 거 아니면, 자리 좀 비켜줄래?”
“아… 넵!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는 최 과장의 한마디에 곧장 옥상 문으로 다가가 그대로 사무실로 내려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백태석까지 내려보내는 거지?’
백태석이 내려가고 최 과장과 나, 단둘이 옥상에 서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시작되는 정적.
나를 한참 기다린 것치고는 아무 말이 없는 최 과장.
나 역시 물고 있는 담배 첫 모금에 집중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어 내뱉는 긴 호흡, 그 날숨에 따라 나오는 가득한 하얀 연기.
연기를 입으로 불며 나는 최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신 거 아닙니까?”
나는 그 자세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고,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 오늘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 거래명세서 대신 넣어줘서 고마워.”
“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리고 생각보다 시답잖은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내가 실수로 누락한 명세서잖아. 대신 가져다줘서 고맙다고.”
“다른 직원들도 종종 하는 일인데요, 뭐. 그리고 저도 오늘 여천 정형외과 갈 일이 있어서 넣어 드린 거죠. 괜찮습니다.”
“그래.”
고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감사를 표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러 따로 부를 위인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이야기하려고 저 부르신 거예요? 다른 하실 말씀이 있는 거 아니시고요?”
“그럼. 고마운 건 고맙다고 바로 이야기해야지.”
그가 육성으로 내뱉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아까 수술실에서 나 나올 때 본 거 맞겠지? 못 봤을 수도 있는데, 내가 굳이 물어봤다가 알게 되면 어쩌지…….]
역시.
여수 새루 정형외과 수술실에서 나오던 그 마스크를 낀 인물.
최준성 과장이 맞았다. 하지만 정말 단순히 물건을 넣거나 잠시 들어간 게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숨기는 것이라면.
이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 최 과장은 내가 자신을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묻기로 했다. 그래야 내 질문을 듣고 그가 거짓말을 한다면 동공이 흔들릴 테니.
“아닙니다. 하하. 근데 과장님, 아까 수술실에서 나오실 때 왜 저 보고 다시 들어가신 거예요?”
“어? 나랑? 언제?”
그는 내 질문에 동공 지진이 났고, 내 말이 꽤 자신을 당황케 한 듯 보였다.
“아까 여수 새루 정형외과에서요. 수술실에서 마스크 끼고 나오시던데, 저랑 눈 마주치셨었잖아요.”
그는 내 질문에 담배를 피우며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담배를 물고 숨을 마시며 답변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치지 않고 나는 그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아까 마주쳤을 때 입고 있던 이 바지. 그리고 이 셔츠도 머리도 과장님 맞는데, 아까 그래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시 들어가시더라고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내가 확신에 찬 표정과 말로 이야기를 하자,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꺼냈다.
“아……! 그때구나?”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에 기구 넣어달라고 해서 잠깐 들어갔다가, 깜빡한 기구가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들어가던 거였어.”
거짓말.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수술실에 기구는 당연히 수술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이고, 그 기구는 수술 직전 소독을 하게 된다.
우리는 기구를 병원에 넣어주고, 그 기구 소독을 돌리는 것은 병원의 몫. 그렇기에 소독된 기구를 최 과장이 만질 리가 없다.
게다가 소독된 기구를 만질 수 있더라도 그 기구를 수술실에 가지고 가는 것은 간호사의 일이지, 메디컬 직원의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렇게 기구를 들고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건 대리 수술을 한다는 셈.
“수술실에 수술 기구를 어떻게 들고 들어갈 수가 있어요?”
내 질문에 그는 눈을 연신 깜빡이며 말했다.
“아니. 기구는 안에 넣어두려고. 그리고 수술 중이 아니었지, 당연히.”
수술 중이 아닌데,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빈 수술실에 기구만을 넣으러 간 것이라면 마스크를 굳이 끼지 않아도 될 일.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 심증일 뿐.
후임인 내가 그에게 캐물어 알아낼 수가 없었고, 그리고 알아낸다고 한들 지금으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담배 피우고 내려와. 나 지금 병원에서 계속 전화 오네. 먼저 내려갈게.”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놓으며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꺼내 황급히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최 과장이 나가고 난 열린 문이 닫히기도 전에 다시금 열리는 문.
장홍석 이사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급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잡아 빼냈다.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출근한 뒤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그였기에,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어, 민 대리.”
그는 눈으로 내 손에 든 담배를 바라보며 턱을 치켜들고 피우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나는 형식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원 다녀오시는 겁니까?”
“응. 아침부터 뭐가 계속 바빴네. 원장님들 좀 만나고 했지. 민 대리는?”
“저도 오전에 여수 갔다가 좀 전에 사무실 들어 왔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별다른 대답 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그렇게 서로 몇 번의 담배 연기가 오갔을까.
나는 장 이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사님. 혹시 요즘에도 대리 수술하는 메디컬 회사가 있습니까?”
그는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대리 수술?”
“예.”
“왜, 저번에 태준이가 했던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며칠 전, 한태준이 백태석과 나 그리고 장홍석 이사가 함께 있을 때 잠깐 이야기했던 대리 수술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그렇고. 그냥 궁금해서요. 요즘도 하는 곳이 있는지.”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에이, 요즘에 대리 수술하는 곳이 어디 있겠어. 큰일 나지.”
“혹여나 메디컬 직원이 대리 수술에 들어갔다면, 회사 윗선에서 승인이 떨어졌으니 하는 거겠죠?”
“그럼. 어느 직원이 미쳤다고 독단적으로 들어가겠어. 수술실 들어가는 게 합법적인 일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장 이사의 말투와 표정을 보며 느낀 건 그는 대리 수술을 들어간 적도 없고, 들어가는 직원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근데 왜 갑자기 대리 수술에 관심이야?”
그에게 최 과장이 여수 새루 정형외과 수술실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정황상 나도 최 과장을 의심할 뿐이지, 증거가 없었기에.
“태준 씨한테 듣고 나니까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싱겁긴.”
그는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음을 짓고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장 이사는 긴 숨을 내쉬며 연기를 쭉 내뿜고는 갑자기 뭐가 떠오른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민 대리.”
“네, 이사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그는 나를 보고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요즘 민 대리 행복하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 십니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되물었다. 하지만 장 이사는 한층 더 능청스러운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에이, 나는 다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까지 숨길 거 없어.”
뭐지, 김 대표가 몰래 올려준 월급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나는 알 수 없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