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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92화 (92/339)

92화

【 인면수심 】

한태준은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고, 나와 백태석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대리 수술 관련 이야기인데요.”

“그 이야기 저번에 하지 않았어?”

나는 한태준에게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그때 대리님이 이야기 듣다가 병원 호출받고 나가셨었어요.”

“맞아. 나는 나가고 장 이사님이랑 태석 씨랑 다 거기 있던 거 아니야?”

“대리님 나가신 후에 장 이사님도 바로 일 생기셔서 나가셨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버렸거든요.”

“그랬구나. 아무튼, 그래서?”

한태준은 이야기가 굉장히 하고 싶었는지, 침을 한번 꼴깍 삼켜내고 신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회사에 다니는 메디컬 직원이 선임 따라서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맞아요. 선배님이 저번에 거기까지만 딱 말해 주셨어요.”

백태석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한태준에게 대답했다.

“근데 들어가기만 한 게 아니라, 아예 대리 수술을 한 거죠. 의사는 뒤에서 지켜만 보고!”

나는 그의 말에 놀라 눈이 커졌다.

대리 수술.

말 그대로 수술을 대리로 한다는 뜻이다.

수술은 당연히, ‘당연히’라는 단어 그 이상으로 수술은 의사가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술을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로 한다는 것. 이런 말은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절대적으로.

하지만 간간이 뉴스에서 보이는 ‘대리 수술’, ‘유령 수술’이라는 말.

같은 메디컬 회사에 다니는 입장으로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나는 단어이자 사건이다.

“대리님 회사 다니시면서 대리 수술하는 거 본 적 있으세요?”

나를 바라보며 묻는 한태준.

“아니. 근데 나도 들은 적은 있지. 그것도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라며 선임들한테 건너 들은 이야기지. 요즘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요. 어떻게 일반 회사 직원이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을 할 수 있는 건지. 제가 말하는 그 직원도, 그리고 그 직원의 선임도 의대는커녕, 간호학과도 나온 적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나는 한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지인은 옆에서 시키는 대로 수술 기구 챙겨주고, 선임은 환자 앞에서 거의 집도의처럼 수술을 했다는 거예요.”

백태석은 눈이 동그랗게 커진 채로 한태준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수술을 했대요? 아무것도 모를 거 아니에요.”

“옆에서 의사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입으로만 알려줬대. 그리고 직접 사람 몸에는 해본 적 없지만, 그 수술 기구의 수술 방법은 메디컬 직원이 잘 알고는 있잖아.”

“하긴. 수술 기구 제조사 자체가 워낙 많으니, 자기네 수술 기구로 수술하는 방법은 그 직원이 의사보다 더 잘 알긴 하겠네요.”

나는 이 수술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났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수술은 이상 없이 끝났대?”

내 물음에 한태준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어요. 제 지인은 수술실에 처음 들어가 봐서. 당연히 수술실에 들어가 볼일은 누구나 처음이지만요. 그 수술 장면에 충격을 많이 먹었나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수술실 안에서는 사람 몸을 열어서 수술하니까.”

“네. 그래서 수술실 나오자마자 토하고 난리였나 봐요. 그래서 퇴사해야 하나 고민 중인 것 같더라고요.”

“퇴사는 퇴사고. 그런 건 신고를 했어야지.”

“근데 제 지인도 들어갔었잖아요. 그래서 신고하기가 무서웠나 보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압박을 주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그 직원이 신고할까 봐 푸시를 한 모양. 한태준의 나이를 볼 때, 그 지인도 사회생활이 처음일 테고 회사에서의 그런 압박이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쨌든 대리 수술하다가 걸리면 인생 끝나는 거죠?”

한태준은 자신의 지인이 걱정되는지 나에게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불법이니까.”

걱정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해줄 이야기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아…….”

“그러니까 다시는 못 하게 해야지. 네 지인도, 그리고 그 회사도.”

“안 걸리면요?”

조용히 있다가 불쑥 내게 묻는 백태석.

“걸리고 안 걸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수술이라는 게 당연히 의사를 믿고 몸을 맡긴 건데. 네가, 아니면 너희 부모님께서 수술대에 올라가셨는데, 거기에 메디컬 직원이 수술한다고 생각해 봐.”

“정말 끔찍하네요.”

“맞아요. 저 방금 소름 돋았어요.”

그들은 내 예시에 치를 떨며 답했다.

“그렇지? 이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야.”

“근데 그러다가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한태준은 팔에 소름이 돋아 털이 서 있는 것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내게 물었다.

“그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네.”

나는 재빨리 대답한 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데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백태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응. 말해.”

그는 한태준과 나를 쳐다보지 않고, 커피잔 옆 테이블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메디컬 회사 다니면서 의학 용어 공부 많이 하면서 느낀 건데, 이렇게 공부도 하고 대리 수술도 들어가면 진짜 나중에 의대는 충분히 가겠네요.”

“하하, 그러게요. 대리 수술은 아니어도 정말 이쪽 업계 일하면서 의대생만큼이나 공부하는 것 같아요. 민 대리님은 이제 의대생이 아니라, 거의 의사만큼이나 이론이 빠삭하실 것 같은데, 그렇죠?”

한태준은 백태석의 말에 공감을 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지. 이 정도 실력 가지고는 절대 의사 못 하지.”

“왜요? 대리님은 이미 회사의 모든 기구, 사용법도 아시고 의학 용어도 모르는 게 없으시잖아요. 뭐 수술이야 의대 가서 배우면 되는 건데. 대리님은 의대 가기만 하면 바로 에이스 되시는 거 아닙니까?”

나에게 묻는 그는 농담이 섞인 말투가 아니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과 말투의 백태석.

나 역시 그에게 웃으며 답변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태석 씨.”

“그런가요? 이렇게 몇 달 공부해서 의사들 만나러 가서 이야기 나눠보면 지금 제 지식으로도 충분히 환자 진찰하고 수술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일을 안 하고 떼돈 버는 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지. 태석 씨가 공부한 부분. 우리 회사에서 다루고 있는 파트가 어디라고 알고 있지?”

그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술술 이야기를 내뱉었다.

“어깨, 엉덩이, 무릎, 인공 관절과 나머지 뼈의 작은 수술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아. 그럼 정형외과에서는 우리가 납품하고 있는 외의 품목들도 다루겠지? 게다가 우리는 단순하게 보면 의사가 찾는 기구를 넣어주는 거야.”

백태석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 씨는 환자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무슨 치료를 해야 할지, 무슨 수술을 해야 할지는 모르잖아.”

“…네.”

“우리는 의사가 원하는 수술 종류를 이야기하면 거기에 맞는 수술 기구를 추천해 주는 거지. 우리가 진찰하고 수술, 치료를 하는 건 정말 다른 이야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맞네요. 저도 이럴 거면 우리가 의사랑 다른 게 뭔가, 라는 생각도 가끔 해보긴 했거든요.”

옆에서 가만히 듣던 한태준이 입을 열었다.

“나는 둘이 의사가 될 깜냥이 아니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그들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거지. 당연히 지금이라도 의대를 갈 수 있다면 가서 의사하면 좋지.”

“하하. 그러기엔 저희가 벌써 나이가 너무 많이 돼버렸습니다.”

한태준은 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나이가 뭐 중요한가. 아무튼, 의사들은 정형외과. 그러니까 몸의 전체적인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우리는 특정 부위의 의료기기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백태석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먼저 병원 가볼게. 둘이 조금만 있다가 얼른 들어가서 일들 봐.”

“저희도 같이 일어나겠습니다.”

“네. 사무실로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대리님, 다녀오세요.”

* * *

내 담당 병원인 여천 정형외과로 가기 전, 나는 여수 새루 정형외과로 먼저 향했다. 최준성 과장의 담당 병원의 거래명세서를 딜리버리 하기 위해서였다.

여천 정형외과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병원.

저 멀리 병원 표지판이 보이고 나는 그 방향으로 깜빡이를 넣고 좌회전을 했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

병원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종합 병원이 아닌 개인 정형외과 병원이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는 그런 개인 병원들 중에서도 작은 병원에 속한다. 여수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사는 동네에 있는 작은 개인 병원. 그렇기에 수술이 많은 병원은 아니다.

요즘 나이가 젊은 환자들, 또는 자식의 케어를 받고 있는 어르신들은 진찰이나 수술을 광주까지 나와서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지방의 병원, 동네 병원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도시에는 의사 수 만큼이나 수술 기구도 많은 편.

더불어 수술 케이스도 훨씬 많다 보니, 작은 통증이나 긴급한 경우가 아닐 때는 굳이 광주까지 올라와 병원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병원이 유지가 되고 매출이 잘 나오는 것은 그렇지 못한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아파서 앞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하거나,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스스로 동네 병원을 찾으시고는 한다.

여수 새루 정형외과는 그런 동네 병원치고는 수술 케이스가 꽤 많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최 과장이 여수 새루 정형외과를 영업해 왔을 때, 다들 동네 작은 병원 영업해서 얼마나 팔겠느냐, 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수술 케이스가 나왔고, 나는 그런 최 과장을 보며 생각보다 괜찮은 영업을 했구나 싶었다.

처음으로 오게 된 여수 새루 정형외과.

정문을 지나 곧장 수술실로 걸어갔다. 수술실에서 사용했던 품목에 대한 거래명세서였기에, 수술실로 가져다줘야 했기 때문이다.

수술실 입구.

수술실은 문을 열자마자 수술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술실 입구 문은 대부분 유리문에 시트지가 가득 붙어 있고, 그렇기에 안은 밖에서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러 개의 문이 있다. 수술 침대가 있고, 수술을 하는 수술실. 그리고 준비하는 곳과 기구를 소독하는 곳, 수술 기구를 보관하는 곳.

병원마다 세팅이 되어 있는 것은 매우 다르지만, 보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생겼다.

수술 침대가 있는 수술실이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실 정문 입구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앞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안녕하십니까. WG 메디컬에서 왔습니다.”

인터폰 너머 들리는 내 말에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나에게 다가오는 간호사.

“거래명세서 드리러 왔습니다.”

“아까 최 과장님 오셨는데, 그때 가져오시지!”

연차가 꽤 되어 보이는 간호사. 그녀는 광주에서 명세서를 가지고 온 나를 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명세서가 누락이 돼서요. 제가 지나가는 길이라 가져왔습니다. 하하.”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간호사에게 인사를 한 뒤, 뒤를 돌아 수술실 정문으로 걸어가려는 그때.

스르륵.

안쪽에 있는 진짜 수술실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이 의사인지, 간호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열리는 유리 자동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은 정장을 입고 마스크를 눈 바로 밑에까지 끼고 있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얼굴이라고는 눈밖에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눈과 마주쳤다.

‘어?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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