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나는 발신인이 한선우라는 것을 확인하고,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갑질. 그것들을 생각하면 전화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아마 어머니의 수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에서는 끊이지 않고 진동이 세차게 울려 퍼졌다.
한참을 고민 끝에 전화가 끊어지기 직전, 나는 수신 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 지훈아, 나 선우인데. 너 어디야?
“회사야. 왜?”
- 나 지금 너희 회사 앞인데, 잠깐 좀 볼 수 있을까?
“지금?”
- 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한껏 기가 죽은 한선우의 목소리.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퇴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 밖으로 내려왔다.
회사 정문 계단 앞에서 뒤를 돌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선우. 그간 나에게 했던 행동이 있어, 미안함이 가득했는지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한선우!”
나는 그에게 걸어가며 그를 불렀다.
“어! 지훈아.”
그는 뒤를 돌아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고,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나를 꽉 안았다.
그리고 내 등을 두 번 토닥이더니, 몸을 떼 내어 양손으로 내 양팔을 잡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앞뒤 설명이나 다른 수식어 없이 귀에 꽂히는 그의 한마디. 나지막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한선우의 표정. 나 역시 그에게 구태여 묻지 않았다.
“이럴 땐 미안한 게 아니라 고맙다고 하는 거야, 인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맙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내가 살게.”
한선우는 손으로 소주를 마시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글지글 불판에서 구워지는 고기와 눈앞에 가득한 연기. 그리고 앞에 놓인 빈 소주병들.
그와 나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세연 정형외과에서 있었던 한선우가 나에게 보였던 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술을 마셨다.
한선우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술이 올라 올쯤, 그제야 우리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괜찮으시대?”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네 덕분이다.”
“어쩌다가 갑자기 그렇게 크게 다치셨대.”
“일하시다가 계단에서 구르셨나 봐. 나 걱정할까 봐 나한테 말도 없이 병원 가신 것 같더라고. 거기 여천 정형외과에 담당 원장님이 엄마 아빠한테 지훈이 네 이야기 해줘서 나한테 바로 전화 주셨더라.”
그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경 써줘서 진짜 고맙다.”
“아니야. 근데 어머니한테 안 가고, 왜 여기로 왔냐. 어머니 그래도 입원실에 며칠 계실 텐데.”
“내일 나 휴진이라, 아침 일찍 내려가려고.”
나와 한선우는 술잔을 부딪쳤다.
술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은 뒤, 한선우는 고개를 숙인 채 나에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미안하다. 지훈아.”
그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소주를 자신의 잔에 따라 곧장 입에 부었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 너한테 고등학생 때부터 자격지심이 있었나 봐.”
이미 손지혁 차장에게 들은 후라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듣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내가 끝내 이해하지 못한 부분. 대체 나에게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그런 질투와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 것인지가 궁금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부터? 대체 왜?”
한선우는 내 질문에 시선을 황급히 피하며 대답했다.
“…모든 면에서.”
예상외의 말을 꺼내는 한선우.
나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살았다는 지난 학창 시절. 내가 그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성적, 단 하나 나에게 뒤쳐진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꽤 의외였다.
“대체… 왜.”
그는 이어 술을 한 잔 더 털어 마셨다.
급하게 그리고 많은 술을 마시는 그를 말릴 틈은 없었다.
“넌 나보다 항상 모든 게 우월하다고 생각했어. 성적도 성격, 친구들과의 사이. 그리고 화목한 가정까지도.”
나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놀라웠다.
학교에 다니는 시절 나와 가장 가깝다고 느꼈던 친구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나와 계속해서 친구 사이를 유지했다는 것이.
“너는 나를 친구로 대했는데, 그 시절에 나는…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항상 너의 밑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나 봐.”
“야, 한선우. 친구면 친구지. 누가 위고 아래고 그런 게 어딨어? 나도 살면서 너한테 부러웠던 것도 많고, 지금도 부러운 것도 많아.”
그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성숙하지 못했어. 그리고 부족했지. 오늘 같은 일이 있으니까 딱 알겠더라. 너와 나의 차이를. 너는 끝까지 나보다 앞서네.”
그는 씁쓸한 미소를 내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소주를 따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너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
“어?”
나는 소주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히며 말을 이어갔다.
“너도 병원에서 우리 어머니 만났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인마.”
말이 끝나고 나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나를 보고 있던 그 역시 나를 따라 소주를 한입에 털어 마셨다.
“그리고 지금 봐. 너는 지금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
그는 내 말에 옅은 미소를 보인 후 입을 떼어냈다.
“내가 의사가 된 것도… 네 덕이야.”
“응?”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사를 동경하던 적이 있었나 봐. 고등학교 때, 지훈이 네가 나보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하면 멋있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와! 맞아. 기억난다. 선우 너 그때 메디컬 드라마에 빠져서 며칠 밤도 새고 그랬었잖아.”
그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웃음을 보였다.
“수능 망치고 울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왜 하필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던지. 그리고 그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수해야겠다고 결심했어. 네 덕분이야.”
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게 어떻게 내 덕이야. 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고 의사가 되는 거면 이 세상 사람들 다 의사했겠다. 하하. 선우 네가 고생한 결과지.”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소주병을 들어, 내 빈 잔에 부어주었다.
언제고 한선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우리 사이는 영영 끝이 날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자신을 힘들게 한 장본인이지 않은가. 그래서 한선우가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면, 앞으로 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은 한선우의 표정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응어리가 져 있던 것을 토해 낸 것과 같은 얼굴. 1시간 전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 짓고 있던 그의 표정은 없었다.
아무 표정도 없던, 무표정 상태의 얼굴에서 이제야 입꼬리를 올리는 한선우.
나 역시 그의 얼굴을 보고 속마음을 들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만간 어머니 병원에 병문안 가야겠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이야기를 한 뒤 내 앞으로 자신의 소주잔을 들어 보였다.
짠.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돌고 난 후.
“지훈아. 나 내일은 휴진이니까, 모레 병원 좀 올 수 있어?”
“모레? 왜 무슨 일 있어?”
“왜긴. 저번에 네가 줬던 견적서 있잖아. 그거 물건 받고 싶어서. 와서 일 이야기 좀 하자고.”
그의 마음이 고마움에서였을지, 우리 회사 물건을 정말 받고 싶어서였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고마움으로 인한 것 같았고, 나는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아니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괜찮아.”
나의 거절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왜?”
“이번 일로 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은 거라면 괜찮아. 다음에 내가 힘들 때, 도움이 정말 필요할 때 도와줘.”
“그래도…….”
당황하는 그의 표정과 말투.
나는 그에게 이어 대답했다.
“정말이야. 지금은 그저 이런 일로 도움을 받기에, 내가 힘들지는 않거든. 다음에 내가 필요할 때, 그때 말할게. 나한테 티켓 한 장 있는 거다?”
그는 내 진심 어린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언제든, 무슨 일이든 말만 해. 티켓 잊지 않고 있을게.”
한선우와 나는 남은 소주 한 잔을 깔끔히 입에 털어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오전 9시 30분, 사무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고 창고로 향했다. 여천 정형외과에 다녀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원에 수술이 생겨 여수에 재차 가야 했기 때문이다.
수술 기구를 챙기기 위해 재고 창고에 걸어가 다른 병원들에 딜리버리를 갈 것이 있는지 체크했다.
내가 가지고 나가야 할 기구 옆에 있는 ‘여수 새루 정형외과’ 거래명세서.
여수 새루 정형외과는 최준성 과장의 담당 병원이었다.
스케줄 칠판을 확인하니, 그는 오늘 여수에 가는 일정이 기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명세서를 실수로 두고 간 모양.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과장님. 저 오늘 여수 가려고 하는데, 여수 새루 정형외과 명세서가 사무실에 있어서요. 혹시 아직 광주십니까?”
- 아… 나 방금 새루 정형외과 도착했는데. 두고 왔나 보다.
“그럼 여천 정형외과 가는 길에 새루 정형외과 지나가니까, 제가 병원에 넣겠습니다.”
- 어. 고마워, 민 대리.
평소 최 과장과의 관계가 달갑지 않기에 모른 척하고 두고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광주에서 여수까지는 왕복 3시간이 되는 거리였기에, 이왕 가는 길에 딜리버리를 가면 됐기 때문이다.
여천 정형외과의 수술 기구와 여수 새루 정형외과의 명세서를 챙겨 창고를 빠져나왔다.
창고를 나와 출입문으로 향하는 길. 탕비실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문을 비집고 삐져나왔다.
“이거 말고 완전 차갑고 달달한 커피 마시고 싶다.”
“저도요!”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니, 안에는 한태준과 백태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있었기에, 살짝 열린 문을 다리로 툭툭 치며 그들을 불렀다.
“가자. 커피 사줄게.”
그들은 문을 치는 소리에 놀라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어? 대리님!”
“뭐 해. 나 무거워. 얼른 가자, 달달 하고 시원한 커피 마시러.”
그들은 신이 난 아이들처럼 웃으며 나를 따라 나왔다.
“대리님 제가 들겠습니다.”
한태준은 내 짐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아니야. 바로 차에 넣을 거라서 괜찮아.”
끝내 내 짐을 빼앗아 드는 한태준.
그들과 차에 짐을 넣은 후 회사 앞 카페로 향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대리님.”
“대리님 감사합니다.”
한태준과 백태석은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커피를 들이켰다.
“오냐. 천천히들 마셔라.”
“하하. 네.”
“아! 선배님, 저번에 이야기해 주시던 거. 마저 해주세요.”
백태석은 한태준을 보며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궁금해해?”
나는 그런 백태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그 얘기? 대리님도 들으시면 놀라실걸요? 하하.”
한태준은 나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데, 해 봐.”
“저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