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참된 한의원은 환자들에 스테로이드 주사 남용을 했을 뿐 아니라 염증 억제 작용 약품까지 한약에 넣어서 판매한 것이 조사에서 밝혀졌다.
그뿐 아니라 유통되지 말아야 할 불법 약품까지 들어 있는 것까지 조사됐다.
그로 인해 참된 한의원의 한의사는 의료법 조사를 받게 됐고 조사받을 당시 잠시 닫혀 있던 한의원의 문은 그대로 영영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참된 한의원의 짧았던 3개월. 그리고 그 짧았던 기간에 비해 다녔던 환자들의 수는 상당했다.
참된 한의원에 한 번이라도 방문을 했던 환자들은 모두 비상사태에 빠졌고, 모두 서둘러 자신의 몸을 검진하기 위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글을 올렸던 찬성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는 환자.
그녀가 올렸던 글은 성지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난리가 났다.
그녀는 이후 댓글로 자신이 한의원이 아닌,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내용을 올렸다.
내용에는 병원 덕에 한의원의 스테로이드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안전한 방법으로 치료 중이라는 것.
더불어 병원명은 ‘ㅊ’으로 시작한다는 것만이 나타나 있었다.
사람들은 병원을 추측하기 시작했고, 광주에는 의외로 ‘ㅊ’으로 시작하는 병원이 굉장히 많았다.
나는 결국 답 댓글을 남겼다.
[찬성 정형외과인 것 같아요! 거기 의사 선생님이 환자들 생각해 주고, 좋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내 댓글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찬성 정형외과에 있는 환자가 수긍을 하는 말을 남겼다.
이후, 한의원에 다니던 환자들은 대부분 찬성 정형외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찬성 정형외과는 대박이 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한번 찬성 정형외과의 원장에게 호출을 받았다.
* * *
찬성 정형외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환자들.
로비에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성 정형외과에는 환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보다 빈 의자가 훨씬 많았었다. 파리가 날린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물건 발주량마저 뚝 끊겼었던 병원.
참된 한의원에 빼앗겼던 환자를 되찾아 옴과 동시에 몇 배로 늘게 된 환자 수에 내가 큰 몫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기쁨은 따로 있었다. 바로 환자를 그저 돈으로만 보는 돌팔이 병원을 밝혀내는 데 큰 몫을 했다는 기쁨.
그것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었지만 나의 부모님과 같은, 그리고 나의 조부모님과 같은 분들이 그런 곳에서 엉터리 같은 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끔찍했다.
나는 로비에 앉아 있는 환자들을 보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그곳에 갔었구나, 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뒤섞였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로비에 서성이다가 진료실로 향할 수 있었다.
똑똑.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민 대리, 왔어?”
그는 짧았던 며칠 새 얼굴이 많이 변해 있었다.
환자가 끊이지 않았던 터라, 피골이 상접해 있었지만, 그에 반해 상반된 기쁜 표정.
원장님은 피곤한 얼굴과 몸에 비해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장님. 요즘 환자 많아서 바쁘시죠?”
“다 민 대리 덕분이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그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참된 한의원은 문 닫는 게 당연했고, 원장님 실력으로 환자들을 되찾아 온 거죠.”
그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민 대리.”
“네, 원장님.”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둔 파일철을 내게 내밀었다.
나에게 건네주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모양.
“이게 어떤…….”
나는 대답을 하며 파일을 열어 보았다.
파일에는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품목이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품목들이야.”
나는 눈으로 위에서부터 빠르게 그 목록을 훑었다.
“민 대리한테 전부 넘기고 싶어서.”
종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나는 황급히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네? 전부요?”
나의 커진 눈과 놀란 표정을 본 원장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저야 감사하지만, 갑자기…….”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이번에 참된 한의원에 우리 환자들 빼앗겼을 때 말이야. 민 대리처럼 자기 일마냥 나서주는 메디컬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어. 아니, 발주량이 떨어지니까 메디컬 회사들에서 찾아오기는 했지.”
“그렇죠.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왔을 것 같습니다.”
“어. 근데 와서 환자가 빠진 우리 병원을 보고는 다들 별말 없이 돌아가더라고. 망해 가는 병원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근데 단 한 사람. 민 대리만 달랐어.”
나는 입술을 꽉 다문 채 그의 말에 경청했다.
“무슨 일로 병원에 환자가 줄어들었는지,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고 나서 준 것도. 우리 병원 직원들보다 민 대리가 나아.”
“아닙니다.”
나는 그의 칭찬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사실인걸. 그래서 다른 메디컬 회사들한테 내가 굳이 더 발주할 이유가 없겠더라고.”
“아…….”
“그러니까 여기 있는 품목들, 전부 WG 메디컬로 바꾸고 싶어. 알다시피 우리 지금 재고 넉넉히 쌓여 있으니까, 준비되는 대로 천천히 넣어줘.”
“감사합니다.”
그는 내 인사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다음에 저녁이나 한 끼 하자고.”
“네, 좋습니다!”
나는 그가 준 파일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입술을 꾹 다물고 자체 음소거를 한 채 환호성을 내질렀다.
따냈다.
물론 영업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긴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큰 성과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파일을 꽉 쥔 채 손을 흔들어 보였다.
* * *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나에게 몰리는 직원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찬성 정형외과 관련 이야기가 빠르게 퍼진 모양.
“뭐야. 민 대리 이번에 찬성 정형외과 전부 먹었다며!”
“그러니까. 대체 그 힘든 담당 병원을 한 달에 연달아 몇 건을 해내는 거야.”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직원들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이며 입꼬리를 올려 대답했다.
대리들 사이를 비집고 서 있던 한태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뼉을 연신 쳐댔다.
“대리님. 비법 좀 공유해 주세요. 저 대리님 밑에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때 다가오는 장홍석 이사.
“안 돼. 민 대리 지금 날개 달려서 날고 있는데, 멈춰서 누구 가르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야.”
“이사님. 제가 틈나는 대로 후배들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찬성 정형외과 우리 회사에서 매출 정말 적은 병원이었는데, 이런 병원을 이렇게 크게 만들다니, 진짜 민 대리 고생했다. 대표님께서도 민 대리 칭찬을 어찌나 하시던지.”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들 축하 끝났으면, 놀지 말고 민 대리처럼 실적으로 좀 보여줘라. 이러다가 민 대리 혼자 회사 먹여 살리겠다.”
장 이사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내 주변에 모여 있는 직원들에게 한마디 일침을 날린 후 이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은 장 이사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몇 분을 더 떠들다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민 대리.”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다가오는 손지혁 차장.
“네, 차장님.”
그는 내 책상에 다가와 한 손으로 내가 앉아 있는 의자 팔걸이를 짚고 기대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 들었어. 수고했다.”
그는 담백한 짧은 칭찬에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엄지를 내보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차장님.”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럼요!”
나는 그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며 앉은 손 차장과 나. 그는 의자를 당겨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세연 정형외과 알지?”
“예. 차장님 담당 병원이지 않습니까?”
세연 정형외과.
손 차장이 최근에 일궈낸 성과 중 하나로, 광주에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타 지역 종합 병원에서 경력을 쌓은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써전이 광주로 나와 차린 병원. 그래서 그 병원장보다 어린 써전을 뽑아야 했기에, 다른 병원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써전들로 이루어진 병원이다.
영업을 하는 데에는 나이가 많고 적고는 상관이 없긴 하지만 영업 가는 메디컬 직원보다 써전의 나이가 어릴 경우에는 확실히 힘든 것은 사실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동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업은 분명히 갑과 을이 존재한다.
여기서 병원은 갑이고, 메디컬 직원은 당연히 을이 된다. 을인 메디컬, 손 차장이 자신보다 어린 갑에게 영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렇기에 손 차장은 세연 정형외과에 영업 성공을 위해 한참이나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 근데 이번에 병원에 새 써전이 또 오거든.”
“와. 병원이 벌써 꽤 잘되나 보네요. 또 새로운 써전이 오는 거 보니까요.”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아직 매출이 적은데, 병원장이 병원을 크게 만들고 싶은지 엄청 투자하는 것 같더라고.”
써전을 여러 명 두고 큰 병원이라며 광고를 하려는 모양.
“이번에도 그럼 나이가 어린 써전이 오겠네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이번에는 너무 어리더라고.”
“몇 살인데요?”
“민 대리랑 동갑이라더라.”
나는 나와 동갑이라는 말에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저랑요? 너무 어린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게다가 어려서 경력이 있을 리는 없고, 이제 막 써전 됐을 건데. 그래서 말이야……”
그는 쓰읍 소리를 내며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민 대리가 새로 오는 써전한테 영업 좀 해줬으면 하는데.”
손 차장의 담당 병원이기에, 내가 가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긴 했으나 그의 부탁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을의 입장으로 항상 저자세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영업 직원. 게다가 세연 정형외과는 손 차장보다 전부 어린 써전들이었기에, 그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이번에는 나와 동갑인 써전이라는데, 손 차장의 짬에 맞지 않는 영업이기는 했다.
나와 같이 대리 직급이거나, 더 낮은 직원의 경우에는 가지고 있는 거래처의 수가 적기에 우선 거래처를 늘리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래서 힘든 영업이든, 쉬운 영업이든 새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손 차장과 같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새 거래처를 뚫기보다는 기존 거래처를 관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거래처만을 관리하기에도 충분히 많고, 벅찰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차장은 그에 그치지 않고, 늘 새로운 거래처를 영업하고는 했다. 그런 손 차장을 보며 직장 생활을 한 나는 그의 모습이 대단하고, 멋있게 느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노력하고 있는 병원에, 그리고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거절하기가 싫었다. 그가 영업을 부탁한 써전은 나보다 어린 것이 아닌, 동갑이었지만 동갑인 써전에게 영업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부탁을 이뤄내고 싶었다.
또 아래 직원인 한태준과 백태석에게 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아직 사원이라, 거래처 관리가 아닌 새로운 병원 영업에 뛰어들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 영업을 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이기에,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가 다녀와 보겠습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그래. 내 담당 병원이라, 다른 대리들한테는 이야기하기 좀 그렇더라고. 민 대리니까,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아서.”
“제가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 써전 이름이 한선우라고 하더라고.”
“네? 한선우요?”
나는 그에게 써전 이름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아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