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나의 비장한 목소리에 찬성 정형외과의 원장님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미간에 온 힘을 잔뜩 준 채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이유가 뭔데?”
나는 결의의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테로이드 주사입니다.”
“뭐? 스테로이드 주사?”
그는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는 듯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네. 스테로이드 주사 남용입니다.”
하지만 나의 단호한 얼굴과 말투에 그는 더 이상 되묻지 않고, 아랫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을 하는 듯했다.
오른손을 자신의 턱에 가져다 대고 한참을 문지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민 대리.”
“예, 원장님.”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원장은 그 주사로 어떻게 자신의 병원 환자를 빼갔는지, 확실한 건지에 대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는 스테로이드 주사의 효능에 대해 나보다 훨씬 빠삭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기에, 나에게 몇 번이고 되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알게 된 경로가 궁금한 듯했다.
“요즘 찬성 정형외과에서 발주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에, 어제 공급실에 들렀습니다. 가서 공급실 담당 선생님을 통해 참된 한의원으로 환자가 새어 나간다는 것을 듣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경청했다.
“그래서 바로 참된 한의원으로 가보게 됐습니다.”
“한의사를 만나러?”
그는 내가 참된 한의원에 갔다는 말에 놀라, 눈이 커진 채로 나를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정형외과 환자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거지, 라는 생각에 지나가며 보다가, 우연찮게 그 한의사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됐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는 펜을 들고 앞에 놓인 종이에 의미 없는 낙서를 끄적였다. 그러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럼 이제 어떤 방법을 강구해 내야 할까…….”
그렇다.
병원의 매출이 줄어든 이유.
가장 중요한 원인을 알게 된 지금.
그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은, 바로 해결이다.
문제를 해결해 내야 빼앗겼던 환자들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것.
나는 우리 회사의 일처럼, 그리고 내 일처럼 진지하게 그와 함께 고민에 빠졌다.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해 낸다면 나보다는 당연히 병원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병원에 도움이 된다면, 나에게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될 리는 없으니 말이다.
진료실에는 원장과 나 단둘이 있었지만 한참이나 말소리는 나지 않았다.
똑딱똑딱.
시계 초침 소리로만이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원장님.”
나는 정적을 깨고 원장에게 물었다.
“최근에 수술 못 한 환자분은 없었나요?”
그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기야 있었지. 그건 왜?”
“혹시 스테로이드 주사 때문에 수술 못 했던 환자분이 있나 해서요.”
스테로이드 주사 부작용. 체내에 스테로이드 비율이 적정량을 넘어가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 중 ‘골다공증’이라는 부작용 증상. 뼈가 약해지는 것으로, 뼈의 강도가 약화 돼 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골절이나, 뼈에 관련된 수술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혹여나 찬성 정형외과에 온 환자 중 그런 문제로 인해 수술하지 못한 환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이더니, 곧장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 차트를 뒤적였다.
수술을 못 한 환자가 떠오른 모양.
“찾았다!”
“있습니까?”
“어.”
그는 모니터를 내가 볼 수 있게 돌려주었다.
얼마 전 병원에 내원을 왔던 젊은 여성의 환자의 차트였다.
“왜 수술 못 한 겁니까?”
나는 차트판이 켜져 있는 모니터를 보며 그에게 물었다.
“고관절이 아파서 온 환자였어. 상태가 안 좋아서 수술해서 뼈에 철심을 박아야 했거든. 근데 검사했는데, 뼈가 너무 약하더라고.”
“그럼 수술 못 하고, 치료 중인 겁니까?”
“응. 통원 치료하다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지금 입원해 있는 상태야.”
“나이는요?”
그 환자의 나이가 궁금한 이유.
바로 증상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있다고 해도 수술을 못 할 정도로 뼈가 약하기는 어렵다. 남성보다 여성의 뼈가 평균적으로 약한 편이기도 하고.
80세에서 90세 정도 되는 여성의 경우 뼈가 약해져 수술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는 한다.
그렇기에 지금 수술을 못 하는 환자가 80세 이상의 여성 환자라면, 스테로이드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0살 여자.”
“네?”
나는 그에게 환자 나이와 성별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30살.
한창 어리고 뼈가 단단할 나이.
그 나이에 뼈가 약해 수술을 못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건가 싶어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뼈 약해진 원인이…….”
그는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스테로이드.”
그는 시선을 모니터에서 떼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
“맞네.”
“네?”
그리고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환자, 스테로이드 과다 처방으로 뼈가 약해진 환자였어.”
“혹시… 참된 한의원에 다녔던 환자일까요?”
“그건 모르지.”
병원에서는 환자의 진료 기록에 대해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환자의 처방 약물에 대해서는 확인이 가능하다.
과다 복용과 중복 복용 방지를 위해서이지.
한 환자가 다리를 다쳐 정형외과에 와서 치료를 받아 A 약품을 처방받은 후, 곧바로 감기로 인해 내과에서 약품을 처방받을 때, A 약품은 중복 복용이므로 경고 알람이 뜨게 된다.
이런 식으로 환자의 몸을 위해 중복 복용과 남용을 방지하게 되는 것. 그러나 어느 병원에서 처방했는지, 어느 병원에 다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한번 알아볼게.”
“네, 원장님.”
“우선 오늘 참된 한의원 이야기 알려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찬성 정형외과가, 그리고 원장님이 잘되셔야 저도 잘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내 말에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맞지. 우리 병원이 잘돼야 민 대리한테 물건 발주도 팍팍 할 텐데 말이야. 하하.”
“저도 알아볼 수 있는 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야. 민 대리 덕에 충분히 많은 도움 얻었어. 이 뒤는 내가 해결해 볼게.”
“네. 혹시 제가 알게 되는 게 생긴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을 하니, 탕비실 문 앞에 모여있는 직원들. 한태준과 백태석, 그리고 장홍석 이사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장 이사를 보고 나는 자리가 아닌, 그들의 무리로 향했다.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일찍 오셨네요.”
“어. 오늘 전북 쪽 갈 일이 있어서 자료 좀 챙기려고 일찍 왔어.”
“근데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계시길래. 이렇게 모여 계십니까?”
나는 뜬금없는 그들의 조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소식이든 빠른 한태준. 그가 이슈를 물어왔다며 이야기를 펼치고 있던 것이었다.
“대리님 오셨으니까, 다시 말씀드려야겠다. 제가 아는 다른 회사 직원이 대리 수술 들어가는 걸 봤다는 거예요!”
그는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대리 수술? 그거 진짜 예전에나 있었던 일 아니야?”
장 이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요즘 누가 그렇게 해. 그러다가 걸리면 회사 문 닫는 걸 떠나서, 감방 가는 거지.”
지이잉.
그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 : 찬성 정형외과 원장]
“저 병원 전화라서 잠시 받고 오겠습니다.”
나는 장 이사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전화를 받고 오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나는 바로 뒤를 돌아 전화를 받았다.
“네. 원장님, 민 대리입니다.”
- 어. 민 대리, 혹시 지금 바로 병원으로 좀 올 수 있나?
“예. 지금 사무실인데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 장 이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찬성 정형외과에서 급히 호출이 와서요.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얼른 가 봐.”
“태준 씨.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줘.”
“넵! 다녀오세요, 대리님.”
* * *
사무실을 나와 서둘러 찬성 정형외과로 향했다.
앞뒤 설명 없이 급하게 나를 호출한 것을 보니, 환자를 통해 무언가 알아낸 모양.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사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환자 말이야…….”
그는 나에게 입원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환자는 어릴 적부터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었고, 먹는 약까지 여러 차례나 처방은 받은 사실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스테로이드가 몸에 축적되었던 것.
“그럼 피부과가 문제였던 건가요?”
그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민 대리 말이 맞았어.”
“네? 제 말이 맞았다면, 참된 한의원에서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처방받은 거라는 말씀이세요?”
“응. 그렇더라고.”
“말도 안 돼.”
이미 스테로이드 주사와 연고, 그리고 먹는 약까지 여러 번 처방 받은 그녀의 과거 이력이 조회됐을 터. 그런데도 환자에게 그대로 처방했다는 참된 한의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한테 나도 여러 번 확인했어. 근데 참된 한의원에서 확인을 안 한 건지, 무시하고 주사 남용을 한 건지는 모르지.”
“그럼 환자는 지금 아예 수술이 안 되는 거죠?”
“응. 그래서 환자도 나에게 물었거든. 자신의 수술 거부 사유를.”
그와 나는 그녀의 현 상태 이야기를 나누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 진료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
“원장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외래 간호사였다.
그녀는 급한 일인지, 앉아 있는 나를 지나쳐 곧장 원장에게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그가 볼 수 있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인터넷에 유명한 커뮤니티 카페인데요. 아무래도 저희 그 수술 못 하게 된 환자가 올린 것 같아요.”
수술 못 하게 된 환자라면 지금 나와 원장이 나누던 이야기의 그녀였다.
간호사는 휴대폰을 건넨 후 책상 옆에 서 있었고, 원장은 그 화면에 켜져 있는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생님, 어디에 올라온 글이에요?”
그녀는 내 휴대폰을 바라보며 눈썹을 들썩였고, 나는 그녀에게 내 휴대폰을 열어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한 뒤, 나에게 보여주었다.
[광주에서 유명한 XX 한의원의 무서운 실체]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유명해진 광주의 한 한의원에 대한 실체를 밝히겠음.
광주에 새로 생긴 한의원인데, 얼마 전부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곳임.
나 역시도 몸에 통증이 생겨 가게 됐고, 거짓말처럼 그 통증이 주사 한 방에 사라졌음.
‘스테로이드’라고 들어 본 사람들은 많이 알 것임.
…
…
누군지, 어디 한의원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나와 찬성 정형외과의 관계자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그녀라는 사실을.
나는 스크롤을 급히 내려 댓글 창을 확인했다. 댓글에는 스테로이드에 관한 내용들이 가득했고, 더불어 병원에 대한 궁금증과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참된 한의원인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참X 한의원 아닌가? 거기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명해졌는데!]
[X된 한의원 맞는 듯. 근데 글쓴이 말대로 스테로이드로 통증만 없애고, 원인을 치료 안 한 거라면 문제 되는 거 아님? 그럼 나도 의사하겠네.]
[광주에 한의원들 뒤집히겠네.]
[우리 할머니 거기 한의원 다니는데 당장 근처에 다른 병원 가서 검사받아 보시라고 해야겠네. ㅠㅠ 확인하고 여기에 후기 바로 올릴게요!]
글을 모두 확인한 후, 간호사는 휴대폰을 챙겨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원장님. 곧 난리가 나겠네요.”
“언제고 터졌을 일이야. 조금 일찍 터진 거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다녀서 몸에 이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것뿐인 게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올린 그녀는 이미 수차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은 후, 참된 한의원에서 더불어 주사를 맞았기에 지금 증상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참된 한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다른 환자들은 지금은 멀쩡한 것이 정상이었다.
물론 한두 번 맞은 것으로 통증을 없애는 것은 몸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남용되어 과다복용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
원장 말대로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지금 찬성 정형외과에 있는 환자처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수도 없이 나오게 될 것이다.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뿐.
* * *
며칠 후.
찬성 정형외과의 환자가 올린 글이 여러 커뮤니티와 지역 카페에 퍼지기 시작했고, 인터넷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 이야기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결국, 보험 공단에서 신고를 받고 참된 한의원에 조사를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이어 참된 한의원에 대한 어마어마한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