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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85화 (85/339)

85화

【 병원의 영업 기밀 】

공급실 선생님의 작은 목소리에 나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네. 말씀하세요.”

“앞에 한의원 새로 생긴데 있잖아요.”

찬성 정형외과 바로 앞에 생긴 큰 건물.

그 건물에 들어온 한의원 한 곳이 있었다. 건물 자체가 이제 막 생긴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눈에 띄기는 했었다.

나 역시도 찬성 정형외과에 오며 도로에서 가장 잘 보이는 병원이었기에.

“네. 오다가 봤어요. 생긴 지 세 달? 정도 된 것 같던데…….”

“정확한 건 아닌데, 거기로 환자가 새어 나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말했다.

“한의원으로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처에 다른 정형외과가 들어와 환자가 빠지는 경우는 꽤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한의원이 생겨 환자가 빠졌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정형외과와 한의원.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이 다른 병원이다. 진찰하는 방법도, 치료하는 방법도 모두 극명하게 다르기에.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나에게 대답했다.

“저도 처음에는 한의원으로 빠졌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점심시간에 병원 앞에 다니다 보면 저희 병원으로 늘 오시는 환자분들이 한의원으로 들어가시는 걸 자주 봤어요.”

“정말요?”

“네. 그렇다고 그분들을 붙잡고 왜 갑자기 한의원으로 가시느냐고 물을 수도 없고. 저희도 요즘 매출이 너무 줄어서 죽겠어요.”

“그러시겠네요. 저희 품목만 봐도 이렇게 매출이 떨어졌는데, 전체적인 매출 하락이…….”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원에서 우리 WG 메디컬의 품목을 다른 메디컬 회사로 갈아타려는 것이라면 회유를 하려고 왔지만, 매출이 빠진 것을 알아버린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물론 병원의 매출이 빠진 것을 내가 어찌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돌아가기에는 그저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눈으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찬성 정형외과에서 나와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한의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참된 한의원’.

새로 지어진 큰 신식 빌딩.

그 건물 2층에 위치한 참된 한의원.

간판도 압도적으로 커 저 멀리에서도 눈에 띄었다.

단순히 눈에 잘 띄고, 큰 건물이라고 해서 환자가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한의원 안에 들어가 내가 뭘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

우선 2층으로 올라가 한의원 앞을 지나가 보았다.

투명한 유리로 된 벽. 그 안으로는 북적이는 환자들이 보였다.

찬성 정형외과의 공급실 선생님 말이 맞는 듯했다.

심지어 점심시간인 지금, 휴진 시간 중임에도 환자들은 자리에 와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건물이 큰 터라 한 건물 안에 카페도 2개나 있었다.

1층과 8층.

1층 카페에 간다면 혹여나 찬성 정형외과의 관계자들이 지나가다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8층 카페로 향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조사차 이곳에 온 것이지만, 굳이 오해를 사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올라가 커피를 주문하고, 흡연실로 향했다. 한층 전체가 카페였고, 꽤 큰 곳답게 흡연실의 크기도 상당했다.

흡연실 안에는 의자 여러 개와 파티션과 같은 공간 분리가 되어 있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담배를 피우던 그때, 통화하며 흡연실로 들어오는 중년의 남자.

나는 흡연실 맨 끝쪽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중년의 남자는 나를 개의치 않고 큰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엄청 바쁘다니까? 지금도 점심시간 안 끝났는데, 벌써 환자들이 줄을 서 있어. 나 담배만 피우고 바로 내려가서 진찰 봐야 해.”

같은 공간 안에 있었기에, 그의 통화 소리는 당연히 생생하게 내 귀에 들어왔다.

“어. 맞아. 너도 그러고 있지 말고, 근처에 정형외과 있나 가봐. 그래. 환자 빼내 올 병원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니까?”

나는 담배를 피우는 둥 마는 둥, 그의 통화 소리에 집중했다.

그의 말을 듣자 하니, 그는 참된 한의원의 한의사 같았다.

근데 정형외과에서 환자를 빼 내오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지?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하. 환자들 말이야. 그게 좋은 줄 안다니까? 당장 효과가 있으니까.”

그는 뒤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갑자기 흡연실을 돌며 다른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개, 돼지…….”

그러다 내가 있는 벽 끝까지 오게 되었고, 그는 내 뒷모습을 보는 순간.

말을 뚝 잘랐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내 등을 보자마자 황급히 반대로 돌아갔다.

“어. 아니야.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래. 저번에 거기 사람 없어서 좋더라. 내가 살 테니까 여기로 와.”

나를 발견하고 뒷이야기를 멈춰버린 그.

나를 본 뒤에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진 남자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듣기 위해 담배를 입에서 빼내어 불을 껐다.

“술 약속 있어? 그래. 그럼 와서 커피나 하자고. 아니, 우리 건물로 오지 말고, 뒤에 타임 카페라고 있거든. 거기서 만나자.”

그는 흡연실의 자동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어. 6시까지 와.”

나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적었다.

‘6시. 타임 카페.’

그리고 그는 카페를 빠져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내려갔다.

한의사가 분명했고, 나는 그가 말하는 정형외과 환자를 빼내 오는 그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 * *

6시 10분.

나는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나와 참된 한의원 뒤 건물에 있는 타임 카페로 향했다.

그들의 약속 시간인 6시보다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 대화 내용을 처음부터 들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자리 근처에 앉아야 했기에 일부러 조금 늦게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보이는 중년의 남자 2명.

나는 그들의 테이블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아직 병원에 관한 이야기 전,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던 그때.

참된 한의원의 한의사 지인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야. 그래서 어떻게 정형외과 환자 빼 온 거야? 나 요즘 환자 없어서 죽겠어. 이러다가 망하게 생겼다니까.”

“너도 참.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우리 한의원 앞에 정형외과 봤지?”

“어. 그 찬성인가, 거기?”

“응. 거기 요즘 파리 날려. 다 우리 한의원으로 옮겼잖냐.”

“대단하다. 어떻게 정형외과 다니는 사람들을 빼앗아 온 거야?”

“거기뿐이겠냐. 여기 광주 광산구 쪽 정형외과 몇 군데는 내 덕에 환자 대신 파리만 날리고 있을걸? 하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고, 맞은 편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 광주 인터넷 카페에 입소문 나서 다른 구에서도 오기 시작했어.”

“그래서 뭔데. 같이 좀 먹고 살자.”

“그게…….”

각자 소파에 기대어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자세를 고쳐 서로에게 몸을 당긴 채 조용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몸을 그쪽 테이블로 살짝 움직여 집중했다.

“환자들한테 소문내는 거지.”

“소문?”

“어. 한의학으로 치료하면 바로 통증 없이 나을 수 있는데, 왜 정형외과에서 살을 째고, 수술을 하냐고.”

“응? 그걸로 된다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나 역시 참된 한의원의 한의사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연히 한의학과 양의학은 다른 부류의 의학이고, 그 누구도 무엇이 맞고 틀렸다는 판단할 수 없기에.

하지만 그의 양의학, 정형외과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환자들. 개돼지야. 특히 이쪽 동네 환자는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거든? 그리고 정형외과 자체에도 주된 환자층이 그렇잖아.”

“그렇지. 그 나이가 되면 뼈가 약해지기 시작하니까.”

“그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이거 하나 하잖아? 바로 입소문 난다니까.”

“그래서 그 비결이 뭐야?”

내가 묻고 싶은 질문.

이거 하나가 대체 무엇인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들의 대화 토씨 하나하나에.

“스테로이드 주사.”

나는 가슴속에서 나오는 헉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비결이 스테로이드 주사였다니.

스테로이드 주사는 정형외과뿐 아니라 여러 과목의 병원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약품, 주사다.

피부과에서 연고 등으로 많이 사용하는 약품이지만 정형외과와 같은 뼈에 관련된 과목에서는 흔히들 ‘뼈주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는 한다.

쉽게 말해 염증 억제 주사.

사람의 뼈에 통증이 오는 것에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염증이 생겨 아플 때는 스테로이드, 즉 염증 주사를 놓으면 염증성 통증이 빠르게 억제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억지로 중단시켜 염증 반응을 강제로 제거하는 것.

퇴행성 허리 디스크 등 염증성 통증을 일으키는 부위에 주사를 놓게 되면 즉각적으로 통증이 완화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부위가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통증을 완화 시키는 것, 그뿐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안 아프니까 다 나았다고 생각해 이후에 치료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통증이 찾아오면 주사를 맞고,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병원과 의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스테로이드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의사의 남용으로 인해 체내에 스테로이드 비율이 적정량을 넘어가게 되면, 면역력 파괴, 골다공증, 당뇨, 백내장 등 부작용이 엄청나다.

쉽게 설명하자면 약물 과다 복용으로 뼈가 완전히 약해진다는 것.

“스테로이드 주사? 그걸로 뭐?”

“아픈 환자들한테 그 주사 놓는 거야.”

“그건 그때뿐이잖아. 치료는?”

“말했잖아. 통증이 없어지니까 다 나은 줄 알더라고, 어르신들이. 그렇게 주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소문내고. 한의학이 최고네, 하면서 우리 한의원 지금 문전성시야.”

황당한 그들의 대화.

“그러니까 다들 왜 병원 가냐. 한의원 가야 한다, 라면서 입소문이 무섭더라고. 하하.”

뿌듯해하는 그의 말투.

그 뒤로도 그들의 황당무계한 대화는 계속되었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아침이 되자마자 찬성 정형외과로 향했다.

어제 들었던 참된 한의원의 한의사와 그 지인의 대화를 환자를 빼앗긴 찬성 정형외과 원장에게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자들을 잘못된 그 한의원에서 다시 되돌려 올 방법을 간구해야 했기에.

여전히 병원에는 환자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나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원장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원장님.”

“민 대리. 왔어?”

“안녕하십니까.”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래 봤는데 아직도 이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직원은 민 대리밖에 없을 거야. 하하.”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른 앉아.”

“넵.”

“우리 요즘 환자도 없어서, 발주한 거 없을 텐데. 무슨 일로 왔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는 진지한 내 표정에 덩달아 웃음기를 빼고 내게 물었다.

“무슨…….”

“참된 한의원에 대해서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급히 왔습니다.”

“앞 건물에 있는 참된 한의원 말하는 건가?”

“예.”

그는 의자에 기대어 있던 허리를 세워 책상에 양 팔꿈치를 대고 나를 바라보았다.

“원장님도 알고 계셨죠? 병원 환자들 참된 한의원으로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런 것 같더라고.”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제가 알아 왔습니다.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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