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8화 (78/339)

78화

“네?”

나는 데시벨을 낮춰 묻는 박승철 원장의 목소리에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수에서 우리가 받던 업체. 거기 직원이 문제가 있었거든.”

내 예상과 그리고 읽어버린 그의 속마음 덕에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문제요? 무슨…….”

그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간호사들을 쌩 무시했어. 나한테는 정말 잘했거든. 그래서 몰랐지, 간호사들한테 그러는 줄.”

내 생각이 맞았지만, 그에게 직접 육성으로 들으니 더욱 놀라웠다. 아무리 의사와 일을 하기는 하지만 간호사를 무시했다는 점이.

“처음에 간호사들이 몇 이야기하더라고. 메디컬 직원이 이상하다고. 그래도 그냥 바빠서 그랬겠지. 그리고 그 착한 줄 알았던 직원이 그랬을 줄도 전혀 꿈에도 몰랐고.”

그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엄청난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에게 물었다.

“엄청 심했었나 보네요.”

“어. 그전에는 지나가는 일인 줄 알았지. 근데 간호사 한 명이 어느 날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면서 눈물을 보이더라고.”

“울기까지요?”

“응. 아무리 가까워도 내가 의사라 나한테 거리를 느껴서 간호사들이 이야기를 제대로 못 했나 보더라고. 못 참고 간호사 한 명이 왔던 거야.”

그는 앞에 놓인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때 알았지. 내가 잘못 대처했었구나. 진짜 그 직원이 이중인격인 것 같을 정도로 심하더라고. 간호사가 연락하면 나랑 이야기하겠다, 간호사들이 뭘 아냐, 이런 식이었나 봐.”

“와.”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그의 이야기에 나는 깨달았다. 지금도 늘 모든 이들에게 잘하려고 하지만,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 라는 생각.

간호사들을 무시한다는 그 직원의 태도에 나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을 볼 때 인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지. 그 직원이 그럴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그러셨겠네요.”

“근데 민 대리를 짧은 순간 지켜보니까, 바로 알겠더라고. 지난번에 간호사들한테 커피도 사다 줬다며?”

여천 정형외과에 두 번째 들릴 때 사 왔던 커피.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 있는 박 원장.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알게 되어 있지. 하하. 아무튼 작은 거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 많지 않아. 간호사들, 그리고 다른 의료진들한테도 민 대리 가족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대해 줘.”

“알겠습니다.”

“우리 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 가서도 그렇게 한다면 마다할 의사 아무도 없을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나는 입꼬리를 최대한 올려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을 대신했다.

* * *

사무실로 곧장 복귀 후, 자리에 가방을 내려둘 틈도 없이 바로 스케줄 칠판 앞으로 향했다.

여천 정형외과에서 소모품을 납품받기로 하고, 기쁜 마음에 광주로 올라오던 중, 박 원장에게 수술 케이스가 잡혔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 수술 케이스를 적기 위해 스케줄 판으로 향하는 한 걸음마다 내 어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술 날에 맞춰 스케줄 판에 ‘여천 정형외과 TKR’이라는 글씨를 크게 써 보였다.

[TKR : Total Knee Replacement, 무릎 인공 관절 치환술]

작은 트라우마 수술이 아닌 인공 관절 수술을 첫 케이스로 받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칠판에 적는 글씨 포인트가 커져 있었다.

보드마카 뚜껑을 닫기도 전에 다가오는 직원들.

“뭐예요? 여천 정형외과 결국 따낸 건가?”

“와, 민 대리님 축하드려요.”

축하를 해주는 직원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사무실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하나씩 스멀스멀 일어나 칠판으로 다가왔다.

“뭔데?”

“뭐야? 무슨 좋은 일 있어?”

“민 대리님이 여천 정형외과 영업 성공하셨대요.”

“보세요. 인공 관절 수술 잡혔어요.”

내가 한마디 대답할 틈도 없이 직원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직원들의 축하에 인사를 한 뒤에야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칠판 쪽을 바라보고 있던 최준성 과장.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심기가 불편한 듯 숨을 깊게 내뱉으며 급히 내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담배를 자리에서 들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통쾌했다. 그가 못해 냈던 영업을 내가 보기 좋게 따내어 왔다는 뿌듯함과 그가 내 모습을 보고 급하게 꽁무니를 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그때, 내 어깨에 손을 얹는 사람. 바로 김 대표였다.

“대표님!”

나는 그의 손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민 대리. 여천 정형외과 영업 성공했다며.”

“네. 자리에 안 계시길래, 들어오시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어. 밖에 나갔다가 장 이사 전화 받았어. 잘했다.”

그는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띠었다.

“믿고 맡겨봐 달라더니, 이렇게 금방 해낼 줄은 진짜 몰랐네.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일정이랑 품목은 정리되는 대로 보고해 주고.”

“넵. 지금 서류 작성 중인데, 되는 대로 손 차장님에게 보고 올리겠습니다.”

나는 사수인 손 차장에게 보고를 한다. 그리고 차례로 그 위로 올라가는 거지.

평소 주간 회의나 월말 회의가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보고서 형태로 업무 보고가 진행된다. 그렇게 결재판은 돌고 돌아 김 대표의 자리로, 그리고 김 대표의 눈으로 들어가는 것.

그만큼 그 결재판이 도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모든 직원이 사무실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에, 담당자가 사무실에 들어와 결재판의 보고서를 확인 후 서명한 뒤 윗선에 올라가기 때문.

그래서 나는 내 담당 손지혁 차장에게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니. 바로 나한테 줘.”

“네? 다이렉트로 올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의 말에 나는 눈이 커져 김 대표에게 되물었다. 그냥 서류만을 단순히 보고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여천 정형외과에 관한 단가와 내용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여 낮은 직책부터 차례로 올리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차장, 부장, 이사, 대표 순으로 서명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서류에 이상이 있을 때 대표에게 올라가기 전 반려를 시키기 위해서이다.

요즘 회사에서는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수직 관계의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

회사 내에서는 질서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회사의 최종 보스인 김 대표에게 올라가는 보고 서류는 완벽해야 한다.

그 최종 보고서가 올라가기 전까지 내 결재판은 곧이곧대로 올라가지 않고 반려가 되어 내려오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고서가 반려되는 이유는 대부분 품목 선정과 단가 문제다.

병원만을 만족시키면 되는 단가와 품목이 아닌, 회사의 이윤이 남으며 병원도 만족시킬 만한 품목과 단가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내가 선택해 작성한 보고서가 위로 올라갈수록 굉장히 상이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많은 반려와 재보고를 통해 장홍석 이사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제야 서류는 김 대표의 책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단계를 건너뛴 채 자신에게 다이렉트로 보고를 하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 내가 바로 봐줄게.”

“그렇지만…….”

나는 그의 말에 바로 알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아래 직원의 입장에서는 그 수많은 반려와 재검토, 재보고라는 수도 없는 계단을 건너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올라갈 수 있기에 기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주변 직원들에게, 그리고 선임들에게도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라는 곳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사는 곳이기에 절차를 무시하고 올라가면 자칫 큰 병원 몇 군데 성공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왜 좀 부담스러운가?”

김 대표 역시 사회생활을 오래 해온 인물이기에 망설이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내게 재차 물었다.

“생각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한데요.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대표님께 올릴 서류라 제가 선배님들께 검토 한 번만 받고 올려도 괜찮을까요?”

그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에 기분이 나쁜 것은커녕, 되려 내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그래. 그럼 다른 서류들보다 조금 일찍 봤으면 좋겠네.”

“네. 최대한 빨리 검토 돌리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대표실로 향해 들어갔다.

모두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대처해 냈다는 사실에 나는 뿌듯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리에 앉기 전, 나는 커피를 타기 위해 탕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원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 잠을 깨기 위해? 피곤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모두 아니다.

회사원이 커피를 달고 사는 이유는 바로 살기 위해서이다.

커피가 없이 살 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회사원.

커피를 온몸에 수혈하기 위해 커피 향이 가득한 탕비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탕비실에는 홍 대리와 백태석 두 명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둘은 커피를 들고 있지도,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홍 대리는 내 인사에 고개를 한 번 까딱임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백태석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홍 대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 풍기는 분위기는 한눈에 보아도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태석의 담당 사수가 홍 대리인 것을 알기에 사수에게 혼나는 백태석을 옹호하거나 대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어서 커피를 내려서 나가기 위해 커피 머신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한 공간에 있기에 들리는 그들의 대화.

“그게 어떻게 허세고 겉멋이냐.”

홍 대리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백태석을 향해 황당하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여쭤봤습니다.”

백태석은 홍 대리의 말에 고개는 바닥으로 떨구고 있었지만 대답은 꼬박꼬박 해내고 있었다.

“그런 말이 무식하다는 생각은 못 해?”

나는 ‘무식’이라는 홍 대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커피 머신에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공부한다 생각하고 외우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알아야…….”

“그니까! 네가 뭘 알아야 가르칠 거 아니야. 그리고 너는 생각이 없냐?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야?”

“…….”

“내가 이쪽 업계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신입 직원들 봐왔지만, 너처럼 멍청하게 묻는 직원은 처음 봐.”

홍 대리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 갔고, 대화의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 대화의 앞뒤 상황은 모르겠지만 백태석이 홍 대리에게 혼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단어 선택의 수위가 점점 세져 가는 홍 대리를 보며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치고, 실수했을 때 따끔한 소리는 할 수 있지만 무식하다느니, 생각이 없다느니, 인성 모독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들어버린 이상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홍 대리는 나와 같은 대리 직책이지만, 나보다 먼저 들어온 선임이었고 그의 후임인 백태석 앞에서 그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커피를 급하게 한 잔을 더 내려받았다.

그동안 그들의 대화는 점점 거세졌고, 백태석은 점점 의기소침해지며 얼굴이 빨개져 가고 있었다.

“하, 무식하긴……. 됐다. 너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그 순간 백태석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홍 대리를 쏘아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