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뭐가 수상해?”
박승철 원장의 아내는 그의 말에 턱을 당기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이상하잖아. 갑자기 광주에서 있는 사람이 여천 보육원에서. 게다가 당신이랑 마주치니까 말이야.”
그녀는 박승철의 이야기에 실소를 터트렸다.
“당신도 참. 의심할 일도 많다. 당신이 온 것도 아니고 나랑 마주친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지만,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지훈 씨는 나 자기 와이프인 거 몰라.”
“그래? 근데 민 대리가 자기 메디컬 직원이다, 뭐 당신은 어떤 일 하는지 그런 이야기는 안 주고받았어?”
“어. 메디컬 직원인 것도 보육원 원장이 말했는데, 나한테는 한마디도 이야기 안 했어.”
빨간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그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액셀로 옮겼다.
“게다가 지훈 씨, 여천 보육원에 나보다 더 오래된 봉사 활동자더라고.”
“정말?”
그는 낮은 속도 덕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물었다.
“어.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던 보육원이래. 진짜 사람 괜찮더라.”
박 원장은 지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 어린 시절에 봉사 가던 보육원을 이렇게 굳이 찾아오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보육원 원장님이랑도 잘 아는 사이 같더라고. 요즘 젊은 친구들이 누가 주말에 자기 시간 빼서 이렇게 봉사 활동을 오겠어.”
그녀의 계속되는 민지훈 칭찬에 박 원장은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칭찬에 공감하는 듯한 표정.
“당신이랑은 잘 아는 사이야?”
“승호 있지?”
뜬금없는 등장인물에 그녀는 운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서방님?”
박승철 원장의 동생이자, 그녀의 서방님.
“어. 승호가 거래하고 있는 직원이야. 그래서 승호가 나를 소개해 줬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여수까지 왔구나.”
“응. 그래서 한창 영업하러 오는데, 아무튼 좀 의외네.”
그녀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 대리, 당연히 봉사 활동 처음 오는데 우연히 마주쳤겠다, 싶었는데. 사람 괜찮네.”
그들은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민지훈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 *
나는 간만에 휴대폰 알람 대신 하늘에 떠 있는 밝은 태양의 빛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행복한 주말 아침을 만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 번째 일과, 휴대폰 보기.
밤새 일어난 세상 돌아가는 일들과 나를 찾는 연락이 있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다.
여러 개의 문자가 쌓여 있었고, 나는 곧바로 문자 수신함을 클릭했다.
어디서 내 정보가 새어나가 퍼져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오는 스팸 문자들.
손으로 스윽 화면을 내려 읽지 않은 나머지 메시지를 확인해 나갔다.
방금 일어난 탓에 흐릿한 시야, 그 사이로 들어오는 멀쩡한 메시지 하나.
나는 졸린 눈을 박박 비비고, 그 메시지를 클릭했다.
[발신인 : 여천 정형외과 박승철 원장]
[민 대리. 아직 여수면 내일 아침에 병원 좀 들렀다가 광주 넘어갈 수 있나?]
정신만 일어나 있던 나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뭐지? 주말에 굳이 연락해서 내일 병원에 들르라는 이유가? 봉사 활동 작전이 먹힌 건가.’
나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기쁜 마음을 겨우 주체하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회사 서류 가방을 펼쳤다.
나를 부른 이유는 당연히 일 때문이라는 생각에 물건 카탈로그와 견적서를 한 번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어서 다음 날이 되어 박 원장을 만나 영업 성공을 하고 싶었을 뿐.
* * *
아침 일찍 일어나, 손지혁 차장에게 병원으로 직출한다는 연락을 남긴 후 여천 정형외과로 향했다.
월요일이 기다려졌던 건 오랜만이었다.
병원 정문 쪽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동을 끈 채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혹시나 물건을 발주할 수도 있겠다, 라는 설레는 마음에 생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기 때문.
일찍 도착해 병원에 들어가기에는 박 원장이 출근 전일 것이기에 차 안에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직원들을 살펴보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로 보이는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고, 직원 차와 병원 셔틀버스도 주차장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병원 정문 길 건너에서 큰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큰 상자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얼굴. 그녀는 여천 정형외과에 갈 때 몇 번 마주쳤던 원무과 간호사였다.
나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앉아 있던 상태라 재빨리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냥 모른 척하고 차에서 쉬어도 됐지만 여천 정형외과의 정문은 병원 들어가는 입구 문과 굉장히 먼 탓에 지켜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 도중 그녀는 큰 짐이 버거웠는지 결국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선생님!”
빠른 걸음으로 걷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달려가며 그녀를 불렀다.
바닥에 널브러진 의료용품과 비품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내 부름을 듣지도 못하고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
나는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떨어진 물건을 함께 줍기 시작했다.
상자를 당겨 한 손으로 물건을 담아 채워 나갔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그녀.
“어! 민 대리님.”
“괜찮아요?”
“물건이 쏟아져서……. 깨진 건 없겠죠?”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안 다치셨어요?”
그녀는 그제야 상자에 찧은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아……!”
“제가 짐 정리할게요. 일어나세요.”
나는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보내며 짐을 모두 담았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세요?”
진정이 된 그녀는 내게 물었다.
“원장님 뵈러요. 아니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들고 오세요.”
나는 짐을 든 채 앞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저 주셔도 돼요. 이제 괜찮아요.”
그녀는 손을 뻗어 내게 짐을 달라며 말을 했다.
“이렇게 무거운데 어떻게 들고 오셨어요.”
그녀는 팔이 아팠는지 양팔을 번갈아 가며 주무르기에 바빴다.
“안쪽에서 내려달라고 했는데, 택시가 정문에서 내려주지 뭐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탄식을 자아냈다.
“게다가 내려서 주변 둘러봤는데, 하필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고. 감사해요.”
“아니에요. 들어가시죠.”
나는 양손으로 상자를 들고 있던 탓에 눈짓으로 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병원 입구로 들어오는 문 앞.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가 유리문을 열어 잡기 위해 뒤로 돌았다.
“어? 원장님.”
우리 뒤에 있던, 지금은 내 뒤에 있는 사람.
바로 박승철 원장이었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걸어오는 동안 계신 줄 몰랐어요.”
그녀는 박 원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왔어.”
나는 그의 목소리에 상자를 들고 그대로 뒤로 돌았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나를 위아래로 쓰윽 훑어보며 내 인사를 받았다.
“짐 내려놓고 바로 내 방으로 와.”
“넵.”
그는 좁은 통로에 몸을 옆으로 돌려 내 앞으로 먼저 지나쳐 진료실로 향했다.
“짐은 여기에 내려놓으면 될까요?”
“네. 정말 감사해요, 대리님.”
나는 짐을 내려놓고 숨을 가쁘게 몰아 내쉬었다.
“괜찮아요. 저 그럼 원장님 뵈러 들어가 볼게요.”
짐의 무게가 상당했기에 나는 진료실 입구에서 숨을 고르게 만든 후에 문을 두드렸다.
똑똑.
“원장님.”
“어. 민 대리 어서 들어와.”
“여기 앉으면 될까요?”
나는 박승철 원장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에이, 세 번째 온 것 같은데 좀 편하게 앉아.”
“그래도요. 하하.”
“근데 오늘 엄청 일찍 왔네?”
“네. 원장님이 문자 주셨는데 당연히 제가 먼저 와서 기다려야죠. 하하.”
“어제는 부모님 댁에 있었어?”
“예. 오랜만에 부모님이랑 같이 시간 보냈습니다.”
나는 박 원장과 주말 내 있었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똑똑.
그때 들리는 박 원장 진료실의 노크 소리.
“누구지? 들어와요.”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조금 전 내가 도와주었던 그녀. 그녀는 양손에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 나누시길래, 제 것 사면서 같이 샀어요. 드세요.”
그녀는 커피를 책상 위에 두 잔 올려놓으며 말했다.
“감사해요.”
“고마워.”
나와 박 원장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까 저 입구에서 민 대리님이 도와주셨거든요. 감사해서…….”
그녀는 내가 아닌 박 원장을 바라보며 커피를 사 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박 원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덕분에 나도 박 간호사한테 커피를 얻어먹네. 고마워.”
“아닙니다. 잘 마실게요, 선생님.”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그녀가 나가자 박 원장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 대리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네.”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그의 이야기에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승호가 민 대리 일 잘한다고만 했지. 사람 인성이 이렇게 좋은 걸 왜 말 안 해줬나 몰라.”
“하하, 아닙니다. 인성은요.”
“그날 봉사 활동도 그렇고, 오늘도 사실 병원 들어올 때 차에서 민 대리가 박 간호사 보고, 차에서 달려 나오는 거 봤거든.”
“아…….”
그는 병원 정문 신호에 걸려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모양.
“나는 단가고, 물건 질이고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와 일하는 사람의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할 때, 강한 사람 앞에서 약하고, 약한 사람 앞에서 강한 거. 그게 제일 못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나는 그에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한 표정과 진중한 말투로 하는 이유가 뭘까.
“마치 나한테는 아부란 아부는 다 떨고 간호사들한테 막 대하는 거, 그게 제일 꼴불견이라는 말이야.”
늘 궁금했던 점. 여천 정형외과 박승철 원장이 여수의 메디컬 업체와 손절하고, 업체를 바꾸려고 하는 이유.
혹시 ‘인성’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며 그를 바라보는 순간.
들려오는 그의 마음속 소리.
[거래처 직원 그놈은 허구한 날 간호사들 개무시하고, 나한테 비비느라 바빴는데. 어휴. 거래처 바꾸길 잘했지, 잘했어. 꼴도 보기 싫은 놈.]
맞았다. 내 생각이. 거래처를 바꾼 이유가 직원의 인성 탓이었다는 것.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속으로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죠. 그게 인성이 잘못된 거죠.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잘 보이려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요.”
그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서랍 속 파일을 하나 꺼내었다.
그 파일에는 박 원장이 직접 작성한 서류가 들어 있었다.
“이게…….”
나는 입을 열다 파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내가 그에게 추천해 건넸던 물품 목록과 동일한 목록표였다.
“내가 필요한 물품으로 추렸어. 그리고 수량도 체크 했고.”
나는 그의 말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따냈다. 드디어 여천 정형외과 건이 성공했다!
이 큰일에 기뻐서 말이 나오지도 않을 정도.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품목들도 넣었어. 다음 주까지 가능할까?”
나는 다음 주까지 가능하냐고 묻는 그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반으로 꽉 접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앉아, 민 대리. 아직 이야기 덜 끝났다고.”
“넵.”
나는 그의 말에 자리에 앉아 그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할 수 있겠어? 우리 수술도 많고, 물품도 많을 거야. 내가 가까운 업체가 아닌 광주에서 처음 물건을 받으려고 하다 보니까, 공급이 원활할지가 걱정이 되더라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광주에서 여수로 오는 시간과 비용. 이 정도의 거래처라면 그 모든 시간과 비용을 뛰어넘을 테니.
“가능합니다. 작은 수술 하나에도 차질 생기지 않도록 바로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는 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날리더니 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