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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6화 (76/339)

76화

바로 보육원 원장이었다.

“원장님!”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지훈아. 정말 오랜만이다.”

“원장님,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악수를 청했다.

“잘 지냈어?”

“저야 잘 지냈죠. 원장님은 어쩜 이렇게 나이를 하나도 안 드세요. 오히려 더 젊어지신 것 같은데?”

“어머. 얘는! 하하. 아무튼, 얼른 들어가서 더 이야기하자.”

그녀를 따라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장실은 몇 년 전과 변한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벽지, 테이블, 원장님과 그 특유의 분위기까지.

지금 이곳에서 바뀐 것이라고는 훌쩍 커버린 나 혼자만인 것 같았다.

“전화로 예약했던 게 너였구나. 나는 이름 보고 너 맞나 했거든.”

“와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하하.”

“너무 반갑다. 얼른 앉아.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아니에요. 자주 왔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광주로 취직하고 난 후에는 사는 게 바빠서 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죄송은 뭘. 이렇게 꾸준히 찾아와 주는 녀석도 없지. 너무 반갑다.”

나는 그녀와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대화들을 한참이고 쏟아냈다.

30여 분의 대화 끝에 그제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은 보육원에 온 봉사 인원이 나뿐이었기에 홀로 2시간가량 보육원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던 그때 보육원 입구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 모양.

나와 보육원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함께 향했다.

멀리서 보이는 5명의 무리. 나는 여천 정형외과의 박승철 원장이 드디어 왔구나, 라는 생각에 재빨리 그 무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5명 중 3명이 남성이었고, 가까이 다가올수록 보이는 선명한 얼굴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박승철 원장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선을 남은 2명의 여성에게 옮겼다. 그 2명 중 한 명의 여성에게 나는 시선이 꽂혔다.

‘어?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는데.’

기억을 되짚어 생각의 회로를 돌려댔다.

허공을 보며 눈을 굴리고 있던 그때.

“어머, 오셨어요?”

내 옆을 지나쳐 그들에게 향하는 보육원 원장.

“잘 지내셨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차가 막혀서, 얼른 시작해야죠.”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가네요. 이따가 간식 드시려면 얼른 시작하셔야겠는데요?”

그들과 짧은 인사를 끝으로 구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보육원 봉사 활동은 아이들만 보살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들은 많고, 케어를 해야 할 인원이 늘 부족한 이곳. 일손이 부족하고 바쁜 보육원은 봉사 활동자들이 왔을 때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일들을 도움받고는 한다.

아이들이 놀며 망가진 작은 가구 보수부터 대청소, 그리고 인원이 많은 만큼 나오는 큰 이불 빨랫감들.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여러 명의 봉사 활동자들이 오면 구역을 나눠 빨리빨리 처리하고는 한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시는 그룹, 가구와 벽지 보수도 해야 하고, 그리고 화장실과 쓰레기장 쪽 청소도 해야 하는 날인데,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요?”

보육원 원장은 해야 하는 일을 노트에 적으며 물었다.

나는 구역을 듣자마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제가 화장실과 쓰레기장 쪽 하겠습니다.”

세 곳의 구역 중 가장 힘든 구역이 화장실과 쓰레기장이었다. 굳이 마지막까지 남아 쉬운 구역을 갈 생각은 없었기에 재빨리 손을 들어 가장 힘든 구역을 택했다.

내 말을 필두로 삽시간에 구역이 정해졌다. 화장실과 쓰레기장은 나와 낯이 익은 그녀, 그리고 보육원 원장.

이렇게 3명이 함께 이동했다.

힘든 구역인 만큼 우리 세 명은 초반에 아무 대화 없이 청소를 이어갔다.

“우리 좀 쉬었다가 할까요?”

보육원 원장의 외침.

가뭄의 단비 같은 달콤한 한마디였다.

화장실 밖으로 나와 바닥에 털썩 앉아 간식으로 나온 빵과 주스를 먹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던 그때, 떠오르는 그 시절 기억.

“원장님. 그러고 보니까 선영이가 안 보이던데. 어디 갔어요?”

보육원 봉사 활동을 한창 오던 시절, 나를 유독 따르던 아이가 있었다.

“잘 지내죠? 이따가 가기 전에 보고 가야 하는데.”

그녀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맞다. 선영이가 어릴 때부터 너를 정말 잘 따랐었지. 선영이, 부모님이 오셨었어. 그래서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내 일처럼 기뻐하며 대답했다.

“진짜 잘됐네요.”

“그러게. 선영이가 너 처음 봉사 올 때부터 유독 따랐었잖아.”

“하하, 맞아요. 그때 정말 어렸었는데.”

그때 내 오른편에 앉아 있던 낯이 익은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어머, 선영이를 아시는구나.”

그녀의 말에 보육원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훈이가 선영이 정말 어릴 때부터 봐왔거든요.”

“그렇구나. 그러면 여기로 봉사 활동 다니신 지가 꽤 됐나 보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던 곳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낯이 익은 그녀는 놀라 입을 열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저도 여기로 봉사 활동 다닌 지 꽤 오래됐는데, 한 번도 못 뵀었네요.”

“제가 사회 생활하러 광주로 올라가는 바람에 최근에는 못 와서 그랬나 봐요.”

우리의 대화에 보육원 원장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어머, 그러네. 사모님도 우리 보육원에 오신 지 꽤 됐는데. 지훈이 어릴 적에는 주말에 오고 사모님은 거의 평일에 오시느라 마주친 적이 없었겠네요.”

나와 그녀는 보육원 원장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모님, 그러고 보니까 오늘 원래 남편분도 같이 오시기로 하셨던 거 아니에요? 아까 보니까 안 계시는 것 같길래…….”

그녀는 원장의 물음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원래 오늘 같이 오기로 했었는데, 아침에 갑자기 병원에서 긴급 수술이 생겼지 뭐예요. 어쩔 수 없어서 오늘은 다른 지인분들만 같이 왔어요.”

“맞아. 남편분이 의사라고 하셨었죠?”

“네. 못 와서 너무 아쉽다고,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수술? 의사?

맞다, 생각났다!

그때 뇌리를 스치는 사진 하나. 바로 여천 정형외과 박승철 원장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가족사진.

가족사진에 박 원장 옆에 앉아 있던 아내, 그 아내가 바로 이분이었던 것.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고 하는 감탄사를 겨우 눌러냈다.

그때, 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보육원 원장.

“그러고 보니까 지훈이가 메디컬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었지?”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아요.”

“어머. 잘됐다. 사모님 남편분이 여수에서 의사하시거든. 지훈이는 병원 의사 선생님들한테 영업하는 일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모님한테 말씀드려 봐.”

나는 그녀의 말에 영업 멘트가 튀어나오려 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멘트를 꾹 삼켜냈다. 그리고 능청스레 아닌 척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그러면 사모님도 부담스러워하실 거에요. 저도 오늘은 일 내려놓고 머리 비우러 봉사 활동 왔는걸요.”

옆에 앉은 그녀들은 내 말에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훈이도 참. 애가 이렇게 똑 부러진다니까요?”

“그러게요. 젊은 나이에 이렇게 시간 내서 봉사 활동 오시는 것 보고 대단하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닙니다. 오히려 봉사 활동 오면 제 기분이 더 좋더라고요.”

나는 그녀들의 칭찬에 머쓱해 웃으며 대답했다.

“지훈이가 대학교 간 뒤에도 꾸준히 봉사 활동을 왔었어요.”

보육원 원장은 박 원장 아내에게 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빵과 주스를 다 먹을 때까지 그녀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뒤 바깥에 뛰노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초록빛이 가득한 잔디밭 위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얼마 만에 듣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인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광주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영업 일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오던 내게 봉사 활동은 내가 도움을 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닌, 내가 위로와 힐링을 받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뒤로 누군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훈 씨. 저희 갈 건데, 같이 나가요.”

박 원장의 아내, 그리고 그 지인들이 환복을 마친 후 나온 모양.

“네. 저도 정문에 차 있어서, 같이 가요.”

보육원 원장이 입구까지 나오며 우리를 배웅했다.

“원장님. 다음에는 늘 같이 오던 친구들 데리고 또 올게요.”

“그래. 다들 보고 싶다고 전해 줘.”

그녀는 악수하는 내 손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아쉬워하는 표정의 원장. 나는 그런 그녀에게 또 오겠다는 이야기를 연신 하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문에서 몇 분을 걸어 올라가야 있는 보육원. 우리 6명은 함께 올라왔던 그 길을 다시 내려갔다.

정문을 빠져나와 옆에 마련된 주차장.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한 명씩 주고받으며 차로 향하는 그때.

“민 대리!”

익숙한 목소리와 낯익은 검정 세단.

박승철 원장이었다.

“박 원장님?”

빼꼼 열린 자동차 창문으로 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몸을 기울여 그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자 차 문을 열고 나오는 박승철 원장.

“어머. 여보, 여기는 무슨 일이야?”

내 옆에 있던 박 원장의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나 수술 끝나고 당신 모시러 왔지.”

그는 아내에게 다정한 남편이었다.

“근데 당신이 지훈 씨를 어떻게 알아?”

그녀는 상당히 놀랐는지 눈이 커져 나와 박 원장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박 원장님 사모님이셨구나.”

“뭐야? 둘이 어떻게 같이 있어?”

박 원장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찌푸려 이야기했다.

“오늘 봉사 왔다가 만났지. 어머, 근데 이런 인연이 있네.”

“그러게. 세상 좁다, 좁아.”

둘은 누가 부부 아니랄까 리액션 마저 똑같았다.

“근데 민 대리는 여기까지 봉사 활동 온 거야?”

“네. 저 본가가 여수라…….”

“맞다. 여수라고 했었지.”

그는 그제야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스윗한 남편이시네요. 이렇게 사모님 마중도 나오시고.”

나는 박 원장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럼. 우리 와이프 모시러 와야지.”

“오늘 피곤했을 텐데, 얼른 들어가요. 오늘 지훈 씨 여기서 막내여서 제일 고생했어.”

“아닙니다. 즐거웠어요.”

나는 그녀에게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래? 얼른 들어가서 쉬어. 바로 광주 올라가는 거야?”

박 원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오늘까지 자고 내일 일요일에 올라가려고요.”

“응. 그럼 어서 집 들어가서 푹 쉬고. 연락할게, 민 대리.”

“넵.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모님, 원장님!”

* * *

“여보.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지? 정말 신기하다.”

“그러게. 세상 참 좁네. 이래서 어디서든 행동 똑바로 해야 한다니까?”

박승철 원장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며 아내에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오늘 궂은일 다 도맡아서 해서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아무튼 정말 신기하다. 당신네 병원에 영업 오는 사람이라고?”

“어. 내가 더 놀랐어. 익숙한 얼굴이 당신이랑 같이 나오니까.”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빨간불, 신호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는 박 원장.

“근데 민 대리 쟤 수상한데?”

그는 미간에 힘을 주고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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