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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4화 (74/339)

74화

퇴근 후 모던 정형외과 근처로 향했다.

김사랑 원장에게 시간과 술집 장소를 문자로 받았기에, 늦지 않게 서둘러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김 원장에게 받은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이미 자리에는 명의 병원의 박승호 원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민 대리 왔어?”

나는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원장님 일찍 오셨네요?”

“어. 나 오늘 오전 진료였거든.”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야. 나도 온 지 5분도 안 됐어.”

테이블에 세팅이 되어 있는 밑반찬과 술.

나는 술병을 들어 그의 술잔에 따라 부으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저 오늘 오전에 여천 정형외과 다녀왔습니다.”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술병을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그래. 안 그래도 점심때 형한테 전화 왔더라.”

내 이야기를 했다는 박승철 원장과의 통화에 눈이 동그래져 박 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술병을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민 대리 왔다 갔다고. 자료랑 받았다고 하더라고.”

“역시 원장님이랑 닮으셨더라고요. 하하.”

“에이, 내가 더 잘 생겼지.”

박 원장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여천 정형외과의 영업에 대해 물었다.

“원장님. 그런데 이미 소문이 많이 났는지 광주 여러 메디컬 회사에서 영업을 다녀갔나 보더라고요.”

박 원장은 미간에 힘을 주며 내게 물었다.

“그래? 내가 알기로는 형이 다른 업체에 이야기 안 한 거로 알고 있는데.”

“네. 저도 여쭤봤더니 다른 원장님들께서 이야기하셔서 광주에 몇 군데 업체에 소문이 퍼졌나 보더라고요.”

그는 입술을 삐죽이며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아, 내가 밀어준 게 민 대리라, 민 대리가 따냈으면 좋겠는데.”

그의 말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말씀만이라도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다.”

“박 원장님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나는 소주가 가득 차 있는 잔을 들며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 역시 소주잔을 들고 내 잔과 부딪히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소주를 입에 털어 마시고 젓가락으로 앞에 놓인 반찬을 집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형이 사람 됨됨이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 됨됨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응. 물론 사람 인성을 중요하게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 형은 유독 사람 인성을 많이 보더라고.”

“그런 거라면 제가 딱 자신 있습니다. 하하.”

인성이라…….

여수에 메디컬 회사가 어떤 이유로 떨어져 나갔는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이유 중에 ‘인성’이라는 면에서 탈락이 된 것이라면 나에게도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민 대리가 사람 됨됨이 훌륭하지.”

나는 그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힌트 하나 줄까?”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솔깃한 주제를 던졌다.

“정말요? 저야 어떤 내용이든 완전히 감사하죠.”

나는 박 원장 쪽으로 몸을 기울여 경청하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형수님이 봉사 활동을 좋아하셔.”

“박 원장님 사모님이요?”

뜬금없는 박승철 원장의 아내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형수님도 형이랑 똑같으시거든. 인성, 그래서 봉사 활동 자주 다니셔. 점수 한번 따보라고.”

“봉사 활동이라…….”

박승철 원장도 아닌, 그의 아내 취미인 봉사 활동으로 어떻게 점수를 따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우리가 앉아 있는 룸의 문이 열렸다.

“늦어서 미안.”

들어오는 두 사람.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과 김사랑 원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오는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 원장은 테이블 위를 스캔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둘이 한잔했네? 우리가 너무 늦었나?”

“아닙니다. 박 원장님이랑 이야기 나누고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하하.”

안 원장과 김 원장은 자리에 앉아, 통성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둘은 처음 보는 거지? 여기는 명의 병원의 박승호 원장. 곧 우리 병원으로 올 예정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박승호라고 합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박 원장과 김 원장 사이의 어색함이 풀려갈 때쯤, 어색함이 풀린 만큼 술병이 쌓여 가고 있었다.

“박 원장님은 언제 모던 정형외과로 넘어오시는 겁니까?”

“나는 아무래도 다음 주나 늦어도 다다음 주에는 넘어갈 것 같아.”

“예상보다 일찍 넘어오시네요?”

“어. 일정이 그렇게 됐어.”

술기운이 올라오던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열어 박 원장의 일정에 대해 메모했다.

그때 반쯤 풀린 눈을 하고 나와 김사랑 원장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면서 씨익 웃는 안국환 원장. 나는 그런 그의 눈과 마주쳐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김 원장.”

“네. 원장님.”

“김 원장이 올해 나이가 몇이지?”

나 역시 궁금했던 김사랑 원장의 나이.

시선은 따라가지 않았지만 귀는 쫑긋 세워둔 채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30대죠. 민 대리님보다도 더 많아요.”

“그래? 둘 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없으면 한번 만나봐. 잘 어울리는구먼.”

“에이, 원장님. 저희 친구 먹기로 했습니다. 하하.”

김 원장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 원장에게 대답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민 대리가 열심히 꼬셔 봐.”

“하핫. 김 원장님 꼬시기에 너무 과분하시죠.”

내 말을 들은 김 원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민 대리님 정도면 정말 괜찮지. 왜, 자신감을 가져봐. 하하.”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가득 머금은 채 나를 보며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자리가 마무리되고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꺼내는 안국환 원장.

“아닙니다, 원장님. 오늘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안 원장의 카드를 회수해 그의 손에 쥐여준 채 내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내밀었다.

“잘 먹었어. 민 대리.”

박승호 원장은 한쪽 손을 들어 내게 보이고는 먼저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내일 아침에 첫 케이스로 수술이 잡혀 있어서 먼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계산 후 함께 가게에서 나온 안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동조하며 나는 대답을 했다.

“그럼 저희도 다 같이 정리하고…….”

내 이야기가 끝나기 전, 말을 자르는 박승호 원장.

“얼마 안 마셨는데. 그럼 2차 가자, 2차.”

술자리 내내 혼자 연거푸 마셔대던 박 원장은 눈이 반쯤 풀린 채 2차를 가자며, 검지와 중지를 들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젊은 애들 노는데, 너는 나 따라서 집이나 가.”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원장님.”

나는 그런 박 원장의 팔을 붙잡았다.

“됐어. 둘이 한잔 더 하고 가. 김 원장도 내일 오전에 수술 없잖아.”

“아… 네.”

김 원장은 그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승호는 내가 태워서 갈게. 둘이 한 잔 더 하고, 조심히 들어가.”

나는 쭈뼛거리는 자세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는 김사랑 원장에게 카드를 쥐여주는 안 원장.

“자. 1차는 민 대리가 샀으니까, 2차는 우리가 사야지. 김 원장, 이거로 민 대리 맛있는 거 사 먹이고 보내. 그럼 내일 보게.”

그는 마지막 이야기를 끝으로 박 원장의 팔을 붙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원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가자.”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나를 보며 말하는 그녀.

“원장님은 괜찮으세요?”

그녀 역시 술을 꽤 마신 편이기에 나는 김 원장에게 물었다.

“그럼. 안 원장님이 카드도 주셨는데, 가볍게라도 한잔하고 들어가자.”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맥줏집.

바 형식으로 된 테이블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늦은 시간 탓인지 작은 가게 탓인지 술집에는 우리를 포함해 2팀밖에 앉아 있지 않았다.

술집에서 흔히 흘러나오는 노래도 나오지 않는 곳.

조용한 술집 분위기에 더욱 서로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희 맥주 500cc 두 잔 주세요.”

나오는 기본 마른안주와 주문한 맥주 두 잔.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 보지 않고, 앞에 있는 술집 벽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짠 이라도 할까요?”

조용한 분위기 속,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그래. 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맥주를 마신 후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원래 둘이 술 마시자고 하려고 했는데, 결국 둘이 마시게 됐네?”

“그러게요. 결국은 마시게 됐네요. 하하.”

1차에서 충분한 소주를 마시고 왔음에도, 단둘이 자리를 하게 되어 그런 것인지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그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광주에 오시니까 어떠세요?”

“음. 글쎄…….”

“막상 서울에서 내려오니까,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죠?”

그녀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킨 후에 고개를 돌렸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여는 김 원장.

“좋아.”

눈이 마주쳐 있는 나는 황급히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네?”

“광주 오니까, 생각한 것보다 좋다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아…….”

“서울에 살다가 내려오니까 광주는 복잡하지 않은 것도 좋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은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울은 각자 살기 바쁘달까?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거든.”

“근데 광주는 아니에요?”

“어. 내가 광주에 와서 겪어본 사람들은 안 그랬어. 민 대리만 봐도 그래. 그때 백화점에서 마주쳤을 때 말이야.”

터미널에 갔다가 바로 옆 백화점에서 마주쳤던 김사랑 원장. 그때 내가 김 원장을 도와주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때 물건 고르는 거 도와드렸던 거요?”

“응. 그 당시에 민 대리랑 한 번밖에 못 봤던 사이었잖아. 민 대리도 일이 있었을 테고 주말이었는데 선뜻 도와줘서 놀랐었어.”

그녀는 맥주잔을 들고 내게 들어 보였다.

나도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부딪힌 후 입으로 가져다 댔다.

“고마우면 이제 원장님 나이 좀 알려주세요.”

“맞다. 민 대리 아직도 내 나이 모르는구나?”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네. 계속 안 알려주셨잖아요.”

“몇 살 같은데?”

그녀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제가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게 아니라, 의사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몇 살 같은데.”

나는 생각의 회로를 돌려 의사가 되는 과정들의 연도를 계산해 보았다.

“서른… 다섯?”

그녀는 턱에 받치고 있던 손을 빼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내가 그렇게 많아 보인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원장님이 되시려면… 최소 서른다섯 아닌가요……?”

나는 황급히 손가락 열 개를 펼쳐 허공을 바라보며 계산을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 사실 32살이야.”

“네?”

나는 그녀의 나이를 듣고 미간에 힘을 주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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