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괜찮아. 다 말해 봐.”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한태준에게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독이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병원에서 뭐 실수 한 거 있었어?”
“아닙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뭔데. 왜 이렇게 다운이 되어 있으실까?”
시선을 깔고 있는 그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탕비실 문은 항상 열려있는 터라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말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해 황급히 그 문을 닫았다.
다시 의자로 돌아와 앉으니 한태준이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사실 회사 다니는 게 요즘 좀 고민입니다.”
단순히 업무에 있어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흠칫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커피잔을 들고 입에 가져다 댔다.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었어?”
“영업이라는 일이 좀 힘든 것 같아서요.”
“그렇지, 힘들지. 근데 하나 말해 주자면 영업이라서 힘든 것만은 아닐 거야. 세상에 모든 돈 버는 일이 다 힘들지.”
사회생활이 처음인 한태준. 그에게 회사 상사다운, 인생에 선배다운 조언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항상 후임을 생각하고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힘듦을 알아봤다는 미안함.
“제가 사회생활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근데 영업직 길이 나랑 맞는 건가. 이 일을 하면서 계속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요즘 문득 들더라고요.”
사회에 발을 처음 내디딘 후, 첫 회사에 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던 일.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더욱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한태준에게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든.
나는 한태준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직은 고민 중이고?”
“…네.”
“이 회사를 더 다녀야 하는지가 아닌, 영업이라는 직종에 대해서는 고민 좀 해봤고?”
“음… 그렇게는 따로 생각을 못 해봤어요. 영업직의 좋은 점이 뭘까요, 대리님?”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내 생각에 영업직이라는 자체가 좋은 건,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온다는 거야.”
“성취감. 뭐 그런 거요?”
그는 내 말에 이해를 못 하겠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물론 성취감도 있지. 하지만 직장이라는 게 단순하게 보면 그냥 돈 벌자고 다니는 거잖아?”
그는 내 말에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렇죠. 다 먹고 살기 위해 돈 벌려고 회사 다니는 거니까요.”
“응. 직장이라는 게 그렇지.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의 보수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지칠 수밖에 없지.”
한태준은 내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근데 영업직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와. 돈으로.”
“급여 말씀하시는 거죠?”
“급여도 그렇고, 영업직은 기본적으로 인센티브라는 게 존재하잖냐. 말 그대로지. 영업에 있어서 노력한 만큼 돈으로 보상해 주는 제도.”
“저도 영업직은 아직 저랑 맞는다는 생각은 있어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질문을 이어갔다.
“광주에 메디컬 회사가 많은 건 알고 있지?”
그는 내 말에 손가락을 펼쳐 자신이 아는 메디컬 이름을 중얼대며 세보고 있었다.
“봐.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지?”
“그러네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손으로 몇은 세겠어요.”
“왜 이렇게 메디컬이 많겠어.”
“다들… 돈이 되니까?”
나는 그의 순진무구한 표정에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돈이 안 되고, 장사가 안 되는데 누가 자꾸 회사를 차리겠어. 그만큼 메디컬 회사가 많고 계속 생겨난다는 건, 병원 영업이 망하지는 않겠다는 이야기겠지?”
“아…….”
“내가 메디컬 영업에 뛰어든 이유가 바로 그거야.”
“안 망해서요?”
“어. 살면서 누구나 아프면 병원을 가잖아. 그래서 평생 병원은 망할 일이 없는 직종이고. 그 병원이 존재하는 한, 당연히 납품해야 할 메디컬도 망할 일이 없지.”
“맞네요. 그렇게까지 생각은 못 해봤어요.”
“메디컬은 병원이랑 상생하는 관계야. 태준이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든 잘 되는 것, 안 되는 것 그 근본을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태준이 성격이 영업직이랑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해.”
“그렇게 봐주신다는 건 저 일 잘하고 있다는 거 맞죠?”
“하하. 그래.”
그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너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온전히 네 몫이야.”
“…네.”
“하지만 네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기꺼이 너를 돕고 싶어.”
그는 갑자기 마음이 움직였는지 미간에 힘을 주고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혹여나 퇴사하게 돼서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응원은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언제든 힘들면 이야기해. 특히 회사 고민은 더더욱 말이야.”
“감사합니다, 대리님.”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윗사람한테 털어놓는 것도 방법이야.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고.”
“대리님, 근데 저 감동받았어요.”
나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감동씩이나.”
“저 고민 중인 거. 한눈에 알아봐 주셨잖아요.”
“그거야 네가 우리 회사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있잖냐. 근데 갑자기 죽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몰라.”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 이 얼굴로 어제부터 회사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도 말씀 없으시던걸요? 대리님은 오늘 처음 뵀는데 바로 이야기하자고 하셔서 놀랐어요.”
“뭐야. 그럼 일부러 티 내고 다녔던 거야?”
“하하, 그건 아니고요. 제가 고민이 깊어져서 어제부터 혼자 심각했었거든요.”
장난스러운 표정이 돌아와 농담까지 하는 한태준. 그나마 심각하던 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려가는 것 같았다.
“자식. 웃는 거 보니까 그렇게 심각했던 것도 아니구먼?”
“아니에요. 대리님이 해주신 말씀 들으니까 좀 많이 깨달았어요.”
“그래? 뭐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낀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계획 없으면 조금 더 다녀봐. 잘하고 있어, 한태준.”
나는 잔에 남은 커피를 입에 몽땅 털어 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님…….”
그런 나를 아련하게 쳐다보는 한태준.
“뭐야. 그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고, 알았으면 얼른 나가서 일 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그를 바라본 후 탕비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나오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결재판을 챙겨 손지혁 차장에게 다가갔다.
“차장님.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
나는 들고 온 결재판을 그에게 내밀었다. 손 차장은 결재판을 열어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회의실로.”
“네.”
그는 내가 건넨 결재판과 펜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가 문을 닫은 후 자리에 앉으며 말을 하는 손 차장.
“여천 정형외과, 확실한 건이야?”
내가 손 차장에게 건넨 보고서는 다름 아닌 여천 정형외과에 가서 보여줄 견적서였다.
모든 병원에 견적 금액은 내 선에서 정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내 기준에서 마지노선 금액을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면 윗선에서 확인 후 결재가 떨어진다.
그 후에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견적서는 어느 병원에나 뿌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망성이 전혀 없는 아무 병원에나 들어가 무작정 보여주는 직원은 없을 것이다.
병원에 어느 정도 영업을 간 후에 가망성이 있다 싶을 때, 보여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다.
급여 제품이야 모든 매출 단가가 고정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비급여 제품은 메디컬에서 병원에 납품하는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우리 제품을 써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병원에 가서 견적서를 보여준다면?
그 견적 금액이 저렴하다면?
그렇다고 한들 우리 제품을 쓸 리는 없다.
아무래도 영업이라는 게 제품과 단가로 모두 이뤄질 수는 없기 때문에, 병원 의사는 메디컬 사람을 보고 물건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저렴한 견적서를 병원에 넣었다면, 의사는 원하는 메디컬 회사에 연락해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금액으로 요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단가만 공개되고 이뤄내는 성과가 미비하다 보니, 비급여 제품의 견적서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영업이 될 만하겠다, 하는 병원에 눈치를 보고 넣고는 한다.
내가 손지혁 차장에게 이제 막 가보려고 하는 여천 정형외과를 상대로 견적서를 작성해 오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당연했다.
“네. 확실합니다.”
“무조건 납품 가능한 거야?”
“그건…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메디컬에 비해서 가능성이 높은 편인 건 맞습니다.”
“설명해 봐.”
그의 단호한 태도에 나는 목을 가다듬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명의 병원의 박승호 원장님이 제 담당이지 않습니까. 여천 정형외과의 제가 가보려고 하는 원장님이 박 원장님의 친형이시더라고요.”
“그런데?”
“여천 정형외과가 늘 여수에서…….”
나는 박승호 원장과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 설명했다.
손 차장은 내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서 들은 후 아무 대답 없이 견적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광주 쪽에 메디컬 업체를 알아보고 있고, 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다른 메디컬 회사보다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수 지역 담당인 최준성 과장도 여천 정형외과가 메디컬 업체를 바꾸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그 이야기가 많이 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광주 지역에 업체들에게 더 알려지기 전에 내가 서둘러 잘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손 차장은 결재판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아랫입술을 잘근 물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손 차장. 손바닥을 펴서 결재판을 탁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다녀와 봐. 위에는 내가 보고해 둘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급여 제품 이렇게 견적서에 많이 넣었는데, 단가 정보만 그대로 홀라당 빼앗기지 말고 뭐라도 얻어 와.”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손 차장에게 감사 표시를 전했다.
“뭐 해, 서둘러야 한다며. 얼른 출발해. 지금 서둘러서 가면 점심시간 전에는 병원 들어가겠다.”
그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 *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여수에 진입했다.
평소에 거의 광주 쪽에만 매진하다가 전남 쪽으로, 심지어 고향인 여수로 영업을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더욱 설레었다.
나의 고향인 여수에 처음 영업을 하러 온 병원이기에, 꼭 성공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든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하지만, 영업에는 100퍼센트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억지로 눌러내고 자동차 액셀을 밟았다.
드디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여천 정형외과’.
주차를 한 뒤, 견적서와 카탈로그 그리고 샘플 상자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병원 입구로 향했다.
미리 병원 사이트에서 금일 박승철 원장의 진료 시간을 확인해서 왔지만, 처음 찾는 병원이기에 원무과 간호사에게 재차 확인했다.
“광주 WG 메디컬에서 오셨다고요?”
“네. 박승철 원장님 좀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잠시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 원장 진료실 담당 간호사에게 확인하러 떠났고, 옆에 앉아 있는 간호사 두 명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대체 광주 쪽에서만 몇 명이 오는 거야?”
“좀 전에 왔던 사람도 광주 어디 메디컬이라고 하지 않았어?”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꼬리를 잘라내려고 급히 왔지만, 누구인지, 몇 명의 직원이었는지 이미 광주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확인이 끝났는지 내게 걸어오는 간호사.
“혹시 민…지훈 님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