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쇼핑백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미자차와 오메기떡. 누가 봐도 제주도에 다녀온 손지혁 차장의 선물이었다.
대부분 회사에 다니며 휴가가 아닌 주말에 먼 지역으로 놀러 가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기념품 때문이다.
회사의 직원 수가 한두 명이 아니기에, 1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회사라면 부담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근교에 놀러 가는 것이 아닌, 제주도나 특히 해외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말.
‘기념품 사 와.’
이 말을 외치는 사람은 한 번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직원 수별로 듣게 되다 보니, 막상 저렴한 기념품을 사 온다고 하더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손 차장 역시 주말에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다녀온다는 사실도 나에게만 살짝 귀띔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직원들이 보면 누가 제주도를 다녀왔냐, 내 것은 없냐, 라는 등의 말이 오갈 게 분명하기에 서둘러 쇼핑백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았다.
슬쩍 쇼핑백 사이로 본 오미자차는 추억을 연상케 하기 충분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본 내 또래의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수학여행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민속촌.
선물로 사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신다는 직원들의 말에 반 강매로 한 명의 학생이 사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다가와 하나씩 사서 집으로 들고 갔었던 그것.
그 시절, 그 추억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월요일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냐.”
모니터 옆 파티션에 기대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손지혁 차장.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한 뒤 쇼핑백이 있던 자리를 눈짓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 모양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그의 고갯짓.
그 턱으로는 옥상 쪽을 가리켰다.
재킷 안 담배를 꺼내 바지 주머니에 옮겨 넣고, 손 차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차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어. 피곤해 죽겠다.”
“주말에 날씨 좋았던데, 재밌으셨습니까?”
그는 내 말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재밌기는. 애들 엄마 사진 찍어주랴, 애들하고 온종일 놀아주랴, 운전하랴, 나는 일하고 온 것 같은데. 하하.”
주머니를 뒤적여 담뱃불을 찾는 그.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에 불을 켜고 그의 담배 쪽으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래도 제 선물도 챙겨다 주시고,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야.”
손 차장은 불이 붙은 담배를 깊게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민 대리, 인마!”
담배를 꺼내던 나는 그의 큰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손 차장을 쳐다보았다.
“네?”
“어제저녁에 강 교수님한테 전화 왔더라.”
“광주대학병원 강 교수님이요?”
“그래. 너 어떻게 하고 왔길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수술 끝나고 저한테 연락이 없으셔서요.”
그의 말에 나는 놀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이 기구 회수하러 병원 들릴 때, 너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라.”
“차장님이랑 같이요?”
보통 기구를 회수하러 가게 되면, 담당 의사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기구가 들어갈 때 데모도 해야 하고 질문을 받을 일이 많지만, 회수는 말 그대로 사용한 기구만을 회수해서 나오기 때문에 수술실에 들려 챙겨져 있는 물품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회수하러 병원에 올 때 들르라는 써전들이 있는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기구에 대해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 피드백 때문이라면 나 혼자, 혹은 손지혁 차장만 불러도 될 일인데, 두 명 다 같이 오라고 했다는 말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응. 할 말 있으시다고, 둘 다 오라네?”
“네. 오늘 가시는 거죠?”
“그러자. 그리고 너 병원 가서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뭐 기구 빠져 있었습니까? 아닌데, 제가 몇 번이고 확인도 했고, 데모할 때도 분명 이상 없었는데요.”
“교수님이 젊은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하하.”
“아…….”
수술 기구에 이상이 있었을까 놀랐던 나에게 농담을 던지는 손 차장.
“차장님, 놀랐습니다. 물건 이상 있었다고 하시는 줄 알고.”
“이상은. 다른 병원도 아니고, 대학 병원인데 어련히 잘 챙겨서 갔겠지. 저녁에 전화 와서 어찌나 칭찬하시던지.”
“차장님 아시는 교수님이라고 하셔서, 더 신경 썼습니다. 칭찬해 주셨다니까 정말 다행이에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주말에 내가 못 가서 엄청 걱정했는데, 잘 해주고 왔다니까 다행이다. 고마워.”
“아닙니다.”
“오전에 어디 병원 들어갈 곳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광주대학병원 먼저 다녀오자.”
“넵.”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우고 손 차장과 사무실로 내려가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 * *
다시 찾아온 광주대학병원.
주말인 전날 찾아왔을 때보다 몇 배는 많은 환자 수에 입구부터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와. 차장님. 대학 병원에는 확실히 환자 수가 어마어마하네요.”
“그래도 지금은 사람이 없는 철이라 적은 편이야.”
“역시 일반 종합 병원이랑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네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 차장에게 이야기했다.
“그렇지. 진료 과목 자체도 전부 다 있으니까.”
대학 병원에는 정말 없는 진료 과목이 없다. 기본적인 정형외과, 내과, 신경외과, 안과 등은 당연하고, 성형외과, 알레르기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이식 혈관외과 등 생소한 진료 과목들이 모두 한 병원에 모여있다.
그렇기에 환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 병원에 영업을 해보지 않아 처음으로 평일에 많은 환자를 본 나는 마치 병원에 처음 온 아이처럼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만 구경하고 올라가자.”
“넵.”
그를 따라 정형외과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강영현 교수실]
똑똑.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왔어?”
강 교수의 교수실은 일반 병원의 진료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료실의 크기, 그뿐이었다.
“민 대리님도 왔어요?”
“네. 교수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손 차장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지만, 나에게는 존대하는 그에게 서둘러 이야기를 했다.
“그럼 벌써 구면인데, 그럴까? 하하.”
“네, 그럼요.”
“손 차장은 진짜 오랜만이네.”
“예, 교수님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겁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손 차장은 강 교수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럼. 손 차장도 잘 지냈고? 이제 후임이 대리도 달고, 많이 컸네.”
“하하. 그렇죠. 제가 벌써 차장인걸요.”
“어서 앉지. 민 대리도 거기 앉게.”
강 교수는 앞에 놓인 진료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제 수술은 WG 메디컬에서 기구 시간 잘 맞춰서 넣어 준 덕분에 잘 마무리됐어.”
그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다행입니다. 소모품도 혹시 사용하셨을까요?”
나는 강 교수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소모품?”
내 이야기에 손 차장이 놀라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앞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강 교수가 손 차장에게 나 대신 대답을 이어 나갔다.
“응. 고마워서 소모품도 써 보려고 했는데, 민 대리가 준비성이 철저하게 전부 챙겨왔더라고.”
“아…….”
손 차장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오랜 기간 지켜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잘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그 눈빛이라는 걸.
“골 이식재뿐만 아니라, 유착방지제랑 욕창 방지 패드도 가져왔던데?”
“네. 병원에서 수술 후에 입원한 환자에게 욕창 방지 패드 일회용으로 된 제품 많이들 사용하셔서, 한번 보시라고 같이 올려뒀었습니다.”
나는 강 교수의 질문에 쉬지 않고 바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전부 그 환자한테 사용했어.”
“세 가지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내가 세 가지 제품을 모두 두고 간 이유는 하나라도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소모품을 바꿔서 사용하기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세 가지 중의 한 가지 제품만이라도 강 교수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싶은 마음.
그런데 세 가지 제품을 모두 사용했다는 말에 이보다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응.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메디컬 직원은 오랜만이야.”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칭찬에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렇게 챙겨오는데 사람 정성이라는 게 있지. 전부 써봐야 하지 않겠어?”
“제품은 좀 어떠셨습니까?”
손 차장은 자세를 고쳐 허리를 세우고 강 교수에게 물었다.
“제품… 좋더라.”
“기존에 받으시던 제품이랑은 많이 다른가요?”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손 차장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아니. 알다시피 소모품은 제품의 능력치가 거기서 거기잖아.”
“그렇죠.”
나를 비롯한 손 차장도 옆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 중 금액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비급여 제품과는 달리, 국가에서 금액을 정해 둔 급여 제품 같은 경우는 그 금액이 대부분 비슷하다. 그렇기에 어떤 제품을 쓰느냐는 의사의 취향과 그리고 메디컬 직원의 역할이 전부이다.
수술 기구가 아닌 소모품은 수술이 마무리된 후에 회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품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제조사의 제품이 특출나게 잘 듣는다, 라는 것이 없다.
시중에 나온 제품들의 기능이 거기서 거기이기에 그만큼 의사에게 판매를 하는 메디컬 직원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는 것.
“근데 이번에 우리가 받고 있는 메디컬 업체에서 기구를 못 맞췄잖냐.”
“네.”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니거든.”
“정말요?”
“응. 벌써 4번 째야.”
“그렇게나 많이요?”
강 교수의 말에 놀란 손 차장은 데시벨을 높여 입을 열었다.
“어. 그쪽 회사가 거래하는 병원이 많다고는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응급 환자가 많은 대학 병원인데 기구는 제때제때 맞춰줘야 하잖아.”
“그렇죠. 대학 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치료 못 하는 응급 환자들이 오는 곳인데요.”
“뭐 기구 개수는 한정되어 있고, 찾는 곳은 많으니까 가끔 못 들어 올 수 있는 건 이해한다 이거야. 안 그런가, 민 대리?”
그와 손 차장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를 보며 묻는 강 교수.
“그렇긴 한데, 제 생각에는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원 수술에 차질 없이 기구를 맞춰야 하는 게 메디컬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는 내 대답의 일부로 되물었다.
“그건 저 하나를 믿고 WG 메디컬에서 물건을 받기로 한 교수님의 신뢰를 깨트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당차게 대답하는 나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구가 준비가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 말에 반문을 던지는 강 교수.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나는 짧은 순간 명쾌한 답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 질문의 대답으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