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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59화 (59/339)

59화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료실 한쪽에 쪼그려 앉아 짐 정리를 하던 김사랑 원장은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인사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얼굴은 누가 봐도 내 또래로 보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우선 길고 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시에 합격한 이후에 1년의 인턴 생활, 4년의 레지던트 과정까지 모두 이수해야 한다.

바로 전공의가 되는 것이 아닌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후 몇 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전공의 의사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최소 30대 중반이 훨씬 넘기 마련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에 반해 1, 2년은 빨랐을 그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어려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WG 메디컬의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나는 재차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오늘 오신 첫 번째 손님이시네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여기…….”

그런 그녀에게 나는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잠시만요.”

김 원장은 내 명함을 건네받은 후 상자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짐 정리도 끝나지 않은 모양.

“찾았다.”

그녀는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게 건넸다. 바로 그녀의 명함이었다.

“아직 정리를 덜 해서요, 여기요. 제가 처음 드리는 명함이네요.”

“영광인데요? 하하.”

나는 그녀의 명함을 한번 쓱 훑어본 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김사랑 원장.

그녀는 168 정도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노가다 과라는 정형외과에 맞지 않아 보이는 여리여리한 몸. 수술실에 들어가 망치질을 하고, 톱질을 하기에는 힘에 부칠 것 같을 정도로 약해 보였다.

수술실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의사들이기에 결혼반지조차 하지 않는 의사들이 꽤 많다. 하지만 김 원장은 반지에 팔찌, 귀걸이까지 장신구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다.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그녀였지만,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탓에 호감형으로 보였다.

“여기요. 오늘 모던 정형외과에 첫 출근하신 기념으로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나는 꽃집에서 준비해 온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꽃다발을 받아 든 그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개했다.

“어머. 저 졸업식 말고는 꽃다발 처음 받아봐요.”

“정말요? 좋…으시다는 뜻이겠죠?”

“그럼요. 그리고 보통 오시면 다들 화분 가져다주시던데, 꽃다발로 받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걸요?”

그녀는 꽃을 한참이고 바라보기도 하고 코를 대고 향기를 맡더니 책상 옆 기둥에 잘 보이도록 꽃다발을 세워두었다.

“근데 굉장히 어려 보이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 여쭤봐도 될까요?”

김 원장은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전공의 나이 대충 아시면서. 하하. 저 그렇게 안 어려요. 대리님이 어려 보이시는데요, 몇 살이세요?”

“저는 32살입니다. 원장님은요?”

그녀는 내 나이를 듣고는 소리를 내어 웃은 후 입을 열었다.

“제가 누나네요? 하하.”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다고요? 하긴 전공의가 되려면 저보다는 많아야 하죠?”

“그럼요.”

“그럼 나이가…….”

“여자 나이는 알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저랑 동갑인 줄 알았는데, 진짜 동안이세요.”

“하하, 감사해요. 근데 저 오늘 첫 출근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안국환 원장님 통해서 귀띔받고 오시는 거 기다렸죠.”

그녀는 책상 위에 올려뒀던 내 명함을 다시 꺼내 들고 바라보았다.

“아… 안 원장님이 말씀하신 분이시구나?”

안국환 원장이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미리 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원장님이 일 잘하는 친구 하나 올 거라고, 미리 말해 뒀다고 하시더라고요.”

“좋게 말해 주셨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이제 막 출근한 거라 모던 정형외과 쪽은 잘 몰라서요. 제가 이쪽 물건들도 좀 익히고 사용해 본 후에 바꾸려고 해요.”

“네. 천천히 하고 계시면, 제가 저 잊지 않으시게 질리도록 찾아오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똑똑.

대화 중 진료실에 퍼지는 노크 소리.

“안녕하십니까.”

실제 진료 중이 아니기에 아직 문 앞에는 외래 간호사가 없었다. 그 탓에 안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노크만 하고 그냥 들어오는 사람. 바로 타 메디컬 직원이었다.

김 원장이 출근한 지 1시간도 채 안 됐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화분까지 챙겨서 오는 직원.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들어오는 다른 직원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는 나를 보며 흠칫 놀라긴 했지만, 같이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같은 메디컬 직원임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에게 가벼운 묵례만을 한 후 김 원장 쪽으로 다가오는 직원. 내가 먼저 앉아 있던 자리였지만 굳이 자리를 지키며 그를 내쫓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차단을 하지 않더라도 영업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그녀는 나와 새로 들어온 직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원장님. 저 그럼 다음에 오겠습니다. 말씀 나누세요.”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님, 감사해요. 조심히 가세요.”

그녀는 나를 따라 문 앞까지 오며 작게 속삭였다.

“저분은 불쑥 들어와 버리네요. 대리님, 또 봬요.”

김 원장도 대화 중에 훅 들어온 저 직원이 못마땅한 듯 아랫입술을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또 와서 원장님한테 눈도장 찍죠, 뭐.”

그녀는 미소로 대답한 후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다음 날 오전 출근을 하자마자 모던 정형외과로 향했다. 병원 사이트에서 김사랑 원장의 진료 시간을 보니 오후 진료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전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서둘러 병원으로 들어갔다.

똑똑.

“좋은 아침입니다. 저 또 왔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가득 놓인 화분들. 병원에 없던 진료실이 새로 생기니 다들 득달같이 알고 달려온 모양이다.

안을 쓱 살피니 꽃다발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잘 먹혔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민 대리님.”

화분만 보아도 어제 다녀간 직원들이 여덟 군데는 되는 것 같은데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 그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저한테 처음으로 오신 분인데 당연히 기억하죠.”

이 많은 사람 중에 기억해 준다는 사실에 뿌듯해 입꼬리가 올라갔다.

“커피 제 거예요?”

내 손에 들고 있는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보고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요.”

나는 캐리어에서 커피 두 잔을 빼내어 책상 위에 차례로 올렸다.

“아메리카노랑 라떼네. 대리님은 어떤 거 드세요?”

“원장님이 어떤 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둘 다 가지고 왔어요.”

“저는 그럼 라떼.”

“제가 아메리카노 마시겠습니다.”

“아침이라 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감사해요. 잘 마실게요.”

눈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들고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

나는 그녀의 얼굴이 아닌 김 원장이 입은 의상에 눈길이 갔다. 진료가 없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의상. 성숙해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의상이었다. 발랄하고 30대 초반 같았던 어제의 분위기와는 달리.

옷만 본다면 40대 초반 같아 보이는 색감과 옷 재질 탓에 얼굴과 의상이 살짝 괴리감이 있었다.

내가 옷을 쳐다보자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많이 티 나요?”

“네?”

나는 시선을 들켰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눈동자를 커피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입고 있는 의사 가운 속 옷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했다.

“무시당할까 봐요.”

무시를 당할까 봐 옷을 본인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게 입었다는 김 원장.

“제가 실제로 의사치고 젊은 나이인 것도 맞고, 경력이 부족한 것도 맞잖아요.”

맞는 말이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현저히 어린 나이와 그렇기에 경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그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환자들한테 무시당할까 봐. 아픈 환자들이 믿는 게 의사밖에 없잖아요. 근데 경력도 부족해 보이고 나이도 어려 보이면 제 말을 안 믿더라고요.”

“아…….”

그런 그녀의 말에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애써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을 크게 내 쉰 후 대답을 이어갔다.

“밖에서는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인데, 의사가 되고 나서는 그게 소용이 없더라고요. 나이가 곧 경력이고, 능력이더라고요.”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전공의로 새로 온 남자 의사를 만났던 적이 있다. 외모는 크게 동안은 아니었었는데, 누가 봐도 젊은 의사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물건을 납품하러 갔을 당시, 환자가 그 젊은 의사에게 큰 목소리로 화를 내는 것을 보았었다.

이유는 단 하나. 능력도 없고, 경력도 적은 젊은 의사가 뭘 알겠냐, 라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쭉 십여 년을 공부하고, 현장에서도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폈지만 환자들이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의사’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젊게 보이는 그 의사 얼굴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다른 의사로 배정을 해달라, 이 의사한테 치료 못 받겠다, 라고 난동을 피우는 것을 본 후 젊은 의사들의 고충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런데 그 의사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보이는 게 더 씁쓸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 그 의사의 머리가 하얗게 희어 있었다.

새치라고 하기에는 많은 흰 머리 탓에 스트레스로 인한 것인가 놀라 물어보니, 그 의사의 답은 가히 충격이었다. 일부러 군데군데 하얀색으로 보이기 위해 염색을 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면 그것을 덮기 위해 흑채를 뿌리거나,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은 들어봤어도 일부러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려고 염색을 했다니.

환자들의 무시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의료계뿐 아니라 요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기에 그것에 대해 공감이 더 갔던 것 같다. 모든 업계에서도 전문적 지식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면 능력이 없을 거라는 편견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원장님 실력 보고 금방 환자들이 좋아할 거예요.”

그녀는 나의 말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허공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기더니 침을 한번 꿀꺽 삼켜내고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 * *

10시 30분.

평일 내 바쁘게 움직였던 탓에 주말이 오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늦잠을 잤다.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었다.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켜니 찍혀있는 부재중 전화 1통과 문자 1통.

진동으로 해두고 푹 잠이 들었던 나는 문자와 전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잠을 잤던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양이 세수로 정신을 차린 후, 전화와 문자 발신인부터 확인했다. 두 개 다 손지혁 차장의 연락이었다.

나는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급히 문자 함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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