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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56화 (56/339)

56화

【 홍일점 】

“우리 병원에 곧 써전 한 명이 더 올 거야.”

나는 써전이 온다는 이야기에 두 눈이 반짝거렸다.

모든 병원에서도 알아내기 힘든 정보를 병원 원장에게 직접 들으니, 내가 안 원장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이쪽 업계 일하면서 여자 써전은 거의 본 적 없지?”

“네. 저는 아직 이쪽 일하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고민을 해 보지도 않은 채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을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형외과에서는 여자 써전의 수가 적다. 아니, 거의 없는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형외과는 뼈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는 일명 ‘노가다 과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다른 과목에 비해 힘을 요하는 전문과이다.

비교적 체력이 강한 남자 써전들도 인공 관절 수술 몇 건을 연달아서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면 정신적으로 힘든 것뿐 아니라 체력 소모가 굉장히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형외과에서는 여자 써전을 보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3년이라는 길다면 긴 메디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광주, 전남, 전북만 해도 단 한 명의 여자 써전이 없고.

듣기로는 전국에서 정형외과 여자 써전이 거의 1%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오는 써전이 여성분이셔.”

“아…….”

정보를 주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여자 써전이 온다는 사실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겪어보지 못했을뿐더러, 영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소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원장님.”

신 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 원장에게 물었다.

“그 써전도 나이가 어렸었죠?”

“응. 서울에서 몇 년 안 하고, 내려오는 거라 나이가 30대 초반이라더라고.”

“그럼 민 대리랑 나이가 얼추 비슷하겠네.”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그러게. 요즘 젊은 써전 안 본 지 진짜 오래됐다.”

“실력이 꽤 좋은가 봐. 어린데 수술도 곧 잘한다고 서울대에 아는 교수님이 이야기해 주시더라고.”

안 원장은 입술을 샐쭉 내밀며 말했다.

“처음에 오면 병원에 깔려 있는 기존 수술 제품들이랑 소모품 사용하긴 할 텐데. 금방 적응하고 다른 메디컬 제품으로 사용하려고 할 거야.”

나는 안 원장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민 대리가 한번 영업 잘해 봐.”

“네. 그야말로 고급 정보네요, 원장님.”

“허허. 그 고급 정보를 민 대리가 잘 낚아챘으면 좋겠네.”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다음에 병원 들릴 일 있으면 WG 메디컬 제품들 카탈로그도 들고 와봐.”

“네?”

카탈로그를 들고 오라는 말뜻은 단 하나. 우리 제품으로 물건을 바꾸고 싶다는 뜻이다.

이렇게 매출이 크고 인공 관절 수술이 많은 모던 정형외과에서, 심지어 제일 수술 케이스가 가장 많은 안국환 원장이 카탈로그를 가져와 보라고 하다니.

내가 이번에 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안 원장에게 영업을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이미 고정 환자들이 있어 제품을 쉽게 못 바꾸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고급 정보인 새로운 써전이 온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타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부여잡아 내려고 애를 썼다.

물론 카탈로그를 본다고 해서 제품을 무조건 바꾸는 것은 아니다. 카탈로그를 가지고 병원에 가는 것까지가 선물이지, 그 이후의 영업은 오로지 내 몫.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나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원장님 물건 바꾸시는 겁니까?”

내가 놀란 것은 당연하고, 옆에 앉은 신 원장까지 덩달아 놀라 그에게 물었다.

“아직 바꾸는 건 아니고, 한번 봐보려고.”

“와. 원장님 제품 고정으로 쓰신 지가 몇 년이신데, 민 대리가 큰 건 해내긴 했나 보네요.”

신 원장은 마치 자신에게 좋은 일인 것 마냥, 옆에서 나만큼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놀라 크게 뜬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 원장에게 인사를 했다.

“에이, 아직 쓰는 건 아니라니까. 카탈로그만 한번 보자고.”

“그래도 봐주시는 게 어디입니까. 잘 챙겨서 병원으로 한번 가겠습니다.”

“그래.”

띠리리.

커다란 테이블 위에 올려진 휴대폰 하나가 큰 소리로 알람을 울려댔다.

“여보세요? 응. 정말이야? 잘됐네. 그래,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함세.”

안국환 원장은 전화를 끊은 후에 큰 목소리로 웃어 보였다.

“좋은 일 있으십니까?”

신 원장이 옆에서 그에게 물었다.

“응. 우리 환자랑 합의했다는 기사가 나갔는데, 이게 지금 난리가 났다네?”

“난리요? 그게 무슨…….”

나는 서둘러 아까 보았던 인터넷 카페 창을 열어 신 원장에게 내밀었다.

“원장님, 이거 보시면 됩니다.”

한참을 읽어 보던 신 원장은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민 대리가 해낸 거지?”

“제가 한 건 아니고, 워낙 병원에서 잘 대처하셔서 이렇게 된 거죠. 하하.”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

“왜, 이게 민 대리가 한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안 원장이 신 원장에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해결된 기사가 없었지 않습니까. 민 대리가 이야기해서 해결됐다는 기사가 나갔는데 그게 이렇게 잘된 모양입니다. 하하.”

“이거 이렇게 식당에서 밥만 먹으면 되는 게 아니었네. 민 대리가 우리보다 더 고생했네.”

“아닙니다.”

“꼭 카탈로그 가지고 병원 들리게.”

“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떠나가지 않는 웃음소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를 마친 후, 카운터로 향했다.

안 원장은 카드를 꺼내어 계산대에 내밀었다.

“어? 여기 아까 계산하셨어요.”

카드를 다시 그에게 건네며 말하는 종업원.

“네? 계산했다고요?”

“예. 저기 저분이 아까 오셔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사람, 바로 나였다.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미리 나와 계산을 해뒀었다. 자리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을 얻었기에.

“민 대리가 계산하면 어떡해.”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원장님들께서 저랑 식사 자리 가져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

“고마워서 한 끼 사려고 한 건데, 참.”

“민 대리.”

옆에 서 있던 신 원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 다음 번에 한번 제대로 사겠네.”

“감사합니다, 원장님.”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로 복귀 후 자리로 돌아갔다.

“민 대리.”

“네, 차장님.”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부르는 손지혁 차장의 부름에 뒤를 돌았다. 검지와 중지를 붙여 흔드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과 재킷을 책상에 정리해 두고 손 차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저 모던 정형외과 다녀왔습니다.”

“이 차장이 하던 병원?”

“네. 어제 인사차 들렀다가 일이 잘 풀려서 다른 원장님이랑 식사 자리 다녀왔습니다.”

나는 칭찬 받고 싶은 아이처럼 손 차장에게 무용담을 풀어 놓듯 입으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손 차장은 자신이 영업에 성공한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 우리 회사 에이스답네?”

눈썹을 들썩이며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손 차장.

“차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왜? 민 대리가 요즘 우리 회사 에이스라고 다들 난리야.”

“차장님, 그만 놀리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하. 요즘 무슨 이야기 할 때마다 내가 민 대리 업어 키웠다고 자랑한다니까?”

“그렇죠. 저는 차장님이 키우셨죠. 하하.”

그가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차장님. 근데 여자 써전 영업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는 뽀얀 담배 연기를 크게 내뿜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는 듯한 손 차장.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없는데, 들어는 봤어.”

“다른 분이 영업했다는 이야기요?”

“응.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영업하기 힘들었다고 하는 것만 생각난다.”

그의 말에 나는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광주에 여자 써전 없잖아?”

“그랬죠. 근데 이번에 온답니다.”

손 차장은 화들짝 놀랐는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금 손으로 빼내었다. 마치 내가 원장에게 들었을 때 놀랐던 것과 똑같은 반응.

“뭐라고? 어디에?”

“모던 정형외과요.”

“와, 드디어 광주에도 여자 써전이 생기는구나. 몇 년 만이냐.”

“근데 기존에 하는 것처럼 똑같이 영업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영업이라는 게 뭐 다르겠냐.”

“맞죠?”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려는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영업이라는 게 그렇잖냐. 어느 메디컬을 가도 물건은 비슷하고, 단가도 최대한 조정이 가능하지.”

“…뭐 그렇죠.”

“사람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지.”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영업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자연스레 물건이 팔린다는 것.

메디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이해가 가지 않던 말이었다.

물건 하나 파는데 무슨 마음 까지 얻어야 해? 물건을 팔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거지.

이런 생각으로 영업을 나갔던 초반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특히나 병원 쪽 영업은 저 말뜻을 금방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이해하는 과정에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수술에 지친 의사들을 만나 영업을 하면서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건의 질, 상품의 단가 하나하나 비교해 가면서 구매하는 쇼핑이랑은 전혀 다르지.”

“그렇죠. 물건뿐만 아니라, 메디컬과의 신뢰로 사용하는 거니까요.”

“응. 사람인지라 계산적으로만 생각을 못 해. 민 대리도 그렇잖아. 이왕이면 나와 맞는 사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물건 사고 싶지 않겠어?”

“맞습니다. 계속 일하면서 부딪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지.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앞으로 계속 만날 사람인데, 마음에 안 들고 센스 없는 사람이랑은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 의사들도 사람이거든.”

그는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크게 마신 후에 말을 이어갔다.

“나도 직접 경험해 본건 아니고, 들은 이야기로 말하자면.”

“여자 써전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자 써전한테 마음을 얻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영업하는 게 늘상 남자 써전들한테만 익숙해져 있잖아.”

“그게 많이 다를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메디컬 회사 자체가 남초 회사잖냐.”

“네. 메디컬 영업직 중에 여직원이 없긴 하죠, 단 한 명도.”

“그니까. 전부 남자들만 득실거리는데 여기서 어떻게 여자 써전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루겠어.”

“그런가. 저는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서…….”

“겪어 봐. 마음처럼 쉽지 않다더라.”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에 담배를 입으로 물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자는 저장이 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휴대폰을 들지 않은 반대 손으로 담배를 들고 수신 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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