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단독) 광주 M 병원 앞 1인 시위. 누구의 잘못인가?]
광주 M 병원 앞 1인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
환자 측에서는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짤막한 기사에서는 어떤 사유로 인해 환자가 아프게 됐는지, 진행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병원 측에서는 어떠한 조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또 기사에는 시위하는 사람과 그가 들고 있는 피켓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사진 속 피켓에 기재되어 있는 병원명과 의사 명인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 글씨가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기사를 본 나는 사진이며 내용이며,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보던 기사를 끄고 모던 정형외과의 신동욱 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장님. 아까 마주쳤던 메딕 일보에서 기사가 올라와서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연락드립니다.]
“민 대리!”
문자 메시지의 전송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
최권호 부장이었다.
“네, 부장님.”
“담배 피우러 올라왔으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옥상에 올라와 휴대폰만 쥐고 있는 나를 보며 그가 물었다.
“바람 쐬러 올라왔습니다.”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부장님은 담배 피우러 올라오셨습니까?”
“그럼.”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담뱃갑을 내게 흔들어 보였다.
최 부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내게 물었다.
“민 대리랑 오랜만에 둘이 이야기하네?”
“하하, 그러게요. 부장님이랑 이렇게 오랜만에 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 대리가 워낙 바빠야지.”
“더 열심히 해야죠.”
나는 주먹을 쥐며 의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최 부장에게 대답했다.
“그래. 요즘 실적 좋던데, 기세 몰아서 더 열심히 해봐.”
“감사합니다.”
“요즘 뭐 힘든 일은 없고?”
그는 새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어 주변을 가득 덮었다.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평소에 그와 부딪힐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기에 오고 가는 대화는 매우 형식적인 말뿐이었다. 하지만 최 부장과의 독대가 어색한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민 대리도 담배 피워도 괜찮아.”
그는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돌려 내가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쭈뼛대며 입을 열었다.
“아… 네.”
나는 몸을 최 부장 반대편으로 돌려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입으로는 대화가 아닌, 담배 연기만을 밀어내며 보내기를 한참. 나는 정적을 깨고 최 부장에게 대화를 걸었다.
“부장님, 저희 직원 새로 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맞습니까?”
이상일 차장의 퇴사 후 차장직 이상의 직원을 뽑을 거라는 이야기가 회사 내에서 돌았었다.
번뜩 생각이 난 나는 담배를 입에서 빼낸 후 최 부장에게 물었다.
“차장 자리로 올 거야.”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허공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높은 직책의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신입 직원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신입 직원은 공고를 내기만 하면 이력서가 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력직은, 특히 우리가 구하고 있었던 차장직. 이처럼 한 직종의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 된 사람을 뽑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직종에 10년 이상을 근무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퇴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있거나 혹은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3년 차, 5년 차 정도가 되면 몸값을 올려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10년 이상이 됐다면 직장에서 급여도 충분히 요구할 수 있고, 그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구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최 부장에게 물었다.
“오, 정말요? 그럼 언제부터 나오는 겁니까?”
그러자 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눈을 위로 뜨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이번 주 안에 출근이었던 것 같은데.”
“금방 오시네요.”
“응. 바로 구해졌어. 내 기억에 지금 날짜가 정확하지가 않기는 한데, 곧 출근할 거야.”
최 부장은 담배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마시고, 담배를 바닥으로 툭 던져 밟아 불을 꺼트렸다.
그것을 본 나도 담배를 급히 끄고 손을 털었다.
“천천히 피우고 와도 되는데…….”
담배를 끄는 나를 보며 최 부장이 작게 속삭였다.
“아닙니다. 저도 다 피웠습니다.”
“그래. 내려가자고.”
“넵.”
* * *
8시 20분.
지이잉.
출근하기 위해 집 앞을 나서려는데,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휴대폰.
차에 올라타 휴대폰을 확인하니, 다름 아닌 모던 정형외과의 신동욱 원장의 문자였다.
[민 대리. 오전에 안 바쁘면 병원 좀 들를 수 있을까?]
나를 아침 일찍부터 부른 이유는 예상컨대 시위 기사에 관한 일일 것 같았다.
사무실 방향으로 출근을 하던 나는 문자를 확인 후 핸들을 꺾었다. 바로 모던 정형외과로 직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도착해 주차를 마친 후, 차에서 내리자마자 확인을 했다.
입구에 서 있던 시위를 하던 사람.
이른 시간 탓인지, 해결이 된 건지 피켓과 시위하는 사람 모두 없었다.
시간이 9시가 넘어 병원이 진료 시작을 했지만 시위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해결이 됐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더 컸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가지고 병원 안으로 힘차게 들어갔다.
‘신동욱 원장 진료실’.
문 앞에 서서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민 대리, 왔어?”
신 원장도 이제 막 출근을 했는지 외투를 벗어 행거에 걸며 내 인사를 받고 있었다.
“네. 문자 받자마자 병원으로 출근했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엄청 빨리 왔네.”
“원장님, 이거 드십시오. 아침이라 따뜻한 커피로 사 왔습니다.”
나는 모던 정형외과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미리 사 온 커피를 신 원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와. 민 대리, 센스가 장난이 아니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
신 원장은 컵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원장님. 정문에 시위하던 분 없던데, 혹시 해결된 겁니까?”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내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빨리도 물어본다.”
“네?”
“어제 해결했지, 그럼.”
그의 말에 나는 내 일처럼 기뻐하며 손뼉을 한 번 세게 부딪혀 보였다.
“정말요? 다행입니다.”
“어제 민 대리가 문자 보내준 것 보고 난리가 났었어.”
“제가 보낸 문자 보신 후에 기사 확인하신 겁니까?”
“응. 그 메딕 일보 진짜 이상하더라. 기사도 며칠 뒤에 난다고 하더니만, 취재하고 가서 무슨 30분도 안 돼서 기사 냈더라고.”
“그러니까요. 심지어 기사에 병원명이랑 안국환 원장님 이름도 고스란히 다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병원에서 난리가 났었지.”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 상황이 생각난 모양.
“병원장님이랑 안 원장님도 병원명에 원장님 이름까지 노출된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 쪽에서 고소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었어.”
“그러셨겠네요.”
“아무튼, 일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하려고 어제 시위하던 분이랑 합의했지.”
나는 신 원장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열어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 창을 클릭하고 나는 미간에 힘을 주고 인상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본 신 원장은 바로 내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이것 좀 보세요.”
나는 휴대폰을 신 원장 쪽으로 화면을 돌려 내밀었다.
“합의가 끝났는데, 정정 기사나 새로운 기사가 뜬 게 아무것도 없네요?”
“다 그렇지 뭐.”
나는 그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시위가 시작하자마자 어디서 들었는지 온 기자들이 몰려왔으면서, 해결된 후에는 단 한 명의 기자도 찾아오지 않고, 기사도 하나 없다는 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봐.”
그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병원이 워낙 유명하잖아?”
“그렇죠. 광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하죠.”
나는 신 원장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크고 유명한 병원에 이슈가 생기니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득달같이 달려왔잖아.”
“네. 다들 시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바로 왔었죠.”
“그러니까. 어디든 높고 유명한 건 깎아내릴 때 그 이슈에만 관심이 있지.”
신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해결이 어떻게 됐는지,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관심 없어.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까지만 듣는 것이거든.”
신 원장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바로 주위에서도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다들 관심이 많은 것처럼.
오히려 기사는 해결 기사가 아닌, 시위에 관련된 기사만 몇 개 더 늘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럼 기자한테 연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 병원이 쌓아온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에 합의도 결국 금액도 꽤 줬어.”
“이천만 원이 아니라 더 주셨습니까?”
“응. 오천만 원.”
“네? 오천만 원이요? 환자가 이삼천만 원 정도만 돼도 합의할 것처럼 했었는데.”
“그랬는데, 우리 병원 이미지가 있지 않냐. 그래도 전국적으로 큰 병원인데. 오천만 원에 환자 진료도 다시 봐준다고 오시라고 했어.”
“와. 그렇게까지 해주신 겁니까? 대단하시네요.”
“근데 봐라. 기사가 꼴랑 한 줄도 안 나는 거.”
그때 번뜩 드는 생각.
바로 백승원이었다.
“원장님.”
“어.”
“저번에 말씀드렸던 시위하는 곳에 왔던 제 지인 있지 않습니까.”
“그 기자?”
“네.”
“응. 기억나.”
“그 친구가 이번에 모던 정형외과 기사 안 냈더라고요. 혹시 원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합의해서 해결된 기사 내라고 해도 될까요?”
신 원장은 내 질문에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생각은 못 했네. 민 대리 생각 잘했다.”
“아닙니다. 하하.”
신 원장의 미소처럼 내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민 대리 덕분에 이번 일 해결도 잘 됐는데, 기사까지 도와주면 고맙지.”
“어디 제 덕분에 해결이 됐습니까. 원장님들이 하신 일인걸요.”
“아니지. 민 대리 아니었으면 이렇게 기사도 올라오고 하면서 일억으로 합의 보려고 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해결됐다는 기사도 그렇고.”
그는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고 내게 들어 보였다.
“그거야 과장한 기사도 아니고 팩트를 내는 것뿐인데요.”
“아! 잠시만.”
그는 들고 있던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쪽에 있는 병원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민 대리를 보고 싶어 하… 네, 원장님. 네,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든 채 내게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통화를 이어 나갔다.
짧은 통화를 마친 신 원장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눈썹을 들어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 누구 오실 거야.”
“누구…….”
그 순간 신 원장의 진료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하는 소리에 허리를 꺾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