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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52화 (52/339)

52화

“일억이요?”

신동욱 원장이 모니터를 내게 돌린 후 나는 놀라 크게 외쳤다. 그리고 잘못 본 게 아닌지 손으로 눈을 수차례 비비며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선명하게 적혀 있는 액수.

일억.

“와… 진짜 일억이네요?”

연달아 말하는 내 말에 신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시위하는 그분이 요구하는 게 일억입니까?”

“응. 일억을 달라고 하더라고.”

“혹시 의료 사고가 맞습…….”

그는 내가 묻는 말을 잘라버리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의료 사고. 오진도 아니었고.”

“혹시 어떤 내용인지…….”

신 원장은 책상 위에 올려뒀던 양팔로 팔짱을 낀 후,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입을 열었다.

“옆방에 안국환 원장님 진료실 봤어?”

“네. 원장님 방 들어오다가 봤습니다.”

“안 원장님이 진료했던 환자거든. 증상도 기존 환자들이랑 동일했었어. 그래서 별 탈 없이 수술도 잘 마무리됐고.”

“그럼 왜.”

“정말 간혹가다가 나오는 부작용이지.”

모든 수술에는 ‘부작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오고는 한다. 그래서 수술 전에는 의사에게 수술 방법, 수술 후 경과에 대해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최악의 경우까지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에 서명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수술은 통증을 완화하고, 치료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간혹가다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보통 이렇게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면 병원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고 치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위를 하는 환자 같은 경우는 병원에 오지 않은 채 시위하며 금전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의료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시위, 소송한다고 한들 승소하기가 극히 드문 편이다.

극단적인 예로는 치료를 받아야 할 오른쪽 어깨가 아닌, 왼쪽 어깨를 치료했다면?

그것은 엄연한 의료 사고이기 때문에 소송으로 넘어가게 되면 승소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부작용으로 인한 것은 힘든 편이다. 물론 어떠한 부작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병원에서는 잘잘못의 여부를 떠나 시위에 대해 처리를 할 수 있다. 피켓 내용에 원장의 실명이 들어갔기 때문에 명예 훼손으로 신고도 가능하고,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탓에 병원 이미지 손실, 환자들이 줄어 경제적인 금전 손실이 간다면 그로 인한 신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병원의 이미지가 더 실축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병원이 취할 방법은 1인 시위자와의 원만한 합의. 그뿐이다.

심한 병원에서는 시위하는 사람은 모른척한 채 한 달여가 지나니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졌다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위하는 사람이 이기기 힘든 싸움.

“부작용이면 치료하면 되지 않습니까?”

“응. 치료를 떠나서 재활을 제대로 안 받아서 이런 문제가 크게 나온 거지.”

단순히 재활 치료를 소홀히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왜…….”

“왜냐고? 돈이 없으니까.”

“…….”

탄식 말고는 대답할 단어가 없었다.

수술은 겨우 했지만, 병원에 다니며 재활 치료를 할 돈이 없었다니.

“수술 뒤에 부작용인지 재활 부족인지, 다른 병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긴.”

“그래서 우리도 설명도 해보고 위로금 조로 합의금 드리고 합의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

“그럼 원하시는 게 뭐래요?”

설명도 하고, 재치료도 받지 않겠다, 합의도 싫다, 라면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일까.

“일억.”

“아… 그래서 일억을 달라고 하는 거였구나.”

“응. 백번 양보해서 위로금을 준다고 해도 일억은 아니잖냐.”

“그렇죠. 의료 사고도 아니고, 일억은 좀.”

“안 원장님이 천만 원 불렀다고 하시더라고.”

“천만 원도 세지 않은가요?”

“그렇지. 근데 병원에서는 위로금이니까 한 삼천만 원까지는 생각했나 봐.”

“와, 삼천만 원이요?”

“응. 그래서 처음에 삼천을 부르면 계속 일억을 요구할 것 같아서 천만 원으로 부른 모양이야.”

“하긴. 일억은 너무 크죠.”

“근데 터무니없이 일억을 계속 부르니까. 병원에도 이미지 손실 생길까 봐 원만하게 합의하려고 계속 애쓰는 중이야.”

신 원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저 사람 때문에 나까지 골치가 아프다니까.”

“그러시겠어요. 빨리 해결이 되어야 될 텐데.”

그는 말없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장님 곧 진료 시간이시죠?”

신 원장은 내 질문에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른 준비해야겠다.”

“네. 저 그럼 다음에 물건 들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고.”

“고생하십시오.”

신 원장 진료실에서 빠져나오니 이미 로비에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그 틈을 비집고 병원 정문으로 나섰다.

여전히 서 있는 1인 시위자.

그리고 그 옆에 한 명이 더 붙어있었다.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붙어있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수첩과 카메라.

기자였다.

‘자칫하면 일이 커지겠는데?’

기사가 나고 일이 커지면 나에게도 좋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병원이 이미지 실축해 환자들이 줄어든다면 우리 회사 매출에도 직격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아차 하는 생각에 서둘러 시위하는 쪽으로 다가갔다. 기자가 맞는지, 취재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로 보이는 사람의 뒤에 서서 어깨를 툭툭 쳐 그를 불렀다.

“저기…….”

“네?”

그는 얼굴 쪽으로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어?”

“승원아!”

그는 다름 아닌 백승원.

그는 얼마 전에 메디컬 리베이트 기사를 광주 내에 처음으로 터뜨렸던 인물이자, 나의 동창생.

뜬금없이 이곳에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예상 밖이라 놀라기도 했다.

“뭐야? 너 여기 왜 있어.”

“나야 당연히 병원에 물건 넣으러. 너야말로 여기는 무슨 일이야?”

시위자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고갯짓으로 다른 쪽으로 옮기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백승원과 함께 병원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취재하러 왔어?”

“응. 저번에 리베이트 기사 낸 이후로 메디컬 쪽 취재하는 게 재밌더라고.”

“맛 들였나 보네.”

“그럼. 정치판은 내 취향이 아니고. 메디컬 쪽에 사람들이 은근히 관심이 많더라.”

“그렇지. 다들 병원은 취미로 다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조회 수도 잘 나오고, 실적도 나쁘지 않고.”

“적성을 찾았네.”

그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앞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는 모양.

재킷 안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자판기에 넣었다.

“뭐냐. 뇌물이냐?”

그는 자판기에 돈을 넣는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이내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뇌물은 무슨.”

“아까 취재한 거 물어보려고 돈 넣어준 거지? 맞지?”

“짜식. 먹기 싫으면 네 돈 내고 먹던가.”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체하고는 서둘러 커피를 자판기에서 꺼내며 입을 열었다.

“잘 마실게.”

“그래.”

“근데 지훈이 너 모던 정형외과도 담당이야?”

“응. 신동욱 원장님만.”

“신 원장님…….”

그는 내 말에 커피 종이컵을 입으로 잘근 물고 수첩을 꺼내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원장님 복 메디컬에서 관리하는 거 아니었어?”

“뭐야. 그런 거는 또 어떻게 알았대. 승원이 일 잘하네.”

“하하. 이제 반 메디컬 직원 됐다 이거야. 아무튼 복 메디컬에서 WG 메디컬로 넘어간 거야?”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이제 내가 들어올 거야.”

그는 수첩에 복 메디컬이라고 적혀 있던 부분을 볼펜으로 찍찍 그어 지우고, WG 메디컬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나저나 시위하는 저분 취재는 끝났어?”

“응. 거의 다 끝나고 사진 몇 장 찍고 가려는 데 너를 딱 만났지. 근데 사진도 다 찍어서 이제 가도 돼.”

“뭐래?”

“의료 사고라고 주장하나 봐.”

나는 의료 사고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본 백승원이 이어 입을 열었다.

“근데 사고 아닌 거 맞지?”

“응. 나도 알아봤더니, 의료 사고는 아니더라고.”

“이번에 취재 오기 전에 기존에 기사 나왔던 자료들 좀 봤거든.”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이렇게 시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됐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고.”

“그렇지. 의료 사고가 아닌 이상 터무니없이 요구하면 더더욱이나 그렇지.”

“그러게. 단체도 아니고 혼자 1인 시위하는데 되겠어?”

“양쪽 다 입장을 아니까 안타깝네.”

백승원은 주변을 살피더니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액수를 얼마를 부른대?”

“일억.”

“뭐? 일억?”

나에게 가까이 서 있던 그는 적잖게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뒷걸음치며 내게 되물었다.

“금액이 엄청나지?”

“근데 병원에서는 안 준대?”

“병원에서도 재진료도 해준다고 하고, 합의하려고 하는데 저분이 무리하게 금전적인 요구만 하시나 봐.”

“와. 나는 그렇게 큰 금액인 줄은 몰랐네. 근데 돈보다는 치료가 시급한 거 아니야?”

“응. 근데 병원에는 안 오나 봐. 듣기로는 형편이 좀 어려운 것 같더라고.”

“그래서 돈이 급했나 보네.”

그는 다 마신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으로 넣은 후 내게로 천천히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내가 아까 저분한테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말이야.”

“응. 뭔데?”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모던 정형외과가 광주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병원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시위를 하면 돈을 많이 받겠구나 싶었나 보더라고.”

“응? 그래서 시위를 하는 거라고?”

나는 미간에 힘을 주어 인상을 썼다.

“어쨌든 돈을 받기 위해서 시위를 하는 건 맞는데, 자신이 시위하면서 기사도 나고 해야 병원에서 하루빨리 돈을 줘서 합의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

나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시위라는 게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환자의 상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저렇게 돈만 요구하는 것이 안타깝고 한심하기까지 해 보였다.

“그래서 병원 이미지 더 실추시키기 전에 돈 내놔라,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하더라고.”

“에휴. 그래서 일억 전부를 요구하는 거래?”

“나는 일억이라는 이야기를 지훈이 너한테 들었어.”

“그럼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얼마래.”

백승원은 수첩을 뒤적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일억이 아닌 것 같아. 지금 혼자 흥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흥정?”

“병원에서는 천만 원을 주려고 한다면서 자신은 더 받아야겠다고 나한테 그러더라고.”

“맞아. 병원에서는 위로금 명목으로 천만 원 제시했다고 하더라.”

“근데 저분 상황 들어보니까 일억은 그냥 던진 것 같고, 내가 보기에는 이삼천만 원 정도만 줘도 합의할 것 같던데.”

그는 지레짐작으로 말하는 것치고는 눈에 확신이 차 있었다.

“뭐라고? 이삼천만 원?”

나는 이삼천만 원 정도라는 금액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 원장이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삼천만 원이었는데 환자가 만족할 만한 금액이 이삼천만 원이라니.

그럼 충분히 원만하게 합의가 됐었을 텐데, 서로 팽팽한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응. 이것 봐 봐.”

그는 수첩에 적힌 취재 내용을 보여주며 이삼천만 원에 동그라미에 별표까지 연달아 쳐 놓은 페이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러네.”

“병원에서는 삼천만 원 주는 게 많이 어려운가 보네?”

나는 그의 질문에 어깨를 들썩이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지이잉.

그때 울리는 백승원의 휴대폰.

“지훈아. 나 가봐야겠다.”

내게 전화가 오는 화면을 보이며 이야기를 하는 그. 나는 그를 보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보자.”

“승원아!”

뒤를 돌아가려는 그를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응?”

“저기…….”

내 말에 그는 전화를 주머니에 다시 넣은 채 내게로 다시 저벅저벅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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