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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45화 (45/339)

45화

“나는 영 못 믿겠더라고.”

손지혁 차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우리 회사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복 메디컬이 기울기 시작했을 때 바로 퇴사한 것도 그렇고. 여기 와서 행동하는 것도. 아직은 섣불리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말이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 차장을 바라보았다.

“전부 믿지는 못하겠더라고. 그러니까 옥주 병원도 민 대리 담당 병원이니까, 아무 말 말고 출근일 확인 잘해서 혼자 다녀와 봐.”

“네.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서 기회 되면 이상일 차장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으면 물어보고.”

“네.”

손 차장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 차장에게 경계 태세를 접지 않은 것 같았다.

* * *

아침에 눈을 떠 집에서 나오자마자 회사나 병원이 아닌 꽃집으로 향했다. 국동 정형외과에 새로 출근하는 써전에게 줄 화분을 사기 위해서였다.

보통 써전들이 개인 병원을 개원하거나, 이직했을 때에는 화분을 선물하고는 한다.

첫 출근이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오는 메디컬 영업 직원들. 그 사이에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명함으로는 부족하다.

화분에 메디컬 명을 기재한 리본을 달아 진료실에 비치해 둬야 두고두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화분을 가지고 간다면 써전의 진료실 안쪽이 아닌, 진료실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눈길이 항상 갈 수 있는 탁상용 화분으로 구매를 해야 한다.

새로운 신입 써전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병원으로 향해도 되지만 혹시나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 다른 메디컬에서 올 새라 서둘러 9시에 맞춰 국동 정형외과로 향했다.

9시에 가면 정신이 없을 테지만, 화분을 주며 첫 번째로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면 분명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병원 입구에 들어와 외래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민 대리님 오셨어요?”

“네, 선생님 오늘 새로 오시는 써전분 있으시죠?”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다 알고 왔죠. 하하, 방 배정은 어디 쪽으로 받으셨어요?”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박민찬 과장님 방 있어요.”

“혹시 다른 메디컬에서 왔다 간 직원 있나요?”

“아니요. 아마 이야기 안 해서 알고 있는 메디컬 없을걸요?”

“네. 감사해요, 선생님!”

그녀가 안내해 준 대로 안쪽으로 쭉 들어가니, ‘박민찬 과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진료실이 있었다.

원장, 과장 등 병원에서의 직책은 회사에서 붙여 주는 직책과 동일하다.

회사마다 직원들에게 붙여 주는 직책 체계가 다른 것처럼 병원도 병원마다 직책을 붙이기 나름이다, 병원의 재량인 셈이지.

박민찬 써전은 신입으로 출근을 했기에, 병원에서 과장이라는 직책을 준 것 같았다.

똑똑.

화분을 팔 사이에 끼고, 한 손으로 노크를 한 뒤에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박 과장.

나를 보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화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아 내가 처음으로 찾아온 메디컬 직원임이 분명했다.

“오늘 오신다고 해서 이거… 별건 아니지만, 축하드립니다.”

나는 들고 있던 화분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 첫 출근인데 이런 거 받으니까 감동적인데요?”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내밀고 내가 들고 있는 화분을 받아 들었다.

내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박 과장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 화분에 붙어 있는 리본의 글씨를 작게 읽어 보았다.

“WG 메디컬…….”

“네.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WG 메디컬의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며 재킷 안 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WG 메디컬이면 국동 정형외과 전체 담당하시고 계시는 분 맞죠?”

“맞습니다. 어떻게 벌써 알고 계셨네요?”

“네. 원장님들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박민찬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 과장은 책상 서랍을 열어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건넸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신입으로 들어온 박 과장은 메디컬 쪽에 대해 잘 모를 게 뻔하다.

메디컬 쪽에 가까운 지인이 있다든지, 아는 메디컬 회사가 없다면 병원에서 추천하거나 이미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이어서 쭉 사용하게 된다.

초반에는 제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기에 이미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품부터 습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쪽 세계에 적응해 나갈 때쯤, 하나둘 다가오는 메디컬 회사들의 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당연히 우리 WG 메디컬의 제품을 쓸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여겨 지금 영업을 해놓지 않는다면 초반에 다가오는 다른 메디컬 회사에 한두 품목을 빼앗길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작게는 한가지 품목이라도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하게 된다면 우르르 빠져나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니 초반에 모든 제품을 우리 제품으로 쓸어둬야 한다.

“지금 국동 정형외과에 제품들 다 저희 물건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카탈로그 한 부씩 준비해 왔으니까 보시고 문의하실 거 있으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물건 쓰시면서 불편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 오늘 첫날이라 바쁘실 텐데 얼른 인사만 드리고 가려고 왔어요.”

“아… 화분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자주 뵐 텐데, 과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방에 챙겨온 카탈로그 파일을 건네며 재차 인사를 했다.

“네. 자료랑 병원 물건 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연락 드릴게요.”

“넵.”

똑똑.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노크를 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정장을 입은 남자.

한 손에는 서류 가방과 명함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메디컬 직원임이 분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질풍 메디컬에서 왔습니다.”

나는 그를 지나쳐 열린 문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병원 출입구로 향하지 않고,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아 진료실 안의 대화 내용이 흘러나오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써전이 왔다는 소식이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다들 알고 찾아온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더불어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민 대리!”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불렀다.

뒤를 돌아보자, 반가운 인물이 서있었다.

“임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임연석 원장.

국동 정형외과의 전문의로 처음부터 나와 거래를 하던 써전 중 하나.

한창 볼링에 빠졌을 무렵, 임 원장과 주에 2회 이상 만나 볼링은 물론, 같이 술자리까지 가지며 오래도록 친분을 쌓아왔다.

“여기서 뭐 해?”

“오늘 박 과장님 새로 왔다고 해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이제 온 거야?”

“아니요. 들어갔다가 이제 막 나오는 길입니다.”

그는 박 과장 진료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문을 열었다.

“박 과장!”

진료실 안에서는 박 과장과 질풍 메디컬의 직원이 뒤를 돌아 임 원장을 쳐다보았다.

“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질풍 메디컬에서 왔습니다.”

질풍 메디컬 직원은 임 원장을 보고 바로 명함을 하나 꺼내어 다가왔다. 명함을 이리저리 살펴본 임 원장은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병원이 지금 WG 메디컬 제품만 사용하고 있어서… 어쩌죠? 다음에 혹시나 거래처 바꾸게 된다면 연락할게요.”

그는 메디컬 직원에게 말을 쏟아붓고 나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네. 그럼.”

메디컬 직원이 황급히 자리에서 떠나고 임 원장은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봤지? 우리 이렇게 WG 메디컬이랑만 일하니까, 제품 좋은 거 싸게 가져다줘. 새로 온 박 과장한테도 잘 좀 해주고.”

“당연하죠. 원장님. 제일 잘 해드려야죠. 하하.”

내 메인 병원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기쁨을 만끽하며 국동 정형외과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전에 사둔 화분 중 남은 한 개를 들고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 손지혁 차장과 이야기했던 ‘옥주 병원.’

“안녕하십니까. WG 메디컬의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어김없이 명함을 주고받은 뒤, 안내해 주는 진료실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어느 병원이든 첫 인사는 다 거기서 거기다. 문제는 그 뒤가 중요하지.

조금 전에 만난 박 과장은 초보라서 간단했지만, 눈앞에 있는 인물은 강성원 원장. 레일 정형외과에서 넘어온 인물로 40대는 훌쩍 넘어 보였고, 후덕하고 순박한 이미지의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업계 베테랑인 만큼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새로 오셨다고 들어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요?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원장님. 이거 작지만, 선물 하나 들고 왔습니다.”

나는 화분을 건네며 말했다.

조금 전에 박 과장에게 선물했던 것보다 조금 더 크고 튼튼한 식물.

“아, 감사해요. WG 메디컬이면 여기 병원 담당 메디컬 맞죠?”

“네, 맞습니다.”

강 원장은 내 말을 듣고 명함을 보며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원장님들이 민 대리님 일 잘하신다고, 웬만하면 WG 메디컬 제품 쓰라고 어찌나 이야기하시던지.”

“정말요? 하하.”

“제가 다른 병원에서 넘어온 거긴 한데, 담당하던 메디컬이랑… 아무튼 메디컬 회사 담당이 따로 없어서 병원에서 쓰는 제품들 그대로 써보려고 했거든요.”

“그럼 저희 제품들 설명도 한번 드려야겠네요.”

“네. 써보고 안 좋으면 바꿀 테니까 잘해 주셔야 해요.”

“원장님. 실망 안 하시게 잘 챙겨오겠습니다.”

“그래요. 카탈로그 있으면 한 부 주고 가요.”

“안 그래도 챙겨 왔는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참 제품을 설명하고 난 후, 이상일 차장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대화 주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레일 정형외과에 계신 던 거 맞으시죠?”

“이미 알고 오셨네?”

“그럼 혹시 원장님도 복 메디컬이랑 일하셨던 것도 맞으신 가요?”

“오, 맞아요. 민 대리님이 레일 정형외과 때 알고 있었나?”

“아니요. 이번에 복 메디컬에 있던 직원이 저희 회사로 이직해서 들었습니다.”

내 말에 강 원장은 순간 표정이 굳으며 미간에 힘을 주고 나에게 되물었다.

“혹시 이직했다는 직원이 이상일 과장 맞아요?”

나에게 묻는 그의 말과 눈빛, 그리고 표정을 보아하니 이상일 차장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네. 이상일 차장이요. 복 메디컬에서는 과장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복 메디컬은 괜찮대요?”

“듣기로는 직원들도 몇몇 퇴사하고, 조금 힘들어한다고 전해 듣긴 했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레일 정형외과가 복 메디컬의 메인 병원이었으니까, 타격이 크긴 했을 거야.”

그는 혀를 내두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근데 이 과장, 아니 이 차장이라고 했나요?”

“네.”

“이 차장은 언제 거기로 이직했어요?”

“얼마 안 됐습니다.”

그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손은 책상 위에 올려 손가락을 책상 표면에 연달아 퉁기며, 허공을 바라보고 한참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십여 초의 정적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해 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WG 메디컬에서 모르고 있을 거 같아서요.”

그는 침을 한번 삼킨 뒤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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