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똑똑.
나를 비롯해 박수진 주임도 놀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장홍석 이사와 옆에 서 있는 최준성 과장.
그들을 보고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검지를 들고 자신과 우리 옆 소파를 번갈아 가며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손짓을 해 보이는 장 이사. 그러더니 이내 그들은 출입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야? 둘이 왜 같이 있어?”
장 이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눈을 작게 뜨고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희 회사에서 일 덜 마친 게 있어서 카페로 왔다가 마주쳤습니다.”
“저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와의 진지한 대화 도중 그들이 들어온 게 못마땅한지 그녀는 입을 샐쭉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님 벌써 식사 다하셨습니까?”
“응. 사무실에 되는 사람이 최 과장이랑 나밖에 없어서 앞에서 국밥만 먹고 나왔어.”
“죄송합니다. 서류 작업이 생각보다 길어져서요.”
“괜찮아. 금방 먹고 가려고 했었어. 근데 박 주임은 왜 아직도 있어?”
“박 주임도 업무 덜 끝났다고 노트북 가지고 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장 이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회계부에서 무슨 퇴근하고도 할 일이 있어?”
“업무가 남았다고…….”
“박 주임 아까 나보고 민 대리한테 뭐 전달할 이야기 있다고 해서 카페 갔다고 알려 줬었는데, 계속 같이 있던 거야?”
그녀는 내가 카페에 있다는 것을 듣고 따라온 모양.
“뭐야. 둘이 뭐 있어?”
카페 소파에 기대어 다리를 꼬아 앉은 최 과장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아니. 둘이 무슨 관계냐고. 왜 퇴근하고 여기 같이 있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 주임. 민 대리랑 뭐 있어?”
화장실을 다녀와 자리로 돌아오는 그녀를 향해 재차 묻는 최 과장.
“아니요. 근데 왜 궁금하신데요?”
최 과장보다 더 퉁명스러운 말투로 되묻는 그녀였다.
“퇴근하고 둘이 같이 카페에 있으니까.”
“최 과장 놔둬. 둘이 청춘이잖아. 한창 연애할 나이지.”
장 이사가 최 과장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이사님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 이사를 향해 대답했다.
“에이, 이사님 그래도 둘은 안 어울리죠.”
최 과장은 한 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주임이 입을 열었다.
“뭐가 안 어울리는데요?”
“박 주임이 훨씬 아깝지.”
기분이 좋을 수도 있는 대답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최 과장에게 되받아쳤다.
“그러니까 제가 뭐가 그렇게나 훨씬 아까운데요?”
“뭐… 박 주임은 예뻐서 회사에서 인기도 많고. 일도 잘하고…….”
“민 대리님이면 제일 괜찮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누가 아깝고 누가 덜 한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민 대리님이 부족한 것도 없고.”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허공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이런 대화에 테이블 끝쪽에 자리 잡은 장 이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홀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진 최 과장은 헛기침해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담배 좀 피우러 다녀오겠습니다.”
입에 대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는 박 주임.
머그잔 뒤에 숨겨진 그녀의 입술에는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 * *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민 대리.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준비한 견적서와 물건을 한 아름 챙겨 국동 정형외과 김석민 원장에게로 출근했다.
“어제 왔을 때 말씀드렸던 물건들 괜찮은 품목들로만 골라서 챙겨 왔습니다.”
“어제 이야기했는데 벌써 왔어?”
“네.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응. 오전에 진료 없어서 가능해. 여기 앉아.”
김 원장은 진료실 앞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건 뭐 가져왔는데, 그렇게 한가득이야?”
“원장님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셨으면 해서 괜찮은 것들 전부 들고 왔습니다. 하하.”
“그중에 하나는 있겠지, 뭐 그런 거야?”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마음에 드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하핫.”
“그래. 어디 한번 봐보자.”
가방에서 견적서를 빼내어 김 원장에게 건넸다.
“우선 가져온 물품들 견적서입니다. 보고 계시면 물건들 세팅해 두겠습니다.”
견적서를 설명하고 이어 물건을 테이블 위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민 대리.”
“네?”
상자 속 물건들을 꺼내다 말고 뒤를 돌아 김 원장을 쳐다보았다.
“이거 물건들 비급여 제품이야?”
견적서의 코드를 본 김 원장은 나에게 물었다.
“네. 어제 가져왔던 품목들은 비급여 제품이고, 오늘 가져온 제품들은 비급여 산정 불가 품목들로 가져왔습니다.”
“왜 갑자기 산정 불가 품목으로 가져왔어?”
어제 그의 속마음을 읽고 산정 불가 품목들로만 가지고 왔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노릇.
그의 질문에 제자리에 멈추어 허공을 바라보며 눈알을 연신 굴려댔다.
“급여 제품, 비급여 제품들은 보여 드렸었고, 산정 불가 품목들은 제가 보여 드렸던 적이 없어서 괜찮은 것들로 선정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흠. 그래?”
“네. 혹시 산정 불가 품목은 사용 안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는 한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건 아닌데, 산정 불가 품목을 내가 요청 안 했는데 가져오는 회사는 처음이네.”
“그렇습니까? 제가 국동 정형외과에 계속 납품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장님도 저희 제품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회사에서 드릴 수 있는 최대한 저렴한 금액으로 뽑아 왔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견적서의 금액 부분을 손가락으로 쭉 훑어보았다.
“제가 재량껏 최대한 낮춰서 뽑아 왔는데, 산정 불가 품목이다 보니 원장님이 환자에게 청구하실 수 있는 금액도 같이 산출해 왔습니다.”
“그러네. 옆에 마진율? 이건 우리 마진율 계산해 준 건가?”
“네. 저희가 드리는 견적서랑 환자에게 청구하는 금액은 마지노선 단가로 청구했고, 그에 따른 병원 마진율까지 계산해 뒀습니다.”
김 원장은 흡족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민 대리.”
“네, 원장님.”
“왜 다른 원장님들이 전부 민 대리랑 일을 하는지 안 물어봐도 알겠네.”
“네?”
“이렇게 일 처리가 깔끔한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
그는 견적서를 들고 흔들며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김 원장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이렇게 환자 청구액에 병원 마진율까지 계산해서 오는 직원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어.”
“정말입니까?”
“응. 내가 다른 거래처랑 오래 일했던 거, 민 대리도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리베이트를 받으며 한 거래처와만 쭉 거래를 했던 김 원장.
모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영업이 안되는 원장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거래처를 바꿔보려고 사실 여기저기 회사에 샘플들 요청했었어.”
“그러셨습니까?”
여기저기 비교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대놓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근데 아무래도 이쪽에 오래 일하다 보니, 사람 대 사람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커.”
“그렇죠. 매일 사람들 상대하시기도 하고, 메디컬 회사 직원들과도 계속 만나고 하시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물건도 물론 좋아야 하고 금액적인 부분도 충족이 되어야 하지만, 여기저기 비교해도 뭐 알다시피 물건들이 다 비슷비슷하잖아?”
“음… 쓰임새는 다 같은 제품으로 찾으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응. 단가도 조정하면 다 거기서 거기잖아. 그래서 나는 사람보고 거래처 선택하거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나랑 잘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게 앞으로도 편하고, 알잖아. 거래처 트고 나면 몇 년이고 꾸준히 쓰는 거.”
맞는 말이다.
한 번 병원과 거래를 트게 되면 큰일이 있지 않은 한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 이미 병원에 한가득 넣어둔 재고와 수술 재료들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반품을 하고 새로운 회사 제품을 채워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을 바꾸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익숙해져 있는 제품들을 다른 제품으로 바꾸면 의사뿐 아니라 환자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간호사들도 모두 사용법을 익혀야 하고, 코드도 제품마다 다르기 때문에 총무과와 심사과에서도 전산과 서류를 모조리 바꿔야 한다.
소모품은 그래도 간단한 편이지, 수술 재료들은 수술하는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보니 익히고 감을 잡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쉽사리 거래처를 바꾸기가 힘들어 한 번 거래처를 정할 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거래처 직원도 여러 번 만나면서 결정을 하게 된다.
“네, 그렇죠. 아무래도 오래 같이 일하려면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이 잘 맞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도 정말 많은 업체에 요청했는데. 민 대리가 제일 잘 맞는 것 같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김 원장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정말이십니까?”
“그럼. 내가 괜한 생각이었어. 이렇게 모든 원장님들이 전속으로 WG 메디컬에 민 대리랑만 일하는 건 이유가 있었을 텐데 말이야.”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 원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믿고 전속으로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처럼 극찬인 말이 또 없을 것이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며 김 원장을 바라보았다.
“고맙긴.”
“그럼 물건들 얼른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펼쳐둔 상자 쪽으로 다시 다가가 물건들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아니야. 민 대리, 두고 가.”
“네?”
물건을 꺼내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하려는 찰나, 그냥 두고 가라는 단호한 김 원장의 말에 놀라 그에게 물었다.
“어차피 민 대리한테 물건 발주할 거니까. 내가 견적서 보고 필요한 것만 와서 설명해줘.”
“아… 그래도 물건 지금 안 보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견적서랑 물건 두고 가면, 내가 체크해서 봐 보고 연락 줄게.”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확인해 보시고, 물어보실 거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면 바로 오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해 보자고.”
“네. 원장님.”
리베이트 기사로 인해 광주 정형외과 전체가 위기에 빠진 지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역시 나였다.
* * *
사무실로 복귀를 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갈수록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
옥상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2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것 같은데 쉴새 없이 주고받는 목소리에 옥상 문을 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