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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9화 (39/339)

39화

【 검은돈 】

핸드폰을 열어 문자 수신함을 클릭했다.

문자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백승원.

[지훈아. 너희 쪽으로도 다른 언론사에서 연락 많이 오지? 회사는 좀 괜찮아?]

아침에 백승원과 통화를 한참 했는데, 문자까지 온 것을 보면 여간 걱정이 된 모양.

[응. 계속 여기저기에서 연락은 오는데 별일은 없어.]

답장을 보내자마자 1분도 채 되지 않아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다행이네. 정형외과 메디컬 리베이트 이슈가 커지긴 했나 봐. 이번에 ‘이것이 알고 싶다’ 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하더라.]

백승원이 말하는 ‘이것이 알고 싶다’ 이건 현재 TV에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시사 이슈 등을 다루는 방송이다.

꾸준한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라 한번 방송이 되면 한동안은 전국적으로 그 내용에 대해서 떠들어 대고는 한다.

거기에 정형외과 메디컬의 리베이트 관련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라니.

이번에야말로 뒷돈, 검은돈이 세상에 알려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다면 아마 한동안 정형외과 쪽 병원에서는 리베이트를 쉬쉬할 것이다. 하지만 뿌리가 온전히 뽑히지는 못하고 이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겠지만 말이다.

리베이트가 잠잠해지는 기간은 사람들의 관심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

세상이 떠들썩한 동안에는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의 관심이 식는 순간 곳곳에서 검은돈이 다시 뿌려지기 시작할 거란 건 분명하다. 그리고 한동안 메디컬 쪽에는 위기가 닥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물론 나는 단 한 번도 일말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적이 없기에, 이 메디컬 세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승원에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답장을 하고, 핸드폰을 닫은 후, 인터넷 창에 ‘이것이 알고 싶다’를 검색해 사이트를 클릭했다.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뜨는 배너 하나.

「이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정형외과 메디컬의 검은돈’에 대한 제보를 받습니다.

정형외과 관련 메디컬에서 근무를 했거나, 근무 중이신 분.

정형외과 병원에서 근무했던 직원, 인공 관절과 소모품의 리베이트 등에 관련하여 제보를 주실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회의실의 회의가 드디어 끝난 모양.

“어? 이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 시작하는 거예요? 난리네.”

지나가며 내 모니터를 보고 이야기하는 한태준.

그 소리를 듣고 손지혁 차장이 다가왔다.

미간에 힘을 주고 허리를 숙여 내 모니터에 시선을 꽂은 그.

눈을 움직여 내용을 읽은 후에 손 차장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큰 파도가 덮치겠네.”

“아마 한 달쯤 지나면 방송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조하며 대답했다.

손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 힘을 주고, 숙이고 있던 허리를 곧게 세우며 일어났다.

“대표님. 방송에도 곧 나오려나 봅니다.”

그는 큰 목소리로 회의실 앞에 서 있는 대표를 향해 소리쳤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콧바람을 세차게 내쉬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이내 대표실로 향했다.

손 차장은 나를 쳐다보며 검지와 중지를 붙이고는 턱을 들어 위쪽으로 까딱거렸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는 싸인 임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재킷을 걸쳐 입었다.

손 차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난간 앞에 서자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회의가 엄청나게 길어졌네요?”

나는 그의 한숨 소리를 듣고, 들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물었다.

“그러게.”

이어 나도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 입에 물어 불을 붙여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한동안 광주 쪽이 아주 난리가 날 것 같습니다.”

“응. 민 대리도 이번 주는 몸조심해서 병원 다니고.”

“근데 이번 사건 해서 찔리는 것도 없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다들 이렇게 조심히 다녀야 하는 겁니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윗선에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조심해서 다니라는 이야기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지. 사실상 잘못한 게 없으니까 당당하게 다녀도 되는 게 맞는 거지.”

“근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이런 일 있으면, 기자들은 기사를 내야 하잖아. 기존에 나왔던 기사보다 더 세세하고,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로.”

“그렇죠.”

“그게 뭐겠어. 더 자극적인 이야기겠지.”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들이 한창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인 메디컬에서 뭐라도 잡으려고 안달이 날 거야. 리베이트가 아니더라도 뭐든지. 괜히 기자들 마주쳐서 말이 헛나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그게 소재거리가 될 테니까.”

나는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그에게 물었다.

“차장님. 근데 우리 회사 내에서는 리베이트를 꾸준히 하는 직원은 없는 거죠?”

최준성 과장이 리베이트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모든 병원에 하고 있는지, 일부 병원에만 하고 있는지, 또 내가 모르는 다른 직원들이 그런 만행을 펼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쎄다. 우리 회사가 이쪽 바닥에서 오래 터 잡고 성공하고 있는 건, 깨끗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성장했을 수는 없을 거야.”

그는 아는 이야기는 많지만, 입 밖으로 쉽게 꺼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하얀 연기를 가득 내뿜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네, 차장님.”

“잘 들어. 이제 이 바닥에서는 곪고 곪았던 게 드디어 터진 거야.”

나는 그의 말에 눈썹을 들썩이며 경청했다.

“전국적으로 퍼지겠지만, 우선은 광주에서 터지기 시작했으니 위기도 제일 먼저 찾아오겠지.”

손 차장은 새 담배를 다시 꺼내어 입에 물었다.

줄담배를 피는 것을 보니, 어떤 의미에서 포커스가 맞춰 진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도 이번 일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한동안 병원에 리베이트가 잠잠해질 거야. 자칫 걸렸다가는 써전이고, 회사고 다들 조사 들어갈 테니까.”

“네.”

“이때가 기회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손 차장의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 얘기해 봐.”

“병원에서 리베이트 때문에 썼던 제품들이 뒷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면 굳이 쓸 필요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저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다른 제품, 저렴한 단가로 영업하는 거죠.”

손 차장은 엄지와 중지를 퉁기어 ‘딱’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민 대리는 내가 잘 키웠어.”

“제가 누굽니까. 차장님한테 일 배웠는걸요.”

“하하. 그래. 어떤 차장한테 배웠는지, 일 참 잘해, 민 대리가.”

“감사합니다. 하핫.”

나는 웃으며 손 차장에게 목례를 장난스레 해 보였다.

“아무튼. 저번에 민 대리 그 기자 친구가 KJ 병원 제보받았었다고 했었잖아.”

“네, KJ 병원 맞습니다.”

“KJ 병원은 이 사건 잠잠해질 때까지 거래처 바꾸기 힘들 거야. 자기들이 리베이트 받았다는 거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렇겠네요.”

“응. 그러니까 주변에 큰 병원들, 그리고 민 대리 담당 병원에서 못 뚫었던 써전들 있지?”

“있습니다. 박찬 병원이랑 국동 정형외과도 있고…….”

“거기가 담당 병원인데 한두 명 써전만 영업 안 된 거지?”

“맞습니다.”

박찬 병원, 국동 정형외과.

두 병원의 공통점은 딱 하나이다.

내가 병원 전체를 영업했는데, 딱 한 명의 써전들만 다른 메디컬의 제품을 쓴다는 것.

병원에 정형외과가 있으면 원장이 적으면 1명, 많게는 5명 이상인 곳도 있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큰 병원에는 그 이상 원장의 수가 있겠지만 내가 그동안 영업을 했던 광주, 전라도 쪽에서는 5명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영업을 나가게 되면 보통은 한 명의 원장만을 겨우 영업할 수 있게 된다.

원장마다 사용하는 제품이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천지 차이라 그 모든 원장을 포섭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지금 명의 병원만 보아도 2명의 원장을 힘들게 영업했으니 말이다.

원장 한 명을 영업 성공하여 납품하다 보면 제품이 좋아 다른 원장들도 포섭할 수 있게 된다.

원장마다 병원에 끼치는 힘이 다르겠지만, 병원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원장일수록 그 힘은 확실히 다르다.

납품하러 병원에 가다 보면 다른 원장들과 친분도 쌓이게 되면서 점점 영업의 영토가 넓어지는 셈.

점차 다른 원장들까지 영업하다 보면, 병원 전체의 물품이 우리 제품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메인 병원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뜻한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충분히 기간을 두고 공을 들이다 보면 메인 병원이라는 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메디컬 직원들은 한 원장에게 영업을 성공한 후에도 정성을 쏟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하지만 박찬 병원과 국동 정형외과는 내가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명의 원장들만 넘어오지 않았다.

박찬 병원은 원장 한 명이 쓰는 메디컬 회사가 있었고, 그 메디컬은 자신의 지인 회사라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했다.

국동 정형외과는 늘 샘플만 받아보고, 단 한 번도 피드백이 돌아온 적이 없었다.

“박찬 병원이 메디컬에 지인 있어서 영업 안 된다고 했던 병원인가?”

“네, 맞습니다. 차장님 기억력 좋으신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럼. 이 바닥은 기억력이 생명이야.”

손 차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입꼬리를 올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찬 병원에 원장님 한 분이 메디컬에 어떤 사이의 지인인지는 말 안 해주셔서 모르겠는데, 절대 다른 메디컬로 안 옮기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이어 떠올랐는지 검지를 치켜들고 이야기했다.

“박찬……. 거기가 내가 알기로도 실제로 지인이 메디컬 하는 거로 알고 있어.”

“그럼 진짜였네요. 저는 늘 둘러대시는 건가 했었는데.”

“아니야. 진짜 지인이 하는 거라, 절대 안 바꿀 거야.”

“그러면 거기는 희망이 없네요.”

“그럴 것 같네. 국동 정형외과는?”

“거기는 원장님 한 분이 계속 샘플만 요청하세요.”

“샘플만?”

“네. 다른 원장님들 뵈러 갈 때마다 마주치면 새로운 제품 샘플만 찾으시고는 그렇게 단 한 번도 피드백이 안 돌아오더라고요.”

“희한하네.”

“그러니까요. 그 제품 가지고 다른 메디컬에 동일 물건으로 발주를 넣으시는 건지…….”

나는 입을 샐쭉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드백도 없고, 발주도 없는데 샘플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고. 매번 곤란한 원장님들 중 한 분이세요.”

손 차장은 눈을 크게 뜨더니, 내 오른쪽 어깨에 자신의 손을 세게 가져다 두며 말했다.

“거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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