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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6화 (36/339)

36화

예상과 다른 부모님의 반응 때문에 아쉬움을 삼켜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 버린 후.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다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아하니 내가 들어올 타이밍을 여간 잘못 맞춘 것 같았다.

찰칵, 찰칵.

평소 사진이라면 질색을 하시던 아버지. 이 각도, 저 각도에서 텔레비전을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찍고 계셨다.

이런 걸 뭐하러 사 왔냐고 핀잔을 주실 때는 언제고, 어지간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신발 한쪽을 벗다가 멈춰 서있는 나를 보고 급히 핸드폰 뒤로 가기 버튼을 연달아 누르시는 아버지.

“…왔냐?”

“네. 잠깐 산책 좀 하고 왔어요. 뭐 하고 계셨어요?”

가죽으로 된 두꺼운 스마트폰 케이스 덮개를 황급히 닫으시며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가셨다.

“그냥 핸드폰 좀 하고 있었지. 근데 네 생일인데 필요한 걸 사지, 뭐 하러 이렇게 무리를 해.”

“아버지, 저도 이제 돈 벌어요. 아들이 늦게라도 효도한다. 생각하시고 그냥 쓰세요.”

“그래도 이 정도 크기면 돈도 솔찬히 나왔을 텐데. 힘들게 돈 벌어서 우리한테 너무 쓰지 마라.”

늘 무언가를 해드릴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너 하고 싶은 거 하지, 미안하게.’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걱정이 앞서 하시는 말인 것을 알지만, 사과보다는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싶었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걱정에 앞으로는 이런 소리를 하시지 않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는 것.

이렇게 한 번씩 집에 내려올 때마다 ‘그래. 더 열심히 살아서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자.’라는 마음을 다잡고 가게 된다.

“그렇다니까. 그래. 우리 아들 오늘 왔지. 응.”

살짝 열린 안방 문틈 사이로 어머니의 통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맞아. 요즘 텔레비전이 어찌나 화질이 좋은지 몰라. 연예인들 피부에 모공까지 다 보이더라니까? 크기는 또 어찌나 큰 걸 사 왔는지. 통은 큰 게 아주 누굴 닮았나 몰라. 눈이 아주 환해졌어. 그럼, 너무 좋지.”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목소리.

어머니가 한껏 자랑을 펼치실 때 나오는 톤이다.

이런 건 필요 없다고 하시더니, 어디에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랑을 하시는지. 아들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신 채 전화 삼매경에 빠져 계셨다.

아들이 힘들게 돈 버는데 자신들을 위해 쓴다는 생각에 덜컥 받으며 고맙다고는 하시지 않았지만, 이렇게 뒤에서 좋아하고 계시니 뿌듯함이 극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좋아하실 줄 알았다면 진작 사드릴걸,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 * *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주말을 뒤로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여수에서부터 어머니가 바리바리 한 짐 가득 싸주신 반찬들을 차에서 꺼내 집으로 들어갔다.

회식과 외식 그리고 배달 음식이 대부분인 30대의 직장인 아들이지만 집에 내려갈 때면 꼭 빠지지 않고 음식을 한가득 챙겨주시고는 한다.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이번에 챙겨주신 음식은 상하지 않게 잘 챙겨 먹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냉장고에 꽉꽉 채워 넣었다.

정리를 마친 후 부모님께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가족 톡방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

프로필 창에 꽉 채워진 사진은 다름 아닌 텔레비전 사진이었다.

거실에서 열심히 찍으시던 그 텔레비전 사진을 프로필로 저장해 두신 것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진 위에 있는 상태 메시지에는 ‘아들이 사준 TV. 고마워 아들~’이라는 문구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그 문구 위로 희미하게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내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번졌다.

* * *

5시 10분.

“자, 그럼 이만 정리하고 일찍 나가자.”

“네!”

장홍석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션에 팔을 지탱한 채 사무실 직원 전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월요일 저녁부터 회식이다.

바로 이상일 차장의 환영회.

“오늘은 어디로 예약했냐?”

최권호 부장은 의자에 걸린 재킷을 챙겨 일어나며 물었다.

“길 건너에 새로 생긴 집으로 예약했습니다!”

백태석은 최 부장의 물음에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저번 주에 오픈한 그 집?”

“예, 맞습니다.”

“…거기도 삼겹살집 아니야?”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빼꼼 고개만 내밀고 말하는 최준성 과장.

그의 말에 백태석은 한껏 기가 죽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 다른 것도 팔긴…….”

“됐어. 다들 얼른 챙겨, 가자.”

장홍석 이사가 백태석의 말을 끊고 인상을 찌푸리며 턱 끝으로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길만 건너면 되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이제 막 오픈한 가게답게 입구에는 축하 화환들과 화분이 가득했다.

“민 대리, 들어가자고.”

“차장님, 오셨습니까.”

외근 업무를 마치고 바로 식당으로 오던 손지혁 차장과 마주쳤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턱하고 올려 어깨동무를 한 채 말을 했다.

“다들 빨리 나왔네?”

“네. 이사님이 나가자고 하셔서요. 차장님은 이제 막 도착하신 겁니까?”

“응. 차가 너무 막힌다. 근데 또 삼겹살이라니?”

“하하. 네, 저희 회식 메뉴가 어디 가겠습니까.”

‘WG 메디컬’이 적혀 있는 예약 현황표를 확인 후, 예약석으로 향했다.

“민 대리! 여기!”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이상일 차장이었다. 이 차장은 장홍석 이사 맞은편에 앉아 내게 손을 흔들며 옆자리 의자를 빼내어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 등을 살짝 밀며 가라는 손 차장. 그는 내 옆 테이블에 앉았고, 나는 이 차장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하나둘 자리를 채워 세팅해 둔 테이블이 모두 꽉 찼다.

“이 차장이 민 대리를 너무 예뻐하네.”

“티가 납니까, 이사님?”

“그럼. 매번 민 대리만 찾는 거 같은데?”

“제가 속물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일 잘하는 친구들만 보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명의 병원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더니, 그것 때문인지 이 차장이 자꾸 날 찾는 게 티가 났다.

내 맞은편에는 한태준, 그리고 바로 옆 테이블에는 손 차장과 대표, 그리고 다른 직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에 이상일 차장 새로 온 기념으로 환영회 하는 거니까, 먼저 이 차장의 건배사부터 들어봐야겠지?”

대표의 말에 각자 수군거리던 온 직원들이 대화를 멈추고 그를 향해 집중했다.

“자자. 그럼 앞에 잔들부터 채우시고!”

뒤이어 최권호 부장이 큰소리로 외치며 술병을 들어 보았다.

“WG 메디컬에 오게 되어 기쁘고, 서로 모르는 건 도와 가면서 잘 지내봤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선창하면, ‘위하여’라고 후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WG 메디컬을 위하여!”

“위하여!”

환영회답게 이상일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사를 크게 외쳤다.

건배사 이후로는 각 테이블마다 서로 주고받으며 술잔을 이어갔다.

“다들 지난 주말에 뭐 했어?”

장 이사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저는 본가 다녀왔습니다.”

“민 대리 광주 사람 아니구나. 본가가 어디야?”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이 차장은 내게 되물었다.

“저 여수입니다.”

“여수 밤바다, 그 여수?”

그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이야기했다.

“네, 그 여수 맞습니다.”

“이제 여수보다 여수 밤바다가 더 유명하다면서?”

앞에 앉은 장 이사도 한마디를 거들며 말했다.

“하하. 네. 언제부턴가 여수에 다들 밤바다 보러 오더라고요.”

“나는 순천에 잠깐 살았었는데, 그때 여수 진짜 자주 갔었거든.”

“정말요?”

말마다 나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 이 차장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저 여수는 한 번 가봤나? 다음에 회사 야유회로 여수도 한번 가요, 이사님!”

한태준은 삼겹살을 구우며 장 이사에게 말했다.

“그래, 여수 좋지. 다음에 갈 때 한번 봐보자.”

술자리가 얼마나 무르익었을까.

“WG는 언제부터 담당 거래처 가져가기 시작하는 겁니까?”

이 차장은 장 이사를 향해 물었다.

“우리는 수습 3개월 지나서, 정직원으로 전환할 때 능력 보고 결정하지.”

“생각보다 일찍 거래처 담당 달아 주네요.”

“응. 작은 거래처부터 하나씩 주고 관리해 봐야 하니까.”

그들의 대화에 한태준은 조용히 상사들의 빈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태준 씨가 입사한 지 좀 됐지?”

술을 받은 이 차장은 술병을 건네받아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저 이제 7개월 차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담당 거래처도 있겠네. 받았어?”

“네. 아직은 많지는 않지만, 몇 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어디 쪽 담당 맡고 있어?”

“저는 광주 쪽으로만 하고 있고, 지금은 남구 쪽 몇 개 담당하고 있습니다.”

“남구? 남구 쪽은 또 내가 꽉 잡고 있지. 남구 어디 쪽, 진월동인가?”

그는 ‘남구’라는 단어를 듣고 눈이 커지며 한태준에게 되물었다.

“저는 아직 몇 개 없어서… 차장님은 거래하시던 담당 병원 가지고 오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다 남구 쪽이신 겁니까?”

“응. 남구도 있고, 다른 지역도 더러 있지.”

“와, 많이 가지고 오셨나 보네요?”

“내가 이직한다고 하니까, 원장님들이 기어코 나랑 일하겠다고 따라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온 병원들이야. 한편으로는 감사하지, 원장님들한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술잔을 들며 말하는 이 차장.

“거래처 빼 왔네, 통수 쳤네,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 알고 있는데. 나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알겠지, 민 대리?”

“…네. 거래처 들고 올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이죠. 저는 나쁘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이 차장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한태준이 이 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뭔데?”

“레일 병원이 파산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복 메디컬의 담당 직원은 그 낌새를 전혀 몰랐던 겁니까?”

“그렇지. 담당 직원이 대리 달고 있던 친구였는데, 몇 년 안 돼서 몰랐나 보더라고. 그리고 어디서 파산 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겠어.”

이 차장이 한태준을 보며 대답했다.

“하긴 그렇지. 보통 파산 신청하기 전에는 병원 내에 직원들 중에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장 이사가 옆에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렇습니까? 대부분 파산 신청할 정도면 알 것 같았는데.”

“모르지. 뭐 좋은 일이라고 알려 놨겠어. 특히 거래처에서 대리 정도 사람이면 몰랐겠지. 이 차장처럼 오래 일하거나, 쭉 담당했어야 귀띔으로라도 알았을 텐데.”

이 차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온 입장에서 봐도 복 메디컬 생각하면 참 안타깝죠.”

그는 씁쓸한 목소리를 내며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일순, 그의 눈엔 음흉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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