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자랑스러운 아들 】
6시 20분.
주말이라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3년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 평일에는 그렇게 알람이 울려도 눈이 안 떠지는데, 주말만 되면 왜 이렇게 번뜩 눈이 떠지는지 그게 아직도 의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눈이 떠진 것을 후회하고 다시 눈을 감아 잠을 청했겠지만, 오늘은 눈이 떠진 김에 일어났다.
기지개를 한번 켜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끌어왔다. 밤새 무슨 일은 없었는지,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뉴스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제야 침대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평일에 바빠서 하지 못했던, 미뤄뒀던 집안일들을 몰아서 하고 나니 시계는 벌써 11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챙겨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여수집’을 클릭했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응. 아들.
“어머니 일어나셨어요?”
- 그럼. 아들은 주말인데 벌써 일어났어?
“네. 뭐하고 계세요.”
- 오전에 일하러 잠깐 나갔다가 곧 점심때 돼서 집 들어왔어. 너는? 밥은 먹었어?
“어머니. 저 지금 여수 내려가요.”
- 여수? 무슨 일 있어? 집 오는 거니?
“무슨 일이 있어야 가나. 보고 싶다고 내려오라고 하셨잖아.”
- 어머. 다음 주에 온다더니 벌써 와?
“다음 주에 또 무슨 일 생길지 몰라서 지금 가요. 같이 밥 먹게 기다려요. 금방 가.”
-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나가서 맛있는 거 먹게 준비하지 마요.”
- 에이. 금방 해.
“나가서 먹어요. 힘들게 언제 다 차려요.”
- 아무튼 엄마 이것 좀 챙겨야겠다. 운전 조심히 해서 내려와.
“네. 힘들게 이것저것 하지 마세요.”
- 그래.
부모님은 여수에서도 시내가 아닌 외곽에 살고 계신다. 외곽 농촌에서 버섯 농사를 하고 계신 지 꽤 오래됐다. 내가 어릴 적부터 시작하셨으니 벌써 20년은 족히 넘으신 것 같다.
농사는 어떤 품목이든 몸이 고된 일이기에 내가 성인이 되어 용돈을 받을 나이가 지난 후에야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드렸던 적이 있다. 이제 다른 직종으로 바꿔보시는 건 어떠시냐고.
하지만 오랜 시간 해오신 탓에 부모님의 생각은 견고하셨고, 내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셨다. 비록 몸이 힘든 일이지만,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버섯 재배라 자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바쁘게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어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늘 재배사에 계셨다.
그 덕분에 부족함 없이 그리고 돈 걱정 없이 자랐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날 한 번도 일터에 부르지 않으셨고, 내가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에는 무한하게 지원을 해주셨었다.
용돈 한 번 안 주신 적이 없었고, 학원이면 학원, 먹는 것 입는 것에서도 늘 친구들에게 뒤처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이 부자인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정신이 크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저 버는 족족 자신들이 아닌 나에게만 썼던 거라는 걸.
그리고 결심했다. 꼭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리며 살아야겠다고.
* * *
“아들!”
문을 여는 소리에 부모님은 이미 문 바로 앞까지 와서 나를 맞이하고 계셨다.
“저 왔어요.”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부모님 얼굴을 보니,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 집에 자주 오지 못했던 걸 반성하게 됐다.
“오느라 힘들었지?”
들고 있던 외투를 받아 들며 어깨를 토닥이는 아버지. 내색은 크게 안 하시지만 늘 내가 집에 오는 걸 손꼽아 기다리고는 하신다.
“아니요. 차로 오면 금방인데 뭐.”
“배고프지? 얼른 손부터 씻고 와.”
앞치마를 두르고 뒤집개를 든 채로 현관까지 나온 어머니. 음식을 하고 있지 말라고 했더니 기어코 하신 모양.
킁킁.
나는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났던 음식 냄새를 몇 번이고 맡아댔다.
“아휴. 진짜 내가 나가서 먹자니까 결국 또 음식 해놨네.”
“매번 나가서 먹을 텐데. 아들 온다는데 엄마가 밥해놔야지.”
“잡채 했어요?”
맛있는 냄새에 끌려 코를 몇 번이고 킁킁거리게 만든 게 바로 잡채 냄새였다.
“우리 아들 귀신이다, 귀신.”
“아니. 어머니 힘든데 손 많이 가게 무슨 잡채까지 하셨어요.”
늘 이런 식이다.
일까지 하고 와 힘든 걸 아는데, 꼭 아들이 온다고 하면 진수성찬을 차리고 기다리신다.
모시고 나가 근사한 식당을 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해도 집밥이 최고라며 아들 돈 걱정을 해주시는 부모님.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건데. 금방 했어. 얼른 들어와.”
“그래. 얼른 들어와서 옷 갈아입어라.”
“진짜 맛있다.”
“맛있어? 다행이네. 말도 없이 일찍 와서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들어서 맛없을까 봐 걱정했네.”
잡채에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그 짧은 시간에 한상차림을 차려두신 어머니다.
나는 오랜만에 온 집에서 근황 이야기를 미뤄두고 정신없이 수저와 젓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밥을 먹었다.
“어휴. 저런 놈들은 감방에서 평생을 보내야 해.”
아버지는 식사하실 때면 어김없이 뉴스를 틀어놓고 드신다.
한참을 흡입한 뒤 이성을 찾고, 고개를 들어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왼쪽에 선명하게 그어진 한 줄의 선.
“아버지. 저게 뭐예요?”
“아… 저게.”
아버지는 내가 묻는 말에 적잖게 당황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된 텔레비전이라 크기가 작은 것은 당연하고, 화질까지 좋지 않아 젊은 내가 보기에도 눈이 가끔 찌푸려질 때가 있다.
예전부터 다른 건 몰라도 매일 보는 텔레비전은 바꾸시라고 말씀도 드렸다. 그 후에도 바꾸시질 않자 용돈을 보내 드렸는데도 여전히 거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저 오래된 텔레비전.
“아니. 제가 바꾸시라고 용돈 보내드렸잖아요. 왜 아직도 안 바꾸셨어요.”
“에이, 아직 볼만해.”
“뭐가 볼만해요. 저기 선은 또 뭐래?”
화면 한쪽에 진하게 그어진 선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다.
“몰라. 저게 가끔 뜨더라. 근데 또 채널 돌리거나, 껐다가 켜면 없어져.”
어머니는 밥을 입에 넣으면서 내 질문에 대답하셨다.
“아들이 이제 돈도 버는데, 그만 아끼시고 저런 것 좀 바꾸셔요. 사람들이 보면 아들 욕해.”
“안 그래. 우리 아들 얼마나 잘 났다고 다들 칭찬하는데.”
“그래도…….”
“알겠다. 바꿀게.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볼만해서 그래. 국 식겠다, 얼른 먹어.”
아버지는 이것 가지고 실랑이를 하기 싫으셨는지 자꾸만 젓가락으로 음식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 * *
“이거 오늘 바로 설치 가능할까요?”
밥을 먹고 나서 바로 근처에 있는 전자 상가부터 들렀다.
내가 광주로 돌아가고 나면 절대 바꾸지 않으실 것을 알기에 구매까지 마치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네. 이 모델은 재고 있어서 바로 설치 가능하세요.”
바로 설치할 수 있는지 묻는 내 말에 구매할 것 같다는 확신을 느낀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는 영업 미소를 가득 머금고 텔레비전의 성능과 이달의 행사 등을 한참이고 설명해 보였다.
파는 물건만 다를 뿐, 같은 영업을 하는 종사자라 이런 곳에 왔을 때 살 마음이 있다면 질질 끌지 않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네, 이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결제는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
직원은 양손으로 의자를 빼내어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를 꺼내어 말했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몇백만 원이 되는 텔레비전을 일시불로 긁을 수 있는 것. 얼마 전 받은 인센티브 덕이다.
그날 인센티브를 받고 집에 돌아와 금액부터 확인을 했었다. 비록 한 달 월급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내 예상보다 꽤 큰 금액이었다.
그 돈으로 어떤 일을 하면 의미가 있을까, 언제 쓸지 모를 것을 대비해 저축을 해둬야 할까, 여러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 몽땅 털어 텔레비전 한 대를 샀다.
남은 인센티브는 없지만, 마음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오늘 바로 배송해서 설치 가능한 거죠?”
“네. 저희 기사님이 늘 계셔서 원하시는 시간에 설치 가능하세요.”
“그럼 최대한 빠른 타임으로 부탁드릴게요. 오늘 꼭 받아야 해서요.”
“바로 배차시켜 두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 *
“이게 뭐야?”
“뭐긴요. 텔레비전이지.”
“그러니까. 이게 뭐야. 언제 주문했어!”
“아까 잠깐 나갔다가 왔어요. 그러니까 진작 바꾸라고 계속 말씀드렸었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사버리면 어떻게 하니. 지훈이 아빠! 나와보세요.”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놀란 토끼 눈을 하시고는 방에 있는 아버지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게 뭐야. 지훈이가 사 온 거야?”
“네. 그렇다니까요? 어휴. 얘도 참, 누구 아들인지.”
“아직 텔레비전 한참을 더 볼만한데, 이걸 뭐하러 사 왔어.”
“그러니까. 우리 진짜 괜찮아서 안 샀던 거야.”
“돈 아깝게 왜 사 왔어.”
이런 반응이 이제는 익숙하다. 부모님은 내가 뭘 사드리던지 한 번에 좋아하시는 법이 없다.
그 돈 아껴서 다른 걸 하지, 너한테 쓰지 왜 이걸 우리한테 쓰냐는 둥, 고맙다는 말이 아닌 핀잔부터 시작하신다.
받는 것에 익숙하시지 못한 부모님의 반응에 늘 마음이 아프면서도 속상함이 크다.
“아니. 그냥 고맙다, 잘 쓰겠다, 하시지. 왜 매번 핀잔만 주세요.”
오늘도 같은 반응으로 받는 부모님을 보며 나도 모르게 좋은 소리가 나가지 못했다.
“네가 회사 생활 하면서 힘들게 돈 버는 건데, 우리한테 이렇게 쓰는 게 속상해 그렇지. 그리고 바꿀 때도 안됐고.”
“바꿀 때는 한참 지났다니까요. 눈도 침침하시다면서 화면도 작고 화질도 안 좋은 거로 보시는 게 제 마음이 더 안 좋아요.”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저도 이제 돈 벌어요. 제 걱정 너무 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것도 하시면서 편하게 지내세요.”
이게 뭐라고, 이게 얼마나 된다고.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셨고,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동안 내 뒷바라지만 하고 사셨던 부모님에 대한 생각에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 주변을 한참이고 배회했다.
아까 말을 그렇게 내뱉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녀왔…….”
30여 분이 흐르고 집에 다시 들어갔을 때 부모님을 보고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