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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31화 (31/339)

31화

【 연달아 오는 행복 】

처음 병원과 거래를 시작한 후 통장에 실질적으로 돈이 꽂히는 첫 결제.

그 돈을 받을 수 있기까지가 1년이라면, 대략 36억 이상이 외상 금액인 것이다.

무려 36억이 외상 금액이 되기 시작한 그 이후부터 매달 3억씩 받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외상 매출액인 36억도 메디컬 회사의 자산에 포함되지만, 깔려 있는 돈이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는 그 1년의 결제 텀이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1년의 결제 텀을 둔 병원, 의사와의 신뢰는 충분히 두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병원이 파산 신청을 했다라…….

최소 복 메디컬은 36억 이상의 금액을 못 받게 된 셈이다.

무려 36억.

“그래서 지금 광주 메디컬 쪽에 복 메디컬이랑 레일 병원 얘기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랬겠네. 어쩌냐, 복 메디컬은?”

한태준은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고 내 귀 쪽으로 다가왔다.

“근데 더 대박은 뭔지 아십니까?”

귓속말하기 위해 다가오는 한태준을 보고, 귀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뭔데?”

“대표님 지인. 그 복 메디컬 직원이 우리 회사로 들어온답니다.”

“뭐야. 그게 이렇게 비밀스레 할 얘기였어?”

속삭이는 한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실망감이 가득 찬 표정으로 재빨리 귀를 떼어냈다.

“아니. 한국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죠, 민 대리님.”

“계속해 봐.”

“그 지인이 복 메디컬에 과장으로 있던 사람인데, 저희 쪽으로 넘어올 때는 부장직으로 온답니다.”

“엥? 나이도 어릴 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근데 복 메디컬이 난리가 난 와중에 자기 거래처 싹 다 들고 저희한테 온다는 겁니다.”

“와… 우리야 우리 쪽 매출 오르니까 좋긴 한데, 복 메디컬에서 받는 눈총은 어쩌냐?”

“대박이죠. 그 직원도 진짜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하다.”

“완전 배신 아닙니까?”

그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물었다.

“회사에서 보면 백 프로 배신이라고 생각하겠지.”

“누가 봐도 백 프로 배신이죠.”

“근데 복 메디컬 직원 입장에서는 침몰해 가는 배에서 살겠다고, 구명보트 타고 나온 거지.”

한태준은 내 말을 듣고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기더니 한 손을 턱에 괴고 되물었다.

“그런가? 그 직원이 맞는 일 한 건가요?”

“글쎄다. 그쪽 회사 사정이니까 앞뒤 상황을 모르니, 누가 맞다 틀렸다 평가할 수는 없지.”

“근데 복 메디컬은 레일 병원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그냥 메인 거래처 하나 놓친 건데, 그 직원 때문에 회복이 더 힘들게 생겼으니. 아무튼, 저는 그 직원 마음에 안 듭니다.”

“누군지도 안 봤으면서?”

“안 봐도 뻔합니다.”

한태준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거래처 들고 오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니까.”

“게다가 부장으로 승진해서 온다는데, 반갑게 맞이 못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색안경 끼고 보지는 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래도…….”

“혹시 몰라. 우리 회사 출근 하자마자 좋다고 쪼르르 달려가지나 마라.”

“에이, 전혀요. 저는 벌써 마음의 문 닫았습니다.”

그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됐어. 이제 가서 일이나 봐. 하하.”

“넵.”

새 직원이 부장직을 달고 넘어온 다라.

회사에서 메인 병원이 없어지는 경우는 많이 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병원에서 파산 신청을 해버려서 돈을 못 받게 된 경우는 처음 보지만, 다른 메디컬에서 병원을 빼앗아 가는 경우들은 수두룩하게 봤었다.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회사에서는 메인 병원이 없어지면 크게 주춤할 수밖에 없다. 보통 한 회사에 메인 병원의 매출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매출이 사라지면 그만큼을 메우기 위해 기존의 거래 중인 병원, 그리고 신규 거래 병원을 뚫기 위해 직원들은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온 직원들이 영업에 박차를 가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직원이 퇴사를 한다니. 심지어 큰 기둥이 하나 뽑힌 회사에서 작은 기둥들을 더 빼내어 우리 회사로 넘어 온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10시 30분.

출근해서 오전 내내 사무실에만 있는 건 오랜만이었다.

사무 업무를 보면서도 정신은 명의 병원에 가 있었다. 명의 병원 이명호 원장의 어깨 인공 관절 수술이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첫 수술로 들어간다고 했으니, 9시가 되기도 전에 환자의 몸에 칼이 들어갔을 것이다.

이때쯤이면 수술이 끝났을 텐데…….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정신을 다잡고 서류 작업을 하던 중 드디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발신인 : 어머니]

명의 병원 이 원장에게서 오는 전화가 아닌, 어머니의 전화에 놀라 서둘러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어. 지훈아, 통화 가능하니?

“네. 가능하죠.”

-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집 내려오나 해서.

“언제요? 무슨 일 있어요?”

- 무슨 일은. 너 생일이잖아.

귀에서 핸드폰을 내려 화면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 무뎌졌었지만, 회사에 다니며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이제는 다가온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다.

“아… 그러네. 벌써 다음 주네요?”

- 아이고. 생일도 잊고 있었던 거야?

“생일이 뭐 별건가.”

- 그럼. 우리 아들 세상 나온다고 얼마나 고생한 날인데.

“나온다고 제가 고생할 게 뭐 있어요. 어머니가 저 낳는다고 고생하셨지.”

- 아들, 오랜만에 얼굴도 보게 한 번 내려올 수 있으면 와. 바쁘면 다음에 와도 되고.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될 것 같아요. 내려갈게요.”

- 그래? 잘됐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들이 내려간다는 대답에 어머니의 목소리는 금세 밝아지셨다.

“없어요. 힘들게 준비해 둘 필요 없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 맨날 나가서 사 먹을 텐데, 오랜만에 내려오는데 집밥 먹어야지. 엄마가 준비해 둘게.

“고생하시잖아요. 근사한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 그래. 그때 봐 보자.

이렇게 말해도 늘 집에 내려가면 한상차림을 해두시는 어머니다.

“네. 뭐 필요한 건 없으시고요?”

- 응. 그냥 몸만 와.

“다음 주 주말에 갈게요. 가기 전에 연락 드릴게요.”

-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서 일 봐.

“네. 어머니도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지이잉.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기다렸던 전화, 명의 병원 이명호 원장이었다.

첫 번째 진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 버튼을 눌러 받았다.

“네. 원장님, 민지훈입니다.”

- 어, 민 대리. 내 전화 기다렸어? 뭘 이렇게 빨리 받아.

“계속 기다렸습니다, 원장님.”

- 그러니까. 아직 신호음 울리지도 않았는데 받아서 놀랐다.

“하하, 그러셨습니까? 수술은 잘 마무리됐습니까?”

- 방금 끝났어.

“어떻게… 기구는 좀 괜찮으셨습니까?”

- 민 대리.

나를 부르는 이 원장의 목소리에 침을 한번 크게 꿀꺽 삼켜냈다.

“네, 말씀하십시오.”

- 기구 좋더라.

예스!

기구가 좋았다는 말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성공이다.

아직 뒷말은 듣지 않았지만 기구가 좋았다는 말로도 반은 성공인 셈.

“다행입니다. 오후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원장님?”

- 응. 오후에 수술 없어서 들러도 돼.

“그럼 오후에 기구 회수하러 들어갈 때 찾아뵙겠습니다.”

됐다.

이렇게 병원에 기구가 처음으로 제품이 들어갔을 때 첫 번째 수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단추가 잘 꿰지냐 안 꿰지냐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병원에 들어가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 귀로 들은 건 아니지만, 통화할 때의 이 원장의 말투와 목소리를 들어도 충분히 확인 가능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성공이다.

* * *

점심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급하게 흡입을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전에 전화를 끊고 바로 명의 병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후에 들어와 달라는 말에 식사를 서둘러 하고 병원으로 바로 향했다.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간호사들이 병원으로 하나둘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이명호 원장 진료실로 들어갔다.

똑똑.

“원장님. 민 대리 왔습니다.”

“민 대리 왔어? 여기 앉아.”

“넵!”

“기구는 회수했어?”

“아니요. 원장님 뵙고 나서 가는 길에 수술방 들리려고요. 원장님, 기구 진짜 괜찮으셨습니까?”

들뜬 마음으로 온 나는 기구에 대해 재차 확인했다.

“어. 좋더라니까? 초반에 좀 헤매긴 했거든.”

“정말요? 어떤 부분이…….”

“처음에 스템이랑 사이즈 때문에 헤맸는데, 내가 누구냐. 금방 찾았지.”

“역시. 이 원장님이 수술은 기가 막히게 잘하시지 않습니까. 하핫.”

“하하. 아무튼 사이즈도 세분화가 잘되어 있고 해서 너무 수월하게 잘 됐어.”

“다행입니다. 첫 케이스라고 하셔서 10시부터 계속 전화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 수술 잘못될까 봐?”

“에이, 원장님이 수술하시는데, 잘못될 리가 있겠습니까? 처음 저희 거 기구 쓰시는 거라 걱정돼서…….”

“내가 기구 마음에 안 들어서 기구 회수하고 다음부터 넣지 말라고 할까 봐 그런 거 아니고?”

“아니… 딱 그런 건 아니지만……. 헤헤.”

이 원장의 돌직구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어 재꼈다.

“이래서 인서트랑 잘 맞물려서…….”

“기구 끝이 헐렁거려서 중간에…….”

수술에 대해 무려 30분을 넘게 브리핑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인공 관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수술 때 쓰겠다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아 초조해질 무렵.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먼저 포문을 열었다.

“원장님, 어깨 수술 경과 보시고 괜찮으시면 다음번에도 저희 거 써주시는…….”

“안 그래도 그거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할까 했지.”

“그러셨구나. 환자 상태는 좀 괜찮습니까? 지금 회복실에 있죠?”

“응. 엑스레이 사진 나와서 봤는데.”

그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손으로 잡고 내가 볼 수 있게 화면을 돌려보았다.

“원장님. 수술 진짜 잘하셨는데요?”

수술은 직접 해본 적은 없으나 기구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기에 엑스레이 사진만 봐도 써전들이 수술을 잘했는지, 못했는지가 분명하게 분별된다.

“그럼. 당연하지.”

“저희 기구 처음 쓰신 건데.”

“그동안 수술 짬이 있는데. 하하.”

“그니까요. 원장님 실력은 진짜 환자들이 다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어깨 수술하면서 기구가 안 좋아도 써야 하나, 계속 고민 많이 했었거든.”

기구가 안 좋은데 수술을 한다라…….

무슨 말인지 이해는 잘되지 않았지만, 말을 하며 한숨을 쉬는 이 원장을 보고 덩달아 심란해진 표정으로 경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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