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래서 병원장님이 이 원장님 어깨 인공 관절 바꿀 수 있게 해주신 겁니까?”
이명호 원장이 병원장에게 큰소리를 치고, 인공 관절을 우리 회사 제품으로 바꾸게 된 게 맞는지 앞에 앉은 박승호 원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응. 명호가 그렇게까지 나올 줄 모르셨겠지. 적잖게 충격도 받으신 것 같더라고. 그래서 IBH 거로 이번에 잡힌 수술 케이스 때 한번 써보라고 하셨다더라.”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이번 첫 IBH 어깨 인공 관절 수술이 별 탈 없이 마무리된다면 한번이 아니라 쭉 우리 제품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명호 원장이 병원장에게 질러놓은 것이 있어, 수술이 크게 잘못되지 않는 이상 기존 제품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진짜 감사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난 또 민 대리가 명호한테 뇌물이라도 올린 줄 알았다니까? 명호가 이렇게 한 건 처음이라 나도 놀랐어. 하하.”
“이제라도 뇌물 바쳐야겠네요. 하핫.”
“농담은.”
“열심히 이 원장님도, 박 원장님도 자주 뵈러 오겠습니다. 맛있는 거 잔뜩 사 들고.”
“그래. 나한테도 사준다니까 고맙네.”
“당연하죠, 원장님. 제가 명의 병원에 오게 된 게 원장님 덕분인데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명호 요즘 힘들었을 거야. 다음에 같이 술이나 한잔하게.”
“좋습니다.”
박 원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한참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원장 환자 케이스가 심각하다더니, 오늘 수술 오래 걸릴 예정인가 보다. 민 대리 기다리지 말고 들어가.”
“아… 기구 한번 설명해 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아마 이 원장 수술 끝나고 나오면 기력 하나도 없을걸. 내가 나오면 설명해 줄게. 민 대리가 기구 일찍 넣어 줬으니까 내일 확인하고 연락하라고 전달할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박 원장님.”
“그래, 들어가.”
“넵.”
* * *
“원장님, 저 왔습니다.”
어제 이 원장의 수술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오늘 결국 다시 명의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어? 민 대리 왔어? 어제 왔었다며.”
“네. 어제 못 뵈고 가서 다시 왔습니다.”
“에이, 미안하네. 어제 왔는데 괜히 다시 오게 하고 말이야.”
“아닙니다. 고생은 원장님이 하셨을 텐데요.”
커피 두 잔이 담겨 있는 컵 캐리어에서 한 잔을 빼내어 이 원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원장님, 이거 드세요. 오늘 많이 피곤하실 것 같아서 달달하게 카라멜마끼아또로 사 왔습니다.”
“내가 피곤한 줄은 어떻게 알고. 민 대리 하여간 여우야, 여우.”
이 원장은 눈을 반쯤 뜨고,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하하, 여우요? 칭찬인 거죠, 원장님?”
“그럼. 세상 더 살아 봐. 다들 여시라고 해도 곰보다는 여우가 낫더라.”
그는 커피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핫. 원장님 근데 어제 수술 많이 늦게 끝나셨습니까?”
내 말에 이 원장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어 보였다.
“어휴, 말도 마. 나 어제 오랜만에 5시간짜리 수술했다.”
“헙. 5시간이요?”
“응. 점심시간 다 지나고 수술 시작했는데, 나오니까 퇴근 시간도 지났더라.”
“와. 진짜 고생하셨네요, 원장님.”
“그러게. 그래도 수술은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지. 죽는 줄 알았다.”
“당연하죠. 이 원장님 실력이 어디 가나요. 다들 원장님 실력 보고 찾아오는걸요.”
“하… 당 땡기네.”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는 커피를 연달아 마셔댔다.
“근데 어제 케이스 많이 심각했습니까? 인공 관절 수술이었습니까?”
“응. 인공 관절 리비젼 했어.”
“리비젼이요? 처음 했던 병원에서 수술이 잘못된 거예요?”
“어. 진짜 제멋대로 수술했더라. 스크류도 사이즈를 엉망으로 꽂아두고. 환자가 수술한 지 좀 됐는데, 금방 다시 통증이 와서 광주까지 온 거더라고.”
처음 병원에서 수술하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경우의 원인은 한 가지밖에 없다.
써전의 실수.
써전의 오진이거나, 수술 실력의 미흡함.
써전은 당연히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수술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써전이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 이 원장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말이다.
처음에 방문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수술했던 병원을 믿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 환자들의 상태를 보면 대부분 수술이 잘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수술이 끝나고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이 환자는 수술 끝나고 엄청 아프겠는데? 또는 재수술을 해야겠는데?라는 게 보이기도 한다.
요리사라는 이름을 달고 식당을 해도 전부 맛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수술을 잘하는 의사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잘해야 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시골 사는 환자던데, 환자 기록 보니까 동네 병원에서 수술했더라고.”
“아…….”
“근데 연세도 엄청 많으셔. 그니까 수술이 얼마나 위험했겠어. 못하면 큰 병원으로 보내야지, 그 환자를 제멋대로 수술해 놨더라니까?”
“리비젼하는 데 애먹으셨겠어요.”
“응. 리무발 할 때부터 싸하더니, 스크류랑 스템, 빼고 나니까 뼈가 아주 작살이 났어.”
“진짜 안 맞는 사이즈로 끼워 넣었었나 보네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뼈 더 자르고, 롱스템 밀어 넣어서 마무리했지.”
“고생 많으셨네요, 진짜로.”
“어휴.”
이 원장은 전날 수술실의 잔상이 떠오르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원장님.”
“티나? 요즘 힘들어 죽겠다. 뭐가 이렇게 바쁘고 많은지.”
이 원장은 앞에 놓인 모니터에 비치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손을 가져다 대고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아! 그리고 원장님. 소식 들었습니다.”
“무슨 소식?”
“저희 제품 써주신다고 많은 일 있으셨다는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박 원장이 그래?”
“네. 병원장님이랑 한바탕하셨다고…….”
“아… 근데 민 대리가 뭐가 죄송이야.”
“그래도 저희 제품으로 바꾸시면서 그랬다니까, 신경이 쓰여서…….”
“그럼 쓰지 말까?”
이 원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팔을 툭 건드렸다.
“아! 그건 아닙니다. 하하.”
“그래. 민 대리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내가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무튼 내가 결정한 거니까. 괜히 마음 쓰지 마.”
“그래도…….”
“그동안 나도 많이 참고 다녔는데, 이제야 겨우 한번 꿈틀거린 거지.”
“아, 네.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래. 그리고 어제 기구 가져다 뒀다는 건 아침에 와서 확인했어.”
“벌써 보셨습니까?”
“응. 소독 돌려야 해서 아침에 바로 봤어.”
“기구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다른 기구 필요 없게 세분화는 잘 되어 있는데, 간혹 기존 기구 때문에 찾으시는 원장님들이 많으셔서요.”
“괜찮아. 준 거로만 써도 괜찮을 것 같더라.”
“다행입니다.”
“내일 수술 첫 케이스로 잡혀서. 점심 전쯤에는 끝날 것 같아. 끝나고 연락해 줄게.”
“네. 이거.”
가방에서 USB를 하나 꺼내 이 원장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야?”
“어깨 인공 관절 지난 학회 때 라이브 서저리 영상인데, 혹시 필요하실까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아, 고마워. 보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연락할게.”
“넵. 언제든 연락 주세요. 원장님.”
* * *
“대리님! 대리님!”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
다름 아닌 한태준이였다.
한태준.
신입 사원 백태석보다 6개월 정도 일찍 들어온 직원이다.
수습 3개월 동안 말 수도 적도 워낙 조용조용한 탓에 존재감이 없었던 한태준. 거짓말처럼 수습 기간이 지나고 정식 직원으로 전환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오지랖이라는 오지랖은 다 부리며 다니는 직원이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낯을 가려서, 수습이었으니까, 라는 말들로 포장을 했지만 대체 그동안 어떻게 참고 3개월을 버텼는지가 대단하다 싶은 직원이다.
눈치도 빠르고 타고난 오지랖 덕택에 딱 봐도 영업직과 잘 어울리는 성격을 가졌다.
선임들에게 살랑살랑 미울 수가 없는 애교 아닌 애교도 피울 줄 아는, 집안의 막둥이 같은 스타일.
다급한 부름에 놀란 내 눈을 보고 한태준은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민 대리님! 제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십니까?”
“또 왜. 뭔데.”
평소에도 별일이 없어도 호들갑 대마왕인 한태준의 부름에 시답잖게 대응을 했다.
“병원 갔다가 이제야 오신 겁니까?”
“응. 병원 들렀다가 왔지. 무슨 일이야. 너 큰일 아니기만 해?”
눈에 칼을 세우고 한태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엄청난 소식이라 깜짝 놀라실걸요?”
“그러니까. 뭔데.”
“대리님, 병원 나가 계신 사이에 오전에 사무실이 아주 들썩거렸습니다.”
“후. 뜸 들이다가 죽겠다.”
“그게…….”
그는 히죽 웃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민 대리님. 복 메디컬이라고 아십니까?”
“복 메디컬? 남구에 있는 거?”
“네! 역시 아시는구나!”
“알지. 복 메디컬에 김 대표님 지인 다닌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오! 맞아요!”
“너는 어떻게 알았어?”
“오늘 복 메디컬 때문에 시끌시끌했습니다.”
“왜, 거기 우리랑 관계있는 게 없잖아?”
“네. 근데 복 메디컬 지금 완전히 망했답니다.”
“망해? 왜.”
“복 메디컬 메인 병원이 파산 신청했대요!”
“파산 신청?”
“네. 대박이죠.”
“거기 메인 병원이 뭐더라. 그 주월동에 있던 병원이었나?”
“레일 정형외과요.”
“그래! 레일 정형외과. 근데 거기가 파산 신청을 해, 갑자기?”
“그러니까요.”
“그럼 돈은?”
“망한 거죠. 결제 텀도 무려 1년이랍니다.”
“와…….”
1년이라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대개 병원의 결제 텀은 짧게는 익월, 길게는 6개월까지로 정하고는 한다. 6개월 그 이상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결제 텀이라는 게 병원에 깔린 받지 못한 외상 매출금액을 뜻한다.
6개월, 무려 반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는 서로 힘들다는 걸 알기에 마지노선 개월 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출처인 병원의 갑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병원 의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종종 1년의 결제 텀을 가진 곳도 존재하고는 한다.
복 메디컬의 메인 거래처인 레일 정형외과처럼.
1년, 말이 1년이지 보통 정형외과 쪽 메디컬에서 메인 병원이라 칭할 정도의 큰 병원에 나가는 매출액은 한 달에 3억 이상은 된다고 예상 잡을 수 있다.
최소 3억이지, 그 이상의 금액은 무궁무진하다. 인공 관절, 트라우마, 소모품 그 외의 모든 품목을 한 거래처에서만 받는다면, 금액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회사에서 날린 돈이 36억인 셈이다.
최소 36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