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저……. 대리님!”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박수진 주임을 보고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네, 주임님. 무슨 일 있으세요?”
“저기……. 있잖아요.”
“말씀하세요.”
“혹시 민 대리님 소개팅 안 하실래요?”
“소개팅이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눈썹을 씰룩이며 되물었다.
“네. 제 주변에 괜찮은 친구 있는데, 대리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꼭 쥐며 대답을 했다.
“아……. 그게.”
“설마 애인 있으신가?”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그녀의 표정에는 궁금함과 더불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 보였다.
“아니, 일단 솔로긴 한데…….”
나의 대답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내 말을 툭 잘라버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열어 나에게 들이밀며 보여주었다.
“얘 어때요? 예쁘죠? 얘가 제 친군데 성격도 착하고, 애교도 많고, 인기도 많고…….”
그녀는 핸드폰 사진 속 친구를 설명하며, 핸드폰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계속 내 표정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와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보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받는다고 하지 마라…….]
응? 대체 무슨 속마음이 이래?
받으라고 하면서 왜 받지 말라고 하는 거지?
설마, 지금 내 마음을 떠보려고 이렇게 소개팅 핑계를 대고 있는 건가?
겉으로는 소개를 받으라며 끝없이 친구의 칭찬을 하는 박 주임. 그리고 속으로는 받지 말라는 그녀의 마음의 소리에 어떤 답변을 주어야 하는지 한층 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박 주임이 나에게 마음이 생긴 거라면 이제 내가 어떠한 행동과 대답을 해야 할까.
사실 나는 박수진 주임에 대한 마음이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볼 사이고, 봐야 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곤란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박 주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대리님! 어떠냐니까요?”
“아! 주임님 친구분이시니까, 친구도 끼리끼리라고. 예쁘시네요.”
“끼리끼리요? 저도 지금 예쁘다고 하시는 거예요?”
내 의도와는 다른 해석으로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가며 볼을 문질거렸다.
“아……. 네. 뭐.”
“그래서 대리님 소개받으실 거예요. 안 받으실 거예요?”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렇게 하는 박 주임을 보니 절대로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졌다.
“주임님, 신경 써주신 건 정말 감사한데요. 죄송한데, 제가 아직 연애는 생각이 없어서요. 진짜 미안해요.”
“그러시구나.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말과 달리 그녀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내가 받지 않길 원했던 그녀의 속마음처럼.
“대리님은 근데 연애는 안 하세요?”
“저는 아직 사회적 위치도 덜 잡았고, 일도 바빠서 아직 연애 생각이 없네요. 하하.”
“그러시구나. 그래도 평생 연애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저도 좋은 사람 있으면 연애도 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네요.”
“근데 그런 연애가 꼭 멀리 있으란 법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멀리서 찾지 마세요. 인연은 원래 가까이에 있다고들 하잖아요?”
“아…….”
“인연이 진짜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돌하고 거침없는 멘트를 날리는 박 주임은 내뱉은 말과는 달리 내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의 적극적인 멘트 공세에 당황할 찰나.
“그럼, 커피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결국 탕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와의 대화만 마친 채 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설레발이긴 했지만, 박 주임이 나에게 고백을 하면 어쩌나,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되나, 라며 순간 오만 가지 고민이 다 들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국 아무 일도 없이 끝이 났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버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녀를 헷갈리게 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홀로 남아 커피를 마저 마시고 사무실로 나왔다.
“차장님 오셨습니까?”
탕비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사무실로 들어오는 손지혁 차장과 마주쳤다.
“어, 민 대리 왔어?”
“넵. 차장님 저…….”
“왜, 또 뭐야. 좋은 일이야 나쁜 일이야?”
“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손 차장은 손으로 턱을 쓸어 만지며 대답했다.
“흠. 좋은 거 먼저 들어보자.”
“명의 병원 어깨 인공 관절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아직 수술이 끝난 건 아닌데, 수술 홀드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아마 수술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정말이야?”
“네. 내일 기구 넣기로 했습니다.”
“진짜 잘됐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환자 상태는?”
“엑스레이 봤는데, 상태 많이 나쁘지는 않아서 당일에 환자 컨디션만 이상 없으면 수술 홀드 될 가능성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보고는 올렸고?”
“출근하자마자 장 이사님께 바로 말씀드렸습니다. 이사님이 대표님께 따로 말씀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너무 좋은 소식이네. 잘했다.”
그는 내 어깨를 연신 토닥이며 자기 일인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토닥임을 받고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뭔데?”
“그게……. 저희 KJ 병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준성이 담당이잖아.”
“제가 우연히 동창 놈을 하나 만났는데, 그 친구가 기자더라고요.”
“기자?”
그는 기자라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네.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취재 중에 있는데, 이번에 정형외과 메디컬 쪽에 리베이트, 백마진에 대해서 취재한다고 해서요.”
“그래서?”
이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귀를 기울였다.
“근데 이 친구를 제가 KJ 병원에서 마주쳤었는데, KJ 병원에 리베이트 한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계속 취재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제보했다는 게 대상이 우리 WG 메디컬이야?”
“그건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KJ 병원 들어가는 메디컬이 여러 군데이다 보니까, 친구도 정확히 저희 메디컬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는데.”
“흐음…….”
손지혁 차장은 턱을 쓸어 만졌다.
“드디어 정형외과 쪽도 터지는구나. 올 게 왔어.”
“그러게요. 제약 회사만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응. 정형외과 쪽 리베이트가 그동안 세상 밖으로 안 나왔다는 것 자체도 특이했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까?”
그는 내가 묻는 말에 허공을 쳐다보고 손가락을 접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아니. 정말 꼽을 수 있을 만큼이었달까? 근데 늘 그리고 나서 잠깐이었지. 큰 사건이 없었으니까.”
“아…….”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저는 그런 적 없다고, 모른다고 했죠. 실제로 리베이트 해본 적도 없는 건 차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렇지. KJ 병원 관련해서는?”
“제 담당은 아니긴 하지만, 그럴 일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우선 내가 따로 윗선에는 말씀드릴게. 혹시 그 기자 친구한테 뒤에 진행 사항 듣게 되면 얘기해줘.”
“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지훈이 너는 그럴 일 없긴 하지만, 혹여나 써전이 요구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말고.”
“예, 게다가 제 월급으로 리베이트 해줄 능력도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아무튼. 조심해라.”
“넵.”
* * *
어깨 기구와 임플란트를 사무실에서만 3번을 확인하고 챙겨 명의 병원으로 출발했다.
모레 수술이라 내일 기구가 들어가도 충분하지만, 처음 있는 명의 병원의 첫 수술이기에 일찍 기구를 넣기로 했다.
기구가 들어가 써전이 먼저 확인을 했을 때, 불편한 점이나 추가로 필요한 제품이 있다고 하면 공급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구, 사이즈가 대충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제품을 바꾸게 돼 처음으로 사용하는 써전은 기존에 쓰던 제품과 다른 수술 방법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기구를 추가로 요청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카트를 내려 기구를 조심히 싣고 수술실로 향했다.
탈탈.
카트를 끌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몇 층 눌러드릴……. 아! 수술실 가시는 거 맞으시죠?”
“네? 아. 네!”
내가 한 짐을 가득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먼저 타 있던 여성이 층수를 눌러 주려고 물어보다가 내 짐을 보고 수술실로 향하는 메디컬 직원임을 깨달은 것 같았다.
- 9층.
그녀는 수술실 층수 버튼을 곧장 눌렀다.
“감사합니다.”
“네. 근데 새로 오신 직원이신가 봐요?”
“네?”
“MG 메디컬 직원분 아니세요? 처음 뵙는 분이라…….”
“아……. 저는 WG 메디컬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WG 메디컬이요?”
그녀는 수술실에 납품되는 메디컬 회사가 MG 메디컬인 것과 직원들을 빠삭하게 아는 것을 보니, 근무를 꽤 오래 한 간호사 같아 보였다.
나는 카트에서 손을 떼고 황급히 재킷 안주머니의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하나 건넸다.
“네, 여기. 이번에 새로 납품하게 됐습니다.”
“그러시구나. 잘 부탁드려요. 저 수술실 담당 간호사예요.”
“아!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수간호사 선생님이신가요?”
“아니요. 저희 수간호사 선생님은 따로 계세요.”
“안 그래도 수술실 들어가면 간호사 선생님들 뵙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같이 들어가요. 저도 지금 수술실 다시 들어가는 길이라…….”
- 띵. 9층입니다.
- 문이 열립니다.
9층 수술실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수술방 앞으로가 목에 걸고 있던 카드키를 통해 수술실 문을 열었다.
카트를 끌고 그녀가 닫히지 않게 잡고 있는 수술실 문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돼요.”
“넵.”
그녀는 수술실에서 보기 힘든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뿜어내고 있었다.